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107화 (107/206)

107. 위험한 교육

자칼의 걱정을 무시하듯이 오히려 올라프 후작은 지글러 후작의 검에 그대로 가슴을 내줬다.

챙!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오러가 실린 검이 마치 보통 검처럼 튕겨 나왔다. 갑옷의 표면에 마법진 같은 것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역시 괜히 저런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전력이 아니라 할지라도 7성 기사의 검을 저렇게 튕겨낼 정도면 그야말로 진짜 전차 아닌가?

저런 사람이 전장에서 돌격한다고 생각하면 6성 기사가 떼로 뭉쳐있어도 방법이 없을 것 같다. 7성 기사가 없는 곳에서는 그야말로 무적이나 다름없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의 시간에도 두 후작의 숨 막히는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슴으로 검을 받아내며 솟구친 올라프 후작의 우악스러운 손이 상대적으로 가냘파 보이는 지글러 후작을 그대로 잡아서 찢어버릴 것만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흡!”

이번엔 지글러 후작의 제자 쿠프가 숨을 들이켰다.

다들 간이 작다. 엄청난 기세로 격돌하고 있지만 전력도 아닐 테고 사생결단을 내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보다 스승과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금방이라도 올라프 후작의 손에 지글러 후작의 발목이 잡혀버릴 것 같은 순간 공중에서 지글러 후작의 방향이 바뀌었다.

아까 에인프라흐 공작이 보여줬던 것처럼 허공을 밟고 떠오르는 허공 답보 같은 것이 아니라. 마치 자연법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역방향으로 움직였다.

저것도 뭔가 다른 장비의 힘을 빌린 것 같다. 아무리 경지가 높아도 템빨은 포기할 수 없다. 당장 나만 해도 슈바르거트와 백룡이가 없으면 전투력이 대폭 하락할 것이다.

올라프 후작에게 지글러 후작의 고속 찌르기가 마치 기관총처럼 쏘아졌다.

티티팅! 티팅!

하지만 모든 공격이 올라프 후작의 갑옷에 막혔고 두 사람은 마치 처음처럼 적당한 거리를 벌리고 서게 되었다.

“무식한 놈이 꼭 저 같은 갑옷을 하나 주워 왔구나.”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그런 얇실한 물건을 잘도 구했군.”

두 사람은 다시 한마디씩 상대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를 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지금 즐기고 있다. 그리고 어린 천재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그런 의도가 느껴졌다.

미리 공작의 언질이 있었음에도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그저 보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천재들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저 녀석들은 시대에 한두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들이다. 이런 대련을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언젠가는 깨닫고 응용해서 발전할 것이다. 나 같은 범인과는 다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최대한 이득을 취해야만 한다.

멍하니 대련을 지켜보다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슬라이트가 슬쩍 다가와서 물었다.

“넌 저거 다 보이는 거냐?”

“그럼 안 보이냐?”

말하고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력이 강화된 나니까 모든 동작이 보이는 것이지 이 녀석들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괴물 같은 놈”

슬라이트가 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쩌라고”

나는 너희들의 재능이 부럽다. 나에게 슬라이트나 자칼 같은 재능이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쯤 7성 기사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강해져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나도 그렇게 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비록 허울뿐이긴 하지만 역사에 남을 수준의 최연소 6성 기사다. 그리고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초감각과 변이체에서 흡수한 능력들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상대 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다. 내 목을 노리는 부교주와 지구에 넘쳐나는 변이체들은 내가 나이에 비해 강하다고 해서 살살 때려주는 놈들이 아니다.

오히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더욱 그 약점을 집요하게 후벼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눈앞에 있는 거물들도 나에게 우호적이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일이다. 저 사람 중 한명이라도 나의 적으로 돌아선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스스로 막아낼 방법이 없다.

그러니 나이는 상관없다. 최대한 빠르게 더 강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럼 이제 슬슬 진짜로 해볼까?”

“그러지”

두 후작이 이제 몸이 풀렸는지 진짜로 뭘 해볼 생각인 모양이었다.

지글러 후작이 다시 사라졌다. 이번에는 잔상조차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그 자리에서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글러 후작은 어느새 올라프 후작의 근처에 도달해서 검을 찌르고 있었고 올라프 후작은 그 보이지도 않았던 공격을 도끼로 여유롭게 받아쳤다.

쩌엉!

둘의 격돌에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충격파가 전해져 가슴을 찌릿하게 울렸다.

지글러 후작은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연속해서 검을 찔러넣었다. 이것도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속도가 이것 역시 보이지 않았다. 움직인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검이 보이지 않는다. 일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수십번의 공격이 올라프 후작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내가 만약 저 앞에 있었다면 단 한 번의 공격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막아내기는커녕 반응도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 벌집이 되어 쓰러지는 내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듯 했다.

그런 고속의 공격을 올라프 후작은 거대한 도끼를 느릿하게 움직여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절대로 막아내기 쉬운 단조로운 공격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둘에게는 이 정도 공방도 그저 힘을 약간 더 많이 쓴 대련일 뿐이다. 문득 스승님이 우리를 지도할 때 얼마나 힘을 줄여서 상대해주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사람이란 건 언제까지 계속 움직일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다. 더구나 한정된 용량과 근육을 사용하는 기사는 더더욱 그렇다. 지글러 후작의 고속 공격은 한없이 이어지진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몇백번이나 공격을 퍼부었는지 계산도 되지 않지만 지글러 후작이 연속 공격을 끝내려고 하는 시점에 올라프 후작은 크게 기합을 넣으며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흐아!!”

올라프 후작의 키만큼이나 거대한 도끼를 후작이 크게 휘두르자 그 반경이 엄청났다. 지글러 후작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 그것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힘이 실린 공격이었다. 도끼질에서 일어난 바람이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의 옷자락을 펄럭이게 했을 정도다.

지글러 후작의 고속 공격과 비슷하다. 내가 저 앞에 있었다면 저 도끼를 막아낼 수 있었을까? 어림도 없다. 검을 맞대는 순간 반으로 쪼개질 것이다.

“스읍! 막아봐라!”

지글러 후작을 멀리 떼어낸 올라프 후작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흉포한 기세를 뿜어내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전차가 스포츠카처럼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올라프 후작은 무엇에도 뚫리지 않을 철벽처럼 육중하면서도 호랑이처럼 빠르고 민첩했다.

둘 다 전장에서 만나지 않기를 바라야겠지만 나는 올라프 후작이 전장에서는 더욱 무서운 존재일 것 같았다. 저 괴물을 무슨 수로 상대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저런 괴물보다 더 괴물인 사람이 바로 내 옆에 둘이나 있다. 에인프라흐 공작과 마탑주다. 전장에서 둘을 마주친다면 바로 죽음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올라프 후작의 움직임은 매우 빨랐지만 지글러 후작은 원래도 그보다 빠른 사람이었다. 올라프 후작의 돌진을 여유롭게 피하며 멀찌감치 거리를 벌렸지만, 올라프 후작은 돌진만 할 줄 아는 멧돼지가 아니었다. 그는 호랑이였다.

콰앙!

돌진하던 힘을 그대로 이용해 한쪽 발로 진각을 밟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울렸다. 그리고 올라프 후작은 그 반동을 이용해 지글러 후작이 피한 방향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대포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지글러 후작조차 이 방향 전환은 예상하지 못했던 듯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런 지글러 후작을 향해 올라프 후작의 거대한 도끼가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쪼개버릴 듯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지글러 후작의 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고속검이 떨어져 내리는 도끼를 향해 불을 뿜었다. 한 번으로 막아내지 못하면 여러 번을 때리면 된다는 방식인 걸까?

기관총 소리 같은 연속된 파열음이 귀를 울리는 와중에서도 지글러 후작의 검이 움직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검의 움직임 자체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검이 도착해서 때리는 지점은 확인할 수가 있다. 지글러 후작의 검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도끼의 같은 부위만을 정확하게 연속해서 때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묘기와 같은 수준의 집중력과 무기 숙련도였다. 저 정도로 단련하려면 나는 과연 몇 년이나 검을 수련해야 할 것인가? 답이 보이지 않는다. 지글러 후작도 슬라이트나 자칼처럼 한 세기에 한두명 나올까 말까 할 천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올라프 후작처럼 육체를 단련해서 힘을 이용한 전투법은 어떨까? 신체 강화의 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나에겐 저 타고난 덩치와 괴력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야 맞는 것일까?

콰아앙!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올라프 후작의 도끼가 지글러 후작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나가며 땅에 떨어졌다.

‘아, 결국 박살 났네’

예상했던 부분이긴 했지만 방금 한방으로 연무장이 박살 났다. 잘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방금 도끼질 한방으로 그 넓은 연무장의 바닥 돌이 20미터 이상 갈라진 것이다.

“그만! 거기까지!”

에인프라흐 공작이 두 후작의 대련을 중지시켰다. 자세히 보니 지글러 후작의 얇은 세검 끝이 어느새 올라프 후작이 쓴 투구의 구멍 안에 들어가 있었다.

“공작님! 난 눈 하나쯤 없어져도 싸울 수 있습니다! 난쟁이 놈아, 제대로 다시 붙어보자!”

올라프 후작이 분하다는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지글러 후작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면서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이 이미 멀리 떨어져 있었다.

“으아아아!”

쾅! 쾅!

올라프 후작이 분함을 참지 못하고 발을 몇 번 구르자 바닥 돌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튀었다. 그래 뭐 이미 박살 난 연무장인데 구멍 몇 개 더 난다고 상관이 있겠는가?

자칼과 기사단이 달라붙어 올라프 후작을 가까스로 달래고 있을 때 저쪽 편에 있던 근위 기사단에서는 환호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글러 후작은 그 중앙에서 주먹 쥔 손으로 연신 하늘을 향해 올리며 승리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두 사람 진짜 친한 거 맞지? 연기 맞는 거지?

“그럼 이제 우리 차례군.”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라프 후작이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연무장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이번엔 에인프라흐 공작과 마탑주가 나섰다.

대마법사와 8성 기사의 대련이다.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한 평생에 한 번 보기 힘든 진귀한 구경이다.

“거기 그만하고 일 좀 거들게”

공작이 아직도 승리 세레모니를 하고 있는 지글러 후작과 분을 참지 못하고 있는 올라프 후작을 불렀다.

공작과 마탑주의 대결이다. 좀 전의 후작들의 격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후폭풍이 있을 것이다. 그걸 막으라는 얘기였다.

그러자 둘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재빨리 몸을 추스르고 달려와 자리를 잡았다. 스승님까지 포함해 삼각형으로 세 방향을 막아선 것이다.

“노엘 백작까지 계시니 예전보다는 수월하겠군요.”

“감사합니다. 백작”

두 후작이 스승님에게 감사를 표했다. 스승님은 조금 긴장하셨는지 굳은 얼굴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 답례하셨다.

“그럼 우린 굵고 짧게 하도록 하지요.”

“그럴까요? 그것도 좋겠지요.”

마탑주의 제의를 공작이 승낙했다. 그러자 두 후작의 얼굴이 구겨졌다.

“젠장 큰일났군.”

“모두 충격에 대비해라.”

둘은 이미 경험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공작과 마탑주가 힘을 쓰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오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스승님도 따라서 같이 힘을 끌어올리셨다.

세 명의 7성 기사가 끌어올리는 힘에 주변에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느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일부 경지가 낮은 기사들은 가슴을 움켜쥐고 멀리 물러나고 있었다.

후작들이 오히려 좀 전에 대련할 때도 보이지 않았던 진짜 힘을 지금 사용하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숨이 막혀온다. 등골에 전기라도 통하는 것처럼 짜릿함이 느껴지고 손과 발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후작들과 스승님이 뿜어내는 힘 때문이 아니다.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공작과 마탑주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이다.

도망쳐야 한다. 위험감지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나를 노리는 것도 아니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다.

위험감지는 나에게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도망쳐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공작과 마탑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슬 준비가 된 것 같으니 그럼 시작할까요?”

“그러지요.”

공작이 검을 뽑아 들고 마탑주가 풍성한 로브 감춰져 있던 두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나는 입 밖으로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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