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115화 (115/206)

115. 왕실의 보물창고

경지의 차이가 있는 만큼 에인프라흐 공작이 만들었던 30미터 길이의 거대한 검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스승님의 검은 약 6미터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이 세상에 저걸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여왕개미가 숨어있는 지하의 깊이를 생각하면 너무 모자란 길이였다. 하지만 나는 스승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스승님의 검을 둘러싼 오러는 두겹이었기 때문이다.

“간다!”

검을 완성한 스승님이 몸을 날리셨다. 어디 한 군데라도 뜯어먹기 위해 몸을 날리는 돌개미들을 오히려 징검다리처럼 밟고 건너가고 계셨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돌개미들의 시선이 스승님에게 몰리지 않도록 나도 뭔가를 해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을 때다. 올라프 후작의 힘과 지글러 후작의 속도를 합친 빠르고 강한 검술을 쏟아냈다.

“여기도 봐라 이놈들아!”

지글러 후작처럼 빠른 찌르기를 올라프 후작처럼 강하게 찔러넣는다. 지글러 후작처럼 빠르진 못하지만, 고속의 찌르기가 주변을 둘러싼 돌개미들의 몸에 수십 개의 구멍을 뚫어 냈다.

돌개미들도 변이체다. 몇 번 찔린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화려한 공격이 일단 놈들의 이목을 끄는 것에는 성공한 모양이다.

일부는 스승님을 따라갔지만, 아직 대부분의 돌개미들이 나를 둘러싼 포위망을 유지하고 있었다.

스승님은 돌개미들을 뛰어넘어 백룡이가 박혀있는 곳의 위로 높게 뛰어오르셨다. 스승님이 뭘 하려고 하시는지 짐작한 나는 백룡이를 불러들였다.

“백룡이 돌아와!”

날아서 돌아오는 백룡이를 물어뜯으려고 몇 마리가 뛰어올랐지만 백룡이는 스스로 궤도를 바꾸며 그것을 피해냈다.

돌개미들이 스승님을 막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스승님이 오러로 이루어진 대검을 아래로 향하고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쿠웅!

마치 유성처럼 바닥으로 내리꽂힌 스승님이 바닥에 검을 꽂으며 착지하자 둔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타하!”

그 상태에서 기합성과 함께 두겹으로 이루어졌던 대검의 한겹이 폭발했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사방으로 흙과 바위가 비산하고 그사이에는 폭발에 휘말린 돌개미 수십마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거대한 폭발 속에서 한점의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스승님을 초감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7성 기사의 위력이다.

최하로 잡아도 전술 병기이며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전략 병기가 될 수도 있는 이 세계의 초인이 가진 힘이었다. 그리고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직 한발 남아있던 오러가 운석이라도 맞은 것처럼 거대한 크레이터의 한가운데로 쏘아져 들어갔다.

땅속으로 쏘아진 오러는 땅속 깊이 숨어있던 여왕개미를 정확히 뚫고 들어가 폭발했다.

쿠우웅!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폭발음이 한 번 더 울려 퍼졌다.

끼에에에에!!

땅위의 돌개미들이 일제히 괴로워하는 소리를 질렀다. 이 녀석들 약점은 역시 여왕개미였다.

전생에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일이다. 돌개미 하나도 상대하기 어려운데 땅속 깊이 숨어있는 여왕개미를 구경이나 해봤겠나? 그때는 도망치느라 바빠서 여왕개미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괴로운 비명을 질러대던 돌개미들이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원상태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녀석들은 변이체답게 거의 본능적으로 스승님과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나 전처럼 전술적인 움직임은 보여주지 못했다.

무지성으로 달려드는 녀석들을 해치우는 것은 그저 노동에 가까웠다.

“어이구, 오랜만에 힘을 썼더니 힘들구나.”

“저도 죽겠습니다.”

스승님과 나는 커다란 바위 위에 나란히 앉아 몸을 흥건히 적신 땀을 식히며 차가운 물을 꺼내 마셨다.

여왕개미가 죽은 이후로 한 시간이 넘게 쉬지 않고 검을 휘둘러서야 마지막 한 마리까지 모두 해치울 수 있었다.

우리 앞에는 수백 개의 돌개미 시체가 쌓여있었다.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이놈들을 만났더라면 도망은 가능했겠지만 모두 해치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녀석들이 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말이더냐?”

“이보다 강한 녀석들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그것은 참 마음에 드는 일이구나.”

스승님은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계신 듯 했다. 하기야 스승님에게 오늘 일은 즐거운 모험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천생 무인인 양반이다 보니 강적과 싸우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거기에 상대가 악마라 불리는 것들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너는 이제 할 일이 있지 않더냐?”

“아, 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쌓여있는 돌개미 시체의 더미로 향했다. 이 수백마리에서 모두 능력을 흡수할 수 있는 건가? 돌개미의 능력이 뭔지 몰라도 그게 가능하다면 정말 최고일 것이다.

먼저 가장 가까이 있는 돌개미 시체에 손을 댔다. 손을 대는 순간 뒤통수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또 한 번의 각성이었다.

“음?”

돌개미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피부 석화 혹은 아무 기척도 느낄 수 없게 하는 은신 같은 것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새로운 능력이 아니었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능력의 하위호환이라고 해야 할까?

초감각의 하위 능력 같은 감지라는 능력이 떠올랐다. 그리고 초감각에게 먹히듯이 사라졌다. 초감각과 합쳐진 것이다.

“이번엔 무슨 능력을 얻었더냐?”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능력과 비슷한 것을 얻어서 그것과 합쳐진 모양입니다.”

“참으로 신기하구나.”

“제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스승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믿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악마를 죽여서 그 능력을 흡수한다니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래도 이 수백마리의 돌개미들을 모두 흡수하면 대박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대박은 일어나지 않았다. 옆의 돌개미에게 손을 댔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몇십마리나 확인해봤지만, 추가로 더 흡수되진 않았다.

“어쩌면 이것들을 모두 한 마리로 치는 것은 아니냐?”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스승님이 한마디를 하셨고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이체는 번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수백마리의 돌개미들이 있다는 것은 여왕개미가 단순히 생산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능력을 전승받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알 수가 없고 누군가 알려줄 사람도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방법뿐이다.

그렇다면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여왕개미라면 어떨까? 깊은 땅속에 있는 여왕개미를 꺼내기 위해 땅을 파는 마법을 수십차례나 난사해서 오러의 검을 맞고 폭사해버린 여왕개미의 파편을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그 파편에 손을 대자 또 한 번의 각성이 찾아왔다. 이번엔 뒤통수가 아니라 심장 쪽이 간질거렸다.

“지배력?”

이번에 내가 얻은 능력이다. 이번에도 애매한 능력이다. 여왕개미는 자기가 만들어낸 돌개미들이니 지배했다고 하지만 나는 무엇을 지배한다는 말일까?

그때 손목에 감겨있던 백룡이가 쿡쿡 찔러왔다. 백룡이에게 시선을 돌리니 이제까지 보여줬던 물건들이 아닌 다소 복잡한 물건들로도 자유롭게 변하고 있었다.

“귀속된 물건들에도 지배력이 작용하는 건가?”

이것이야말로 진짜 신기한 일이다. 물건뿐만 아니라 나에게 종속된 인간들에게도 작용이 된다면 참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나만을 위한 군대를 만들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이번에도 쓸만한 것을 얻었더냐?”

“지배력이라는 능력인데 이것도 애매하네요. 백룡이를 좀 더 잘 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럼 나름대로 쓸모가 있지 않더냐?”

“그러네요. 제 욕심이 앞섰나 봅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스승님과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슬라이트가 저녁 내내 구시렁거렸지만 가볍게 무시해주고 오늘 얻은 능력을 점검했다.

지배력은 둘째치고 초감각에 흡수된 감지가 대체 어떤 능력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감각으로 느껴지는 범위가 늘어나거나 더 정밀해진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저녁 식사 이후 간식으로 챙겨온 과자를 던져 입으로 받아먹는 순간 아주 미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한번, 두 번 계속 반복했다. 실패는 당연히 없었다. 공중으로 과자를 던져서 받아먹는 것 정도는 기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미묘한 이질감이 계속 느껴지고 있었다.

과자의 궤적이 미리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과자로는 더 이상 시험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방을 나서서 슬라이트의 문을 두드렸다.

“밤에 무슨 일이냐?”

슬라이트가 부루퉁한 얼굴로 문을 열고 나왔다.

“너 나 한 번만 때려봐라.”

“미쳤나? 밤에 갑자기 찾아오더니 무슨 헛소리야?”

“그냥 한 번만 해봐. 나 때리고 싶잖아.”

슬라이트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굴로 주먹을 날려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것이 왕년의 왕도를 울리던 망나니다웠다. 하지만 가볍게 피했다.

“왜 피하냐?”

“그럼 그냥 맞냐? 하여튼 계속해봐.”

슬라이트가 본격적으로 주먹을 붕붕 휘두르기 시작했다. 물론 스치는 것 하나도 없이 모두 피해냈다.

“그렇게 크게 휘두르는 걸 내가 맞겠냐?”

그러자 슬라이트의 눈에 독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곤 제대로 짧게 끊어치기 시작했다. 슬라이트와 나 사이의 거리는 겨우 한걸음 정도다. 작심하고 같은 경지의 기사가 뻗어내는 주먹을 피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거리다.

그런데 나는 모두 피해냈다. 슬라이트의 공격이 모두 읽힌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상이 된다고 해야 할까. 슬라이트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내 몸도 반사적으로 같이 움직여서 회피하고 있었다.

“너 뭐냐? 또 무슨 짓을 한 거냐?”

주먹을 한 번도 맞지 않자 슬라이트가 눈을 부릅떴다.

“그냥 작은 깨달음?”

“뭔데?”

“움직이기 전에 피하기?”

초감각이 발전했다는 말은 할 수 없다. 내 대답에 슬라이트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야? 미친놈인가?”

“그냥 갑자기 되더라고. 그럼 잘 자라.”

“야! 뭐야 제대로 말하고 가라!”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슬라이트를 내버려 두고 방으로 돌아왔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좋은 능력을 얻은 모양이다. 내일 스승님에게 점검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승님이 깜짝 놀랄 것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일은 조금 뒤로 미뤄야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스승님과 지구로 건너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왕궁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오늘 왕실의 보고를 열테니 오라는 것이었다. 스승님과 나는 전령과 함께 떠날 준비를 했다.

그때 슬라이트가 슬쩍 다가와서 속삭였다.

“예전에 아버지가 1급 보고에 들어갈 일이 생기면 1급 보고의 맨 끝까지 갈 생각 말고 중간쯤에 제일 큰 보물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걸 나한테 알려줘도 되는 거야? 국가기밀 아니냐?”

“거기가 무슨 구멍가게인 줄 아는 거냐? 대충 중간쯤에 있다고 해서 어떤 것이 보물인 줄 알아? 아무튼 난 알려줬다.”

흥흥거리며 멀어지는 슬라이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전령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국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오는데 수고가 많았군. 그럼 보고는 어떤 순서로 들어갈 텐가?”

국왕의 질문에 스승님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스승님이 웃음을 지으셨다.

“2급 보고와 3급 보고는 내가 들어가 적당히 쓸만한 것을 가지고 나오도록 하마. 아무래도 일반적인 물건이라면 내가 너보다는 보는 눈이 있지 않겠느냐?”

그거야 당연히 그렇다. 사이코 메트리가 아니라면 내가 물건을 보는 안목은 보통 귀족 이하 수준이다. 거기에 기사가 쓸만한 무구 같은 것을 보는 안목이라면 스승님이 수십 배는 더 뛰어날 것이다.

“예, 그렇게 하시지요.”

스승님도 내가 물건의 기억을 읽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 1급 보고는 네가 들어가도록 해라.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폐하”

“호오? 그렇게 해도 괜찮겠는가?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고 하나 노엘 백작 자네가 보물 보는 눈도 더 뛰어날 텐데?”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1급 보고에 들어갈 기회가 생기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제자의 견문도 키워줄 생각입니다. 그곳에서 아무리 나쁜 물건을 선택한다고 해도 어차피 보물일 테니까요.”

스승님의 말에 국왕도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좋은 스승이군. 빅터, 자네는 이런 좋은 스승을 얻게 된 것에 항상 감사해야 하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그럼 노엘 백작은 따로 안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빅터는 나와 함께 가지.

“안내를 폐하께서 직접 해주시는 겁니까?”

“나 외엔 그곳의 문을 열 수가 없다.”

국왕만이 문을 열 수 있는 왕실의 1급 보고다. 소문은 이미 많이 들었다. 2급과 3급은 비교도 할 수 없는 보물들이 쌓여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휘적휘적 앞서 나가는 국왕의 뒤로 재빨리 따라붙었다. 과연 그곳에서 어떻게 좋은 물건을 골라야 할지 궁리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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