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그날의 기억
두꺼비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기억났다. 저건 놈이 엄청나게 화가 났을 때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이 개새끼야!”
시뻘겋게 달아올라 붉은색 두꺼비가 된 녀석이 사무실이 크게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이곳을 보지 않는다. 그저 책상에 머리를 박고 모른척 딴짓을 한다.
“그래, 네 이름이 개새끼였나?”
내가 받아치자 순간 사무실에 싸늘한 정적이 깔렸다. 몇몇 사람은 깜짝 놀라 책상에 처박고 있던 머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늘 당하기만 했던 지렁이가 밟히자 꿈틀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야! 강 대리. 너 미쳤냐?”
그래 아주 오래전에 미쳤지. 누구나 그런 시절을 살다 보면 미칠 수밖에 없다. 나 말고도 마지막까지 남았던 생존자 중에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정신질환 한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미친 건 네가 아닐까?”
기억이 하나둘 나기 시작했다. 두꺼비는 사장의 조카였다. 그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녀석이었다. 못 생기고 무능하고 거만하고 비겁했다. 못생긴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직장 생활에서 무능하고 비겁하다는 것은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다.
“뭐, 뭐?”
“뭘 믿고 그렇게 나대는 거지? 너 사장 조카라고 해봐야. 별로 사장이랑 친하지도 않잖아?”
그랬다. 사장 조카였지만, 사장과 연이라고 할 것은 거의 없는 녀석이었다. 그저 사장이 동생의 부탁을 이기지 못해 낙하산으로 꼽아둔 것뿐이다.
“이 미친 새끼가!”
녀석이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이때에는 나도 몸이 좋다고 할 순 없었지만, 두꺼비는 더욱 좋지 않았다.
느리게 날아오는 주먹을 간단히 손등으로 쳐냈다. 이건 꽤 고급기술이다. 이게 간단히 될 줄은 몰랐다. 몸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젊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몸이 잘 움직였다.
그리고 간단하게 녀석의 얼굴에 짧은 끊어치기를 한 방 먹여주었다.
퍽!
그냥 가볍게 휘두른 주먹이다. 무게도 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두꺼비 녀석에게는 꽤 아픈 일격이었던 모양이다.
“끄억!”
코를 부여잡고 뒤로 넘어간 녀석이 버둥거렸다. 그제야 앉아있던 다른 직원들이 헐레벌떡 일어나서 몰려들었다. 두꺼비가 위기에 처하자 구하기 위해 달려온 권력의 노예들이다.
“강 대리 왜 그래? 어떻게 성 과장님에게 이런 짓을!”
덕분에 두꺼비의 이름이 기억났다. 성삼용이었나? 그랬던 것 같다.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는 시험이 나에게 왜 이런 기억을 보여주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확실히 대격변이 시작되는 오늘은 나에게 공포로 가득 찬 하루였다. 그리고 나는 이 두꺼비를 참 무서워했었다. 어쩌면 변이체보다도 무서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시험이 실수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벽에 달린 커다란 디지털시계를 보니 슬슬 시간이 되었다. 2025년 7월 1일 오후 2시 25분. 절대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다. 이제 5분 남았다.
나는 두꺼비와 그 친위대들을 내버려 두고 창가로 갔다. 평화로운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이 평화는 겨우 5분이 남았다.
그런데 이 기억은 언제 끝나는 거지? 이미 저 두꺼비에 대한 공포는 벗어났다. 그렇다면 변이체와 한번 싸우기라도 하라는 것일까?
“이 새끼 죽어어어!”
지금 나에게는 초감각이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어느새 일어난 두꺼비가 쌍코피가 터졌는지 양쪽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책상 위에 있던 가위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저 녀석에게 사람을 찌를 정도의 용기가 있었던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 아닐 것이다. 녀석은 비겁했으니까. 이것은 가공된 기억이다.
어설프게 가위를 잡고 달려오는 녀석을 살짝 피하며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쿵! 콰지직!
달려오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녀석이 창문에 머리를 박았다. 녀석의 머리가 꽤 단단했는지 강화유리에 원형으로 금이 가버렸다. 보통 유리창이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흐어어어”
쓰러져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 녀석이 아직도 손에 쥐고 있는 가위를 빼앗아 그대로 목의 경동맥에 박아주었다. 이것은 기억이니까. 그리고 한 번쯤 내 손으로 죽여보고 싶었던 놈이기도 했다.
“꺄아아아!”
사무실에 있던 여직원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나는 시계를 슬쩍 본 후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돌렸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다. 이제 1분 남짓 남았다. 권력의 하수인들은 목에 가위를 박고 발밑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두꺼비 놈을 구하러 오지 않았다. 다만 몇 명이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모습은 보였다. 소용없을 것이다. 경찰이 이곳에 오기 전에 세상이 바뀔 것이다.
콰앙!
굉음이 일어나며 반대편 건물 1층의 카페에서 폭발이 일어나듯 큰 소리가 나며 유리창이 박살 나서 거리로 쏟아졌다. 나는 전생에 이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다.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창문이 박살 난 카페에서 익숙한 모습의 녀석이 기괴한 몰골을 드러냈다. 긴 팔다리를 이용해 네발로 성큼성큼 기어 나온 녀석은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도망가지 않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의 손에 잡힌 사람의 머리가 마치 계란처럼 터져나간다. 휘둘러진 팔에 맞은 사람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이며 날아가 벽에 부딪힌다. 예리한 이빨 수백개가 자라나 커다란 입에 목을 물린 사람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는다. 마치 흡혈귀처럼 흘러나오는 피를 꿀꺽꿀꺽 삼키던 녀석이 단물을 다 빼먹은 껌을 뱉듯 물고 있던 사람을 뱉어버리고 다음 희생자를 찾아 움직였다.
흔히 거미라고 부르던 녀석이다. 대격변 초기에는 가장 흔한 변이체였다. 그다지 강한 변이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숫자가 가장 많았고 가장 많은 사람을 죽였다.
녀석이 사람들을 학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문득 내가 웃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의 평화로운 모습보다 나에게는 이것이 더욱 친숙한 광경이다.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나는 미쳤다.
아직도 발밑에 쓰러져 목을 부여잡고 뒹굴고 있는 두꺼비를 내려다본다. 지금 보니 이렇게나 하찮은 녀석이다. 나는 왜 이런 녀석을 무서워했을까? 세금과 생활비를 제외하고 나면 고작 50만원 남짓 남았던 쥐꼬리 같은 월급을 주는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이런 하찮은 녀석에게 매일 고개를 숙이며 살아야 했다.
어쩌면 나에게 진짜 지옥은 대격변 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두꺼비에게 가깝게 몸을 숙였다. 그리고 속삭여줬다.
“삼용아, 너는 나한테 고마워 해야 해.”
그리고 손을 뻗어 목에 박힌 가위를 뽑아주었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뿜어져 나온 피가 얼굴을 뜨끈하게 적셨다. 이 환상은 정말 진짜처럼 느껴진다. 피칠갑을 한 내가 몸을 일으키자 사무실 사람들이 주춤주춤 물러서거나 아예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두꺼비가 조금 더 고통받게 내버려 두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내 손으로 끝내고 싶었다. 피를 뿜어내던 두꺼비는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두꺼비는 정말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 실제 전생에서도 두꺼비는 내 덕분에 꽤 오래 살아남았다. 물론 그래봐야 오늘을 넘기지 못했다. 아주 조금 더 오래 살아남았을 뿐이다. 조금 더 녀석의 마지막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이제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나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아직 사무실에 남아있는 사람은 세 명 뿐이었다. 스무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는데 모두 도망친 모양이다.
두꺼비의 측근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는 간신배처럼 생긴 녀석이 동상처럼 굳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주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여전히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는 남성이 하나. 그리고 구석의 책상 뒤에 숨어서 몸을 떨고 있는 여성 하나가 보였다.
간신배는 확실히 기억이 난다. 내가 녀석을 기억하는 것은 함께 도망치던 사무실 직원 중에서 녀석이 가장 먼저 죽었기 때문이다. 두꺼비의 명령에 충신처럼 계단을 앞장서서 내려가다가 밑에서 올라온 변이체에게 당했었다. 본의 아니게 녀석을 첫 번째 희생자에서 구한 상황이 되었다.
구석에서 떨고 있는 여성도 기억이 난다. 내가 혼자 짝사랑했던 사람이다. 이 지옥 같은 직장에서 버틸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옆에 지나가기만 해도 가슴이 뛰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녀도 오늘 죽는다. 그렇게 좋아했지만, 위기의 순간 나는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 아니 반쯤은 외면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역시 가공된 기억이다. 그렇기에 그녀를 남겨둔 것일 거다.
그렇다면 저 여자를 구하면 시험이 끝나는 것일까? 두꺼비의 측근도 구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직접 죽여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아무 신경 쓰지 않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남성이 보였다.
기억이 없다. 저 사람이 누구였는지 어떤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그 남성에게 다가갔다.
“너는 누구지?”
키보드를 두드리던 남성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강 대리 왜 그래? 나 기억 안 나?”
친근하게 말을 건다.
“누구냐고 물었다.”
“나 이 대리잖아. 이창수 대리.”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데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존재감이 없던 사람이라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조작된 기억이 만들어낸 사람일지도 모른다.
두꺼비의 목에서 뽑아낸 가위를 눈웃음을 치고 있는 녀석의 눈에 박아넣었다.
“끄아아아악!”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친다. 의미 없는 살인을 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무섭거나 괴로웠던 기억을 보여주는 시험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내 기억에 전혀 없는 녀석이다.
지난 몇십년간 나는 매일 밤 악몽을 꿨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녀석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크아아아!”
눈에 가위를 박고 몸부림치던 녀석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급격히 덩치가 불어나며 팔과 다리가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우스스 빠져나가고 이마 한가운데서 날카로운 뿔이 솟아난다.
“아, 이 녀석이었나?”
밖에서 난리가 나고 두꺼비의 명령에 따라 계단을 내려가던 회사 직원들은 갑자기 위층에서 내려온 변이체에게 쫓기게 되었다. 그리고 두꺼비의 명령으로 앞장 서서 길을 뚫던 간신배가 밑에서 올라온 변이체에게 잡아먹혔다. 위 아래로 변이체에게 둘러싸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어쨌든 그때 위에서 내려왔던 변이체가 바로 이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내 기억에도 없는 것을 잘도 창조해서 갖다 붙였다.
아무 능력도 없는 내가 지금 이 녀석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당장 아무 무기도 없는데 어림도 없다. 이 시기의 변이체는 그리 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맨손으로 붙어서 이길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나는 구석으로 달려가 책상 밑에서 벌벌 떨고 있는 여직원의 손을 잡고 억지로 일으켰다.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는 얼굴을 보니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얼굴만 봐도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예뻐 보였는데 이렇게 보니 그렇게 미인도 아니다. 추억 보정이 들어갔던 것일까? 아니면 환생한 이후로 너무 미인들만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살려면 도망가야 해요.”
거짓말이다. 어차피 나만 빼고 다 죽는다. 그리고 나도 죽는다. 그런 결말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다. 오늘 내가 구했더라도 이 여자는 내일 혹은 며칠 후에는 죽었을 것이다.
“사, 살려주세요.”
변이체에게서 살려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죽일까 봐 살려달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알았으니까 따라와요.”
벌벌 떨리는 손을 붙잡고 사무실 밖으로 반쯤은 질질 끌고 나왔다.
이제는 아예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는 간신배는 내버려 두었다. 녀석을 굳이 살릴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이것이 시험이라면 살리는 게 맞았다.
“야! 너도 따라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퍼뜩 정신을 차린 녀석이 허겁지겁 따라 나왔다. 사무실 안에서는 슬슬 변이가 끝나가고 있다. 지금도 많이 늦었다.
과거의 나와는 상황이 다르다.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야 했다. 그래야 이 시험을 끝낼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