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219화 (219/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19)

우선, 가설에 앞서 이것부터 판단하자.

‘한 번에 우리를 보내려는 작정인가.’

나쁘지 않지만 펜탈론까지 날리려는 놈의 태도로는 성급하다. 괜한 경계심만 키울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경고하려는 의미로 보는 게 옳다.

‘적당히 하라, 이건가.’

화가 났으니까?

화가 나 줬다면 감사하지. 결국 이렇게 자충수를 두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곧장 손가락을 튕겼다.

뒤늦게 심장이 덜컥거려 아차 싶었지만, 나는 이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암순응되어 체링겐과 레오가 당황한 눈으로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상황을 눈치챈 그들이 완드를 휘둘렀지만, 어떤 빛도 튀지 않았다.

“마력이 안 나와. 공기에 손을 써서 마력등도 나간 거겠지.”

레오가 보고하듯 짧게 말하고는 아티팩트를 두드렸다.

나와 체링겐도 반사적으로 귓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들려 오는 소리는 연결음뿐이었다.

“연결도 끊겼네. …그 스토커, 우리 앞에 직접 나타날 생각이 없나 보다.”

체링겐이 삭막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나치기 쉬운 말이었음에도, 레오는 그걸 놓치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뭐?”

레오의 물음에 답해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체링겐의 말이 맞다.

그놈은 내 앞에 나타날 생각이 없다.

작게 웃음을 터트리자 그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하하….’

그래. 방심했다.

내가 놈을 너무 단순하게 판단했나.

긁으면 나와 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성은 있는 모양이다.

나와 오랫동안 놀고 싶다면 이런 식으로 보복하는 게 합리적이지.

그가 설계한 게임의 구조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르케는 누군가가 나와 펜탈론을 동시에 타깃으로 잡고 있다고 했다.

그 누군가가 지금 방문을 잠근 사람이지.

그의 현재 목표는 명백하게 나이므로, 이 게임은 점점 내가 그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경찰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손을 벌릴 수 없는 상황, 내가 그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야 그를 마주하는 것이 그가 설계한 게임의 결말이어야 합당하다.

나는 지금 그 판의 초입에 서 있는 셈이다.

이 게임에 펜탈론의 안전까지 걸려 있다, 이 말이지.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생각을 하다니 멋진 발상이다.

‘그렇다면 응해 줘야지.’

어디 얼마나 정교하게 판을 짜 놨는지 구경 좀 해 보자고.

적진에 들어가서 본색을 드러내는 건 내 전문이다.

지금껏 죽 그래 오지 않았던가.

물론 들어가기까지 뜻대로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아브라함에게 그랬던 것처럼 적이 심혈을 기울여 짜 놓은 판을 불태우면서 나아가야지.

지금 이건 단순히 신경질이 나서 한 보복으로 보이지만, 나는 이런 사소해 보이는 공격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레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나가자. 이미 겪어서 알아. 이런 공기에서는 마력이 나오지 않는 것 같지만….”

레오가 힘을 주고 손가락을 튕겼다. 어둠 속에서 연하늘색 빛이 팍 튀자, 그가 비틀거렸다. 금세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한계를 넘어서 마력을 끌어올리면 약간은 마법을 쓸 수 있어. 단점은 이것도 얼마 쓰지 못한다는 점, 또 말 그대로 한계를 넘겨야 해서 회복이 필수라는 점이지만, 한 번만 워프한다면 가능은 하겠지.”

“워프해서 어쩌게.”

“한 사람만 나가서 사람을 불러오자.”

“아니.”

내 말에 레오가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물론 좋은 방법이야. 그런데 코어에 무리를 줘 가면서 건강을 해칠 필요가 있을까? 보고서를 봤으면 알겠지만 한번 이런 곳에서 마법을 쓰면 온몸이 망가져. 약을 수십만 펠 들이부어야 간신히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너 지금 그게 네가 할….”

내가 할 말이냐고? 여태 비텔스바흐에서 10억쯤 무상으로 진료받은 것 같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어쩌겠냐?

나는 그가 정신 못 차리고 다른 신원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말을 이었다.

“우리의 생명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확실히 각인시킬 방법이 있어.”

“상황의 심각성?”

체링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르케의 예언을 떠올려 봐. 지금 며칠째 수사국에서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지만, 대체 누가 이걸 펜탈론까지 위협할 불씨로 보고 있어? 따지고 보면 굉장히 미심쩍은 능력자에 미심쩍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데 관리자들도 수사관들도 단순히 편지 몇 장 보내는 범죄로 생각하고 있지.”

물론 진지하게 대응하긴 했지만, 그 진지함이 사안에 맞는 올바른 대처로 이어졌냐 하면… 전혀 아니다.

“우리가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 나가 ‘누군가 밀실에 마력을 제하는 공기를 살포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게다가 ‘코어에 압박을 주면 그래도 빠져나올 수는 있는 정도다’라니, 이런 소식을 전하면 문제의 심각성이 상당해도 그게 온전히 와닿기는 어려워. 아무리 객관적이려 해도 인간은 눈에 보이는 피해에 집중하니까.”

“…….”

“게다가, 그렇게 이동한 사이 이 범인이 마력 제어 공기의 공급을 멈추고 증거 인멸을 위해 공기를 빼낸다면?”

“…그래서.”

레오가 불길한 얼굴로 물었다.

뭘 묻나. 나는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알게 하고, 더 많은 사람의 시청각을 자극하면서 증거를 인멸할 수 없게 공기 중의 마력을 가두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 텐데.”

“…설마….”

레오가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래, 이놈은 알겠지. 다행히 이번에는 건물에 대피해야 할 사람이 없다.

체링겐은 나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왜? 무슨 계획인지 궁금하네.”

나는 아까 내가 살폈던 일반 비품이 있는 자리를 뒤졌다.

이곳에는 마력등이 깔리긴 했으나 아직 그것이 보편화된 시대가 아니었기에, 필요한 물건을 이 비품실에서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촤악—! 화르륵—

불을 구하기 어렵지 않았다는 말이다.

성냥을 세게 적린 마찰면에 긁자 불이 붙었다. 전처럼 네댓 개비를 동시에 긁은 덕에 불길이 금세 커졌다.

“어…?!”

체링겐이 헛웃음을 쳤다.

또 다섯 개비를 한꺼번에 집어 다른 성냥갑의 적린에 세게 긁었다. 나는 불이 붙은 성냥 열 개비를 한 손에 쥐었다. 나무 부분까지 붙은 불이 손을 뜨겁게 달궜다. 나는 레오가 깔아 놓은 사다리를 단숨에 밟고 올라가 스프링클러의 땜납이 있는 자리에 불을 가져다 댔다. 스프링클러가 그슬리는 것이 보였다.

‘전처럼.’

하나, 둘, 셋….

넷.

픽— 콰아아아—

다섯.

무언가 막혀 있던 것이 밑으로 흐르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물이 머리 위에서 사방을 향해 퍼져 나갔다.

물 비린내와 성냥의 황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아, 좋네.’

삐이이익— 위이이이잉—

심장이 덩달아 크게 뛸 만큼 커다란 경고음이 들려왔다. 문틈 너머로 붉은빛이 점멸했다. 외부에서 꺼 주기 전까지는 멈추지 못할 물이 계속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레오가 내민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쏴아아아아—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신민 여러분께서는 안전요원의 안내를 받아 신속히 비상 출입구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신민 여러분께서는….]

나는 물바다가 된 바닥을 밟고 어두컴컴한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오겠지. 또 수사국에서 정신을 좀 더 똑바로 차릴 거고, 그놈도… 이제 행동 범위에 제한이 걸릴 테고.”

경비 강화로 인해 더는 내게 다가오지 못한다면?

내 목표를 반 이상 달성한 좋은 일이다.

그럼 반대로, 경비가 강화되는데도 제한이 걸리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추론 거리가 되어 준다.

남이 만든 트랩을 내 트랩으로 변환시키는 건 늘 즐거운 일이다. 내 계획에 갇힌 이상 그는 이제부터 숨만 쉬어도 내 가설 중 하나에 무게를 실어 줄 수밖에 없다.

내 웃음 섞인 후련한 말에 체링겐이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왜?”

“진짜, 이게 무슨….”

체링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질적인 알림음과 함께 눈앞에 하얀 글씨가 나타났다.

띠링—!

호감도 +1

체링겐은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가 물소리와 분간이 되지 않을 크기로 속삭였다.

“루카스.”

“응.”

“…정말 최고야.”

전에도 들은 말인데.

어둠 속에서도 놈의 표정에 즐거움과 희열이 담긴 게 느껴졌다.

여태 연기할 때는 안 주고 이제야 호감도를 주다니.

‘벌금 딱지 받을 만한 발상을 좋아하는 편인가….’

이미 전에도 했던 짓이기에 내게는 새롭지 않았는데, 놈은 마법약 실험대회에 참가하지 않았기에 이게 새롭게 느껴졌나 보다.

스프링클러 터트렸다고 호감도 주는 놈 처음 본다.

나는 왜인지 체링겐에게 가졌던 희망을 철회해야 할 것 같은 감상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콰앙—!

누군가 문을 확 열었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붉은 빛이 들어오는 문가를 바라봤다.

사람 셋이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이쪽이 맞네!”

“누가 밖에서 문을 잠갔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 그보다 불은?”

“없습니다.”

“예?”

“누군가 마법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서 나갈 방법이 없더군요.”

마법사가 의아한 얼굴로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자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 워프는 됐는데?”

“이 건물 밖에서 마력을 사용하셨으니 되셨을 겁니다. 여기서는 못 씁니다.”

“정말이군요. 산소 스프레이라도 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아티팩트로 연락은 못 하십니까?”

“예. 안 그래도 경보 울리기 전에 저희끼리도 아티팩트로 연락이 안 되어서 살펴보던 중이었거든요.”

그들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티를 온몸으로 내고 있었다.

현대와 달리 스프링클러가 터진다고 소방서에 연락이 가지는 않지만, 이제 또 다른 문제를 발견했으니 당장 신고해야 하는데 마력도 아티팩트도 먹통이고, 그렇다고 바로 이 자리를 뜨자니 뛰어서 가면 늦는다. 마력 범죄는 속도가 생명이다. 공기를 통한 증거 인멸이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없다. 증거 확보를 위해서 스프링클러를 터트린 것도 있으니까.

나는 선반에 있던 수많은 유리병 중 하나를 열어 바닥의 물을 떴다.

“물에 공기 중의 마력이 녹았을 겁니다. 분석하면 저희 셋이 아닌 다른 마력이 나올 겁니다. 어쩌면 불법 마법약일 수도 있겠군요.”

“…!”

마법사가 그걸 받아 들고 다른 마법사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다른 마법사 하나가 우리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한 분만 저희를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이곳 밖으로 나가서 펜탈론 개최본부로 워프해 주세요. 저희는 경찰국과 수사국으로 가겠습니다.”

“예.”

체링겐이 성큼 걸어 나갔다. 그러더니 우리를 보며 웃었다. 진짜 재밌게 놀았다는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이었다.

다른 마법사가 우리에게 손짓했다.

“두 분께서도 건물 밖으로 나와서 기다려 주세요. 금방 경찰국에 연락해 지원 인력을 부르겠습니다.”

대답할 새도 없이 마법사와 체링겐은 1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코트와 모자에 묻은 물을 털어 내며 비품실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스프링클러는 작동되고 있었다.

레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멍하니 물을 맞으며 바닥을 보고 있었다.

* * *

“레오.”

멀리서 루카스가 나를 불렀다.

그의 말은 내 머릿속에 박히지 않고 배경음처럼 흘러갔다. 바닥의 물은 어느새 신발의 굽 높이까지 차올랐다. 암청색 물의 파문과 그 위에 덧씌워지는 붉은빛이 계속해서 형태를 바꾸었다.

“레오나르드.”

루카스가 모자와 코트의 물기를 터는 듯하더니 다시 나를 불렀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건 알지만 내 발은 한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생각이 온통 내 머리를 잡아 가뒀다.

‘…‘그 스토커가 우리 앞에 직접 나타날 생각이 없다’고.’

율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아까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루카스는 ‘오늘 안에’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오늘 안에 설명할 거면 지금 설명하든 자기 전에 설명하든 무슨 차이가 있는데?

답답했지만 지금까지 그와 함께 한 경험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지금 바로 설명해 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루카스의 평소 같지 않은 태도와, 율리아의 그 말은….

‘…….’

난 1학년 때처럼 또 바보짓을 했다.

루카스 앞에서만 이게 몇 번째일까.

그러니까 그는 내가 모르는 사이 율리아와 급속히 친해진 것도,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끼어들 수 없는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니다.

만약 그런 관계가 맞다면 바이에른은 손을 쓸 방법이 없고, 그렇기에 난 늘 율리아를 주시해 왔다.

율리아 체링겐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에든 도전할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또 그는 니콜라우스를 알지 못함에도 루카스만을 보고 그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알아챘다. 그가 한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인물이라는 걸 말이다.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난 그는 언제나 저와 제 부모의 참모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어릴 적에는 바이에른의 은퇴한 수상까지 자신의 정치 멘토로 포섭하려 했다.

그러니 율리아 체링겐을 잘 아는 나는 그 순간부터 제국의 명과 암이 모두 원하는 그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내가 본 것이 전부 스토커를 잡아내기 위해 범죄자의 연적 행세를 하려는 것뿐이었다면, 정말 그게 전부라면.

‘루카스가 바덴 대공국에 넘어갈 일은, 아직까지는 없다.’

바이에른이 전폭적으로 지지해 키운 인재를 타국에 빼앗기고 싶지 않은 당연한 마음은 내가 아직 율리아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승리감으로, 니콜라우스가 여전히 바이에른에 남아 있다는 안도감으로 번졌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

아까 내가 보였던 그 조바심은 도저히 두 눈 뜨고 못 봐줄 짓이었다.

바이에른의 소유권이 아니라 친구의 안전을 더 깊이 생각했다면 둘이 왜 그렇게 굴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레오는 제 얼굴로 떨어지는 물을 그대로 맞으며 침묵했다.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 얻은 승리는 진짜 승리가 아니다.

그러나, 나의 후회와 무관하게 이번 일은 내 안일함을 깨울 좋은 기회였다.

니콜라우스는 아직 바덴에 넘어가지 않았고, 오늘의 배움을 발판 삼아 나는 앞으로도 그의 마음이 변치 않는 한 바덴에 넘어가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 한 번만.

이번에는 본인에게서 대답을 듣고 싶다. 나랏일을 떠나, 루카스의 뜻이 내 뜻과 다르다면 나는 그를 바이에른에 묶어 둘 생각이 없으므로.

“…….”

한참 입만 달싹이던 나는 바닥의 물에 비쳐 일렁이는 붉은 경고등 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바덴에 가지 않을 거지.”

* * *

“…….”

나는 저 멀리 선 레오를 바라봤다.

물소리 속에서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놈은 바덴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차음 마법이 범인에게 통할지 통하지 않을지는 미지수인 데다 통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차음 마법을 걸고 곰곰이 그의 말을 생각했다.

‘내가 몰랐던 이유가 있나, 했더니….’

이제 퍼즐이 맞춰진다.

체링겐은 바덴 대공국 사람이고 레오는 바이에른 왕국 사람이다.

바로 옆 나라인 데다, 둘의 격 차이는 안할트와 바이에른 사이의 격차보다 훨씬 적다. 바이에른보다는 못하더라도 바덴 역시 큰 영토와 좋은 군사력을 가진 국가다.

또 체링겐과 레오는 성향과 능력치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그러니 레오는 체링겐에 대해서 늘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야 모든 답이 나왔다.

‘짜식.’

니콜라우스 있으면 됐지.

정치인으로서 친구들과 마냥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해 벌써 고뇌하는 걸 보니 참 피로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국가 경쟁력은 자본을 토대로 유지되고 발전하니 하나의 인적 자원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는 군주로서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건 레오의 사정이고 나는 율리아 체링겐과도 친하게 지낼 것이다.

율리아가 미래의 바덴 대공이라서가 아니라, 그는 인간적으로 올곧고 선량했다. 엘리아스나 레오처럼 독특한 빛은 없어도 언제나 은은히 빛나고 있어 미워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레오가 정치적으로 접근한다면 나라도 인간적으로 접근해서 중립을 맞출 필요도 있지.’

내 성향은 아니지만.

그러나 인간관계를 넘어, 그의 정치적인 물음에 정치적으로 대답하자면….

나는 신력을 희미하게 깔고 그에게만 들리게끔 대답했다.

—“그래. 가지 않을 거야.”

“…….”

—“왜 당연한 걸 묻는지 모르겠네. 내가 내 나라에 남지 않으면 안할트는 어떻게 굴러간단 말이지?”

레오가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이제야 이해한 듯했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대만 쥐어박을까?’

놈은 당연히 내가 평생 니콜라우스로서 바이에른에서 일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왕국의 지지가 내 생존에 9할쯤 기여했으니 내가 이 세계에 남는다면 바이에른을 위해 평생 일할 의향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안할트 우선이다.

레오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 멋진 각오네.”

언제 그랬냐는 듯 산뜻한 대답에, 나는 떨떠름하게 물었다.

“아까 그 선생 자아는 어디 가고?”

“응? 하하하하….”

레오가 실성한 듯 웃었다.

이건 돌아온 거야 아닌 거야.

나는 놈이 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기 전에 놈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체링겐까지 우리 셋 다 옷을 다시 세탁해야 할 상황이 됐지만, 놈은 나보다 더했다. 걸을 때마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레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난 아직도 어이가 없는 게.”

“말해.”

“이거 하나 하려고 온종일 그런 연애 분위기를 만든 거야?”

“…….”

연애 분위기라니, 놈도 단순 친한 척 이상의 기류를 느꼈나 보다….

체링겐과 나의 피눈물 나는 합작품이 이런 최고의 결과를 내다니 만족스럽다.

이걸 어디서부터 부정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자, 옆에서 레오가 나지막이 말했다.

“미안해.”

“뭐가?”

“내가 조금만 더 깊게 네 처지를 생각했다면 네게 뭐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안 그래도 많이 심란했을 텐데 내가 너랑 체링겐을 더 힘들게 했겠구나. 사실 네가 아무 이유 없이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건 알지만….”

힘든 것까지는 아니고 그냥 참 모범생답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지금 이 사과도 그답다. 별로 화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나는 미소 지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레오가 눈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그가 잠깐 웃음을 참더니, 진지한 얼굴을 만들려 노력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본 광경이 체링겐과 네가 입 맞추기 직전 광경이어서 오해했어.”

“뭐라고?”

“다음에는 이런 일이 있어도 널 말리지 않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네게는 다 계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게. 그런데….”

“…….”

대체 오해의 정도가?

나는 이마를 붙잡았다.

눈앞이 컴컴해진다. 이제 레오가 왜 그렇게 과민하게 굴었는지 확실히 납득이 됐다.

그라면 그렇게 봤을 만하다. 율리아의 모자가 내 모자에 닿아 떨어지고 그의 머리칼이 내 이마에 닿았던 상황에 놈이 들어왔으니. 체링겐이 창가를 머리로 가리고 고개를 틀었던 것 같기도 하다.

놈이 잠시 웃음을 참았다가 헛기침하고 물었다.

“정말… 크흠…. 진짜 한 건 아니지.”

자꾸 처웃는 걸 보니 놈이 생각하기에도 우리의 행동이 어이없었던 듯하다.

나는 머리가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너 그때 무슨 생각 했냐?”

“정말 솔직하게, 첫 감상?”

“어. 솔직하게.”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일하는 곳에서 뭔 짓거리를 하는 거지? 여기가 기숙사야? 학교냐? 아… 앞으로 팀 생활 어떡하지.”

“…….”

“물론 둘째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지. 내가 아는 너희는 이럴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라든지.”

놈이 나름 변명했지만 내 관심은 놈의 첫 진술에 향해 있었다.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일하는 곳에서 뭔 짓거리를 하는 거지’라니.

나라도 일하는 곳에서 이 광경을 봤다면 이 미친놈들을 한 대씩 갈기고 쫓아냈을 것이다. 그가 체링겐의 목덜미를 잡아 내쫓은 건 그리 과격한 행동이 아니었다.

“한 적 없고 우리 둘 다 할 마음도 없었고 그럴 계획도 없었다….”

“뭐? 그런데 체링겐은 왜 네 얼굴에 얼굴을….”

“그래, 오해할 만했어.”

이래서 더 필사적으로 방해했던 거군.

팀 내 연애질이 시작되면 최소 졸업 때까지, 최대 평생 불편한 상태로 있어야 하니 말이다. 17명도 아니고 7명뿐인 팀에서 둘이 연애질로 빠진다?

잘 지내도 임무에 지장이 갈까 우려되지만, 깨지면 더 큰 일이다. 여러 의미로 피눈물 난다.

정치도 정치지만, 팀장으로서 그런 꼴은 볼 수 없었을 거다.

나는 아까의 기력 없는 대답 대신 제대로 된 답변을 해 주었다.

“율리아는 내 부탁을 제대로 들어준 것뿐이야. 물론 난 친한 체를 해 달라고 했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스토커를 자극하려면 단순히 친한 척으로는 안 되는 게 맞지. 고마울 뿐이야.”

“그렇네. 이따 체링겐에게도 사과할 테니, 혹시 나와 체링겐 때문에 팀 분위기가 나빠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니, 굳이 사과할 필요 없어 보이는데.

오히려 체링겐과 내가 그에게 미리 말해 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지.

사실 레오 말마따나 학교도 아니고 임시 직장과 다름없는 곳에서 온종일 친구와 스킨십하고 다니다니, 비판받아 마땅한 짓이다.

하지만 놈은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도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명히 사과하는 놈이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저 융통성 없는 FM 성격으로도 교우관계가 원만했지.’

표현할 건 분명히 표현하는 게 좋으니 말리지 않겠다.

“그런데 너 왜 자꾸 율리아를 체링겐이라고 불러. 원래는 율리아라고 잘만 불렀잖아.”

“…글쎄.”

레오가 짧게 대답하고 내게 빙긋 미소지었다.

놈이 말하지 않아도 바덴 대공국과의 신경전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유치….’

친구들끼리 잘 노네. 성으로 부르든 뭘로 부르든, 놈들이 서로 친하다는 것쯤은 오히려 더 잘 알겠다.

금세 1층이 소란스러워졌다. 밖으로 나가 워프한 마법사들이 지원 인력을 불러온 듯했다.

팀의 평화가 유지되었다는 걸 알아 그런지,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레오가 내게 손짓했다.

“가자.”

* * *

오후 5시.

불이 다 꺼져 꼭 밤 같았던 내부와 달리 밖은 여전히 밝았다.

“가스등을 설치해야겠는데.”

“아니, 그러기 전에 공기에 마법약을 살포하지 못하게 막아야지요. 당장 이번 주말에 개회식이 있는데 언제 가스관을 깔고 있어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수사관들이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왔다.

이미 바깥에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대부분 수사관과 마법사였다. 민간인들도 길 너머에서 이곳을 기웃대긴 했지만, 사안이 심각한 만큼 이쪽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진작 이랬어야지.’

상황이 심각하니 이제야 경계하는 것 봐라.

신원 확인까지 하고 들여보내는 주경기장에서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쪽지가 실시간으로 코앞에 나타나는 데도 그들의 수사 능력으로 잡을 수 없었던 것부터 특수 능력자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율리아와 레오는 둘 다 조사를 위해 밖으로 불려갔다.

혼자 실내에 남은 나는 개최본부에 진을 친 수사국 마법사들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기숙사에 있던 여분의 옷을 받아 갈아입었다.

“난 왜 계속 너희한테 빌리기만 하냐.”

나는 헛웃음을 치며 단추를 잠갔다. 내가 숙소로 쓰는 비텔스바흐 저택에는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어, 나르케가 옷을 빌려주었다.

“하하~ 뭐 어때! 집 갈 때만 입는 건데.”

나르케가 내 코트 깃을 두드리며 웃었다.

그래. 정말 기숙사 갈 때만 입는 건데 아무거나 입고 돌아가면 안 되나 싶다. 다른 곳으로 안 새고 바로 숙소로 갈 건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걸 알았는지 나르케가 작게 웃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고 돌아오자, 내 진술을 기록하던 마법사가 노트를 덮으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많이 놀라셨을 텐데 가셔서….”

“저기, 두 분 다시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 수사관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다섯 번은 불려 나갔던 것 같다.

나르케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 경기장에 두를 결계의 안전성을 확인해야 했기에, 나르케와 나는 각각 신력과 마력 테스트를 위해 불려 나갔다. 여기 있는 모든 마법사 중 에스체트 마법사들이 제일 마력이 강해 나간 것에 가깝다.

엘리아스나 울리케나 율리아도 결계 테스트를 할 만큼 강하지만, 굳이 내가 나가고 그들이 나가지 않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단순노동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눈에 띈 사람을 집어 고른 것뿐이다.

‘결계를 있는 힘껏 때리기만 하면 되니까….’

옆에서 수사관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말씀해 주신 대로 결계를 보완했습니다. 이제 종축으로 충격을 받아도 균열이 생기지 않을 겁니다.”

“그렇군요.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이번에도 균열 생길 것 같은데.”

나르케가 내게만 들리게끔 신력을 써서 말했다.

통찰을 쓴 게 분명해, 나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금세 바깥바람이 얼굴에 스쳤다. 마법사가 수많은 수사관과 황실 마법사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인파를 헤치고 결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법사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10m 간격으로 하나씩, 부서질 경우 바로 공중에 기체 형태로 흩어지게끔 작업할 생각인데….”

“어!”

그때, 나르케가 경악한 듯한 소리를 내더니 내 어깨를 붙잡아 뒤로 밀었다.

팍—

날계란이 옆에 있던 다른 마법사의 등에 부딪혔다.

“뭐야?!”

뜬금없이 웬 계란이 여기서 나오나 싶었지만, 당황할 새도 없이 무언가 시야 옆으로 날아들었다. 귓가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아.”

통증에 나는 관자놀이를 만졌다.

무언가 미끈한 것이 어깨로 떨어졌다.

마법사와 나르케가 동시에 소리 없이 경악했다. 나르케가 그것을 떨쳐내고 내 얼굴을 손으로 닦았다.

그가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마력으로 끌어당겨 주웠다.

“…….”

내가 침묵하는 동안,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이 나와, 나와 함께 계란을 맞은 마법사에게서 물러났다.

“뭐야?”

“지금 여기에 황실 소속만 있는 것 아니었어?”

“무슨…!”

상황을 눈치챈 수사관이 호루라기를 불며 완드를 스태프로 바꾸어 바닥에 내리쳤다. 그가 고친 통신 아티팩트를 두드려 제 부하에게 말했다.

“당장 경기장 지부 전부 봉쇄해! 워프 제한 걸고 이미 워프한 사람 있는지 마력 추적하고.”

[예?!]

“범인이 나타났어. 이 안에 든 사람들 한 명씩 검문한다. 내가 구역 나눌 동안 빨리 처리해!”

그가 재빨리 봉쇄를 명하는 동안, 다른 수사관들과 친구들이 내게로 뛰어왔다.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테스트를 위해 붉게 염색한 반투명 결계의 끝자락이 보였다.

‘한 명씩 검문한다고.’

웃기는 소리다.

내가 잡기 전까지, 이들은 절대로 범인을 못 잡는다.

율리아와 함께 영혼이 나간 얼굴로 달려온 레오가 친하지 않은 티를 내야 한다는 것도 잊었는지, 내게 물었다.

“괜찮아?!”

“…….”

대답할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날계란 잔여물이 분홍색 쪽지의 형태로 변해 가는 걸 관찰했다. 계란에도 마법이 걸려 있던 게 분명하다.

나는 그 쪽지 더미를 한 줌 잡아 하나씩 읽었다.

[스프링클러! 당신이 나온 안할트일보를 200장 가지고 있는데, 다섯 장은 너무 많이 돌려 봐서 벌써 마력이 다 닳았더군요. 신문으로나 보던 걸 이렇게 직접 구경하게 해 주다니. 촬영했어야 했는데.]

[숨을 쉴 때마다 산소가 사라지는 걸 좀 느껴 보라고 가둔 건데 내가 너무 안일했군요.]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 오페라 보러 갈래요?]

[날 그렇게 의식하다니 기쁜 일이네요. 그런데 사람이 정도가 있지 그렇게 화나게 만드는 건 좀 아니라고 보거든요….]

[난 당신을 오래 볼 건데, 이런 식으로 날 불러내려 하다니. 정말 당신들 앞에 나타날 뻔했잖아요. 그랬다가는 감옥에 갇혀서 평생 당신 얼굴도 못 볼 텐데 그런 모자란 방법을 진짜 실행에 옮길 뻔했다니까요.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겠죠.]

[역시 상위 1%에서의 1등은 사고방식이 다르네요. 그렇죠? 시험 영상 다 봤어요. 되게 좋은 방법인데요!]

‘어디까지 털렸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허세는.’

진짜 실행에 옮길 뻔했다?

그럴 뻔한 게 아니라, 이미 그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내게 정보를 주었다.

나는 작게 웃으며 쪽지를 손에서 놓았다.

레오가 잠시 당황하더니 내 표정을 보고 침착하게 물었다.

“…왜 웃어. 웃을 때가 아니잖아.”

“가설이 맞았구나.”

나르케가 표정 없이 대답했다.

“무슨 가설인데. 그놈 정체에 관련된 거야?”

“안 돼, 나중에.”

레오의 물음은 나르케에 의해 금세 잘렸다.

나르케 역시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는 걸 안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말하면 안 돼. 어디서 듣고 있을지 모르거든. 대신….”

나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펜탈론 끝나기 전까지 해결은 해야지. 조만간 말해 줄게. 그보다 우리도 암호 하나 만들어서 대화해야겠는데.”

레오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차음 마법을 걸고 대답했다.

“암호 타령할 때야? 빨리 돌아가서 쉬어. 말은… 안 해도 돼. 네가 내게 설명해 주지 않아도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뭐야. 너 레오 맞아?”

나는 가볍게 웃으며 손에 남은 끈적이는 잔여물을 빤히 바라봤다.

매번 내 계획에 너무 위험하지 않냐, 그게 현실성 있는 소리냐, 하며 태클을 걸던 레오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기분이 새롭다.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릿속에 범인 생각이 가득 차서 레오의 변화에 순수하게 감탄할 수 없는 것이 참 아쉽다.

온갖 가능성과 생각 탓에 시야까지 잔뜩 흔들리고 있다.

어쨌거나….

나도 아까는 바로 저택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마음이 달라졌다.

“나르케.”

“응, 말해.”

“학교로 데려다줄래?”

나는 미소 지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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