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125화 (125/206)

125. 돌아오지 않는 공략대

아스트로퍼가 또 허락도 없이 튀어나왔다.

“그럼 너는 이공간에 대한 대책을 알고 있는 거야?”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최고의 마법 생명체 아스트로퍼님이야.

아스트로퍼가 이공간에 대한 대책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해결책이 뭔데?”

-주인님이 만든 이공간은 엄밀히 따지면 완벽한 수준의 것이 아니야. 적어도 아스트라호를 만들 때는 그랬어.

그럴듯한 이야기다.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마법사들 사이에서 전설로 여겨지는 이공간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 뭔가 제약이 있겠군?”

-오, 똑똑한데? 역시 내 소유주가 될 만 해.

“그럼 그 제약이 뭔데?”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잖아. 공간이야.

이공간의 제약이 공간이라. 그래서 갑자기 숫자를 늘리는 선택을 한 건가? 그럼 제멜아크에서도 이 제국의 유산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뜻이 된다.

그 정보는 어디에서 왔을까? 유력한 용의자가 있기는 하다. 바로 윌리암 와일러스다.

“이공간이 품을 수 없는 수준의 많은 물건이나 사람이 들어가면 문제가 생긴다는 거지?”

-이론상으로는 그렇지.

“이론상? 그럼 다른 문제가 있다는 얘기야?”

-나도 주인님이 만든 이공간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만 알지 그 한계가 얼마인지는 몰라.

아무리 완전치 못한 이공간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과 물건이 들어가야 한계점에 도달할지 모른다는 거다.

제멜아크의 왕세자가 깔끔하게 던전을 공략했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정보를 넘겨줄 수는 없다. 만약 내가 건네준 정보가 잘못된다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일단 지켜보는 것이 좋겠구나. 어쩌면 5천명 이내에서 한계점에 도달할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내 생각도 그렇다. 그리고 내가 왕세자에게 정보를 건넨다고 해도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다른 문제가 또 있다고?”

“예, 둘째 왕자보다 이쪽이 더 심각한 일입니다. 제멜아크의 공략대에 윌리암 와일러스라는 사람이 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스승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특이한 사람이라서 기억이 나는구나. 끝자리에 앉아있었던 음침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겠지?”

“예, 던전 전문 탐험가인가 뭔가로 참여했다고 했었지요.”

“그 사람이 뭔가 문제가 있느냐?”

“마신교입니다.”

내 말에 스승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악마와 관련된 일이라면 치를 떠는 분인데 나와 함께 지구에서 변이체가 점령한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직접 보셨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제멜아크에서는 이 사실을 모르는가?”

“모르는 것인지 아는데도 방관하는 것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마 모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보통 마신교도가 아니라 간부거든요.”

“간부라고?”

“국왕 폐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말이 나온 적도 있는 사람입니다. 윌리암 와일러스 그가 바로 사제입니다.”

스승님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아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목을 쳐버리고 싶으신 모양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사제라고? 그것을 어찌 알았느냐?”

“저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습니다. 외모가 많이 바뀌었더군요.”

내가 잉헬리아의 결혼반지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사제의 모습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사제의 얼굴을 알게 된 경위를 스승님에게 말씀드렸다.

“뭔가 자신을 숨기는 방법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워낙 기상천외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니까요.”

“그럼 던전 안으로 들어간 후에 뭔가 수작을 부리겠구나.”

“예, 아마 제멜아크 군 내부에도 마신교가 꽤 많이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반마를 만들어내는 사제답게 숨어있는 녀석들은 반마일 가능성이 높다. 위기의 순간에 습격을 가한다면 제멜아크의 공략대는 큰 손해를 입을 것이다.

“큰일이구나.”

“문제는 그렇다고 이것을 알려줄 수도 없다는 것이죠. 어디의 누구까지 마신교에 연결이 되어있을 줄 모르니까요.”

“답답하구나.”

“아무래도 저희가 임의로 판단할 수 있는 선을 넘은 것 같습니다. 본국에 연락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승님도 그것에 동의하셨다. 문제는 이 정보를 전달할 방법이었다. 둘째 왕자의 문제뿐이라면야 마법 통신으로도 가능하겠으나 마신교가 끼어든 이상 그것은 너무 위험하다. 누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직접 가야 한다.

스승님과 나는 고심 끝에 지원자를 받기로 했다.

[전 돌아가기 싫어요.]

스테이시는 단번에 거부했다. 제국의 유산에 들어갈 기회를 걷어찬다는 것은 마법사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특히나 탐구심이 강한 스테이시라면 이럴 것이라고 짐작했다.

우리의 시선이 이번엔 자칼을 향했다. 자칼은 좀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는데 자칼은 의외로 고개를 격렬하게 옆으로 흔들었다.

“나, 나도 도망치지 않아.”

“도망치라는 게 아니라 중요한 임무야.”

“그래도 시, 싫어”

그러면서 슬라이트의 뒤로 몸을 숨겼다. 자연스레 시선을 받게 된 슬라이트는 당연히 거절했다.

“나도 돌아가기 싫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공정하게 셋이서 가위바위보를 해라.”

“잠깐 왜 우리 셋이냐? 너도 있잖냐.”

슬라이트가 반기를 들었다.

“마, 맞아 빅터도 참가해야지”

[맞아요. 공정하게 하자면서요.]

다른 아이들도 한마디씩 하고 나섰다.

“나는 던전의 유경험자니까 당연히 참가해야지.”

“시끄럽다. 너도 가위바위보를 해라.”

“해보나 마나 일 텐데···. 그렇게 원한다면 나도 가위바위보에 참가하지.”

그렇게 가위바위보를 통해 라이브러쉬로 돌아갈 한명을 뽑기로 했다.

“가위, 바위, 보!”

첫 번째 게임에서 나는 바로 승리했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초감각이 발전한 이후로 약간의 예지와 비슷한 것이 생긴 나는 다른 아이들이 낼 모양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됐지?”

첫 번째로 바로 승리한 나를 나머지 아이들이 여러 가지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이것을 밝혀낼 방법은 없을 것이다. 원래 걸리지 않는 속임수는 속임수가 아닌 법이다.

그 후 피튀기는 접전... 까지는 아니고 몇번의 시합을 반복한 끝에 결국은 스테이시가 뽑히게 되었다.

[이건 사기예요! 오빠들은 전부 고위 기사잖아요. 손 내면서 바꾸는 것 모를 줄 알아요? 나도 마법을 써야 공평해요!]

사실 스테이시의 말이 맞았다. 내가 처음 했던 것을 보고 슬라이트와 자칼이 고위 기사의 동체시력과 빠른 손놀림으로 손을 내는 순간 다른 사람의 수를 읽고 손 모양을 바꾸는 법을 터득했다. 하여튼 이놈의 천재들은 이런 것도 빨리 배운다.

스테이시가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그런 것을 들어줄 슬라이트가 아니었고 자칼은 계속 스테이시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그냥 받아들여 스테이시, 마법을 써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으아아아앙!”

얼마나 억울했는지 스테이시가 육성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졸지에 여자를 울리게 된 우리 셋은 안절부절못하며 스테이시를 달래느라 몇시간이나 진땀을 쏟아야 했다.

그렇게 수십 가지를 약속하고서야 스테이시가 라이브러쉬로 돌아가는 것이 확정되었다.

둘째 왕자의 허락은 굳이 필요치 않았다. 어차피 마탑은 왕실 소속이 아니었으니까.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스테이시는 내가 건네준 서신 두 장을 챙겨 마법사 몇 명과 함께 라이브러쉬로 고속 이동을 시작했다.

만약 제멜아크의 던전공략이 길어지고 결국 실패한다면 빨리 돌아와 참석하려는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보기에 꽤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스테이시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멜아크 쪽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우리는 안내를 받아 제멜아크의 왕세자가 이끄는 공략대 5천명이 성대한 행사와 함께 던전으로 진입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단순히 던전 공략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위 귀족 수십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거대한 행사였다. 마치 올림픽 개막식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우리는 그런 정치적 행사의 들러리 역할을 아주 훌륭히 소화해냈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박수만 치면 되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마냥 그렇지도 않았다. 도중에 제멜아크의 귀족파로 보이는 인간들이 와서 접촉하기도 했고 반대로 국왕파의 귀족들이 접촉하기도 했다.

둘째 왕자보다 스승님에게 그것이 집중되어 망나이 왕자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으나 다행스럽게도 발작을 일으키진 않았다.

왕세자의 공략대의 마지막 사람까지 던전에 진입하고서도 몇시간이 지나서야 행사가 끝났다.

“이제 끝난 모양이로구나.”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스승님의 노고를 위로했다. 수십명의 귀족들을 몇시간 동안 상대하는 것은 나로서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보느냐?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왕세자가 제국의 유산을 공략하고 나올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7성 기사가 함께했고 수백명의 기사단과 정예 병사가 함께했으며 여차하면 제물로 바칠 수도 있는 수천 명의 병사가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제국의 유산은 그런 모든 것을 쉽게 날려버릴 수 있는 악랄한 던전이었다.

그리고도 마신교의 사제, 윌리암 와일러스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저희가 모르는 준비도 많이 했을테지요.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수밖에요.”

“그렇구나. 이제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구나.”

왕세자가 아주 순조롭게 던전을 공략했을 때 일주일 정도 걸릴 것이다. 나 혼자 암테일의 던전을 공략했을 때 그 정도가 걸렸으니 그보다 조금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제멜아크의 공략대가 던전에 들어간 후에도 이곳에는 천 명이 넘는 제멜아크의 병력이 남아있었으나 6천이 넘는 인원이 있다가 5천이 훅 빠져나가서 그런지 한산해진 느낌이 들었다.

우리를 알게 모르게 감시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나 특별히 경계하는 느낌도 없었다.

던전 공략에 참여하지 않은 고위 귀족들도 대부분은 돌아가서 우리를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이곳에서도 수련을 다시 시작했다. 동기부여가 돼서 그런 것인지 슬라이트와 자칼은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격렬한 대련을 했다.

제멜아크의 기사들이 그런 우리들의 대련을 구경하고는 했지만 그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동안은 지구에 들어가는 것을 자중하기로 해서 나는 슬라이트들과 대련을 하거나 아스트로퍼와 대화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스트로퍼는 말투가 마음에 안 들긴 해도 꽤 훌륭한 선생이었다. 저장된 지식은 엄청났고 그것이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의 지식에 기반하다 보니 수준도 무척이나 높았다.

-바보야. 그게 아니라니까? 왜 이해를 못 하지?

나는 아스트로퍼에게 이곳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으로 바보 취급을 당했다.

“네 기준으로 바보가 아닌 사람이 있기는 하냐?”

-주인님?

“그런 희대의 천재와 나를 비교하지 말아줘. 나는 평범한 사람이야. 그러니 평범한 사람의 기준으로 설명도 좀 자세히 해주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너보고 천재라던데?

“아니야. 오해다.”

이렇게 오해도 바로 잡아주면서 내가 아스트로퍼에게 배우는 것은 마법이었다. 검술에 비해 마법 수준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예전부터 신경이 쓰였고 그것을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따라잡아 보려고 하고 있었다.

아스트로퍼는 새로운 지식을 저장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도 있어서 내가 잉헬리아에게서 받았던 기초 마법사를 저장한 후 과거의 지식과 결합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아주 순조롭게 던전 공략했다면 슬슬 공략대가 나와야 할 시점이었다.

던전 밖에 남아있던 제멜아크의 잔여 인원도 그것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던전의 입구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라이브러쉬에서도 반응이 없었다. 이정도면 스테이시가 가지고 돌아간 서신의 답이 와야 할 시간이었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슬슬 제멜아크군쪽에서 조바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 쪽도 마찬가지였다. 스테이시가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라이브러쉬로 가거나 혹은 돌아오는 중에 사고라도 난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마법 공부는 착실히 해서 조만간 4 서클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나량은 원래부터 충분했고 단지 지식이 모자랐을 뿐이다.

모처럼 생긴 시간에 작심하고 마법 수련을 하는 것도 있었지만, 아스트로퍼가 전해주는 양질의 지식이 주입되다 보니 그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을 때 양쪽에서 모두 변화가 일어났다. 일단 스테이시가 돌아왔다. 그리고 제멜아크쪽에서도 사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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