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상위 호환
나는 거대한 기운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는데도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나와 똑같이 통로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줄은 몰랐다. 거기에 상대도 내가 통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상대는 마신교의 부교주로 추정되는 자다.
그렇다면 저 부교주도 변이체를 이용해 통로를 사용하는 능력을 얻었을까? 그런 능력이 있는 변이체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같은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면 통로를 보지 못했을 테니 그냥 사라지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입소문이 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괜찮으냐?”
거대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긴장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익숙한 기운이기 때문이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도착한 스승님이 내 안부를 물으셨다.
“전 괜찮습니다.”
오히려 스승님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7성 기사가 숨을 헐떡이면서 달려왔을 정도면 얼마나 멀리서 전속력으로 달려왔던 것일까?
“이곳에 뭔가 위험한 것이 느껴져서 서둘렀는데 지금은 없구나.”
“네, 조금 전까지 마신교의 위험한 놈이 있었습니다.”
스승님도 멀리서 녀석의 기세를 느끼고 속력을 내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구나. 마법을 사용한 것이냐?”
“마법이 아니라 특수한 능력입니다.”
나는 스승님에게 부교주와 만났던 상황에 관해 설명해드렸다. 스승님도 이제 마신교의 실체에 대해 아셔야 했다. 교주가 마신의 강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말씀드렸다.
“허, 실로 두려운 일이구나.”
“네, 아주 위험한 놈들입니다. 어쩌면 왕실에서 방관한 것이 아니라 손을 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본 부교주만 해도 스승님이 필승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느껴졌었다. 부교주만 상대한다고 해도 에인프라흐 공작이나 국왕이 직접 나서야 하는데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만약 한명이 부교주를 상대하고 있을 때 교주가 나머지 한명을 공격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구나.”
갑자기 일이 너무 커졌다. 이것은 스승님과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또 무슨 일이 있는 거냐?”
나는 제국의 유산에 대해서도 설명해 드렸다. 물론 내가 이미 하나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것은 비밀이었다.
“허···.”
설명을 다 들은 스승님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셨다.
“설마 너 이곳에 그것이 있는 것을 알고 영지를 선택할 때 이곳을 고른 것이냐?”
내가 당시에 암테일 영지를 선택한 것은 누가 봐도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스승님이 당연히 의문을 가질 만 했다.
“네, 확신하진 못했지만, 이 부근 영지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그것은 어찌 알고?”
나는 제국 시절 수송을 맡았던 귀족의 장부를 얻은 것을 말씀드렸다.
“보물의 주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더니 네가 그런 모양이구나.”
“그래서 제가 한동안 이곳에 남아야겠습니다.”
이곳에 남아 한동안 기억을 읽어내 던전에 대한 정보를 얻은 뒤 가능하다면 혼자서 공략할 생각이었다.
“너 혼자서 던전을 공략하려는 것은 너무 위험한 행동이다. 던전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야.”
스승님은 과거 자신이 공략에 참여했던 몇 개 던전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해주었다.
“공략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동시에 이곳을 지킬 겁니다. 보물을 마신교가 쉽게 포기할 리가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다만 그 부교주라는 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막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
나는 부교주가 통로를 열고 사라진 그곳을 보았다. 만약 녀석이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저 자리에 다시 통로가 열릴 것이다.
녀석은 확실히 강하지만 변이체다. 나에겐 마탑에서 구입한 악마 전용 물건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실력으로 붙는다면 나같은 것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걱정되시면 며칠만 같이 계셔주시죠.”
“그러자꾸나.”
하지만 스승님이 함께하고 마탑의 물건들을 적절히 사용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필요 없겠느냐?”
순간 머릿속으로 슬라이트와 자칼등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녀석들은 엄연히 자신의 가문에 소속된 타인이다.
“다른 가문의 도움을 받긴 어려울 겁니다. 제가 추측하기로 에인프라흐 공작가와 왕실은 이미 제국의 유산을 최소 하나씩은 발굴했습니다. 그리고 그쪽에서도 우리 영지 근처에 제국의 유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공작가에서 생활한 시간이 수십 년이다. 그런 일이 있다면 몰랐을 리 없다.”
“어쩌면 전대에서 공략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공작님 정도면 혼자서 공략도 가능하실거니다. 그리고 원래 홀로 여행을 자주 다니시는 분 아닙니까?”
“끄응”
반박할 수가 없는지 스승님이 앓는 소리를 냈다.
“저라고 슬라이트나 자칼을 의심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쪽 가문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승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스승님은 말없이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것이니까요.”
나는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다. 그리고 내 손가락에 끼워져있던 반지를 빼네 스승님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제국의 유물이지요. 아마도 제국의 던전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승님은 내가 내민 기세를 감춰주는 반지를 물끄러미 보다가 돌려받으셨다.
“그래, 네 말대로 하자꾸나. 그런데 너 뭔가 달라졌구나.”
“작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일단 그렇게 우기기로 했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잠시 살펴봐도 되겠느냐?”
“네, 그렇게 하십시오.”
등에 스승님이 손을 붙이고 오러를 밀어 넣자 몸 안으로 들어온 스승님의 오러가 몸 안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허어, 참으로 신기한 일이구나.”
“뭔가 많이 달라졌습니까? 몸이 내외로 뭔가 달라졌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너는 7성에 도달했을 때 겪는 몸의 변화를 미리 겪은 것 같구나.”
이게 그 정도로 효과가 좋은 것이었나?
“그런데 부족하다. 불완전한 변화다. 네 경지가 아직 낮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아직 5성의 경지다. 그런데 7성에 도달해서 겪는 변화를 일찍 당겨쓴 것이나 다름없으니 불완전한 것이 당연할 것이다.
“아마도 너는 지금 6성 기사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거다.”
“그럼 제가 6성이 되었을 때는 7성 기사와 비슷하게 될까요?”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둘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이지. 다만 어떤 6성 기사보다 강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가진 능력을 활용한다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그전까지 내게 필요한 것은 경험이다. 나는 아직 이 세계에 태어난지 16년 밖에 되지 않았고 수련과 경험을 쌓은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이게 너와 대련이 가능한 것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작은 도련님이나 자칼 공자는 상대가 되지 않겠지.”
요즈음 들어본 이야기 중 가장 달콤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떨어져 있어서 대련을 핑계로 슬라이트 놈을 괴롭힐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럼 며칠간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찌 됐든 나는 빨리 강해져야 한다. 겨우 부교주도 어찌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약하다. 나에게 무엇을 봤는지 몰라도 녀석이 오늘 나를 살려준 것은 운에 가까웠다. 다음에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더 강해져야 한다.
그보다 이제 광산 안에 들어간 코로스와 용병대를 꺼내주는 것이 먼저였다. 녀석들을 영주성으로 보내면 아버지의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코로스와 용병대를 거둔 일은 스승님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스승님에게도 제국이 만든 던전을 한번 보여드려야 했다.
그런데 코로스와 용병대가 대기하고 있어야 할 곳에서 생명체의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살아서 움직이는 인간이 느껴지지 않았다.
속도를 내어 도착한 곳에는 그야말로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멀쩡한 시체가 하나도 없었다.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인간의 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주 익숙한 광경이었다. 변이체가 지나간 자리, 그곳에는 늘 이런 풍경이 남아있었다.
“이게 무슨!”
참상을 확인한 스승님도 분노를 터트리셨다.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구석에 묶어둔 말 두 마리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타고 왔던 순한 녀석의 옆구리에 날카로운 것으로 그어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우린 또 보게 될 거야.
분명 부교주가 쓴 것이다. 같은 통로를 여는 능력이라고 생각했지만, 녀석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은 통로를 닫은 후에 다른 곳에서 다시 통로를 여는 것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나도 같은 능력을 한 번 더 얻어서 능력이 강화되면 가능할까? 변이체의 능력을 사용하고 통로의 활용 능력도 더 뛰어나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나의 상위 호환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것은 녀석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준비를 하더라도 근처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 빨리 더 강해져야 할 이유가 생겼다.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왕실이 쉽게 개입하지 못한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려운 상대다. 녀석은 말들을 살려놓았다. 변이체지만 인간의 지능과 절제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녀석을 상대하려면 그 자리에서 즉사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변이체라서 단순히 머리를 잘라내거나 심장을 뚫는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
도망치려고 마음먹는다면 잡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아까 녀석이 통로를 열었을 때 통로 건너편을 유심히 살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랬다면 최소한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는 유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대한민국일까? 아니면 해외일까. 어쩌면 지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포션을 꺼내 말에 새겨진 글자를 치료해주었다. 아무 죄 없는 녀석을 죽여서 묻을 수도 없고 이 글씨를 누군가가 볼 가능성을 지워야 했다.
“괜찮겠느냐?”
“제가 빨리 강해지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항상 스승님이 나를 지켜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스승님이 지켜준다고 해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 그것이 정답이다. 나도 최선을 다해 도와주마.”
살아남은 말 두 마리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스승님도 잠시 자리를 비우시더니 여기까지 타고 왔던 말을 끌고 오셨다. 근처까지는 말을 타고 왔는데 수상한 것이 느껴지자 말을 버리고 달려오셨다고 했다.
말들은 한쪽 구석에 다시 묶어두고 스승님과 나는 평소보다 몇 배는 강한 강도의 수련을 시작했다. 스승님이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 처음부터 며칠만 머무시길 부탁한 것이다.
“좋구나!”
콰앙!
내심 회심의 일격을 날려보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스승님의 반격에 충격을 받고 나는 멀리 날아갔다. 그러나 공중에서 자세를 잡기도 전에 스승님의 공격이 연이어서 퍼부어졌다.
콰콰쾅!
가까스로 모두 막아내긴 했으나 단 하나의 공격이라도 허용했다면 치명상이 될뻔한 위험한 공격들이었다. 이것도 스승님의 전력이 아니다.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아직 전력의 반도 사용하지 않고 계시다고 했다.
연이은 방어로 공중에서 완전히 자세가 무너진 내 목에 스승님의 검이 닿으며 이번 대련이 끝났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워낙 격렬한 대련이어서 외상이 없다 뿐이지 방어했는데도 불구하고 온몸에 많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재생력의 능력도 효과가 대폭 늘어나서 실시간으로 치료가 되고 있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스승님은 나의 유지력에 혀를 내둘렀다. 능력 사용에 따른 부작용도 많이 줄어들었고 이 정도면 거의 어지간한 마수급이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아직 멀었다. 이 정도로는 부교주를 상대할 수가 없었다.
며칠간의 강도 높은 대련 후 스승님은 영주성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홀로 남았다. 스승님이 돌아가실 때 말도 모두 데려가도록 해서 완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시간이 될 때마다 던전에서 기억을 읽어 정보를 수집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지구에서 수련에 투자했다.
던전 내의 물건과 이곳에 있던 마신교의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서 기억을 읽어내는 것은 대부분이 허탕이었다.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났을 때 12번째 방에서 마침내 중요한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