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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전승자-70화 (70/206)

70. 비밀 통로

폐광의 바깥에는 예전 광산의 전성기를 증명하듯 십여채의 집이 지어져 있었다. 낡고 오래됐지만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이 보였다.

마신교 사람이라고 해서 광산 안에서만 생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곳에 남아있던 집을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감각을 돌려서 살펴보니 지금은 전부 광산 안에서 일하는 모양인지 집안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폐광 입구까지 빠르게 다가설 수 있었다. 광산 안에 두 명이 느껴진다. 아마도 경비를 서는 인원인 듯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중간에 엄폐할 곳도 없었고 특별히 은신술 같은 것을 배운 적도 없다. 그렇다고 이런 곳에서 영체화를 쓰기엔 에너지 소모가 아깝다. 다만 이런 폐쇄된 공간에 침투해서 싸우는 것은 여러 번 경험이 있다.

대격변 이후 생존자가 가장 많이 죽은 이유는 식량 문제였지만 그다음은 변이체가 아닌 같은 인간이었다.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혹은 알량한 정의를 위해 다른 생존자 그룹을 공격한 적이 있다.

생존자 그룹의 기지는 대부분 출입이 어렵게 만들고는 했다. 초기에 변이체들이 강해지기 전에는 그 정도로도 변이체의 침입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나중에는 거의 무용지물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일부 생존자들은 함정을 만들거나 바리케이드를 만드는 것에 집착하고는 했다.

내가 보기엔 바보 같은 짓이었다. 차라리 도망치기 위해 비밀 출구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훨씬 생존에 유리했다.

지루한 일상에 조금은 방심하고 있었는지 두 명의 보초는 내가 빠른 속도로 다가가자 놀라서 제대로 된 반응도 하지 못했다. 손을 검에 얹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두명 모두 2성 기사의 수준으로 보였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나를 막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물론 준비를 했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서걱! 서걱!

검이 두 번 휘둘러지고 두 개의 머리가 주인을 잃고 떨어졌다. 두 개의 생명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무저항의 약한 상대를 죽이는 짓도 해봤다. 이제 와서 사람을 죽이며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생과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진 것을 실감하며 약간의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을 뿐이다. 나는 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산 상층부의 내부구조는 코로스와 부하들에게 들어 숙지하고 있었다. 하층부는 내려가 본 적이 없다고 하니 진짜 시작은 그곳부터라고 할 수 있었다. 상층부에서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오래된 광산이니만큼 안은 매우 복잡하고 여러 개의 갈림길로 나누어진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코로스에게 얻은 정보와 초감각을 활용해 거침없이 내려갔다.

내려가는 도중에 다섯 명 정도 마신교도를 만났지만 전부 죽였다. 상층부의 시설은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코로스가 줬던 정보가 끝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이제 광산의 하층부다. 코로스가 들어가 보지 못했다고 하니 이 아래에는 뭔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무새의 행방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자 시커먼 어둠이 나를 반겼다. 상층부에는 그래도 간간이 횃불이라도 놓여있었는데 하층부에는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횃불을 밝혀두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상관없다. 오히려 내게는 더 유리하다. 박쥐나 야행성 동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초감각을 사용하면 큰 어려움 없이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이제부터는 길을 몰라 조금 헤메기 시작했지만 빠르게 내려갔다. 광산이란 것이 구조가 복잡하긴 해도 기본적으로 광물을 캐내서 밖으로 꺼내는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다. 그것을 생각하며 길을 찾으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참을 돌아다녔는데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 폐광에 20명 정도는 상주하고 있다고 했으니 이 안에 15명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딘가에 모여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간에 각종 물건을 모아둔 방도 몇 개 발견했지만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아 그냥 내버려 두고 계속 내려갔다. 내려온 시간이나 거리를 생각해 봤을 때 최하층으로 짐작되는 곳에 도착했다. 시작하자마자 통로 세개가 보였다. 그중 가운데를 골라 끝부분에 도착하자 드디어 감각에 사람이 걸렸다.

통로의 꺾인 부분 저편에서 어스름한 빛이 보인다. 그곳에 있는 인간들이 등불이라도 켜둔 모양이다. 얘기라도 나누고 있는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를 이야기 소리에 감추고 천천히 다가갔다. 상대는 4명이다. 이곳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총인원 수에 비해 사람이 모자라다.

코로스가 자무새를 광산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하더니 그곳으로 인원이 옮겨간 모양이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놈들에게서 그곳을 알아내야 한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해? 햇볕도 안 들어오는 곳에서 며칠씩 있으니까 성격이 안좋아지는 것 같아.”

“넌 그만 좀 투덜대라 지겹지도 않나? 밑에서 일이 잘 안된다잖아.”

“그 용병대 놈들이 뭘 가져오면 된다고 하던데?”

“염병, 그 불덩이 새끼 말을 믿냐?”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들이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놈들은 알고 있는 내용이 있는 것 같다. 불덩이라는 놈에 대해선 코로스에게 간단히 이야기를 들었다.

정신 교란이 아닌 다른 능력을 쓰는 놈이다. 놈은 불을 다룬다고 했다. 내가 직접 보거나 이야기를 들었던 변이체 중에 불을 사용하는 놈들은 없었다. 물론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정보의 전달이 지극히 제한되었던 대격변 이후였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변이체가 있을 수 있다.

솔직히 구미가 당기는 능력이었다. 마법을 쓰지 않고 불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전투 시에 무척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폐광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동안 한 번도 꺼내입지 않았던 붉은 망토를 꺼냈다.

스트라이더 997번에 들어있었던 보물급 물건 중의 하나다. 스트라이더 520번의 번호가 따로 붙어있는 물건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가치로 보나 기능으로 보나 왕실의 보고에나 들어갈 만한 보물이다. 그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눈에 띄기도 하지만 딱히 쓸모가 없어서였다.

스트라이더 520번 붉은 망토의 기능은 불과 냉기에 대한 저항력과 자동 수복이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가지는지는 설명서에도 자세히 쓰여있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스트라이더가 만든 아티팩트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수준일 것이다.

오늘은 불을 조종한다는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 꺼내입었다. 그리고 광산 아래로 내려갈수록 느껴지는 열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전생에 광산에 들어와본 적이 있다. 일부 생존자들은 광산을 쉘터로 이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바보같은 짓이었다. 나도 광산에 쉘터를 만든 생존자 그룹에서 합류 제의를 받은 적이 있으나 바로 거절했다.

광산이라는 곳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변이체가 침입했을때 도망갈 방법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한번 광산을 구경한 뒤로 광산 안에서 생활하는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보물급이니만큼 망토의 효과는 좋았다. 망토는 후덥지근한 광산 안의 열기를 확실히 막아주었다.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 네명에게 다가가기 위해 영체화를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번에도 쓰지 않기로 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느껴지는 것이 놈들의 수준이 영체화를 낭비할 정도로 높지 않다.

천천히 소리를 죽이고 다가서고 있는데 내가 작은 돌멩이라도 밟은 모양이었다.

“무슨 소리지?”

“뭔데?”

“저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귀가 밝은 녀석이 하나 있었다.

“가보자”

“넌 너무 과민반응이야.”

두 놈이 일어서서 다가온다. 나는 녀석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녀석들이 통로를 돌아오는 순간 튀어 나갔다. 갑자기 내가 튀어나오자 녀석들은 검을 뽑아 들고 있었음에도 놀라서 대응하지 못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한놈의 뒷덜미를 손날로 후려쳤다.

빠각!

“응?”

녀석의 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이며 쓰러졌다. 살려서 뭔가를 물어보려고 했던 것인데 사실 이걸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이렇게 기절시키던데 힘 조절에 실패한 모양이다.

동료가 쓰러지고 내가 조금 당황하는 동안 다른 한 녀석은 침착하게 검을 찔러왔다. 하지만 녀석과 내 실력 차이가 너무 크다.

나는 한걸음 옆으로 이동해 검을 피하며 복부에 주먹을 한 대 날려줬다.

“끄윽”

가죽북 울리는 소리가 나며 녀석이 배를 붙잡고 쓰러졌다.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긴 했는데 죽진 않았다. 역시 익숙한 방법이 최고다.

이제 저쪽에 두 녀석이 남아있다. 한놈은 놀랐는지 멍하니 있었지만 한놈은 입에 뭔가를 가져가고 있었다. 호루라기 같은 것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앞으로 쇄도하며 검을 집어던졌다. 한줄기 선을 그리며 날아간 검은 입에 막 뭔가를 물려고 하는 녀석의 머리를 꿰뚫었다. 손에 든 호루라기만 맞출 정도의 비검술은 딱히 배운 적이 없다. 입에 뭔가를 물려고 하면 그냥 머리를 날려버리면 된다. 어차피 내게 정보를 알려줄 입은 하나만 있어도 된다.

그사이 옆에서 머리를 검에 꿰뚫려 쓰러지고 있는 동료를 멍하니 보고 있던 녀석의 앞에 도착했다.

“싸울래?”

녀석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 후 나는 살아남은 두 녀석의 무장과 소지품을 모두 빼앗은 뒤 앞에 무릎을 꿇려놓고 있었다.

“다시 묻는다. 자무새는 어디로 옮겼나?”

내 질문에 두놈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코로스가 들어오지 못한 하층부에 있던 녀석들인 만큼 어느 정도 충성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고문이라도 해야 하나?”

사실 고문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몇 번 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냥 평범하게 굶기고 어딘가 자르거나 찌르고 질식시키는 정도였다. 인간의 의지라는 것은 생각보다 나약해서 그 정도만 해도 대부분 아는 것을 실토했다.

예전 독립투사 분들께서는 그보다 독한 고문을 몇 달씩 버텨냈다고 하는데 그분들은 대단하신 분들이다. 나는 그 정도로 버틴 사람을 여태 본 적이 없다.

고문한다는 말을 했음에도 녀석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 모든 사람의 의지가 그렇게 대단하진 않다. 멍하니 있던 녀석이 자꾸 옆의 복부를 맞고 쓰러졌던 녀석의 눈치를 본다. 내가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다.

복부를 얻어맞고 쓰러졌던 녀석은 아까 침착했던 대처도 그렇고 나름대로 강단이 있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검으로 도끼눈을 뜨고 나는 노려보고 있던 녀석의 심장을 찔렀다.

“히익!”

아무 경고도 없이 내려진 죽음의 판결에 살아남은 한 녀석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이제 너 혼자다. 말할 입은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지. 자무새는 어디에 있나?”

“사, 살려주십시오.”

바로 옆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진 동료를 보며 녀석이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간단하다. 내가 질문하고 너는 대답한다. 그럼 그냥 보내주지.”

“정말입니까?”

“내 이름은 빅터 하네스다. 귀족과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네가 대답만 잘해준다면 너에게 아무 해도 가하지 않고 보내주겠다.”

내가 맹세까지 하자 시퍼렇게 질렸던 녀석의 얼굴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자무새는 어디 있지?”

“지하입니다.”

“여기에 또 지하가 있다고?”

“네,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는데 그게 어딘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거기엔 신분이 높은 분들만 들어갈 수 있거든요.”

“대충 위치라도 알고 있나?”

“그 세갈래 길에서 가장 오른쪽 길입니다. 그것밖에는 모릅니다.”

이번에도 찍기는 실패한 모양이다. 3분의 1 확률에서 꽝이 걸렸다. 아니 이 녀석들을 잡았으니 완전 꽝은 아닌 셈인가?

“그럼 너희들은 왜 이곳에 있던 거지? 여긴 아무것도 없잖아?”

“이곳에 대기하고 있으면 높은 분들이 와서 지시를 내립니다.”

이놈들조차 비밀통로 근처에는 오지 못하게 하는 건가? 나름대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여러 단계로 나눠서 운영하는 건가? 물론 이놈이 하는 말을 무조건 믿지는 않는다.

“그럼 왼쪽 통로에는 뭐가 있지?”

“거기에도 저희 같은 녀석들이 있습니다.”

내가 들어왔던 것은 가운데 통로였다.

“앞장서라”

“어디를요?”

“왼쪽 통로”

그것 놈들에게 다시 물어봐서 확인해보면 된다. 녀석은 군말 없이 등불을 들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왼쪽 통로의 끝에 도달하자 그곳에도 4명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포로로 잡은 녀석이 딴짓이라도 하는 것을 조금 기대하고 있었는데 녀석은 의외로 동료들이 내 손에 죽어 나가는 것을 영혼 없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쪽에서도 두놈을 죽이고 두놈을 붙잡아 질문을 했다. 이곳 녀석들은 둘 다 제법 강단이 있어서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기에 내가 아는 방식으로 약간의 고문을 시작했다.

전문적인 기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문은 꽤 효과를 발휘했다. 살이 썰리고 뼈를 깎아내는 고통을 녀석들은 그리 길게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얻은 정보로 확인한 결과 포로로 잡았던 녀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고문을 당하던 녀석들을 고통 없이 만들어주고 포로로 잡은 녀석을 보내주었다.

“가라”

“정말 가도 됩니까?”

“약속은 지킨다.”

“가, 감사합니다.”

녀석이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나는 보내준다고 했지 살려준다고 한 적은 없다. 밖에서 기다리던 코로스가 녀석을 죽일 것이다. 빠져나오는 인간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죽이라고 해뒀으니까.

녀석을 보내준 후 나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오른쪽 길의 끝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경비조차도 없었다. 한참을 살펴봤는데도 비밀 통로가 있을 만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비를 세우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통로의 끝은 사방이 광산을 파낸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흙과 돌이 섞인 벽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혹시 벽 안에 비어있을까 해서 벽을 치면서 소리를 확인했지만 딱히 비어있는 소리가 나는 곳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주 정밀한 기관이거나 아니면 내가 느끼지 못할 만큼의 마법이다. 혹은 통로의 끝이 아니라 중간 어디쯤에 통로가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코로스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변이체의 능력을 가진 놈이 있을 수도 있었다. 가능성은 여러가지다.

영체화를 써서 벽을 뚫고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영체화의 시간은 매우 짧다. 반푼이 녀석에게 흡수한 능력답게 한번 사용할 때마다 반동도 크고 무작정 아무 방향으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하면 흙과 돌 사이에 끼어서 즉사할 수도 있다.

조금 고민하던 나는 변이체 놈들의 방식을 따라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증오하던 녀석들의 방식을 이제 내가 똑같이 따라 한다니 조금 혐오감이 올라왔지만, 꾹 눌러서 다시 집어넣었다. 언제부터 그런 것을 신경 썼던가? 전생의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감정이란 사치였다. 다시 태어나고 나서 편하게 살다 보니 물렁해진 모양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어떤 일이라도 했던 것이 나다.

나는 근처의 벽에 박혀있는 가장 큰 바위를 손을 얹고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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