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자무새
이 세계는 사람이 살아가기에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내가 자랐던 크리스타 백작령과 왕도가 매우 치안이 잘 관리된 곳이었던 것 뿐이지 관리가 되지 않는 영지나 변두리로 나가면 뒷동산에 마수가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수란 무엇일까? 그 탄생 과정도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것이 없다. 연구라면 미치는 마법사들이 몇백년을 연구하고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상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마수는 보이는 족족 죽여 없애도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조금만 방심해도 어느 순간 마수가 자라고 있다.
그래서 이른바 자연발생설이 유력한데 세상에 뿌려져 있는 마수의 씨앗이 자연적으로 발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수의 특성상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번식한다.
이것을 누군가는 과거에 강림했던 마왕의 잔재라고 하는데 역사적 기록을 보면 그 이전에도 마수는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에 마왕의 짓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쨌든 그 마수가 암테일 영지에 나타난 것이다. 스승님의 얼굴에 생기가 돌게 된 이유다.
마수는 상중하 급으로 나뉘는데 하급은 병사들로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고 중급은 4성 이상의 기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상급 마수의 경우에는 5성 기사 여러 명이나 6성 이상의 기사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부 개체는 7성 기사가 아니면 대적할 수 없는 강한 녀석들도 있다.
물론 그렇게 강한 개체가 마구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고 수십 년에 한 번 정도 나오는 천재지변 수준이었기에 이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암테일 영지는 무척 운이 좋지 않으면서도 운이 좋았다. 이번에 튀어나온 마수는 무아새라는 상급 마수였다. 일반적으로 4성 기사 몇 명 정도 보유하고 있는 보통의 영지였다면 재앙을 맞이한 셈이다.
이럴 땐 중앙에 보고하여 왕실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근처 영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그 시간 동안 영지는 쑥대밭이 되고 복구 비용이나 도움의 대가 등 돈은 돈대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암테일 영지는 운이 좋게도 영주가 무려 7성 기사에 소영주도 5성 기사다. 영주가 강할수록 영지가 잘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거기에 영주와 소영주가 마침 영지에 처음 방문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상급 마수가 나타났으니 암테일 영지는 무척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무아새는 상급 마수 중에서도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마수로 알려져 있다. 일단 비행형 마수라는 점이 그렇고 마수로서 드물게도 무아새는 강한 독을 사용하는 마수였다.
“스승님은 무아새를 상대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아주 오래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어떻게 상대하셨나요?”
“상대라고 할 것도 없었다. 공작님이 혼자 뛰어나가서 그냥 목을 베어버렸으니까.”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건 스승님이 나선다면 큰 피해 없이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스승님은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너희들끼리 먼저 상대해보거라.”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무아새는 굉장히 강한 독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때는 무아새의 독이 암살에 자주 사용되기도 했을 정도로 해독이 어려운 독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무아새의 독은 꽤 고가에 거래되는 물품이다.
“뒤에서 지켜봐 주마.”
“그렇다면 안심이군요. 알겠습니다.”
7성 기사가 뒤를 봐준다는데 무서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나에겐 재생력이 있다. 독 자체에 저항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독된 후에 몸의 재생에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슬라이트와 자칼에게 무아새를 상대하게 되었음을 알리자 슬라이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고 자칼은 겁에 질렸다.
그런데 막상 마수를 상대한 실전 경험은 자칼이 더 많았다. 자칼은 북부에서 마수 토벌도 꽤 여러 번 나갔었다고 했다.
사냥의 준비에는 꽤 여러 가지가 필요했다. 직접 무아새를 상대해본 것은 아니지만, 마수 토벌에 경험이 가장 많은 스승님이 요구한 준비물을 벤 행정관이 준비할 동안 우리는 가상의 무아새를 상대로 훈련에 돌입했다.
스승님이 무아새의 역할을 하고 우리 셋이 공격하는 방식이었는데 무아새를 너무 강하게 설정하신 것이 아닌가 싶어질 정도로 고된 훈련이었다.
결국 출발하기 전까지 우리는 스승님 무아새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영주님이 함께 가시니 안심이긴 하다만 조심히 다녀와라.”
“너무 걱정 마세요. 저 이제 꽤 강합니다.”
어젯밤에는 어머니에게 한 시간이 넘게 잔소리를 들었고 출발하기 직전에는 아버지가 떠나는 나를 붙잡고 한참이나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못 본 사이에 걱정이 늘어난 모양이다.
“다치지 말아라.”
바보 형도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 정도는 형이 알아서 처리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래야 내가 직접 손을 쓰지 않지.”
물론 아직 2성 기사인 바보 형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빨리 성장하라는 의미에서 조금 건방진 말을 해보았다. 형은 기사 훈련보다 요즘은 행정관님에게 행정을 배우는 시간이 더 많다고 했다. 나를 너무 의식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것도 형의 선택이기에 간섭하지는 않았다.
“알았다. 다음에 뭔가 나오면 내가 때려잡아 주지”
허세를 부리는 모습을 보니 그리 걱정하진 않아도 될 모양이다. 나는 환송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처음 경험하는 마수 토벌에 나섰다.
이미 큰입메로나 숲지기를 상대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그냥 길을 가다가 마주친 것이지 정식 토벌전은 아니었다.
무아새가 목격된 곳은 영지 외곽에 있는 산으로 영주성에서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우리는 각자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길잡이로는 암테일 영지에서 오래 근무한 기사인 듀라 경이 나섰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영지에 유일한 4성 기사였고 암테일 영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에다 전 영주 시절부터 계속 근무한 경험 많은 노기사였다.
“영주님과 명망 높은 가문의 자제들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심을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듀라경이 우리에게 건넨 인사였다. 처음 왔던 날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고 오늘 본 것이 두 번째라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좋게 말하면 동화책에서 튀어나온것 같은 올곧은 기사였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옛날 방식의 기사였다. 듀라 경보다 나이가 더 많은 스승님도 저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가는 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지만 듀라 경은 자신의 임무에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성실하고 완벽하게 우리를 이끌었다.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나게 되었는데 상태가 그리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크리스타 백작령의 위성마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나쁜 수준이었다.
정식 영주가 없이 지낸 지 오래되었고 아버지와 벤 행정관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준수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별다른 특색이 없는 영지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마신교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까 유심히 살폈는데 스승님과 나의 감각으로도 마신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자식들 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거지?’
4성 기사를 키워놓은 곳이니 금방 눈에 띌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쇄살인범 놈에게 자세한 위치까지 들어놓을 것을 그랬다.
그렇게 며칠 만에 드디어 목적지인 영지 외곽의 산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멀리서도 그곳에 자무새가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게 뭐지?”
슬라이트가 멀리 보이는 시커먼 산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독에 당한 겁니다. 나도 방금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스승님도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계셨다. 이것이 상급 마수 하나가 나타났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야말로 주변이 초토화가 된다. 그래도 이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절대 작지 않은 산 하나의 나무가 전부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자무새는 상급 마수 중에서 호전성이 높지 않은 개체다. 그렇다고 마냥 순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러 사람이나 동물을 찾아 공격하진 않는다는 것이지. 먹이로 고기보다 나무 열매 같은 것을 좋아하는게 이유라고 한다.”
스승님이 옛날 기억이 떠오르셨는지 자무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우리는 말을 멈추고 경청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큰 피해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자무새가 근처에 있기만 해도 근처 식물들이 저렇게 죽어버리니까 말이야. 자무새는 계속 새로운 열매를 찾아 움직이고 근처의 모든 것이 저렇게 죽어가는 거다. 내가 전에 자무새를 봤을 때는 농지로 내려와 엄청난 피해를 준 후였지.”
“그런데 지금 저기는 산 하나만 피해를 보았군요.”
산이 그것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 여러 개가 붙어있는 지형이었는데 유독 산 한 개만이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나도 그것이 이상하구나.”
“저희가 빨리 와서 아직 피해가 커지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아니다. 자무새가 새치고는 비행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편이긴 해도 날아다니는 새다. 행동반경이 저렇게 좁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이상한 일이긴 하다. 우리가 이곳에 딱 맞춰서 도착했다고 해도 이곳까지 이동한 시간만 따져봐도 며칠이 흘렀다.
“일단 가보자꾸나.”
“예”
우리는 서둘러 말을 몰았다. 마수가 이상 행동은 보이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 그런 마수들은 특별한 개체가 많기 때문이다. 상급 마수 중에서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무아새가 특별한 개체라면 우리 셋으로는 승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산기슭에 도착해 말에서 내렸다. 앞은 시커멓게 죽은 나무와 풀로 가득한 세계였다. 더 이상 말을 타고 갈 수는 없었다. 길도 없지만 죽은 풀과 나무에도 독이 남아있기 때문에 말을 타고 진입이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다. 앞으로 몇년간은 이곳에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것이다. 마치 방사능 피해를 입은 지역을 보는것 같았다.
“듀라 경은 이곳에 남아 말을 지켜주시오.”
“알겠습니다. 영주님”
스승님은 듀라 경을 남기는 것을 택했다. 상급 마수 앞에 4성 기사는 꽤 무력한 존재다. 더구나 전성기가 한참 지난 노기사는 짐이 될 확률이 높았다.
기사로서 이런 명령을 받는다면 굉장히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듀라 경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그대로 명령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출발할 때부터 이런 상황을 감수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우리는 장비를 착용하자.”
미리 준비해두었던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피부에 닿는 독을 막아줄 수 있는 빈틈이 없고 방수재질의 가죽 갑옷과 얼굴을 완전히 덮는 복면 등이었다. 그리고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고급 해독제도 허리에 착용했다.
“그럼 가자”
“예!”
상급 마수를 잡는 토벌대로 나온 것이 겨우 4명이긴 하지만 5성 기사 셋과 7성 기사 한명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토벌대가 빠른 속도로 산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곳은 딱히 험악한 산은 아니었지만 길이 닦여있지 않은 산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결코 우호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엄청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일행은 마치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며 산에 올라갔다.
“너무 힘을 빼지 않도록 해라. 강한 적을 상대하기 전에는 충분히 여력을 남겨야 한다.”
달리는 와중에도 스승님의 조언은 계속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이유로 지키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산줄기를 타고 계속 이동하고 있지만 감각에 걸리는 것이 전혀 없었다. 생명체라는 것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이 산에 자무새는 대체 왜 남아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영지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타이밍이 좋게 자무새가 나타난 것도 충분히 의심할만한 상황이었다. 마신교가 상급 마수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미지수였지만 약을 먹여서 변이체도 만드는 놈들이니 마수를 조종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자칼이라도 성에 남겨놓고 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모두 자리를 비웠을 때 영주성을 공격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가 산을 탄 지 꽤 시간이 지났다. 구멍 하나 없이 꽉 막힌 옷을 입고 산을 뛰어다녔더니 갑옷 안에 땀도 차고 불쾌했다. 일부러 산을 빙 둘러서 이동하고 있었으나 무아새는 고사하고 생명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아래쪽에는 자무새가 없는 모양입니다.”
더 이상 중턱을 돌며 자무새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말씀드렸더니 스승님도 동의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정상에 둥지라도 튼 것이 아닌가 싶구나.”
우리의 시선이 산 정상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