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악몽은 저편으로
도시에서 가장 추남의 얼굴을 한번 반죽했다가 내려놓은 듯한 아주 흉측한 얼굴이 나를 향해 적의를 뿜어내고 있다.
숲지기가 다가오자 공작이 잽싸게 다시 반지를 껴서 기세를 숨기고 내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숲지기는 키가 3미터 정도의 중형 마수다. 몸이 가늘고 팔다리가 긴 체형이고 2족 보행을 한다. 숲속에서는 그 긴 팔다리를 가지고 나무를 기가 막히게 타서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마수이기도 하다. 팔다리가 가늘다고 해서 힘이 약한가 하면 그것은 절대 아니다. 사람을 찢어 죽이기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약간의 지능도 가지고 있어서 나무 몽둥이 같은 도구도 사용한다.
숲지기는 마수로서는 아주 드물게 잡식을 한다. 특히 나무껍질을 벗겨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자신의 영역에 있는 나무를 매우 아낀다. 숲지기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보통 숲에서 벗어나지 않는 마수인데 에인프라흐 공작이 멀리까지 기세를 발산해서 억지로 끌어내는 쓸데없는 수고를 한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숲속에서 싸우진 않게 되었다.
나는 검을 뽑아 들고 숲지기가 먼저 공격하기를 침착하게 기다렸다. 신장의 차이도 있지만, 거기에 기형적으로 팔다리가 길고 거기에 자신의 키만 한 몽둥이를 들고 있다. 공격 범위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큰 상대와 싸우는 것은 처음이다. 대격변 초기에 변이체들의 신체가 보통 사람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때는 나도 변이체들을 사냥하고는 했다.
그러나 변이체들이 진화하며 거대한 신체를 가지게 된 이후로는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생의 나는 초감각만 가지고 있었지 나머지는 보통 사람이었다. 그런 괴물들과 싸우는 것은 자살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실제로 진화한 변이체와 싸우겠다고 덤비는 사람도 많이 봤다. 그러나 전투에 특화된 특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살아 돌아온 사람을 보지 못했다.
숲지기를 마주하고 보니 진화한 변이체를 앞에 둔 느낌이 났다. PTSD라고 하던가? 과거의 악몽이 떠오르려고 할 때 숲지기가 긴 다리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공간을 좁히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쐐애액!
굵은 몽둥이가 바람을 찢는 소리를 내며 나를 죽이기 위해 다가왔다. 그 살기과 숲지기가 뿜어내는 강렬한 적의가 잠시 정신이 나가 있던 나를 깨웠다.
나는 이제 강한수가 아니고 상대는 변이체가 아니다.
나는 빅터 하네스다.
얼굴이 땅에 닿기 직전까지 자세를 낮추며 몽둥이를 피했다. 몽둥이가 자세를 낮춘 몸 위를 지나가며 일으킨 바람이 머리칼을 휘날릴 때 온몸에 가두었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검에 오러를 최대한 주입했다. 이 전투는 결코 장기전으로 가서는 안 된다. 신체 조건과 능력은 숲지기 쪽이 압도적이다.
낮은 자세로 접근하는 나에게 숲지기는 아직 몽둥이를 휘두른 자세를 수습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리를 뻗어왔다.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힘과 동작이지만 숲지기는 된다. 인간이 아니니까.
긴 다리가 마치 채찍처럼 뻗어왔다. 4성 기사라고 할지라도 저것을 정통으로 맞으면 최소 중상이다.
다리가 휘둘러지는 궤적을 침착하게 확인하고 달려가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살짝 뛰어올라 피하자 이번에는 반대쪽 손이 나를 붙잡기 위해 뻗어왔다.
그래도 이번에는 큰 힘이 실리지 않은 동작이라 빠르지 않았다. 물론 저 우악스러운 손에 붙잡힌다면 아주 끔찍하게 살해당할 것이다.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뻗어오는 손을 피할 방법은 없다. 여성의 팔뚝만 한 굵기의 손가락을 향해 검을 올려쳤다.
서컥!
4성 기사의 오러가 가득 담긴 검인데도 불구하고 손가락을 완전히 베어내지 못했다. 가죽과 살은 베어냈지만, 뼈는 베어내지 못했다.
쿠어!
하지만 녀석의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졌다. 원래 손가락을 베이면 다른 곳보다 더 아픈 법이다.
손가락을 베어내며 손을 피함과 동시에 그 반동으로 땅으로 내려섰다.
보통 중형 이상의 마수를 상대할 때는 다리나 팔목의 힘줄을 잘라놓고 전투력을 줄인 상태에서 상대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숲지기는 그것에서 예외인 마수다. 팔다리의 힘줄을 잘라도 전투력의 하락이 적고 재생력이 매우 높은 편이라 금방 회복하기 때문이다. 내가 단기전을 노리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녀석의 두 손과 한쪽 다리를 피해내며 녀석의 자세가 완전히 무너졌다. 아무리 녀석이 인간과 다른 관절 범위와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제 내가 공격할 차례다.
땅에 내려서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박차고 뛰어올라 활짝 열린 녀석의 명치에 검을 깊숙이 손잡이 부분까지 찔러넣었다.
그리고 검을 살짝 돌려 빼면서 녀석의 배를 걷어차고 그 반동으로 뒤로 몸을 날렸다.
검을 돌려 빼는 것은 이곳에 와서 배운 것은 아니다. 그냥 전생의 습관이 나와버렸다.
쿠억!
심장이 꿰뚫린 녀석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아직 죽은 것은 아니지만 오래 살진 못할 것이다. 아무리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심장이 뚫리고도 살진 못한다. 그 재생력 덕분에 오히려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숲지기는 원래 단독으로 움직이는 마수가 아니다. 그 말은 이 근방에 녀석의 동료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두 마리가 더 있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들이 빠른 속도로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훌륭하군. 자네 제대로 된 마수와 싸우는 것은 처음 아닌가?”
“그렇습니다.”
“마치 노련한 용병을 보는 것 같았네.”
역시 칼밥으로 왕국 최고 자리에 오른 사람의 눈은 정확했다. 기사가 아닌 용병이라고 했다. 전생의 내 습관이나 경험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을 정확하게 본 것이다.
“그래서 만족하셨습니까?”
내 물음에 에인프라흐 공작은 빙긋 웃었다.
“아직 잘 모르겠네.”
“그러실 수도 있지요.”
공작의 말투를 따라 해봤다. 나는 속이 옹졸한 놈이라서 당한 것은 조금이라도 갚아줘야만 한다.
그때 숲속에서 숲지기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저건 또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솔직히 한 번에 두 마리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머릿속으로 최선의 작전을 생각하고 있을 때 옆에서 번쩍하더니 숲지기 두 마리와 무릎을 꿇고 있던 녀석까지 세마리의 목이 동시에 날아갔다.
옆을 돌아보니 공작이 검을 다시 집어넣고 있었다. 이것이 8성 기사의 힘인가? 당연하겠지만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닐 것이다.
저런 힘을 가진 사람이 몇 명만 있었다면 지구 아니 최소한 대한민국은 멸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정체를 심하게 겪지 않는다면 나도 언젠가는 저 경지에 오를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진출해서 변이체들을 쓸어버리고 안전한 땅을 확보해 다른 세계에 속한 나의 영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구 전체가 나의 영지라? 그건 좀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다.
“아직도 공작가에 들어올 생각이 들지 않는가?”
방금 그것이 공작가 홍보활동이라도 되는 건가?
“네, 아직은 그렇습니다.”
“아쉽군.”
숲지기의 가죽과 뼈는 제법 고가의 상품이라 그냥 두고 가는 것은 아쉽지만 공작이 그런 푼돈이 아쉬울리 없었고 나는 그것을 넣을 아공간이 없었기에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빠르게 길을 걸었다.
그리고 하루 더 나에게만 고통스러운 노숙을 하고 마침내 멤파이 자작령에 도착했다.
멤파이 자작령으로 들어서기 직전 에인프라흐 공작은 나에게 주의할 점을 알려주었다.
“나는 신분을 숨기고 여행을 다니는 것을 즐기니 호칭에 주의해주게”
“네, 어르신”
“어르신? 그건 좀 늙어 보이지 않는가?”
보기엔 그냥 젊은 중년으로 보이지만 에인프라흐 공작의 실제 나이는 내가 알기론 70대 후반인 것으로 알고 있다. 높은 경지로 인해 노화가 느리게 진행되는 것이다.
“형님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크흠!”
공작은 조금 불편한 기침을 내뱉었지만, 더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간단한 검문을 마치고 우리는 멤파이 자작령의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나야 당연히 내 신분증을 제시하고 통과했지만 에인프라흐 공작이 어떻게 통과하는가 지켜봤더니 위장신분증을 가지고 있었다.
‘돌루망 남작이라고 했던가.’
귀족 사칭은 중죄이지만 공작이 남작을 사칭하는 건 죄가 되지 않으려나? 저러고 돌아다닌지 수십 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잡혀가지 않은 것을 보면 별문제 없지 싶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먼저 개인적으로 볼일이 좀 있습니다.”
공작을 떨쳐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난 진짜로 멤파이 자작령에서 나는 할 일이 좀 있다.
“나도 멤파이 자작을 좀 만나봐야 할 것 같군. 영지를 어떻게 관리하기에 관도에 마수가 들끓는 건지 원.”
“그럼 여기서 헤어져야겠군요.”
“자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공작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름대로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표가 났나?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쯧! 너무 좋아하지 말게나 어차피 같은 기차를 타고 왕도까지 가야 하지 않겠는가?”
마도 기차는 그 엄청난 요금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운용비 덕에 그렇게 자주 오지 않는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조사하기로는 멤파이 영지에 마도 기차는 대략 한 달에 한 번이 지나간다. 그리고 기차가 도착하는 것은 앞으로 5일 뒤다. 한 달을 더 기다릴 것이 아니라면 나는 공작과 같은 기차를 타야만 한다.
순간 표정이 조금 일그러지려는 것을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아내며 웃음을 지었다.
“그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말을 잘 못 한다더니 잘만 하는군. 그럼 며칠 뒤에 보세.”
공작이 휘적휘적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아마 멤파이 자작은 며칠 동안 고생 좀 할 것이다.
나는 먼저 숙소를 잡기 위해 움직였다. 여태까지는 여관에서 지낼 일이 없었지만, 며칠 머물며 볼일을 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숙소를 잡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이 세계의 숙소 수준을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서 숙소들이 밀집한 지역에 가자 가게 앞에 앉아있던 호객꾼들이 나를 불러세웠다.
“손님 여기가 멤파이 최고 여관입니다. 다른데 볼 것도 없어요!”
“달리는 목마 여관에서는 아침이 공짜요!”
“귀족님들도 자주 찾는 빛나는 요정여관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여관 건물들이 생긴 것도 비슷하고 달리 차이점을 알 수 없었다.
그때 7~8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형! 숙소 찾으세요?”
“그래”
“제가 좋은 곳을 알아요!”
“뭐가 좋은 곳이냐? 나는 그래도 좀 괜찮은 곳을 원하는데?”
기왕 돈을 내고 투숙하는데 쥐나 바퀴벌레와 친목 활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식사가 정말 맛있고요. 침구도 깨끗해요. 그리고 여관주인이 엄청 미인이에요!”
창관을 겸하는 곳인가? 여관주인이 미인인 것은 나와 그다지 상관없는 이야기다.
“여자는 생각 없는데?”
“아니, 아니! 그런 곳 아니에요! 그냥 미인이에요.”
소년은 매우 당황하면서 손을 마구 저었다.
“그럼 안내해봐”
“네, 따라오세요!”
나는 소년을 따라가는 중에 호객꾼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또 제시네 아들놈이 채갔구만?”
“우리 아들놈도 저 녀석 반이나 갔으면 좋겠어.”
여관집 아들인 건가? 나름 유명하고 열심히 사는 녀석인 것 같다. 소년을 따라 꽤 걷다 보니 ‘크루와 제시의 여관’이라는 조금 전 들었던 이름이 박혀있는 간판이 보였다. 크루는 그럼 남편인 건가?
“저기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꽤 낡은 여관이다. 아까 초입에서 봤던 여관들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까? 하지만 인제 와서 돌아가기도 그렇다. 난 소년을 따라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손님 모셔왔어!”
소년이 들어가면서 크게 소리를 지르자 주방 쪽에서 소년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손님!”
이 거짓말쟁이 새끼, 미인이라며? 저게 미인이면 숲지기도 평범한 얼굴이다. 소년이 말했던 여관의 장점들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까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