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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전승자-69화 (69/206)

69. 사냥감

“다시 묻는다. 자무새는 어딨지?”

“폐광에 숨겼습니다.”

그래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그런데 지금은 폐광에 없을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일단 내가 운이 좋게 잘 찍긴 했나 보다.

“그럼 어디에 있지?”

“모릅니다. 어딘가로 옮긴다고 얼핏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어딘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것들은 어디로 가져가는 거야?”

“그건 폐광으로 갑니다.”

그럼 일단 폐광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물어보면 될 듯 하다.

“너희 세력은 얼마나 되나?”

“잘 모릅니다. 저도 말단이라서요.”

내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리자 두목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진짜입니다.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폐광에 약 20명 정도가 항상 상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주 바뀌는 걸로 봐선 그것보다는 숫자가 꽤 많을 겁니다.”

그럼 두배로 잡았을 때 최하 40명 그 정도의 인원이 영지 내에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영지에 있는 지부 하나의 인원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왕국 전체로 보면 인원이 예상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넌 이것이 뭔지 알았지?”

내가 검으로 촉수를 가리키며 말하자 녀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게 거기에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너도 신관에게 약을 받아먹었나?”

“신관이요? 무슨 말씀이신지?”

설마 이 자식들은 자기가 어디에 속해서 일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건가? 생각해보니 가능성이 있었다. 마신교가 대놓고 우린 마신교다! 마신님을 믿어라! 하면서 활동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단체로 위장했을 가능성을 생각했어야 했다.

“너희 단체 이름이 뭐지?”

“해방 전선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여러 가지 이름을 쓰고 있지만요.”

“뭐?”

“가이브아크 제국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지요.”

기가 막힌 조합이다. 200년 전에 멸망한 제국을 이제 와서 부활시킨다고? 그것도 당시에 멸망했던 마왕교의 후손 같은 놈들이? 제국의 부활을 준비한다고 하면 반역죄고 마신을 숭배한다고 하면 대역죄다.

“그럼 자무새는? 제국의 부활에 자무새가 왜 필요해?”

“제국의 유산을 발굴하는 데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게 왜 여기서 나와? 그럼 지금 이놈들이 암테일 영지에 있는 제국의 던전을 찾았다는 이야기인가? 일이 이상하게 풀리는 것 같으면서도 꼬여있었다.

제국의 부활이라. 제국의 유산을 손에 넣어 힘을 키운다면 단기간에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왕국의 힘을 얕봐선 안 된다.

그런데 거기에 마신교 놈들의 변이체의 힘을 인간에게 주입하는 기술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당히 위험한 놈들이다.

“너희들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

반역죄다. 이놈들이 악마의 촉수가 나오기 전부터 벌벌 떨고 있던 이유가 그것이었나?

“저를 이것에 대해 제외하면 잘 모르는 놈들입니다. 돈이 궁하던 참에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와서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저만 죽여주십시오.”

두목이 앞으로 목을 길게 내밀었다. 나름 의리는 있다는 건가?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놈들을 용서해줄 필요가 있는가? 용서해준다면 쓸모가 있을까?

“이게 그렇게 해결될 것이 아닌 거 알잖아? 제국 부활만 해도 반역인데 이거 악마의 신체라고. 이건 대역죄다. 재판도 필요 없는 수준이야.”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두목이 고개를 번쩍 들으며 물었다.

“뭘?”

“원하시는 것이 있는 것 아닙니까? 죽이시려면 진즉에 죽이셨을 겁니다.”

용병 출신이라 그런지 눈치가 빠르다. 나는 눈치 빠른 인간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믿지도 않는다.

“너희들 거기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됐지?”

“얼마 되진 않았습니다. 석 달 정도 되었군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인가? 그렇다면 갱생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마수 새끼를 생포하는 것이야. 용병들이 흔히 하는 일이다. 다만 이번에는 그것이 상급 마수였을 뿐이다. 보아하니 정말 악마의 신체 일부가 상자 안에 있었다는 것도 몰랐던 것 같다.

“좋아. 내가 봐준다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지?”

녀석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충성... 그것밖에는 드릴 것이 없습니다. 평생 노예처럼 부리셔도 좋습니다. 다만 이 녀석들은 살려주십시오.”

“좋아.”

“네?”

“좋다고.”

내가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두목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확정은 아니다. 지금부터 하기 나름이야. 그리고 살려준다고 했지, 풀어준다고 하진 않았다. 나머지 너희들도 전부 내 밑에서 일을 좀 해야겠어.”

“그건 좀···.”

“왜? 싫어? 이곳에서 도망쳤던 어떤 멍청이 덕분에 왕실이 이미 냄새를 맡고 추적하고 있다. 나도 그래서 우리 영지에 지부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서 내려온 거다. 왕실이 나서는 순간 너희들 무조건 죽는다. 반역으로도 모자라서 악마 추종자라고? 세상 어느 나라로 도망쳐도 반드시 잡혀서 죽는다.”

왕실 얘기가 나오자 녀석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럼 소영주님 밑으로 가면 지켜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래 내 계획대로 된다면 말이지.”

녀석들과 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녀석들이지만 아예 모르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저녁이 되어 그 자리에 그대로 야영을 준비했다. 마신교가 정말 제국의 유산을 찾아서 발굴을 준비하고 있다면 하루 이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던전 발굴에 어떻게 자무새를 활용할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직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했으니 당장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생각초와 그 아래에 있던 촉수가 둘 다 필요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었다.

용병대의 대장은 코로스라는 이름이었다. 녀석이 영지 상황에 밝은 것은 고향이 암테일 영지라고 했다. 녀석은 듀라 경도 알고 있었는데 애송이 시절에 듀라 경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일도 있다고 했다.

아직 전체적으로 일손이 부족하고 그중에서도 전력이 부족한 암테일 영지다. 듀라 경은 경험이 풍부하지만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고 아버지가 직접 뛰어다니면서 일을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번 일이 잘 끝나고 녀석들이 운 좋게 살아남는다면 영지에 쓸만한 일꾼이 될 것이다.

온종일 나에게 심문받느라 심력을 소비한 녀석들이 야영 준비에 들어갈 때쯤 나는 혼자 조용히 짐마차 위로 올라갔다.

기왕 손에 들어온 것이다. 뽑아 먹을 수 있는 것은 먹어야 한다. 말라비틀어진 촉수에 손을 댔다.

느낌은 전과 또 달랐다. 해양형 변이체라서 그런 것인지 마치 몸이 물속에 잠기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그런지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또 하나의 능력이 추가됐다. 능력은 수중 호흡,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것은 굉장히 쓸모없는 능력일 수도 있다. 귀족인 내가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 잠수할 일이 평생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신교 놈들이 이것을 여기까지 가져오려고 했던 것을 보면 수중 호흡 능력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만간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볼일을 다 본 촉수는 일단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악마의 신체가 드러난 후로 용병단 녀석들도 근처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것을 보면 녀석들이 마신교에 물들지 않은 것은 맞는 것 같다.

다만 제국의 부활을 꿈꿨던 놈들이라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대의를 뒀던 것은 아니고 큰 빚을 지게 되어 그것을 갚으려고 할 때 마신교쪽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접촉을 해왔다고 했다.

“뭐 하십니까?”

혼자 마차 위에 앉아있던 나에게 코로스가 다가왔다.

“너희들이 아무도 치우지 않으려고 하길래 촉수 치웠다. 그냥 놔둬서 좋은 것이 없는 물건이잖아.”

“죄송합니다.”

“나도 미안해.”

“네?”

“부하 한명 죽였잖아.”

“아, 네 뭐···.”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서라도 살리려고 했던 부하들이다. 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낮에 대화할 동안 내가 죽인 녀석을 땅에 묻으면서도 녀석들은 슬픔을 숨기지 못했다.

“너무 크게 신경 쓰지는 마십시오. 용병이 일하다 죽는 것이야 흔한 일이니까요. 사실 자무새를 잡으러 갔을 때도 몇 명 죽었습니다.”

그건 나도 봤다. 그때 휩쓸린 사람 중에서 용병단의 부하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둥지 아래로 내려갔던 사람 중에 너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원래 교단 인원이었나?”

“네, 몇 명 섞여 있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희를 완전히 믿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생각난 김에 내가 챙겨뒀던 유품들을 꺼냈다. 그래봐야 단검 몇 개와 자질구레한 것들이었다.

“이 중에 생각나는 것 있어?”

“그것들을 챙겨오신 모양이군요. 아, 이 단검들은 제가 대량 구매해서 나눠준 물건들입니다.”

“그럼 그건 가져가고 이 구리반지는?”

“그건 모르겠는데요. 용병이 반지를 끼고 다니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그럼 내가 봤던 19금의 영상은 교단 소속 녀석의 기억이었나보다.

“그런데 이것들을 챙기셨으면 거기 있던 자무새는?”

“스승... 아니 영주님이 잡으셨지.”

“아, 그렇군요. 대단하십니다. 전 녀석이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 오금이 저려서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부하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말이죠.”

코로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런 상황을 수없이 많이 겪어봤다. 그리고 나는 항상 도망쳐서 살아남았으니 코로스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소영주님은 뭐랄까. 나이에 비해 노련해 보이십니다.”

“애늙은이 같다고 돌려서 욕하는 거지?”

“아, 아닙니다.”

“알아. 농담이야.”

코로스는 감이 좋은 녀석이었다. 그래도 농담 이후로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밤을 새우며 나는 불침번을 서는 녀석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불면증 때문에 늘 그렇기는 하지만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덕분에 다른 녀석들과도 아주 조금은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다.

아침이 되어 나는 폐광을 향하고 코로스의 부하 중 한명을 영주성으로 보냈다. 그리고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코로스에게 맹약의 스크롤을 사용했다.

이제 쓸모없는 짐마차는 버리고 우리는 폐광을 향했다. 어제 코로스에게 들은 정보에 의하면 현재 폐광의 소유주는 해방 전선의 위장 상단이라고 했다.

원래 영지의 소유였던 철광의 생산량이 떨어지자 헐값에 채굴권을 매각한 것이었는데 그것도 전대 영주가 살아있을 때 일이니 꽤 오래전 일이었다. 폐광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아주 소량의 철이 나온다고 하니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부분이었고 어찌 보면 완벽한 위장이었다.

어쨌든 마신교의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는 얘기다. 다만 왕실의 정보력에 대한 평가를 조금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 복잡한 문제까지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정말 왕실이 의도적으로 마신교를 방관하고 있다면 스승님과 내가 이곳에 오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또 다른 생각할 부분은 마신교의 본체였다. 전생에 이런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돈의 흐름을 따라가면 실체가 보인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역사적 사건의 과정을 재화의 흐름으로 이해한다는 것이었는데 나름대로 감명 깊게 읽은 책이어서 기억에 남아있다.

그것을 대입하여 생각해보면 마신교라는 단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당장 생각초만 해도 대단히 큰 금액이다. 그리고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악마의 신체를 소문 없이 구하려면 그보다 훨씬 비쌌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주는 곳은 어디일까 하는 것이다. 왕국 내에서 그만한 자금을 비밀리에 유통할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틀 후에 우리는 폐광의 근처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움직여야 한다. 코로스와 용병단에게는 내가 움직이고 난 후에 따라와 폐광에서 도망나오는 인원을 막는 것과 혹시 모를 증원을 막게 명령했다.

“괜찮으십니까? 이상한 능력을 쓰는 녀석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내가 본 적이 있는 정신 교란을 사용하는 놈이었다. 그리고 코로스의 말로는 다른 능력을 사용하는 놈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대신 바깥을 부탁해.”

“그건 걱정마십시오.”

광산 안에서는 굳이 내 힘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반푼이 변이체 두마리는 사냥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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