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15)
우리는 술을 마시는 둥 마는 둥 하다, 새벽 네 시부터 아예 빠져 기숙사로 이동했다.
내 앞날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던 건 그것뿐이 아니다. 내 앞날보다는 중요치 않지만 또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에스체트 호감도를 2점밖에 모으지 못했다는 점이다.
‘울리케에게 1점쯤 따낼 수 있을 것 같고. 율리아는… 어떻게 공략해야 하지.’
참 난감한 지점이 이것이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앞뒤 안 재고 그야말로 공략이라고 할 수 있을 과정을 밟으면 되는데, 이들은 친구고 졸업 때까지 얼굴을 봐야 하는 팀원들이다.
그런 짓을 했다간 결국 장기적으로는 망한 조별과제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호감도 얻고 시간 돌리면 리셋되나?’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뺨을 꼬집었다.
이제 윤리적이지 않은 생각까지 하기 시작했다. 아니, 애초에 한 생각까지 전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이제 알았다.
이 체계가 원하는 방향으로 뇌가 절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어떻게 해야 우정을 얻어 낼 수 있는가….
“헉, 너 볼이 엄청… 보라색이야. 뭐야?!”
앞을 보니 나르케가 문손잡이를 잡은 채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소리 안 나게 하려고 꼬집은 건데 너무 세게 잡은 모양이다.
“좀 꼬집었다.”
“으응…?”
나는 그의 의문을 무시하고 그를 방으로 떠밀었다.
그의 새 기숙사 방에 들어서자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기숙사 멋지네.”
“아, 전에는 안 돌아봤지?”
“응.”
기숙사는 깔끔했다.
전에 쓰던 기숙사에 비해 크기가 커져 그런지 더 쾌적했다.
“자, 전에 내가 능력을 써 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지?”
나르케가 자리를 찾아 앉으며 말했다.
이전에 다니엘의 말을 듣고 나서, 나르케에게 ‘해석해야 할 게 있으니 시간 날 때 한번 봐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나르케가 영 기분 좋지 않은 예언을 하니 무슨 일 터지기 전에 의견 하나 더 들어 둘 필요는 있겠다.
물론 이 부분에서 통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니엘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들은 게 아니니까.
그냥 의견 하나 더 듣는다고 생각하고, 나르케에게 모든 걸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말해도 되는 부분, 성서에 나오는 동생을 죽인 인물부터 시작하자.
“나르케. 성서에서 카인은 에덴에서 추방당해 놋으로 가지.”
“응.”
“그런데 카인이 에덴에 남고 신이 그를 추방할 생각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이라고 생각해?”
“…신성모독…?”
나는 나르케의 무의식적인 답변에 헛웃음 쳤다.
나르케도 뇌에서 오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 머쓱했는지 손을 내저었다.
“아아~ 아냐. 물론 그렇게 된다면 그분께 다 뜻이 있겠지만, 일단 성서는 그렇게 쓰이지 않았으니까~ 인류 최초의 살인자를 에덴에 둔다? 왤까? 그런 말을 들었어?”
“그래.”
“구약 시대 이야기는 아니겠어. 그 아벨과 카인 이야기는 이 시대에 적용해야 하는 이야기겠지. 이 시대의 카인은 에덴에 남을 거란 말인가. 아니면 그분께서 일부러 이 시대의 카인을 에덴으로 배치했다는 말인가. 이 둘 중 하나겠지.”
“흠…. 최악이네.”
정황상 카인이 곧 아드리안 아스카니엔 아닌가.
하지만 그럴 일 없다.
있어도 없게 잘 조져 놓을 것이다.
“로잘린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말로 들려?”
“로잘린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아닐까?”
“이미 할 줄 알아.”
“좀 더 진정성 있게!”
진정성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건 이놈도 감을 못 잡네.
나는 기대를 버리고 다음 질문을 했다.
“그래, 고마워. 마지막이야. ‘이제 가이사리아가 코앞’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
“…….”
나르케가 처음으로 표정을 굳혔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어?”
“아까 두 질문 들은 곳에서.”
“흠…. 가이사리아 필립보를 말하는 건가? 코앞이 아니니 성서에 기반해 해석해야 하나 싶기도 하네.”
그리스도교 문화권인 만큼 성서 비유가 흔하기에 그라면 바로 알 법한데, 맥락이 없어 그에게도 난해한 질문인 듯했다.
“먼저, 가이사리아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 선언한 장소야.”
“그래. 그럼 그게 코앞이라는 게 뭔 말이야.”
“글쎄. 교회개혁 또 일어나야 하나?”
“…….”
어떻게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가끔 이놈이 뭐 하는 놈인가 싶어질 때가 있다.
“하하, 좀 가능성 낮은가? 그럼 조금 더 앞으로 가야겠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알더냐’고 물은 장소기도 하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이뤄진 장소로 유명하잖아.”
거기까지는 안다.
문제는 해석이지.
나르케도 감을 잡기 어려운 말이라면 일단 보류하는 게 좋겠다.
“음, 너무 추상적이네~ 네가 신을 알아봐야 한단 말일까? 하지만 넌 신앙심이 없는데도 신력을 쓸 수 있으니… 내 생각에는 굳이 이제 와서 신을 믿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너 그렇게 말해도 되냐?”
“으응? 당연히 안 되지!”
“그래….”
종잡을 수가 없네.
하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왜 그런 식으로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르케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신력을 배워서 쓰는 게 이론상 불가하지는 않지만 그게 실제 사례로 나타난 적은 없잖아. 무신론자가 신력이라니, 이런 특이 케이스는 좀 더 보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호기심이 대단하네.”
“음, 어쨌든 내가 한 해석도 마음에 드는 해석은 아니네. 나도 좀 더 탐구해 볼 테니, 그건 시간 날 때 천천히 하고 이제 앞날 예측부터….”
“나르케.”
“응?”
나는 그의 미소를 보며 생각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분명 그는 이전에, 하이케가 능력을 자주 쓴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연히 자주 쓰지 않았을 걸 가정하고 하이케에게 그리 물었는데, 능력을 자주 썼다니?
이 경우에는 가능성이 네 가지인데, 나르케의 기준이 하이케나 우리 같은 평범한 자들과 달라서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았거나, 나르케의 통찰 능력이 약 10여 년 전의 먼 과거까지는 읽지 못한다거나, 나르케가 내게 거짓을 말했거나, 당시 레벨 2짜리 통찰 능력이 오작동했다거나.
“나르케. 이전에 내게는 하이케가 능력을 자주 쓴 적이 없다고 했지.”
“응.”
그는 내가 뭘 물을지 알아챈 듯, 바로 해명했다.
“그건… 솔직히 오늘 자주 썼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좀 당황스러웠는데, 당시에 내가 받아들인 정보를 말해 줄게. ‘난 사람에게 능력을 쓸 수 없어. 설마 내게 능력을 쓰라고 말한다면 어쩌지? 그것도 사람에게? 난 그럴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데.’ …난 이렇게 생각하고 느낄 정도면 하이케가 아직 능력을 자주 써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
나는 침묵하다 미소 지었다.
“그렇구나.”
“…아, 어떻게 해야 루카스랑 친해질 수 있을까….”
나는 그의 말에 다른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는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
그가 저 반응을 보이는 건 그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를 불신하는 건 아니다. 나는 지금도 그의 통찰력과 예지 능력에 의존하고 있고, 또 그는 내 좋은 아군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를 포함한 친구들에게 모든 것을 공개할 수는 없으니 나르케만을 탓할 생각은 없다.
“이미 친하고 말고를 논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난 널 믿어, 나르케.”
“그럼. 알지.”
그가 웃으며 주제를 돌렸다.
“자, 이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그래. 왜 나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거야.”
“하하….”
미래를 읽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나르케의 낯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차마 네게 말해 줄 수가 없는데. 나 사실 내가 제대로 된 미래를 읽은 건지도 모르겠어.”
“대체 뭘 읽은 거야?”
“으아…. 진짜 속 안 좋아.”
나르케가 몸을 떨면서 꼭 영혼이 날아간 것 같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
뭘 봤길래 저러는지 모르겠다.
“뭘 봤는지 말해야지, 나르케. 그래야 내가 대비하지.”
“…지금 단언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펜탈론 검문 활동이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이뤄질 것 같지가 않아. 솔직히 폐회할 때까지 우리가 이걸 맡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
“못 맡는다?”
“안전상의 이유로 물러나야 하는 게 아닐까?”
한 달 뒤는 변화할 가능성이 많으니 저렇게 말하는 거겠지.
어쨌거나,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바엔 그냥 지금 물러나는 게 좋겠다.”
“알다시피….”
“씨알도 안 먹히겠지.”
“그래. 그리고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펜탈론도 문제지만 우리도 문제거든.”
우리가 펜탈론 경기장 검문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일이 터지는 게 아니라….
“우리도 타깃이고 펜탈론도 타깃이다?”
“그런 셈이지.”
그렇다면 우리가 펜탈론 경기장을 떠나도 펜탈론은 공격받을 것이고, 우리는 또 이동한 장소에서 우리대로 공격받을 거란 말인데.
이러면 말이 달라지지.
“인생 미리 아는 기분 재밌네.”
나는 허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왕이면 1타 2피 해야 하지 않겠냐?
약간의 손해는 내가 어디로 튀든 감수해야 하니, 어차피 겪을 거면 좀 겪고 두 마리 다 잡자고.
그 말에 작게 웃던 나르케가 점점 웃음기를 지우고 고개를 기울였다.
“루카스. 솔직히 난 내가 제대로 읽은 건지 의심스러워.”
“그럼 왜 말했어….”
“그래도 말해 줘야지. 혹시 이게 진짜로 일어나면 안 되니까.”
“그럼 자세히 말해 줘야 피하지.”
무한반복의 예감이 든다.
나르케는 고개를 저었다.
“피할 수는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이것뿐이야.”
“뭔데. 그거라도 말해. 새겨들을게.”
“사람하고 엮이지 마.”
* * *
엮이지 마라?
에스체트 호감도를 10점이나 모아야 하는데.
물론 그외 인간들과 마주치지 않기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구인류가 아니라서 다들 신분증을 가지고 오실 겁니다. 현재는 마법사만 출입 가능하거든요. 대부분 매일 오시는 분들이니 긴장 풀고 하셔도 됩니다.”
다음 날 오전 6시, 우리는 이른 시각에 경기장으로 나왔다.
신분증 확인은 우리의 본업무가 아니라, 가볍게 이곳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하는 일이다.
이제 오후부터는 경기장에 위험 요소가 설치되지 않았는지 마력으로 훑고 다니면서 확인해야 한다.
‘희생자 병원 보내려고 시험 쳤지 경기장 검문하려고 3차 시험까지 치른 건 아닌데 말이지.’
우리 팀이 희생자를 한 명이라도 더 처리해 다른 팀이 끼어들 시간 없게 하려고 했는데, 그건 앞으로 우리가 여기 남아 있는 동안에는 어렵게 됐다.
그래도 펜탈론을 노리는 자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여기에 투입된 것에 큰 불만은 없다.
펜탈론 전담 부서 공무원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요즘 플레로마 때문에 뒤숭숭하니 강하게 나가셔야 합니다. 제압해서 바로 경찰에 넘기셔도 되고, 마법을 쓰셔도 되는데, 그래도 너무 공격적이고 그런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 불안감이 커지니 알아서 잘… 아시죠? 기본적으로 친절, 기억하세요. 같은 마법사여도 의외로 여러분쯤 되면 다들 무서워하십니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 잘 들었다.
적정선을 잘 찾으라는 말에 팀원들의 얼굴에 살짝 긴장감이 생겼다.
“악수해 달라고 하면 그냥 해 주시고 너무 개인적인 질문 아니면 친절하게 잘 받아 주세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검문하실 때 물 외의 음식은 드시면 안 되니, 저희에게 연락을 주시면 잠시 교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12시부터는 다시 저희가 여기로 나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셔도 됩니다.”
“예.”
뭘 악수까지 하나 싶지만, 이미 각국의 국가대표 선수단이 입국하기 전부터 다른 마법사 단체가 이곳을 맡고 있었다. 그때 쌓인 경험인 듯했다.
안내는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배정받은 출입구로 가 대기했다.
6시부터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나, 7시가 되자 사람들이 우수수 몰리기 시작했다.
죽은 얼굴로 오던 사람들은—직원 출입구였으므로 이곳 용역—나를 보자 얼굴이 더 죽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는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기에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짜 놀라운 건, 그 당연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냥 둥그래진 눈으로 날 쳐다보는 사람들은 짧은 인사에도 내게 호감도를 주었다.
띠링—!
호감도 +1
‘오.’
학교가 아닌데도 반응 나쁘지 않네.
나는 그 뜬금없는 숫자를 지켜보며 신기한 것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는 마법사에게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종종 진짜로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나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했다.
“1위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나는 처음 보는 마법사의 손을 가볍게 잡고 미소 지었다.
또다시 호감도 창이 나타났다.
그렇게, 10시.
오늘 모은 호감도만 50점은 될 것 같다.
‘좋긴 한데… 신분증 검사는 오늘 하루만 하는 게 다행이네.’
네 시간째 같은 자세로 서 있으니 다리가 영….
대신 호감도를 관찰하고 있으니 심심하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사고를 위해 나를 거쳐 간 사람들의 특징을 정리하는 것도 그럭저럭 재밌었고.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다들 일반 9급짜리 등급을 가진 최하위 마법사다.
우리가 거의 일반인이라고 부르는 급의 마법사, 즉 비마법사 수준의, 워프 마법만 쓸 수 있을 정도로 간신히 마력을 보유한 그런 마법사 말이다.
아마 귀족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평민에 가까운 하급 귀족이겠지.
그때, 모자를 눌러쓰고 로브 후드까지 뒤집어쓴 젊은 마법사가 내 앞에 다가왔다.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
그는 검문 직원이 바뀌어서 그런지 눈을 크게 뜨고 내 얼굴을 빤히 관찰했다.
빨리 신분증이나 내놓으라고 말하려던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아스카니엔 맞죠.”
“예.”
“악수 부탁해도 될까요? 아, 정말 감명 깊었어요. 에스체트 1위라니.”
‘극적이네.’
나는 그의 큰 몸짓과 제스처에 속으로 의문을 느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내 손을 잡으려 했다가 금방 손을 뒤로 물렸다.
“장갑 빼 주시면 안 돼요?”
“예?”
내가 뭘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어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장갑 이야기를 꺼낸 게 맞다는 걸 확신한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빼라고? 왜?
설마 빼서 달라는 건 아니겠지? 경찰국 구경하고 싶은 건 아닐 테니, 대놓고 도둑질하려는 건 아닐 거고.
나는 이 괴상한 소리를 내 상식으로 알아듣기 어려움을 인정했다.
그러니 내 답은 하나뿐이었다.
“안 됩니다.”
“왜요?”
“마법사 등록증 먼저 검사하겠습니다.”
“아, 물론이죠. 준비했습니다.”
그가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종이를 꺼내 내 손을 덥석 붙잡고 그 안에 넣었다. 그의 손을 떨쳐낸 나는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에 숨을 참았다.
향수를 있는 대로 모아다가 종이에 뿌린 듯한 냄새였다.
나는 최대한 숨을 참으며 이름을 확인했다.
[알렉스 뮐러]
[하노버 주지사 검정: 일반 9급]
뮐러.
그의 성씨가 한번 눈에 밟혔다.
널리고 널린 흔한 성씨다.
이름도 마찬가지로 특색 하나 없는 흔해 빠진 이름이다.
종이를 확인하는 중에도 그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런 듯했다.
“눈이 멋지네요. 진짜 마법사 같은 느낌? 유일무이한 색깔을 갖고 있는 기분이 어때요?”
“어디서 일하십니까?”
“A동 지하 식당이요. 이번에 매니저 바뀌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분증과 그를 번갈아 바라봤다.
마력 면에서는 어떤 이상도 없다.
겉보기에도 잡아들일 건수가 없다.
종이에 향수 20종쯤 뿌리고 온 미친놈 좀 면담하라고 해 봐?
‘나쁘지 않다.’
나는 즉시 아티팩트를 두드려 보안팀을 호출했다.
금세 이곳으로 워프해 온 보안팀 마법사들이 내 앞에 있는 이를 보며 내게 눈짓했다.
신분증을 건네자 그들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실례합니다만 치안 문제가 많아 잠시 수색 좀 하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그는 순순히 팔을 들고 제 주머니를 터는 마법사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전 저 분이 해 줄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보안팀 마법사는 앞선 이상 행동을 보지 못해 그런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저희가 하죠~ 이상 없습니다. 요즘 시기가 좋지 않아서 악취도 한번쯤 검사하고 넘어가거든요. 잘 확인하고 오시면 빠르게 통과하실 수 있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가 내게서 신분증을 돌려받고는 그걸 빤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평생 갖고 있어야겠네요.”
“…….”
그럼 버릴 거냐?
가지고 있으셔야지.
‘세상은 넓고 광인은 많다.’
그것도 종류별로 있다.
이 사람을 보고 나니 당장 경기장의 반대편 출입구에 있는 마법광인은 그나마 양호한 광인인 듯해, 내가 미친놈을 친구로 두지 않은 걸 확인받은 것만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물론 이건 즉각적인 감상일 뿐이다.
‘알렉스 뮐러라고 했지.’
이 정도로 미심쩍으면 모를 수가 없다.
나르케가 구역질난다고 했던 이유가 저자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은 2시간은 순조로웠다.
점심시간까지 끝나갈 때가 되어, 나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휴게실 문이 벌컥 열렸다.
“오, 루카~”
엘리아스가 불쑥 내가 있던 우리 팀 전용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2인 1조라 엘리아스와 함께였다.
‘나르케랑 같이 하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쪽은 신력을 써야 해서 혼자 다니는 중이다.
나는 엘리아스에게 물었다.
“밥 일찍 먹었네?”
“빵이 맛대가리 없어서 그냥 버렸어.”
“음, 그래. 나 잠깐 화장실 좀 간다. 기다려.”
“뭐 하게?! 나도!”
손 씻고 모자 다시 쓰려고 가는 거긴 한데 이걸 굳이 묻네.
원래도 자꾸 이곳저곳 들락거리는 놈이긴 하지만 엘리아스도 오늘 많이 심심했나 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 뒤를 따라다니는 엘리아스를 데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어.”
“왜?!”
이거 봐라. 오늘따라 질문이 많고 목청이 쓸데없이 크다.
그보다….
‘장갑 어디갔어.’
테이블에 있어야 할 게 없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던 엘리아스가 물었다.
“장갑 없어? 여분은?”
“…….”
있긴 있다.
하지만….
엘리아스가 제 벨트 클러치에서 새 장갑을 꺼내 건넸다.
“고맙다. 그런데, 엘리아스.”
“어, 왜?”
“아까 나한테 장갑 빼고 악수하면 안 되냐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거든.”
“엥?”
정적이 흘렀다.
지금 자기가 뭘 들은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엘리아스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나르케 여기로 불러올까? 휴게실은 전략회의 하기에 최고의 장소이자 최악의 장소지.”
“아티팩트로 얘기는 해 둬야지.”
“그래, 그래야지. 그냥 우리가 나르케 있는 곳으로 갈까?”
“아니.”
얘기는 해 두되, 직접 만나서까지 더 물어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더 큰 문제가 생긴다면 나르케가 연락을 줄 테고.
절도범이 그 인간이 맞다는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확실하니, 이제는 그냥 잡아다 넘기는 게 답이다.
“좀 더 지켜보자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붙잡아서 탈탈 털면 물증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