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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전승자-93화 (93/206)

93. 동안의 마법사

마탑주 이상의 금액을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두 번째 경매가 끝났다.

“대금은 경매가 완전히 끝난 후 지급하겠네. 괜찮겠지?”

“물론이죠.”

설마 마탑주씩이나 되는 인물이 돈을 떼먹거나 하진 않겠지. 차라리 그러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마탑주에게는 돈보다 더 좋은 것이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 후로 금관과 은관을 쓴 자무새의 새끼들을 내놨다. 이번에도 마탑주가 처음부터 거액을 질렀고 은관을 쓴 자무새는 다른 마법사가 낙찰 받았지만 금관을 쓴 자무새는 다시 마탑주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자 모여있던 다른 마법사들의 얼굴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왜 경매하겠다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이냐는 항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금액보다 훨씬 큰 금액에 팔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흑갑병이 나왔다. 이번에야말로 지지 않겠다는 듯이 마법사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법사 몇 명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공동구매라도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전과 같이 흑갑병의 사체를 모두 가까이에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한 바퀴 돌린 후 경매가 시작되었다.

“금화 3만개!”

마탑주가 먼저 크게 질렀지만, 이번에는 마법사들도 지지 않았다.

“3만 5천개요!”

“3만 7천!”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호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탑주는 처음에 크게 한번 지른 후 이후로는 입을 열지 않았다.

“6만 8천! 더 없나? 그럼 낙찰!”

흑갑병의 사체는 무려 금화 6만 8천개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렸다. 처음 왕도에 올라와 금화 몇백개를 벌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일이 떠올랐다.

한순간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원래도 살아가는 데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벌고 있었지만,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었다.

마지막 흑갑병의 사체를 낙찰받은 마법사에게 대금을 받고 물건을 건넨 후 마탑주가 기다렸다가 물었다.

“돈이 내 집무실에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나?”

“그러지요.”

마탑주의 집무실을 구경할 기회다. 어지간한 대귀족이라고 해도 마탑주의 집무실에 초대받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탑주를 따라 스테이시와 함께 마탑의 최상층에 있는 마탑주의 집무실에 방문했다.

마탑주의 집무실은 연구실과 거주할 수 있는 집이 합쳐진 느낌으로 벽면을 가득 채운 책꽂이의 책들은 도서관 같다는 느낌도 주고 있었다.

거기에 커다란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왕도의 전망은 절경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안항ㅆ다.

“아주 멋진 집무실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런 집무실을 가지고 싶네요.”

나는 있는 그대로의 소감을 말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몇 년이 걸렸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지.”

마탑주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충분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 여기 있네. 액수는 확인하지 않아도 될 거야.”

마탑주는 품에서 꺼낸 아공간 주머니에서 엄청난 양의 금화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집무실에 돈이 있다고 하더니 얘기가 달랐다.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네. 자네와 따로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구실을 만들었을 뿐이야.”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암테일 영지에 자무새가 나타났던 것은 알고 있네. 그런데 흑갑병은 어디서 튀어나온 건가?”

마탑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알고 계실 텐데요.”

아무리 상대가 마탑주라고 해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내용이 있고 아닌 것이 있다. 이것은 명백히 후자다. 나도 날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어떻게 처치할 수 있었는지가 매우 궁금하네.”

“스승님은 뛰어난 기사십니다.”

“아, 절대 노엘 경의 실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닐세. 하지만 흑갑병은 다른 이야기지.”

“저를 취조하시는 겁니까?”

“마법사로서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주게. 나는 원래 흑갑병을 상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추측했네, 그런데 사체의 상처를 보니 전부 깔끔한 검상이었다는 말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해심이 바다보다 깊은 스승님이나 의심을 하고 있지만 직접 묻지 않는 국왕과는 다른 상대다.

“쩝, 역시 대답해주지 않는 건가?”

마탑주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요!]

옆에서 스테이시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마탑주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미안하네 마법사라는 인간들은 원래 이런 족속이라서 말이야. 이해해주게.”

“이해합니다.”

옆에서 항의하고 있는 스테이시만 봐도 가끔 미친 마법사가 된다. 꼬꼬들에 대해 마탑에 알리지 않고 혼자서만 연구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대신 보상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한가지 정보를 알려주지. 아마 자네하고도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저와 말입니까?”

“그렇네. 노엘 경과 자네가 며칠 전에 왕실을 방문한 사실은 알고 있네. 거기서 나왔을 말은 뻔하지.”

무엇을 알고 어디까지 예측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 마탑주는 보통 때와 달리 마치 현자 같은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제멜아크 왕국에서 제국의 유산이 발견됐다고 하더군. 오늘 발표된 이야기네.”

역시 그쪽이었나. 제멜아크 왕국에서 양국의 시선을 끌어모을 만한 행동을 할 거라고 하더니 결국은 던전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던전에 잠들어있는 보물은 스트라이더 몇 번일까? 국왕은 내가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국왕의 말대로 내가 그곳에 파견된다치면 제멜아크 왕국에서 자신들이 확보한 던전을 굳이 우리와 함께 들어갈 이유가 있을까?

“그렇군요.”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탑주가 제국의 유산을 언급한 것은 내가 암테일 영지에서 던전을 공략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기야 갑자기 흑갑병 같은 마수가 어디서 튀어나오겠나.

“그리고 제멜아크 왕국 동부의 사막지대가 사라진 것에 대해 제멜아크 왕국의 마탑이 이런 정보를 보내왔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대지진의 가능성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나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 일이 있기 전에 거대한 마나 반응이 느껴졌다고 하더군.”

“사람의 소행이라는 말입니까?”

“설마, 사람이겠나?”

“어쨌든 자연재해가 아닌 마나를 사용하는 존재라는 말씀이군요.”

그 정도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누가 있을까? 교주가 직접 자폭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것은 나도 모르지. 다만 나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진 않네.”

마탑주조차도 믿지 못할 정도로 너무 강한 힘이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힘인 것이다.

“저도 그렇게 믿고 싶군요.”

임시였고 가진 힘을 다 쓰지도 못했지만 잠시 초월의 영역에 들어갔던 경험이 있다. 그때 내가 모든 힘을 사용할 줄 알았더라도 그런 거대한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존재가 같은 세계에 존재한다면 만약 그것이 교주의 힘이라면 초월자가 되는 것도 의미가 없다. 혹시 초월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광검제라면 그런 일이 가능할까? 내 생각은 부정적이다. 아무리 광검제라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닐 것 같다.

마탑주와 인사를 나누고 마탑을 나오려고 하던 그때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스테이시 혹시 잉헬리아라는 마법사를 알아?”

[알아요. 유명하신 분이에요.]

던전에서 만났던 바보 마법사의 유언이 떠올랐다.

“어떻게 유명한 분이야?”

[여자 마법사 중에서 실력이 좋은 분이에요. 특히 불 마법에 정통하신 데 그것 말고도 기초 마법의 개량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신 분이에요.]

고민이 됐다. 유품을 그냥 스테이시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할까. 아니면 직접 만나서 전해야 할까.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

[그분은 갑자기 왜요?]

“부탁받은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냥 무시해도 되는 일이긴 했다. 굳이 약속을 지킬 의리 같은 것도 없다. 꼭 지킬 생각으로 받은 부탁도 아니긴 하지만 이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뒷맛이 좋지 못하다. 그냥 그때 아무 말도 듣지 말고 죽였어야 했다.

그래도 부탁을 들어주는 이유는 혹시 아들의 복수를 한다고 덤벼들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었지만, 이제는 경지가 올라 내 한 몸 정도는 지킬 자신이 있었고 바보 마법사의 말로 어머니는 마신교와 연관이 없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나 마신교와 연관이 있는 마탑의 고위마법사라면 미리 알아두거나 아니면 이 기회에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

[만나는 뵙는 게 쉽지 않을지도 몰라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마법사들이 연구에 들어가면 외부에서 연락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럼 할 수 없는 일이지. 일단 알아보기는 해줘”

스테이시를 따라 다시 마탑의 안으로 들어가 잉헬리아가 현재 있는 위치를 찾았다. 다행히 잉헬리아는 외부 활동이 아니라 마탑 안에 있었다.

잉헬리아의 연구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자 제자처럼 보이는 굉장히 젊은 여자 마법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누구시죠?”

“아, 저는 빅터 하네스라고 합니다. 잉헬리아 마법사님을 뵈러 왔는데요. 혹시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그때 옆에서 스테이시가 옆구리를 찔렀다.

[이분이 잉헬리아 마법사님이에요.]

나는 깜짝 놀라 다시 마법사를 살폈다. 아무리 많게 봐도 나이가 서른을 넘어 보이지 않는데 그 덩치 큰 바보 마법사의 엄마라고? 마법으로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니라면 엄청난 동안이다.

“스테이시 양은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고 있지요? 예, 제가 잉헬리아입니다. 무슨 용건으로 찾아오셨나요?”

“아드님에게 물건의 전달을 부탁받았습니다.”

나는 아공간에서 바보 마법사가 전해달라고 했던 유품을 건넸다. 작은 주머니에 담아두었던 유품을 확인한 잉헬리아는 금방이라도 울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 아이는 죽었나요?”

“예”

내가 죽였다곤 하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 솔직해져서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다. 어쨌든 약속을 지켰고 비록 반푼이 변이체가 되었다고 하나 자식을 죽이고도 그 부모 앞에서 당당할 정도로 내 양심이 없진 않았다.

“못난 아들의 물건을 전해줘서 고마워요. 뭐라도 대접을 해드리고 싶은데 일단 들어오세요.”

“아니 괜찮···.”

거절할 사이도 없이 잉헬리아의 손이 나를 붙잡고 안으로 끌어들였다. 기사인 내가 마법사의 힘을 이기지 못해서 끌려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잉헬리아의 손에는 감히 반항하지 못할 그런 힘이 있었다. 이게 무슨 힘인가 잠시 생각했더니 등짝을 때리던 어머니의 손이 생각났다.

마탑주의 후계자인 스테이시도 같이 있는데 대놓고 손을 쓰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안으로 초대받아 들어가자 깔끔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꽤 넓은 연구실이었는데 모든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마탑주의 집무실 겸 연구실도 심하게 어질러져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쪽이 너무 잘 정리되어 있다 보니 비교가 되었다.

자리에 앉자 잉헬리아 마법사가 능숙하게 차와 다과를 내왔다.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테이시가 겁도 없이 앞에 내놓아진 쿠키를 가져가 덥석 입에 물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어요!]

잉헬리아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스테이시를 바라보았다. 나도 조심스럽게 차를 한 모금 마시니 차 맛이 굉장히 훌륭했다.

“감사합니다. 차가 훌륭하네요.”

“뭘요. 대접할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네요.”

뭐가 그리 맛있는지 스테이시가 연신 입으로 쿠키를 가져가는 것을 보며 나도 하나 먹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잉헬리아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반지는 결혼반지에요.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죠. 남편과 갈라설 때 던져버렸거든요.”

“그럼 남편분이 가지고 있던 반지를 아드님이 받은 거군요.”

“네, 아버지를 찾겠다고 집을 나간 아이니까요.”

왜 막지 않았느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바보 마법사가 집을 나가지 않았다면 나와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 결과 나는 던전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갑자기 사람이 변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그게 아이가 너무 어릴 때여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아이가 기억하지 못했어요. 몇번이나 이야기를 해줬지만 아이는 내 말을 믿지 않았죠. 결국 집을 나갔고요.”

“혹시 찾을 생각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 집을 나간 아들을 찾아 무엇하겠어요.”

바보 마법사 나이가 서른이 넘었었나? 그럼 잉헬리아는 대체 몇살인 거지?

“그이가 반지를 가지고 있을 줄을 몰랐네요. 아이에게 준 걸 보면요.”

“그럼 아드님이 돌아가신 것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어느 순간부턴가 남편과 관계된 사람은 모두 죽었거든요. 그게 헤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였죠.”

갑자기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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