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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전승자-60화 (60/206)

60. 어디서 왔어?

찰리 데커가 보내준 자료에서 나온 기사는 모두 27명이었다. 찰리 데커와 돌턴골드 상단의 정보력이 왕도의 모든 식당과 식자재 상점을 아우른다고 볼 수는 없었으니 완벽한 정보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상식 이상으로 먹어대는 대식가 기사의 후보가 27명이나 된다는 것은 기사라는 족속이 얼마나 식충이 같은 것들이 많은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찰리 데커가 보내준 자료에는 후보들의 간략한 정보도 나와 있었다. 상단이 정보단체로 변하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소거법을 적용해서 후보를 추려본다.

범인은 4성 기사, 일단 자료에 있는 후보 중에 5성 이상과 3성 이하는 제외한다. 그래서 남은 사람이 7명이었다. 4성 기사라고 명시된 사람도 있었고 정확한 경지를 모르는 사람도 포함된 것이었다.

거기서 다시 체격으로 나눠본다. 내가 봤던 사내의 체격은 매우 건장하고 탄탄했다. 그게 기사의 평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식가라는 부분에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사로서 몸 관리를 포기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매우 뚱뚱하다고 적혀있는 3명을 뺀다. 그럼 4명이 남는다. 남은 4명 중에서 한명은 놀랍게도 여성 기사였다. 그래서 3명이 남았다.

여기서부터는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할 것이다. 내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인간들이 많으니 최대한 주의해야겠지만 약간의 의심을 사더라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만큼 다른 생존자 혹은 전승자를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일이다.

두 명은 식당에서 한 번에 수십인분을 먹어 치우는 유형이었고 다른 한명은 식료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기사였다. 둘 중에 접근하기 쉬운 쪽을 먼저 고르기로 했다. 아무래도 접근성은 식당이 좋다. 식사하는 척하면서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찰리 데커에게 후보 세 명의 자세한 정보를 요구했다. 그리고 도착한 정보를 토대로 예약을 잡고 외식을 하기로 했다. 외식을 하러 나가자고 하면 대환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 식충이들은 의외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여기 식사가 매우 맛있습니다. 어지간한 식당보다 잘 나와요.”

철권단들은 대부분 이런 이야기가 많았고

“귀찮게 뭐 하러 나가냐?”

[연구할 시간도 모자라요. 외식은 너무 번거로워요.]

“아버지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하려는 놈들이 너무 많다.”

“시, 식당 무서워요.”

우리 명문가 4종 세트는 대충 이런 반응이었다. 아이브 공주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아니 따로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집에서 너무 식사를 잘 차려줬었나? 마사의 음식솜씨가 뛰어나기는 하지만 예상 외의 반응이었다.

하는 수없이 혼자서라도 나가려고 하는데 의외로 스승님이 같이 가자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제자와 외식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더구나.”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좋은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어디를 가든 감시자가 붙겠지만 감히 7성 기사를 가까이에서 감시하는 멍청한 놈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제자인 폴켄과 왕도에 온 이후 밖으로 거의 나온 적이 없는 제이시까지 4명이 함께 외식을 나갔다.

나에게는 소중한 애차지만 차마 스승님에게 붕붕이를 타라고 할 수는 없어서 스승님의 중후한 멋이 있는 마동차를 타고 예약해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찰리 데커를 통해 미리 얘기해둔 것이 있어서 후보자가 들어오면 점원이 따로 알려주기로 했다.

간만에 나온 외식 자체는 좋았다. 대식가인 기사가 단골로 찾아올 만큼 꽤 맛있는 집이었고 폴켄과 제이시가 즐거워해서 식사의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했다.

그러던 중 점원이 다가와 나에게 귓속말로 후보자가 나타났음을 알렸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처음은 꽝이었다. 내가 뽑은 후보자 중에 범인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으니 엄밀히 따지면 3분의 1 확률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실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스승님이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신 것 같기는 한데 딱히 물어보거나 하시진 않았다. 나는 원래 수상한 짓을 많이 하는 거야 스승님도 잘 알고 계시는 부분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시는 것 같았다.

다음 날도 외식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슬라이트도 끼어들었다. 이번에도 식당 자체는 맛집이었으나 역시나 대식가는 내가 봤던 그 사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스승님이 수상하게 여기고도 그냥 넘기는 부분을 슬라이트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너 뭔가 하려고 여기 온 거지?”

“아닌데.”

“방금 온 점원이 한 말은 뭐야?”

“그냥 알아볼 것이 있어서 미리 부탁했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

집요한 놈이다. 딱히 나쁜 뜻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많이 먹는 사람”

“많이 먹는 게 왜?”

“우리 집에 붙어사는 식충이들이 워낙 많이 먹어서 승급과 대식에 상관관계가 있나 하고 알아보려는 거다.”

“오!”

오! 는 무슨 오냐 그냥 지어낸 말이지만 슬라이트는 마치 무슨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감탄했다. 이놈 이러다가 갑자기 또 승급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

한참 감탄하던 슬라이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무슨 생각?”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생각하는 것?”

내가 그런 경향이 있었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 빅터 너는 남다른 부분이 확실히 있다.”

슬라이트의 말에 스승님조차도 동의하셨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아직도 지구인의 관점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볼 때가 많다는 것이겠지.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름 겸손하게 대답했는데 옆에서 슬라이트가 초를 쳤다.

“보통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부류는 둘이다. 천재이거나 미친 사람이거나.”

“그럼 나는 천재로군.”

“그건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스스로 그렇게 말하니까 무척 재수가 없다. 미친 천재로 하자.”

슬라이트 놈이 요즘 대련 시간에 덜 맞은 모양이다. 그런데 슬라이트의 말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부류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계속 생각했다. 내가 쫓고 있는 연쇄살인범은 확실히 미친놈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간을 빼먹는 연쇄살인범이 될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제 남은 후보자는 한명, 대량의 식자재를 구입하는 기사였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지 않았다. 슬라이트의 얘기를 듣고 나서 생각기로 이번에도 후보자가 범인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했다.

새로 뽑은 고용인 중 한 명을 시켜 해당 식료품 상점에서 대량 구매를 하는 기사를 보고 오게 했다. 그리고 역시나 고용인이 말하는 인상착의는 내가 봤던 사내와 일치하지 않았다.

사람 간을 꺼내 한입에 삼키는 놈이 정상적인 음식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 미친놈이라면 제대로 된 직업이 있을 리도 없다. 경제적으로도 궁핍할 것이다. 왕도에서 생활비는 지방보다 많이 든다. 제대로 된 거처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일단 왕도 근처에서 사냥 같은 것을 해서 자급자족을 할 수는 없다. 사냥이 금지된 지역이 많을 뿐더러 야생동물이 그리 많지도 않다. 그리고 바깥을 오가며 생활했다면 이미 꼬리가 잡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싸거나 아니면 공짜에 가까운 식자재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생각해보니 그런 곳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곧바로 시찰한다는 이유로 도축업체를 찾아갔다. 내 소유의 도축업체는 집사가 잘 운영하고 있었다. 다달이 눈에 띄게 매출이 늘고 있기도 했다. 이것은 왕도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확실히 지금 왕국은 부흥기에 가까웠다. 썩은 귀족과 정치인이 많네 어쩌네 해도 잘 굴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바로 도축 과정에서 나오는 버리는 부산물이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고열량의 식자재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간을 생으로 먹는 녀석을 봤기에 평소에도 이런 것을 먹지 않을까 추측해보았다.

도축업체의 회장을 맡고 있는 젠투를 통해 조사한 결과 부산물을 얻어가는 사람은 꽤 정해져 있다고 했다. 대부분은 경제 사정이 어려운 빈민들이었다.

따로 팔아도 큰돈이 되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 빈민들의 사정을 봐주는 뜻으로 사람이 먹어도 이상이 없을 정도의 부산물을 모아서 내주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곳에 갑자기 대량의 부산물을 가져가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난다면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이미 몇 번 평소에 부산물을 가져가는 다른 빈민들과 가벼운 마찰도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인물의 인상착의를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잡았다. 요놈’

부산물을 내놓는 시간에 맞춰 다른 핑계를 대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추적자들의 눈을 따돌리고 통로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간해서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했던 신체 변형을 시작했다.

우득! 우드드득!

뼈가 뒤틀리고 근육과 피부가 찢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전에 공주가 주었던 왕실 특제의 진통제도 미리 복용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젠장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이번에도 같은 말을 했지만, 원래 몸으로 돌아가려면 한번 더 해야 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외형은 예전에 암살했던 사채업자 두목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아직 내무대신쪽에서는 이 녀석을 찾고 있다고 들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찾는다고 고생 좀 할 것이다.

조심스럽게 통로에서 빠져나와 부산물을 내놓는 곳에 도착해 근처에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이 나타났다. 거지처럼 보이도록 거적때기 같은 것으로 머리까지 덮어쓰고 있었으나 완전히 얼굴을 감출 수는 없었다.

‘찾았다.’

연쇄살인범이 분명한 것을 확인했다. 녀석은 더러운 포댓자루에 소와 돼지의 부산물을 쓸어 담았다. 녀석이 너무 많은 양을 가져가자 다른 사람들이 항의했으나 이미 몇차례 다툰 적이 있어서 그런지 말로만 그럴 뿐이었다. 4성 기사를 보통 사람들이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나는 녀석의 뒤를 밟았다. 예상대로 녀석은 일반적인 주택에 살고 있지 않았다. 녀석이 향한 곳은 거지들이나 하수도가 흐르는 다리 밑의 더러운 움막 중의 하나였다.

왕도에도 엄연히 이런 곳이 존재한다. 가끔 단속한다고는 해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곳이다 보니 아무리 멀리서 내가 따라가고 있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다.

“나리 한 푼만 줍쇼.”

거지 하나가 가까이 다가와 손을 벌렸다. 한두푼 주고 치워버리려고 했으나 근처에 눈을 빛내고 있는 다른 거지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서 돈을 주면 순식간에 수십명이 달라붙을 것이다.

“꺼져라.”

낮은 목소리로 위협하며 거지를 쫓으며 잠시 시선을 돌린 사이 놈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설마 알아챈 건가?’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재빨리 거리를 좁히며 초감각으로 녀석을 감지하려고 했지만, 녀석이 느껴지지 않았다. 영체화를 사용한 모양이다. 이러니 특무대가 추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체화의 약점을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영체화라면 그리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물론 그것은 생존자의 기준이고 변이체나 전승자의 기준이라면 알지 못한다.

주변을 살폈다. 내가 녀석이라면 어느 방향으로 도망쳤을까. 이미 어스름한 저녁이다. 내가 녀석이라면 도망친 김에 다음 희생자를 찾을 것이다.

방향을 정하고 몸을 날렸다. 확률은 낮았지만, 어차피 이곳에서 놓치면 다시는 녀석을 잡기 힘들다.

그리고 약 30초가량 달렸다. 그렇다고 해도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가 전력으로 달린다면 수백미터를 달릴 수 있는 시간이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는지 초감각에 앞쪽의 골목 모퉁이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녀석이 걸렸다.

영체화 유지 시간이 내 예상보다 훨씬 길다. 내가 알던 생존자는 기껏해야 10초를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재사용 시간 역시 3분의 1 정도로 계산해야 맞겠지만 지난 번 살인 현장의 기억을 봤을땐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시간은 많지 않다. 나는 전력으로 달려 녀석을 추적했다. 뒤늦게 녀석도 나를 보고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느렸다. 4성과 5성 기사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문제가 있는것 같았다.

녀석은 빈민가의 골목을 이리저리 돌며 나를 떨치려고 했으나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몇 번 골목을 돌기 전에 녀석은 막다른 길에 몰렸다. 2미터 정도의 얕은 벽이 앞을 막고 있었으나 기사라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였다. 그러나 녀석은 갑자기 멈추며 검을 뽑아 들었다. 맞서 싸우는 것을 선택한 모양이다. 뭔가 믿고 있는 것이 있는 건가? 라고 생각한 순간 녀석이 몸이 부풀며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체 변형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그것은 신체 변형을 사용하고 있는 내가 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저것은 변형이라기보다는 변신에 가깝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이 녀석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원래도 덩치가 좋은 녀석이었지만 순식간에 2.5미터는 되어 보일 정도로 덩치가 커진 녀석이 검을 휘두른다. 덩치가 커지며 힘이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만큼 동작이 커졌다.

매일 실전같은 대련을 하며 슬라이트의 예리한 공격이나 스테이시의 마법도 피하는 나에게 이런 것은 애들 장난에 가깝다. 나는 가볍게 검을 피하며 어깨로 녀석의 복부를 들이받았다.

덩치가 커졌지만 그렇다고 내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충격에 녀석이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날 때 녀석의 뒤쪽에 통로를 열고 힘으로 밀어붙였다.

녀석과 함께 지구의 기상연구소로 넘어간 나는 재빨리 녀석에게서 떨어지며 거리를 벌렸다. 일단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구로 넘어왔으니 녀석이 영체화를 써서 도망쳐봐야 부처님 손바닥 위에 불과하다.

“이건 뭐지? 환각 마법인가?”

갑자기 달라진 주변 환경에 녀석이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이 엠 사우스코리안, 웨얼 아 유 프롬?”

일단 녀석이 생존자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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