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힘의 격차
“정말 이상하구나.”
정상을 향하는 도중에 스승님이 잠시 걸음을 멈추셨다.
“왜 그러십니까?”
“상급 마수라는 것들은 아주 예민한 것들이다. 특히 자무새는 그중에서도 감지 범위가 매우 넓은 마수에 속한다.”
“그게 이상한 겁니까?”
스승님은 잠시 고개를 저으시고 다시 설명을 이어가셨다.
“너에게는 아직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정상에 있는 자무새가 느껴진다.”
과연 이게 7성 기사의 힘인가? 초감각을 가지고 이제 제법 감지 범위가 넓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7성 기사의 그것에는 어림도 없는 모양이다. 물론 초감각은 같은 기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자세하고 여러 가지 다른 것도 느낄 수 있지만 탐색 범위에서 이 정도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자무새가 우리를 느끼지 못했을 것 같으냐?”
“자무새의 감각이 그 정도로 뛰어납니까?”
“자무새가 아니더라도 상급 마수들은 감지 범위가 무척 넓다. 그중 자무새가 더 넓은 편이지.”
아직 상급 마수를 상대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마, 맞아 나도 아버지를 따라간 곳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굉장히 멀리서 우리를 알아채고 공격해왔어.”
자칼 녀석이 한마디를 보탰다. 자칼은 이미 경험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자무새가 움직이지 않고 있단 말이지. 이상하지 않느냐?”
“확실히 그렇군요. 이유가 있겠지요?”
스승님의 의문에 내가 답을 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이유가 있으니 움직이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우리가 자무새 본인이 아니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렇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자무새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 같으냐?”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오히려 좋은 것 아닐까요? 날아오르기 전에 죽이는 것이 좋겠지요.”
비행형 마수를 상대할 때 까다로운 점이 바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 우리는 아공간에 투창도 각자 열 자루가 넘게 준비해두고 있었다.
“예전에 공작님께서 혼자 달려가 재빨리 자무새의 목을 베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자무새가 도망칠까 봐 그런 것이었지. 만약 자무새가 둥지를 버리고 마을이나 도시 쪽으로라도 가게 된다면 큰일이다.”
국경처럼 성벽에 마동포가 달려있는 것도 아닌 도시가 자무새를 막아낼 방법은 없다. 재앙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곳에서 반드시 자무새를 죽여야 한다. 알겠느냐?”
“예!”
나와 슬라이트 그리고 자칼이 동시에 크게 대답했다. 귀족이란 백성들을 보호하는 것이 기본 의무다. 요즘은 그것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귀족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지만 적어도 이곳에 있는 이들은 진짜 귀족들이었다.
나는 준남작의 차남 아니 이제 아버지가 남작이 되셨으니 남작의 차남인가? 어쨌든 영지의 소영주 예우는 받고 있지만 정식 신분은 평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여러 스승들에게 귀가 닳도록 받은 교육이 그랬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명문가의 자손인 슬라이트는 말할 것도 없고 겁 많은 자칼조차도 눈에 힘을 주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미 적이 우리가 다가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고 우리도 적의 위치를 알고 있는 이상 가장 빠른 코스로 정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자무새가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 정상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자무새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인 상급 마수다. 솔직히 조금 긴장도 됐다.
그런데 막상 처음 본 자무새의 모습은 예상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지독한 독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자무새는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전신이 신비로운 에메랄드빛의 깃털로 감싸여 있었고 깃털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지구에서 전설로 전해지던 봉황이 실존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것은 마수가 아니라 신수라고 해도 대부분은 그렇게 믿을 것 같았다.
“정신 차려라 아무리 아름다워도 저건 마수다.”
그런 나의 기색을 읽었는지 뒤에 따라오던 스승님이 경고했다.
“옙!”
나뿐만이 아니라 슬라이트나 자칼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저기가 둥지인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자무새는 왜 멀리 떠나지도 않고 둥지를 지키고 있을까. 마수 중에서는 자신의 보금자리에 대해 애착을 가진 종이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숲지기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자무새는 스승님이 말했듯이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떠도는 종이다. 그렇다면 딱히 둥지에 애착을 가지는 그런 종은 아닐 것이다.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그리고 마침내 50m 정도로 가까워졌다. 상급 마수에게나 5성 기사에게나 50m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 호흡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여태까지 우리를 노려볼 뿐 미동도 하지 않던 자무새가 양쪽 날개를 넓게 펼치며 울었다.
꾸루루룩! 꾸룩!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싸우겠다는 것은 아닌것 같았다. 내가 마수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지만, 덤빈다면 싸운다. 하지만 네가 그냥 떠난다면 봐주마. 이런 뜻으로 보였다. 만약 싸울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달려들었을 것이고 도망치려고 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분명히 저 둥지에 떠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저건 성체가 아니구나. 우리가 일찍 오긴 한 모양이다. 내가 전에 봤던 자무새는 저것보다 다섯 배는 컸었다.”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자무새도 날개를 활짝 펴니 대략 3m는 훨씬 넘어 보였다. 그런데 저것의 다섯 배? 그건 진짜 봉황 아닌가?
내심 알이나 새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정도로 어린 개체라면 알이나 새끼가 있을 가능성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보물이라도 품고 있는걸까? 마수가 보물을 모은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방심하지 마라. 성체가 아니라고 해도 상급 마수다.”
스승님의 경고를 들으며 우리는 싸울 준비를 했다. 스승님을 자무새로 삼아 특훈을 한 성과를 보일 차례다.
“일단 1번 작전으로 간다.”
“알았다.”
“으, 응!”
물론 스승님을 상대로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상대는 7성 기사도 아니고 성체도 아니다. 1번 작전은 스승님을 상대로 가장 많이 연습했던 작전이다. 그만큼 몸에 익었고 완성 되어있는 작전이다.
나는 캐스팅을 시작했다. 스테이시가 같이 왔다면 전투가 훨씬 쉬워졌을 텐데 스테이시가 같이 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독을 상대할 때는 기사보다 마법사가 유리하다. 비행형 마수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왕도에 있는 스테이시를 데려오기도 힘들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우면 된다. 그런 것이야 전생에 지겹도록 경험했다.
대격변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마실 것과 먹을 것은 항상 부족했고 무기도 오히려 점점 질이 떨어져 갔다. 몸을 숨길 곳도 부족해져 갔고 지식을 가진 사람과 기술자도 점점 사라져 갔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상급 마수? 마법사가 없어? 목숨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든든한 7성 기사가 뒤에 있는데 무슨 상관인가?
“셋, 둘, 하나 가자!”
우리는 일렬로 달리기 시작했다. 선두에 내가 자리 잡고 두 번째는 자칼 세 번째가 슬라이트다.
5성 기사의 주력이 50m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다. 위협만을 하고 있던 자무새의 눈빛이 변한다. 그래 원한다면 죽여주마. 그런 의지가 보인다. 자무새에게 엄청난 살기가 뿜어지기 시작한다. 눈이 따끔거릴 정도로 초감각이 위험을 알렸다.
츄하아아악!
자무새가 한껏 벌렸던 날개를 가볍게 한번 털었다. 가벼운 움직임이었지만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마치 공기를 찢어발기듯이 휘둘러진 두 날개에서 초록색의 액체가 수많은 물방울이 되어 우리를 향해 마치 암기처럼 날아오기 시작했다.
자무새의 전신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전신에 초록색의 독이 흐르고 있던 것이었다. 한 방울만으로도 소 수십마리를 죽일 수 있다는 극독이 이렇게 줄줄 흐르고 있으니 근처에 생명체가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보호막!”
준비해둔 방어마법을 시전했다. 스승님의 특훈은 효과가 있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스승님은 바닥의 모래를 발로 차서 이것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고는 하셨다.
마법으로 만든 보호막은 독 자체에는 강한 내성을 가진다.
하지만.
투투투투투투퉁!
굵은 장맛비가 지붕을 두들기는 소리를 내며 수백 방울의 맹독이 보호막을 두들겼다. 보호막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내 마법이 아직 약한 것도 있겠지만 자무새가 쏘아낸 독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물리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고 자무새는 그것으로 자신의 시간을 사용해버렸다. 그것은 우리가 자무새가 버티고 있는 바위 위의 둥지로 다가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자칼!”
선두에서 독을 막아낸 내가 자무새의 지척에 도달했을 때 몸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숙이며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바짝 숙인 내 위로 자칼과 슬라이트가 지나갔다.
처음 공격은 어떤 방법을 써도 우리에게 불리하다. 그것이 스승님과의 특훈에서 얻은 결론이었다.
“상급 마수의 공격은 이것보다 두배는 강하다! 너희는 아직 약하다. 그걸 인정하고 작전을 짜도록 해라!”
스승님은 훈련 때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스승님의 훈련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이것이었다. 자칼의 검법은 방어에 특화되어있다. 일단 한방 막아내고 그 틈을 노린다. 그것이 1번 작전이었다.
쐐애애액!
자무새의 날개 한쪽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졌다. 하지만 자칼은 처음부터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오러를 가득 실은 검을 뉘여서 공격을 막아낼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쩌어어엉!
“크아아악!”
검과 깃털뿐인 날개가 부딪쳤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자칼이 비명과 함께 마치 물수제비를 뜨는 돌멩이처럼 튕겨 나갔다. 이것은 예상외였다. 훈련 때 스승님은 두배라고 말씀하셨지만 두배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뒤따라 들어가는 슬라이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며 그대로 달려들며 검을 찔러 넣었다.
아니 넣으려고 했다.
쐐애애액!
새의 날개는 한 쌍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나머지 날개 한쪽이 슬라이트를 향해 쏘아졌다. 그 속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공격을 멈추고 막아야 하지만 슬라이트가 이미 검을 거두기는 늦었다.
콰아앙!
“크으윽!”
슬라이트를 꼬치처럼 만들 뻔했던 날개를 내가 몸을 날려 검으로 막아냈다. 순간 양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곧바로 재생력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공중에 떠서 공격을 받아낸 터라 달려든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튕겨져 나왔다.
“뭐해!”
당황한 슬라이트가 잠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슬라이트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검을 찔러넣었다. 그런데 그 찰나의 망설임이 문제였다.
쐐애애애액!
긴 꽁지깃이 마치 채찍처럼 휘둘려져 날아오고 있었다. 이것을 막아줄 사람은 이제 없다. 하지만 슬라이트는 멈추지 않았다.
푸욱!
쩌어엉!
무언가가 뚫리는 소리와 맞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몸으로 꽁지깃의 공격을 받아낸 슬라이트가 자칼처럼 저 멀리 튕겨 날아가고 있었다.
날아가며 팔다리가 흐느적거리는 것을 보니 의식을 잃은 모양이었다. 반면에 슬라이트의 공격은 자무새의 목덜미에 아주 작은 상처만을 냈을 뿐이다.
상급 마수의 힘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상급 마수 중에서 최상위 종들은 정말 7성 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자무새가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는 것이지 상급 마수 중에서 그리 강한 축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최상위 종은 5성이나 6성 기사 정도가 떼로 덤빈다고 해도 어떻게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이런 괴물이 도시나 마을로 날아갔다? 독이 없더라도 지방 도시 정도는 무조건 전멸이다. 여러모로 암테일 영지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자무새의 목덜미에 입은 작은 상처에서 보라색의 피가 한줄기 또르르 흘러내렸다.
끼에에에에!
자무새가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높은 음의 포효를 질렀다. 나 진짜 화났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무새의 눈이 자기 피처럼 보랏빛으로 물들며 가슴 쪽이 크게 부풀기 시작했다.
나는 공중에 떠올랐다가 땅에 떨어질 때는 자세를 잡아 바닥을 구르는 망신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초감각이 위험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피하지 않으면 무조건 죽는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피해라!”
어느새 스승님이 곁에 다가와 계셨다. 나는 서둘러 정신을 잃은 슬라이트를 어깨에 둘러메고 저 멀리 날아가서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칼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자무새의 입에서 보라색의 안개가 강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