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위험한 질문
가위의 기억을 읽고 돌려주며 물었다.
“산지 얼마 안 된 물건이군요? 사용감이 없어요.”
“아, 네 이번에 큰맘 먹고 구입한 녀석입니다.”
알고 있다. 내가 읽은 기억은 로인이 가위를 구입했을 때 기억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기억에는 아주 중요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 오늘 모두 수고했습니다. 내일부터 바로 출근하실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죠.”
그렇게 둘을 배웅하며 돌려보냈다.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나의 인간 불신 이유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그냥 조용히 가위를 구입하기만 했으면 나도 로인이 슬레이프 백작이 경고했던 정원사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악의 근원은 입이라고 했던가? 로인은 가위를 사며 쓸데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 방법만 알아낸다면 이런 거 얼마든지 살 수 있어.”
굳이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로인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면 슬레이프 백작 선에서 로인을 처리하지 않고 나에게 경고를 했냐는 것이다.
단지 내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것은 아닐 것이다. 스승님과 나는 이미 시험을 통과해 그들과 한배를 타게 되었다.
그렇다면 로인의 뒤에 슬레이프 백작이 막을 수 없는 뒷배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게 과연 누굴까?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이 있다는 에인프라흐 공작가가 건드릴 수 없는 배경이라고 하면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오늘 왔었던 거물 중 하나겠지만 제자와 아들이 우리 집에 함께 살고 있는데 굳이 정원사를 하나 더 투입할 이유가 있을까?
두 사람은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로인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고 해서 에드몬드에 대한 의심을 지운 것은 아니다. 에드몬드도 얼마든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두 사람은 일을 정말 잘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에 근무했었던 벤프리와는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였다.
둘은 마치 경쟁하듯이 일했다. 일 처리 속도는 젊은 로인이 앞섰지만 일하는 요령이나 완성도는 에드몬드가 한 수 위였다.
“빠른 일 처리가 필요한 곳은 로인에게 맡기고 완성도가 중요한 곳에는 에드몬드에게 맡기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둘이 경쟁하는 것도 조금 느껴지고요. 두 사람 모두 고용한 것이 여러모로 탁월한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며 집사에게 말을 하자 집사도 내 결정을 칭찬했다. 그런데 어쩌지? 일단 한명은 확정이고 어쩌면 둘 다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이 저택에 들어온 목적이 있다면 바로 토끼 꼬리 풀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지금 당장 재배할 생각이 없으니 그것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하루 일과가 끝난 후 두 사람을 불러놓고 말했다.
“당분간은 밀린 일을 하느라 바쁘겠지만 그것이 끝나고 나면 다시 토끼 꼬리 풀을 키워보려고 합니다. 그때 둘 중 한명에게 토끼 꼬리 풀을 재배하는 일을 맡기고 싶군요.”
“그것은 제가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왕궁에서 희귀한 식물도 많이 관리해 봤으니까요.”
“저도 영약 재배에 자신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약초꾼이셨죠.”
둘이 갑자기 열정적으로 되었다. 그런데 로인의 일가친척은 무슨 전문가들이 이렇게 많지?
“키우는 것에는 큰 수고가 들이지 않습니다. 다만 특수한 농법이 좀 필요한데 그걸 여러 사람에게 가르쳐줄 수는 없으니까요. 부득이하게 한 분에게만 일을 맡길 수밖에 없군요. 보안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아무래도 입이 무거운 분이 좋겠지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왕궁에서 일한 제가 제격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말을 할 가족도 친구도 없습니다.”
정원사 아버지와 하녀 어머니 약초꾼 할아버지는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로인씨는 가족이 있지 않았었나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아, 그건 죄송합니다.”
이미 죽었다는데야 할 말이 없다.
“두 분이 둘 다 의욕이 넘치시니 이 자리에서 한 분을 뽑기는 그렇고 앞으로 지켜보면서 일을 열심히 하는 분에게 맡길 수밖에 없군요. 아, 물론 그것을 맡는 분에게는 추가적인 보상도 할 예정입니다.”
순간 두 사람의 눈에 불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제가 뽑히게 될 겁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두 사람의 의욕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당장 그날부터 두 사람은 퇴근 시간을 한참 넘겨서까지 일했다.
이로서 에드몬드에 대한 의심도 더욱 확실해졌다. 어차피 바깥에 나가서 써먹지도 못할 방법을 기를 쓰고 알아내려는 이유가 있을까? 혼자였다면 의중이 드러나지 않았겠지만 로인과 경쟁을 하다 보니 조급해진 것이다.
다음 날에도 둘은 마치 채찍을 맞는 노예처럼 일했다. 나와 집사는 아주 흡족하게 그것을 지켜봤다.
“사람을 부리는 재주도 있으셨습니까?”
집사가 감탄했다. 말 몇 마디로 소처럼 일하게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뇨. 그런 거 없습니다. 있다면 집사님에게도 써먹었겠죠.”
사실 집사에게는 거의 아무 간섭도 하지 않고 있다. 내버려 둬도 알아서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일을 시킨단 말인가.
“그렇군요. 혹시 그런 방법이 있다면 좀 배워보려고 했습니다.”
“없습니다. 하하”
“그런데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무엇인가요?”
“집사 일에 관심을 보이는 분이 계십니다.”
그것도 전부터 사람을 구하고 있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분이요? 아는 사람인가요?”
“네, 철권단의 윌슨 우드라는 분입니다.”
“윌슨이라···.”
당연히 잘 아는 사람이다. 철권단과 함께 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윌슨 우드는 함께 훈련하며 2성까지 오르긴 했으나 다른 철권단원들과 비슷하게 무인의 재능은 별로 없는 사람이다.
사실 이번에 암테일 영지의 기사가 되기로 한 두 사람 외에는 무인으로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철권단에 없었다.
다만 가수가 된 슈에르츠나 그 매니저가 된 제이콥, 개인 공방을 차려서 지금도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미스카엘처럼 다른 재능들이 있었다.
“재능은 있나요?”
“본인이 원해서 몇 가지 일을 시켜봤는데 아주 훌륭합니다. 여태까지 왜 검을 잡으셨는지 의문입니다.”
상속권이 없는 하급 귀족의 아들이 귀족가 집사가 되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러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본인이 원하고 재능이 있다면 일부러 막을 필요는 없겠죠. 그럼 제가 한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집사의 말을 듣고 바로 윌슨 우드를 찾아가 견습 집사로 일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본인도 자신이 무인에 대한 재능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문서 작성이나 행정 쪽에 재능이 있는 것을 스스로 이미 알고 있었다. 집안의 압박 때문에 할 수 없이 기사 수업을 받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윌슨 우드가 견습 집사로 우리 집에 취직하는 것을 승낙했고 본인이 가문의 승낙을 받아오는 것만이 남았다.
이렇게 또 한명의 철권단이 졸업하게 되었다. 이제 슬라이트를 포함해서 총 12명이었던 철권단은 4명만이 남게 되었다. 조만간 이 사람들도 모두 졸업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며칠이 지났다. 윌슨 우드는 며칠간 출근하지 않더니 가문의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견습 집사가 되어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며칠간 나는 두 정원사가 소처럼 일하는 현장에 가끔 들러 그들의 오래된 도구나 아니면 아주 새것으로 보이는 것의 기억을 읽었다.
덕분에 모든 내막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예상대로 둘 다 첩자였다. 그리고 그들을 공작가 정확히는 왕실에서 내버려 둔 이유도 알게 되었다.
한쪽은 방치였고 한쪽은 방관이었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처리하기 귀찮은 것들을 떠넘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 값도 나중에 셈해서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오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전 수련을 하는 도중에 정문 쪽이 소란스러워지며 전에 본 적이 있는 화려한 마동차들이 진입했다.
이번엔 왕세자님이 직접 행차하셨다.
“둘째가 먹었다는 그 맛있는 요리 좀 얻어먹으러 왔습니다.”
왕세자는 오자마자 고향의 맛을 찾았다. 벌써 소문이 그렇게 난 건가? 나만 아껴먹었어야 했나? 어쩌면 고향의 맛을 대접한 것이 실수였는지도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급하게 고향의 맛을 첨가한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자 거하게 식사를 한 왕세자가 차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제가 이곳에 왜 왔는지는 짐작하시겠지요?”
고향의 맛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나머지 사람을 물리고 스승님과 나만이 동석한 자리를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예, 짐작하고 있습니다. 보상 문제겠지요.”
며칠 전 회의에서 나왔던 보상 문제를 전하러 온 것이다.
“두 분의 요청 때문에 왕궁이 아주 시끄러웠습니다.”
“정당한 요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건방져 보일 수도 있었지만 내가 대답했다.
“아,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세력도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공치사인가? 그럼 어떤 보상을 주기로 결론이 난 것일까?
“왕실에서 힘을 써주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스승님이 요 며칠 오후에 밖에 나가시더니 그 동향을 알아보러 다니신 모양이다.
“알아주시니 감사하군요. 그래서 결론을 말씀드리지요. 물론 말씀드리는 것이 모두 확정은 아닙니다. 노엘 브라스 백작께서 거절하신다면 조정이 가능합니다.”
스승과 제자가 왕세자의 입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단 작위입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원정을 마치고 오면 후작으로 승작하시는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어차피 7성 기사는 이미 모두 후작 이상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크게 인심 쓴 것처럼 말하지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영지의 문제인데 이것은 백작과 합의를 해야 할 문제입니다. 현재의 영지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십니까?”
스승님이 나를 바라보셨다. 내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의미다.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만약 암테일 영지를 떠나겠다고 한다면 서부나 남부로 좀 멀리 가야 할 것이네.”
새로운 영지를 받게 된다면 그야말로 후작가에 어울리는 대단히 큰 영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대로 유지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암테일 영지 옆의 남작령 두 개 정도를 붙여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네.”
남작령 두 개를 붙인다고 해도 후작가의 영지라고 하기엔 작다. 이미 제국의 유산도 뽑아먹었으니 암테일 영지의 가치는 크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매몰시켜 버렸다고 해도 누군가 그 던전을 파헤치게 둔다는 것은 거슬린다. 그리고 영지가 이곳에서 멀어진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서부와 남부의 후보지는 어떤 곳입니까?”
“남부는 그롱쿠셔 지방을 생각하고 있네, 비옥한 땅이고 광산도 있지. 서부는 마이스 항구를 포함한 그 일대네 역시 좋은 땅이지.”
확실히 나쁘지 않다. 암테일 영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은 땅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의심이 든다.
아무리 매몰시켰다고 해도 암테일 영지가 다시 왕실의 소유가 된다면 분명히 왕실은 그곳을 발굴할 것이다.
“암테일 영지를 유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스승님.”
스승님의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스승님은 처음 암테일 영지를 선택했을 때처럼 내 선택을 존중해주셨다.
“네가 그것이 좋다면 그렇게 하자.”
왕세자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으나 뭔가 분위기가 바뀐 것이 느껴졌다.
“정말 그곳으로 괜찮겠습니까? 외부인인 제가 끼어들 이야기는 아니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자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요. 허허”
스승님의 대답에 왕세자의 표정이 살짝 금이 갔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지만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을 때는 그다지 가치가 없지만, 남에게 주기 싫은 것이 있다. 지금 던전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세자의 표정은 금세 돌아왔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다지 기대하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영지 얘기는 그렇게 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추가로 면세혜택과 기술자의 지원 정도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여기서 이야기하기엔 너무 길군요.”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던 보상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는 모자라다.
“마지막으로 왕실 1급 보고에서 1개, 2급 보고에서 2개, 3급 보고에서 5개를 선택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이건 예상외의 큰 보상이었다. 내가 지금 평소에 쓰고 있는 검이 3급 보고에서 나온 물건이다. 3급 보고의 물건도 충분히 좋은 것이지만 대단한 물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이것이 급수가 올라가면 차원이 달라진다. 특히 1급 보고에는 대단한 보물들이 모여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정도면 왕실에서도 제법 인심을 쓴 편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이 정도면 왕실에서도 충분히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한다만.”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승님의 생각에 나도 동의했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왕세자도 조금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기왕 왕세자를 만난 김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전하 한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따로 궁금한 것이 있는가?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대답해주겠네.”
“부디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큰 죄를 물을 수도 있는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왕세자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약간의 믿음이 있었다.
“뭔데 그리 뜸을 들이는가?”
“제 저택에 근무하고 있는 이 왕자님의 세작을 왜 그냥 두시는 겁니까?”
왕세자의 표정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