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아직 한 알 남았다.
하지만 보통 토끼꼬리 풀의 열매와 다른 이것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따로 정제 장치를 구입해야만 했다. 정제 장치를 구입해 기상연구소에 설치하고 다른 재료를 사용해 연습했다. 집사를 통해 구한 연단술의 기초 책을 통해 공부한 것이라 처음부터 잘 될 리는 없었다. 처음에 여러 번 실패했고 차츰 하는 방식을 깨우쳐서 이제 됐다 싶을 때 본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지구에서 길러낸 토끼꼬리 풀 열매 15개를 정제하고 부재료들을 혼합해 환 형태의 알약 15개가 완성되었다.
일단 내가 먼저 먹어보도록 했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부재료들이 들어가고 내가 연단술에 대단한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다 보니 크기가 커져서 먹기 쉬운 크기는 아니었다.
작은 주먹밥 크기의 환을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씹는 순간 비릿하면서도 꼬릿한 향이 확 올라오면서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한 맛이 느껴졌다.
“우욱, 씹”
이게 몸에 좋은 것이 아니라면 당장에 뱉고 토해냈을 것이다. 맛에 둔감한 내가 이럴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진짜 토할지도 모르겠다. 혹시 다음에 만들 때는 먹기 좋은 맛이나 향을 추가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물과 함께 약을 삼키고 조금 있자 약효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예상대로 대단한 영약은 아니다. 영초 중에 가장 효과가 약한 토끼꼬리 풀을 사용한 것이니까. 그래도 꼬꼬들이 낳았던 마력란에 비교한다면 최소 10배 이상은 강한 마나가 느껴진다.
하지만 마나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나의 양이 중요한 것이라면 마력란은 전혀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심법 짧게 운용하는 것으로 영약을 모두 흡수했다. 이미 5성 기사인 나에게는 뭔가 극적인 효과는 없었다. 그냥 마력란 두어알 정도 먹은 느낌? 이미 내가 지구의 마나에 오랫동안 노출되었기에 그런지도 몰랐다. 일단 부작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했다.
완성된 영약을 들고 지구에서 집으로 돌아가자 다른 사람들은 스승님의 지도 아래 훈련하고 있었다.
요즘 나는 스승님이 훈련의 양을 많이 줄여주시고 있다. 성장이 기형적이라서 불균형을 걱정하시고 있었다. 육체와 오러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정신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나는 오히려 정신이 너무 앞서있어서 불균형이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덕분에 마법을 공부하거나 영약 만들기 같은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많아져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하고 있었다.
“스승님 잠시 훈련을 중지시켜도 되겠습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제가 재미 삼아 영초를 조금 기른 것은 알고 계시지요?”
“그것은 지난번에 모두 수확하지 않았느냐?”
내가 화분에 토끼꼬리 풀을 기른 것은 저택에 사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네, 수확한 것으로 약을 좀 만들어봤습니다. 효과는 미미하겠지만 저 친구들에게 먹이려고요.”
“허, 이제 연단술도 익히는 것이냐?”
“네, 뭐 재미 삼아 하고 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지만요.”
“그래 때로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검술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분야라도 최고에 오르기 위해서는 비슷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무협지에서 많이 봤던 만류귀종인가 그건가. 뭐 어느 분야라도 최고에 오르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모두 중지! 빅터가 좋은 것을 준다고 하니 모두 모여라!”
스승님이 철권단과 슬라이트를 불러 모았다. 그런데 나는 슬라이트에게는 줄 생각이 없었는데? 저 괴물 천재 놈이 혹시나 이걸 먹고 6성에 오르기라도 한다면 정말 배가 아플 것 같단 말이지.
“내가 연습 삼아서 영약을 만들어봤다. 모두 알다시피 집에서 재미로 기른 토끼꼬리 풀로 만든 것이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그리고 내가 먼저 먹어봤는데 지독하게 맛이 없으니까. 마음의 준비는 하도록 해. 참고로 뱉거나 토하면 나랑 실전 대련할 거야.”
내가 정성을 다해 만든 약을 뱉으면 죽인다. 이거 만드는데 들어간 돈이 얼만데? 일단 설명을 해준 뒤에 한 알씩 영약을 나눠주었다.
“감사합니다. 단주님!”
“감사합니다.”
모두가 약을 받을 때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약을 입에 넣은 후에도 그런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모두가 영약을 받아 가고 마지막에 슬라이트가 손을 내밀고 서 있었다.
“5성 기사인 너까지 먹어야겠냐? 내가 먹어봤는데 큰 효과 없더라.”
“네가 먹었으니 나도 먹어야지.”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고. 나는 영약을 손바닥 위에 올려주려다가 멈췄다.
“고맙다는 인사는?”
슬라이트가 눈을 부릅떴다.
“나에게 그런 말이 듣고 싶나?”
“물론, 당연히 아주 많이 듣고싶다.”
슬라이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잘하면 한 대 칠 거 같아서 그냥 손바닥 위에 약을 얹어주었다. 그런데 후회할걸? 똥 맛이 나는 영약은 처음 먹어볼 것이다.
“자, 그럼 다들 자리에 앉아서 준비하시고~”
내 말에 모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서 약을 먹을 준비를 했다.
“입에 한 번에 넣고 씹어 삼킵니다. 실시~!”
철권단은 착한 아이들처럼 잘도 내 말을 따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참으로 여러 가지 감정을 담은 반응이 튀어나왔다.
“우욱!”
“이런 개···!”
“이...이건!”
중간에 누가 욕을 한 거 같은데 누구냐? 반응이 너무 격렬했다. 심지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약을 씹어삼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친절하게 물병을 여러 개 꺼내 나눠주면서 돌아다녔다. 물론 슬라이트에게는 주지 않았다.
슬라이트가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그런 사소한 것은 넘어가기로 했다.
“호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스승님이 반응했다. 뭔가 느끼신 모양인데 나는 경지가 낮아서 그런지 감지할 수 없었다.
“저게 토끼꼬리 풀로 만든 영약이 맞느냐?”
“네, 보조재료가 좀 들어가긴 했지만, 일반적인 것들이고요.”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구나. 반응이 있다.”
철권단 중에 여러 명이 깊은 연공 상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중에 아직 오러홀을 깨우지 못한 두 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 두 사람은 스승님도 완전히 가망이 없다고 말했던 사람들이다. 최하급인 토끼꼬리 풀로 이 정도인데 상급의 영초를 길러본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몇 명의 주위로 마나의 요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직 모두 경지가 낮기에 그리 큰 요동은 아니었지만, 스승님이 나서서 오러로 막을 쳤다.
묘기 같은 능력이다. 스승님의 오러 운용 능력은 6성 기사 중에서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수준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내가 따라가기엔 멀었겠지만 얼마나 수련해야 저 수준에 다다를 수 있을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하나둘씩 연공을 끝내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슬라이트가 가장 먼저 끝내고 내 옆으로 왔다. 걱정과는 달리 녀석에게도 별다른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나를 무섭게 노려보기에 한마디 해줬다.
“분명히 나는 안 주려고 했다. 달라고 한 것은 너다.”
그리고 2성 기사인 둘이 일어났다. 조금은 기대했었는데 2성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승급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러홀이 없던 두 사람이 다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오러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얼굴은 환희에 차 있었으나 아직 연공을 끝내지 못한 여러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비명을 속으로 삼키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빠져나왔다.
“감사합니다. 단주님 덕분입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지난번 여러 명이 오러홀을 만들었을 때도 본인들은 그러지 못했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인가? 이제 와서 1성 기사가 되었다고 한들 그들 인생이 크게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가슴속에 쌓인 무언가를 날린 얼굴들이었다.
“그동안 고생했어”
나는 심심한 축하를 해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트리거가 되었는지 두 사람이 선 채로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둘이 서로 얼싸안고 소리를 죽여가며 통곡했다.
누군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남자끼리 안고 우는 것은 더더욱 별로다. 전생의 경험으로 누군가가 우는 것은 사람이 죽었을 때뿐이었다. 그것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울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것을 떠나 남자끼리 저러는 것은 별로다. 혹시 나까지 껴안을까 봐 슬그머니 슬라이트의 뒤로 숨었다.
그리고 다음은 폴켄이었다. 폴켄도 이번에 오러홀을 만들었다. 8살에 오러홀을 만들었으니 명가의 자제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축이다. 폴켄도 좋은지 폴짝폴짝 뛰다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제이시에게 자랑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 인원들도 한명씩 깨어나고 있었다. 먼저 깨어나는 것은 승급에 실패한 사람들이었다. 2명이 승급에 실패했고 무려 5명이 1성 기사에서 2성 기사로 승급했다.
이것에 가장 놀란 사람은 정작 본인들이 아니라 스승님이었다. 스승님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석상처럼 굳어있으셨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스승님은 아직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철권단의 앞으로 와서 고개를 숙이셨다.
“내가 지도하고 있었지만 나는 너희들의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 오판이었다. 미안하다.”
스승님의 사과에 철권단원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스승님을 만류했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저희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어주십시오!”
“교관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연히 이것은 스승님의 잘못이 아니다. 스승님이 지구의 마나가 이곳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알겠는가?
“스승님 고개를 드시지요.”
“다들 용서해줘서 고맙구나.”
철권단에게 용서받은 스승님은 나에게 오더니 물으셨다.
“정말 그 영약에 특별한 것이 들어있지 않은 것이냐?”
“네, 제가 기른 토끼꼬리 풀과 일반적인 약재입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화분에 심어놨던 것들이 아니라 지구에서 기른 아이들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네가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대단한 영약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계속 만들 수 있다면 대단한 발견이다.”
“다시 만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한 번 더 시도해볼 만 하구나.”
그런데 스승님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그것 아직 남았느냐?”
설마?
“어떤 효과가 작용하는지 내가 직접 체험해보고 싶구나.”
나도 궁금하기는 하다. 지구의 마나가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마침 하나가 남아있었다. 그런데 스승님에게도 효과가 있을까?
“여기 있습니다.”
철권단에게도 그냥 준 것인데 스승님에게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조심하십시오. 지독한 맛입니다.”
옆에서 슬라이트가 쓸데없이 끼어들었지만, 스승님은 신경 쓰지 않으시는 듯 했다. 나는 조용히 물병을 하나 더 꺼내 미리 스승님에게 건넸다. 그런 나를 슬라이트가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물병 이제 없는 것 아니었냐?”
아까 자기에게 물을 안 준 것이 물병이 떨어져서 그런 것으로 생각한 건가?
“혹시 이럴까 봐 스승님을 위해 남겨놓은 거다.”
물론 거짓말이지만 슬라이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승님이 영약을 입에 물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스승님이 잠시 멈칫하더니 나를 노려보았는데 사제의 연이 오늘 여기서 끊기는 줄 알았다. 그러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것을 참아낸 스승님이 내가 드린 물병의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잠시 후 심상치 않은 마나의 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 있던 슬라이트를 바라봤고 슬라이트 또한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뜻이 통했다.
이것은 승급의 전조다. 스승님이 7성으로 올라가려고 하고 계신다.
“다 도망가!”
“여기 있으면 죽는다!”
슬라이트와 내가 동시에 주위에 있던 철권단에게 외쳤다. 물론 내가 심한 편이긴 했지만 4성에서 5성으로 승급할 때의 여파로 벽이 무너졌을 정도다. 6성에서 7성으로 오를 때 여파는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정도다.
불난 집의 바퀴벌레처럼 우리는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그 뒤를 엄청난 마나의 폭풍이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