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변화
‘뭐야 이거 왜 이래?’
능력이 합쳐지는 것도 처음이지만 이것은 뭔가 이상했다. 여태까지는 자동으로 능력이 각인되는 느낌이었던 것뿐이지 물리적으로 뭔가가 바뀐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몸이 바뀌고 있다. 비록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조금씩 몸의 안팎이 모두 변하고 있었다.
‘설마 능력을 너무 많이 받아들여서 나도 변이체가 되는 건가?’
덜컥 겁이 났다. 당장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그것만은 두려웠다. 만약 내가 변이체가 된다면 나는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전생에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내가 만약 변이체가 된다면 그 자리에서 자살하겠다고 혼자 맹세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우우우웅.
신체 변형을 할 때처럼 뼈가 꺾이고 피부가 찢어지는 그런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핸드폰 진동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온몸에 작고 빠른 진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신체 변형을 할 때처럼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변화에 몸을 맡기고 그대로 있었다. 거울이 없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눈으로 보이는 부분을 확인하는데 마신교의 반푼이들처럼 피부가 괴물처럼 변한다거나 덩치가 커지거나 하진 않았다.
진동이 서서히 사라지고 마침내 변화가 끝났다. 그리고 세 가지 능력이 사라지고 새로운 능력 하나가 남았다.
신체 능력이 전체적으로 상승했다. 오러홀이 커졌다. 다른 이능력을 더 오래 그리고 강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쁘지 않다. 아니 상당히 좋다. 그리고 이것은 초감각처럼 무언가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능력이다. 아니 능력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냥 몸이 그렇게 변한 것이다.
대신 정신 교란, 신체 강화, 영체화가 사라졌다. 모두 정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신체 강화나 정신 교란은 능력을 얻은 뒤 한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신체 강화는 몰라도 정신 교란과 영체화가 사라진 것은 정말 아쉬웠다. 목숨을 한 번 구해줄 수 있는 능력과 어떤 상대라도 잠깐은 묶어놓을 수 있는 좋은 능력이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신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에 관한 능력이 합쳐진 건가? 전생에 심기체가 합쳐져 삼위일체가 어쩌고 했던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았다.
변화가 끝나고 새로운 능력을 손에 넣은 나는 다른 무엇보다 내가 변이체로 되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이제 아직도 누워서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있는 우리 바보 마법사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나눌 때가 되었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내가 천천히 다가가자 녀석이 더욱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가슴에 박힌 창을 뽑고 도망칠 생각은 못하는 건가? 내가 변화를 받아들일 때 충분히 시간이 있었다.
우리 친구의 지적 능력이 내 생각보다 훨씬 떨어지는 모양이다. 대체 이놈의 능력을 뭐였는지가 궁금했다. 적어도 불을 조종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 넌 능력이 뭐냐?”
“악마 같은 놈!”
녀석은 아직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그보다 나보고 악마라니 마신을 섬기는 놈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끄아아아!”
가슴에 박힌 창을 조금 흔들어주자 녀석이 참으로 맛깔나는 비명을 질렀다. 엄살도 심한 녀석이다.
“넌 능력이 뭐지?”
그래도 학습 능력이 조금은 있는지 이번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다시 창을 잡고 흔들어줬다.
“끄아아아!”
“넌 능력이 뭐지?”
“부, 불에 타지 않는다.”
화염 내성? 아니면 면역 같은 건가?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옷만 불에 탔지, 몸은 그을음 하나 없이 멀쩡했다. 아까 그 인화 물질로 불을 지르고 본인만 멀쩡하니 보통 사람에게는 불을 조종하는 것처럼 보였던 건가?
화염 내성이 있는 변이체를 본 적이 없다. 아니, 봤을 수도 있겠지만 그걸 어떻게 확인하겠는가. 다른 능력을 가진 변이체도 진화 후에는 어지간히 큰불을 질러도 뜨거워하지도 않았다. 그런 놈들을 붙잡아서 화염 내성이 있는지 실험하자고 화산에 던져보고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쨌든 있으면 언젠가 사용할지도 모르지만 그다지 쓸모없어 보이는 능력이어서 조금 실망했다.
“자무새를 잡아 온 이유는?”
녀석이 또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다시 창에 손을 가져가려고 하자 녀석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유, 유산 발굴에 필요하다!”
다 죽어가던 녀석이 목청도 좋다. 그래서 창을 조금 더 깊이 쑤셔 넣어 주었다.
“아아악! 왜? 대답했잖아”
“대답이 느려”
자무새가 던전을 공략하는 데 필요하다고? 나는 방 저쪽 구석 철창 안에 갇혀있는 자무새의 새끼를 바라보았다. 기억에서 보았던 것처럼 머리 위에 금색 깃털이 자란 녀석이다. 내가 봤던 기억 속의 병아리는 닭 크기로 커져 있었다.
“공략은 얼마나 된 거지?”
던전 공략이 쉽지 않았을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자무새를 데려다가 뭐에 쓰려고 잡아 왔던 것일까? 녀석이 또 입을 다물기에 다시 창에 손을 가져가자 녀석은 울먹이며 소리쳤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 녀석이다.
“어, 어차피 죽일 것 아닌가?”
“그래, 죽일 거야.”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살려줄 생각은 개미 눈물만큼도 없다.
“그럼 그냥 죽여라!”
“아니, 그건 아니지, 너희들은 잘 죽지도 않잖아. 그러니 이런 식으로 나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아니면 내가 묻는 말에 잘 대답하면 고통 없이 보내줄 수는 있다.”
덩치도 크고 험악하게 생긴 녀석이 갑자기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억울하다! 너는 왜 쳐들어와서 우리를 죽이지?”
“너희들에게 죽은 사람들도 억울했을 거야.”
“우린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아니 죽였을걸? 여기서 도망친 놈이 하나 있을 거야. 그놈이 왕도에서 사람을 많이 죽였어.”
“그, 그런! 그 미친놈은 우리와 상관없다.”
녀석은 정말로 억울한 듯 소리쳤지만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너희들의 사상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내가 너희를 죽이는 이유? 그건 간단해.”
“뭐냐?”
“너희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했잖아?”
“신의 힘을 받아들인 것이 무엇이 나쁜가! 그러는 너도 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나!”
이래서 광신도와 대화는 어렵다. 대격변 이후 사이비 종교가 급속히 늘어났던 시기가 있었다. 교도의 충성심이 높기 때문에 세력의 확장이 무척이나 빨랐다. 그래서 몇 번 교섭을 위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언제나 결과는 실패였다.
“나는 너희들처럼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너희 중에 신관이라는 놈이 그 능력을 준다며? 그놈은 어디에 있나?”
이번만큼은 녀석도 입을 꽉 다물었다. 그래서 몇 번 창을 더 흔들고 찔러줬지만, 녀석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것만큼은 입을 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럼 던전 공략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자무새가 필요한 이유는?”
“3단계를 통과하는데 자무새가 필요하다.”
“단계?”
“사제님이 말씀하기를 이곳 유산을 얻기 위해서는 12개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중 우리는 3단계에 도달했다.”
그러고 보니 공터를 둘러싼 문의 숫자가 그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럼 이 녀석들은 이미 1, 2단계를 통과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사제라는 놈은 이 유적에 대해서 뭔가 더 알고 있었다.
“1, 2단계는 뭔데?”
“불과 물의 지옥이다.”
“그럼 3단계는?”
“벌레 지옥”
잠시 녀석들의 조합과 방금 나온 얘기를 종합해 보았다.
“그럼 1단계는 네가 통과했을 것이고. 물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죽었나?”
“어떻게 알았지?”
물의 시험을 통과한 놈이 아직 남아있었다면 코로스와 용병대를 이용해 수중 호흡 능력이 있는 촉수를 가져올 이유가 없었다.
“벌레 지옥을 통과하는데 자무새를 이용할 생각이었나?”
“그래”
“벌레들이 많이 나오나 보지? 자무새의 독으로 잡으려고 했던 모양이고.”
녀석은 눈을 크게 떴지만, 이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추론할 수 있는 문제다.
“사제는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알지?”
“그분은 신의 목소리를 들으신다. 미래를 내다보시지.”
마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그럴 리가 없다. 녀석들의 능력은 변이체의 능력과 같다. 물론 내가 만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능력이 있는 변이체가 있었다면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았을 리 없다. 그리고 미래를 내다본다고? 그럼 내가 이곳에 와서 다 죽일 것도 예지했어야지.
좋게 생각해서 나처럼 사이코 메트리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문제는 사제라는 놈이 보통 사람도 반푼이 변이체로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능력이 아닌 기술이라서 더 위험하다.
“사제가 있으면 대신관이나 교주 같은 것도 있겠지?”
“뵌 적은 없다.”
일반 사제가 있으면 당연히 그 위도 있을 터였다. 과연 교주는 어떤 놈일까?
“그분은 신의 강림자시다.”
“뭐? 너 그 말뜻은 알긴 하는 거냐?”
“당연히 안다. 누굴 바보로 아는 거냐?”
바보 맞긴 한 거 같은데. 정보를 조금 더 캐봐야 하니 굳이 직설적으로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마신의 강림이라니 그럼 다시 마왕이 침공한다는 뜻인가? 아니 이미 그 교주라는 놈이 마왕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설마 왕실이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그런 이유인가?
“마신이 강림하면 다 죽는 거잖아? 그런데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 억울하다고?”
“마신님은 모든 인간을 죽일 생각이 없으시다. 그분을 믿으면 산다.”
종교쟁이들이 하는 말은 늘 이런 식이다. 그래서 그 많았던 종교인들을 얼마나 살아남았나. 아니면 죽어서 좋은 곳에 갔을까? 지구의 이야기를 꺼낼 것도 없다. 이 세계에도 원래는 종교가 있었다. 심지어 신성왕국이라는 국가가 따로 있었다. 그런데 신성왕국은 오래전에 멸망하고 모든 국가에서 종교가 사라졌다.
“다른 지부의 위치는?”
“모른다.”
“이곳 던전을 공략하면 나오는 물건은 뭐지?”
“모른다.”
“생각초를 가져온 이유는?”
“모른다. 사제님의 지시였다.”
“너희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단체는 어디지?”
“모른다.”
녀석이 말하는 것이 거짓말 같지는 않다. 녀석이 사제의 위치는 말하지 않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생각해보면 곧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생각초와 촉수를 가공해야 할 테니까.
아마도 사제 정도 되면 쓸모있는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녀석에게 얻을 정보는 거의 다 얻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녀석은 금방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기다려주었다. 나름 좋은 정보를 많이 준 녀석이니 그 정도 관용은 베풀 수 있다.
“어머니에게 물건 하나만 전달해 줄 수 있겠나?”
녀석이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유품 전달이라. 원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지만 녀석의 눈이 너무 간절해 보였다.
“어디에 계시는데?”
“왕도에 계신다.”
가기 어려운 지방 도시라면 거절하려고 했더니 하필 왕도다.
“어머니도 마신교인가?”
“아니다. 전혀 상관없는 분이다.”
“알았다. 기회가 되면 전해주지.”
“내 오른쪽 주머니 안에 작은 상자가 들었다. 그것을 어머니에게 전해다오. 이름은 잉헬리아 6 서클 마법사시다.”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아들의 원수라고 6 서클 마법사가 덤빈다면 골치 아프다. 아니 애초에 6 서클 마법사의 아들놈이 왜 이런 데서 이러고 있었던 걸까?
“걱정 마라. 오히려 어머니는 좋아하실 거다.”
바보 마법사가 죽을 때가 되니 갑자기 똑똑해졌는지 내 생각을 읽었다.
“알았다.”
일단 곧 죽을 녀석의 부탁을 들어만 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회가 된다면이라고 했지 확실히 전해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녀석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나는 약속대로 최대한 고통 없이 끝내주었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져 녀석이 부탁한 작은 금속 상자를 찾아냈다. 열어보니 아무 마법적 기능도 없는 평범한 금반지 한 쌍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능력을 흡수했다. 화염 내성 정도로 생각했는데 흡수할 때 몸이 바뀌면서 얻은 능력 때문인지 이능력의 수준이 조금 더 향상되었다. 덕분에 내성이라기보다는 면역에 가까운 수준이 되었다.
일단 널려있는 물건들을 아공간에 챙기거나 통로를 열어 지구 쪽으로 던져넣고 반푼이 변이체들의 시체는 공벌레들에게 주고 나머지 시체는 태워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리할 대상을 보았다.
꾸룩꾸룩!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인지 창살 안에 갇힌 자무새가 울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무척 서글프게 들렸다.
“너도 잘 가라.”
그래도 살려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자무새의 왕이 될뻔했던 녀석도 내 손에 목숨을 잃었다. 조금 귀찮지만 자무새를 상대할 때 사용했던 장비를 다시 착용한 후 새끼 자무새의 시체도 챙겨서 아공간에 넣었다.
홀로 남은 나는 피 냄새가 진동하는 방에서 나와 넓은 공터에 앉아 생각했다. 선택의 기로였다. 나 혼자 던전의 공략에 도전해볼 것인가. 아니면 사제를 기다렸다가 그 녀석에게 정보를 더 얻어낸 후 도전해볼 것인가.
아니면 며칠 기다리면 스승님도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던전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질 것이다. 매우 귀찮을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
물과 불을 시험은 혼자서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벌레의 지옥은 잘 모르겠다. 일단 시간은 좀 여유가 있다. 만약 사제라는 놈도 나와 같이 사이코 메트리를 가지고 있다면 녀석도 던전 안의 물건들에서 기억을 읽어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동일한 수준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변화 후에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올라갔다. 사이코 메트리의 성능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확인해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