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49화 (49/206)

49. 호기심은 남자를 죽인다.

MP3 플레이어나 CD같은 것은 없지만 이 세계에도 비슷한 것은 존재한다. 녹음석이라는 마법 물품인데 물론 마법을 이용한 것이라 가격이 높다는 것이 흠이지만 그렇다고 귀족들에게 딱히 부담이 가는 액수도 아니다.

이 세계의 유명한 가수도 돈을 버는 방법은 비슷하다. 이렇게 노래가 녹음이 된 녹음석을 팔거나 극장 혹은 개인 초청 공연에서 수입을 얻게 된다.

처음부터 엄청나게 많은 녹음석을 제작했다. 실패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식으로 출시하기 전에 홍보하기로 했다. 홍보는 돌턴골드 상단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지난번에 다른 사업 거리를 준다고 해놓고 정작 ‘모두의 왕국’은 공주에게 넘겼기에 마음에 걸리던 부분이 있었다.

돌턴골드 상단은 원래 호텔을 비롯하여 부동산 전문의 상단이었기에 호텔의 로비를 비롯해 여러 시설에 슈에르츠의 음악을 틀어놓으려는 것이었다.

도움을 얻기 위해 찰리 데커와 상단주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이것이 일종의 선물이었다. 공주가 만든 토끼 꼬리 상단과 협업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덤으로 자칼, 마그나, 스테이시에게 눈도장을 찍을 기회도 줬다.

찰리 데커와 돌턴 상단주는 공주를 비롯해 최고 권력가들의 후계를 직접 만날 기회에 입이 찢어지도록 좋아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공주의 토끼 꼬리 상단과 협업을 약속했다.

돌턴골드 상단은 소유하고 있는 극장도 있었기에 나중에 공연하게 된다면 돌턴골드 상단의 극장에서 공연하게 될 것이다.

한가지 걱정이라면 아직 슈에르츠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슈에르츠는 전에도 노래를 잘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능력에 대해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녹음석이 팔리기 시작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돈과 명예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슈에르츠의 말을 듣고 바로 생각난 것이 병아리들이었다. 빛을 내는 빛닭이에 이어 다른 병아리 하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능력을 발현했는데 깃털이 조금씩 금속성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름은 철닭으로 지어줬다.

이능력을 각성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원래 있던 재능이 개화한 것인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빛닭이와 철닭이처럼 2세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능력을 각성했다고 하면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새로운 사람들은 지구의 마나에 노출시키는 것을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 한다.

처음 빛닭이의 능력을 확인한 후로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닭장을 보수하고 똘똘이 녀석도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 아랫부분도 확실하게 막아서 아직 외부인에게 닭들이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슬라이트 녀석이 빛닭이를 본 이상 언제까지 보안이 유지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하는 수 없이 지구로 닭들을 옮기거나 닭들에겐 미안하지만, 아예 공개하는 부분도 생각하고 있었다.

새로운 손님들은 기존의 인원들과 융화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날부터 자칼이 승급한 것도 있었지만 마그나나 스테이시도 큰 세력의 후계답지 않게 태도가 그리 뻣뻣하지 않았다.

물론 자칼은 여전히 소심하고 마그나는 꼰대 기질이 있으며 스테이시는 말을 하지 않고 가끔 미친 마법사의 기질을 드러내지만 슬라이트가 꼴통이라고 경고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볼때 제일 꼴통은 여전히 슬라이트다.

같이 고생하는 것만큼 팀워크를 발전시키는 것이 없다고 했던가? 조금 걱정했던 마그나조차도 스승님의 강도 높은 훈련 앞에서는 철권단과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제법 육체적으로 적응해서 오후의 대련에서도 철권단원 중에서 검술 재능이 좋은 편인 크리스 힝켈이나 오스마르 바르트와 백중세의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귀족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은 것치고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다행히 스승님의 말씀으로는 아직 발전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그나는 대단한 노력파였다. 기본적인 훈련이 끝난 후에도 남아서 개인 훈련을 하며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스승님에게 끝없이 질문을 한다.

나는 노력도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노력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에 대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배울 때 초반에는 압도적인 성취를 보인다. 그러나 금방 집중력을 잃기 시작한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질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노력파는 꾸준히 오랫동안 실력을 상승시킨다.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슬라이트와 자칼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가끔 저렇게 노력도 하는 천재들이 있다. 저런 놈들은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볼 때는 존재 자체가 반칙이니 논외로 치도록 하자.

첫날처럼 자칼이나 스테이시와 붙어보기 위해 경쟁하는 일도 없어졌다. 자칼의 방어를 기본으로 하는 역습형 검술은 위력으로 찍어누르며 순간적인 반응을 극대화하는 방식의 나와 대척점에 있는 검술이었다. 잘 풀리는 날에는 내가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련이 굉장히 길어진다.

반면에 슬라이트에게 자칼은 굉장히 약하다. 워낙 다양한 검술을 변화무쌍하게 사용하며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순간적으로 보이는 허점을 파고드는 슬라이트는 자칼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슬라이트는 나에게 약하다. 일종의 물고 물리는 관계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거기에 스테이시가 끼어들면 더욱 복잡해진다. 스테이시는 5성 기사인 우리에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지만 모두 스스로 항복을 한 것일 뿐 마지막까지 제대로 붙어본 적은 없다.

나와 슬라이트도 처음에는 자칼과 같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나서 이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스승님의 조언과 경험에 힘입어 점점 스테이시가 항복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었다.

수준급의 마법사와 이렇게 대련할 수 있는 경험은 매우 특별했다. 그리고 스테이시는 종종 나에게 마법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의 왕국’이 출시 되었다. 이미 왕실의 힘을 빌려 경지를 올려주는 놀이에 대한 소문은 퍼질 대로 퍼진 상태였고 선주문도 엄청나게 들어와 있었다. 출시일에 하루 만에 엄청나게 쌓아놨던 일반판과 미스카엘이 수제작한 한정판도 모두 완판되고 생산량이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되었다.

그 후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하여 모두가 함께 치킨을 싸서 들고 미스카엘를 찾아갔던 적도 있는데 미스카엘은 작업실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과로로 죽어가고 있었다.

뭐 그래도 2성 기사라서 어지간하면 죽지는 않을 테니 이 고비만 넘긴다면 많은 돈을 벌고 이름도 날릴 수 있을 것이다.

아이브 공주는 덕분에 얼굴에서 웃음꽃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 아이브 공주는 또 다른 것에 꽂혀 있었다.

먕!

구석에서 훈련을 참관하고 있는 아이브 공주의 무릎 위를 언젠가부터 똘똘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여전히 권력에 민감한 녀석이라고 해야할까? 기가 막히게 공주에게 들러붙은 녀석은 아이브 공주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가끔은 별궁까지 따라가 외박을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아이브 공주는 아예 똘똘이를 먹이려고 특제 육포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따로 들고 다니고 있었다. 잘 먹어서 그런지 요즘 똘똘이의 배가 조금 나온 것 같기도 하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을 실감하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공주는 원래 작은 동물을 좋아하는데 왕궁에서는 기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물론 직접 기르는 것은 허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하루의 절반 정도는 이곳에서 머물고 똘똘이의 소유주는 엄연히 나이기에 제약에서 벗어난 공주는 마음껏 똘똘이를 즐기고 있었다.

공주가 원하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애교를 부리는 녀석을 보며 이 녀석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지구의 마나에 노출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신기할 정도로 똑똑한 녀석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나는 늘 그렇듯이 지구로 넘어왔다. 여전히 이 주변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물론 특별한 사건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떠돌이 변이체라도 아직 나에게는 버거운 상대다. 나 자신은 조금 더 강해졌지만, 이제는 7 서클 스크롤이 없다.

나는 손에 스트라이더 997번을 들고 고민하고 있었다. 지난번 변이체의 팔과 슈바르거트에 연속해서 사이코 메트리를 사용한 결과 나는 하루 정도 후유증을 크게 앓았다. 두통이 가라앉지 않고 열이 올라서 스승님도 하루 쉬는 것을 허락해주셨을 정도였다.

기존의 육체적인 반동보다 이쪽이 훨씬 부작용이 컸다. 아직 이것을 어떻게 막거나 완화해야 할지 방법도 찾지 못했다. 해열제나 진통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포션도 사용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이것은 육체적인 문제가 아닐 것이다. 육체적인 문제라면 재생력이 발동했을 테니까.

하지만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남자가 빨리 죽는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라는데 나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남자인가 보다.

과연 스트라이더 997번에서는 어떤 기억이 읽힐 것인가. 어쩌면 다른 던전이나 보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일 밤 이렇게 유혹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꽤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지 않을까? 결국 오늘은 호기심이 이성을 찍어 눌렀다.

스트라이더 997번을 든 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시야가 바뀌었다.

“아, 지겨워. 빌어먹을 황제 놈 그냥 죽여버릴까?”

매우 화를 내는 할머니가 보였다. 아마도 이것은 스트라이더 997번의 시야일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눈앞의 할머니가 바로 마왕의 침공을 막아낸 용사 중 일인이며 멸악의 마법사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초월급 마법사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일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스승님”

중년의 사내가 옆에서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를 다독였다.

“그래서 이거 몇 개 더 만들어야 해?”

“네 개를 만드셨으니 두 개를 더 만드셔야 합니다.”

그럼 스트라이더 시리즈는 999번이 끝이라는 건가? 그럼 제국이 남긴 7개의 던전과 숫자가 맞지 않는다.

“그럼 끝이야?”

“아닙니다. 마지막 하나는 조금 다른 물건입니다.”

“아, 생각났어. 그거 진짜 만들기 어려운 건데? 역시 황제 놈 그냥 죽이는 것이 낫겠어.”

“참으십시오. 검제님이 부탁하신 겁니다.”

“아, 맞다 그랬지? 지르크가 부탁했었지?”

광검제의 부탁으로 만드는 마지막 특별한 물건이라. 그것이 아마도 마지막 일곱번째 던전에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스트라이더 1000번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너 누구니?”

“스승님의 제자인···.”

기억이 끊기고 시야가 돌아왔다.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의 나이가 많아 보이긴 했다. 초월자가 저렇게 늙어 보이는 모습이라면 적어도 나이가 100살은 훨씬 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 못했다.

이번에 알아낸 정보는 일곱 개의 던전 중 하나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997번에도 광검제의 신검이 들어있는 정도의 보물이 제국의 유산이다. 그런데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특별히 제작한 1000번은 과연 어떤 물건일까? 뭐가 됐든 간에 세상을 뒤흔들 정도의 엄청난 물건일 것이다.

정보를 얻은 것은 좋지만 역시 지독한 부작용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뇌를 불판에 올려놓고 굽는듯한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고 있을 때 경지가 올라가며 감지할 수 있는 범위가 엄청나게 확장된 초감각의 끝자락에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시발, 하필 이럴 때”

욕이 절로 나왔다. 지구에 나 외에 살아 움직이는 것은 두 가지일 것이다. 변이체거나 아니면 아직 지난번 곰처럼 아직 살아남은 동물이거나.

그런데 감지되기로 마치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저것은 엄청난 적의를 뿜어내고 있었다.

보나 마나 변이체일 것이다. 저렇게 순수한 적의를 뿜어내는 것은 세상에 변이체뿐이다.

아무리 약해진 떠돌이라고 할지라도 강한 적이다. 만반의 상태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은 사이코 메트리를 사용한 직후라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어려운 상태다. 호기심이 남자를 죽인다더니 진짜 죽게 생겼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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