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134화 (134/206)

134. 최종병기?

광검제는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몇번이나 있었다. 가장 비슷한 점이라면 역시 다른 지구이긴 하지만 지구에서 살다가 이곳 세계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나는 환생을 했지만, 광검제는 아마도 다른 방법으로 넘어왔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광검제의 어렸을 적은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 역사서에도 나와 있지만 광검제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길가에서 굶어 죽어가던 것을 어느 마음씨 좋은 남작이 구해준 것이 시작이었다. 누군가는 길바닥에서 말도 못 하는 거지를 주워다 키워주는 그런 마음씨 좋은 귀족이 어디 있냐며 반박하고는 하지만, 여러 역사서에서 그것을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증명하고 있었다.

그 남작가는 광검제의 은혜 갚음으로 백작가로 승작해 제국이 멸망하는 그날까지 존재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당시의 광검제는 과거의 기억도 없고 말도 할 줄 몰랐다고 한다. 딱 봐도 추측이 되지 않는가? 이것은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즉 광검제는 환생자가 아니다.

광검제가 살았던 지구는 대격변과 비슷했던 괴물들의 침략을 막아냈다고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경험하고 온 광검제는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의 손을 빌려 이런 것을 만든 것이다.

그가 보아왔던 나쁜 놈들이 끝없이 고통을 받는 지옥이다. 이것도 아마 나만이 공감할 수 있을 이야기였다. 나라도 그것을 구현할 능력이 있다면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끝없이 죽어야하는 무한 지옥에 처박고 싶은 인간이 한두명이 아니다. 대충 생각나는 것만 해도 수십명이다. 안내인이 4명 더 있다고 했으니 광검제가 증오했던 사람은 정말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네명의 안내인 아니 이곳에 갇혀서 끝없이 죽어야 하는 죄인이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내가 살았던 세계와 이곳의 악인이 겹친다는 것은 대충 알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세계에서 개새끼면 광검제의 세계에서도 개새끼라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대격변 당시에 서울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 외에 당시의 악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굳이 따지자면 거의 모든 국회의원이 악인에 속하겠지만, 오래전 기억이 여태까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먼저 만났던 인조인간으로 인해 대충 짐작 가는 인물은 있었다. 강화 인간을 만들어낼 만한 곳 혹은 군인이다. 죽이는 역할로 이 억울하게 죽은 것으로 추측되는 인조인간을 선택한 것으로 보아 광검제는 이쪽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세계 간에 과학력의 차이가 꽤 큰 것인지 몰라도 나는 저런 말도 안 되는 위력의 인조인간을 만들어낼 만한 곳은 모른다. 대기업 몇곳이 생각나긴 하지만 그곳의 본사가 어디에 있는지까지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선택한 다음 목적지는 국방부였다.

대격변 당시에 군의 움직임도 충분히 실망스러웠다. 윗선의 지시를 받은 것이었겠지만, 군은 국민을 지키지 않았다.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것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부 군부대들은 국민을 위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대들은 생존자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못한 존재였다.

청와대에서 밤을 보낸 우리는 동료를 잃은 슬픔을 가슴에 안고 다음 날에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이동방식을 바꿨다.

낮에 습격이 없으리라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정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우리가 향하는 방향을 알려준 후 이동 인원을 절반에 해당하는 마법사와 기사를 먼저 보냈다.

곳곳에 존재하는 랜드마크를 미리 수색해 본진의 이동속도를 올리는 방법이었다.

“이곳이 얼마나 넓은 거냐?”

둘만 있을 때 스승님의 질문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서울의 크기가 얼마나 되지? 그런 것까지 기억하며 살진 않았다. 알았다 하더라도 잊어버렸을 것이다.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왕도와 비슷하거나 조금 작을 겁니다.”

“그렇다면 고든 바이런 그 친구라면 어제 우리의 전투를 느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제멜아크 공략대인 고든 바이런 후작 그라면 멀리서도 격렬한 전투를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제멜아크의 공략대로 우리와 비슷한 적을 만난 적이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안내인이라 칭하는 죄수 놈들에게 속아 그것을 죽이러 오는 복수자들과 싸웠을 것이다.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고든 바이런 후작이 이미 돌아가셨을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는 내가 복수자와 말이 통해서 쉽게 넘어간 면이 있지만 계속 싸웠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우리를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어.”

제멜아크의 왕세자는 가능하면 구하고 싶지만, 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있었다. 그렇게 스승님과 공략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을 때 눈에 밟히는 존재가 있었다.

망나니 왕자였다. 뭘 할 수도 있는 처지가 아니긴 했지만, 던전에 들어온 이후 망나니가 너무 조용했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다고 해도 사람이란 것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이론을 믿고 있는 나에겐 신경이 쓰이는 존재였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할 때는 의심해봐야 한다. 이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진리와 같은 것이었다.

그때 마법사들과 함께 있었던 스테이시가 다가왔다.

[감정이 끝났어요.]

스테이시는 어제 인조인간과 대통령을 처리하고 나온 보물을 들고 왔다. 보물은 장례식이 끝난 후 평소와 같이 마법사들에게 맡겼었다.

[이 단검은 스트라이더 11번이라고 해요.]

인조인간이 사라지고 나온 물건이었다. 대통령과 인조인간 둘 다 우리가 직접 목을 벤 것도 아닌데 왜 보물이 나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죽이지 않더라도 입힌 피해를 계산해서 보물이 나온다던가 그런 시스템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난이도에 비하면 보상이 짜다. 스트라이더 시리즈가 검증된 보물이라고 해도 앞번호는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초기에 만든 것이기에 가치는 몰라도 성능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군인들을 상대할 때야 피해도 거의 없이 이길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보상이 형편없어도 이해했지만, 인조인간은 스승님도 고전했을 정도로 강적이었다. 역시 죽이지 못하면 보상이 짠 것일까?

“기능은?”

[잘 보세요. 얍!]

굳이 기합까지 글씨로 쓸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할 때 스테이시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느껴진다. 일종의 은신 마법이 걸려있는 모양이다.

스테이시가 등 뒤로 살금살금 다가오기에 손을 뻗어 머리를 헝클어 주었다.

[아, 뭐에요.]

손에 닿자마자 은신이 풀린 스테이시가 조금 짜증을 내며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었다. 그래봐야 며칠째 감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오히려 내 손이 걱정이다.

단검을 넘겨받으며 생각하는데 딱히 이것이 필요한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다지 쓸모는 없는 물건이군. 나중에 폴켄이나 줘야겠다.”

[그래요. 폴켄이 좋아하겠네요.]

폴켄과는 꼬꼬들을 돌보며 친해진 스테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머지 물건을 내밀었다.

“그것은?”

[이건 우리도 원래 어떤 물건인지 알아내지 못했어요.]

대통령이 죽고 나서 나온 물건은 꽤 기다란 검은색의 쇠 파이프였다.

“그럴 수도 있지. 알았어 수고했어.”

나는 스테이시를 보낸 후 잠시 쉬는 시간이 한적한 곳을 찾아가 자리를 잡았다. 미리 스승님에게도 양해를 구해 함께 움직여주시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쇠 파이프를 꺼내 손에 들고 사이코메트리를 시작했다.

시야가 바뀌고 익숙한 사람들이 보였다.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와 광검제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조엘 에이크만과 엘프 여왕 이시리엘까지 모여있었다.

스트라이더 시리즈도 아닌 물건에서 이 사람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넷이 한 번에 모여있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뭘 만들었다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드러난 눈만으로도 조엘 에이크만의 모습은 내가 봤던 모습이 아니었다.

“내 일생의 역작”

“그게 한두 번이야? 그게 우리가 전부 모일 정도의 일이야? 네가 만든 일생의 역작만 해도 백개 넘지 않냐?”

조엘 에이크만은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에게 조금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도 내가 보아왔던 기억 중에서 가장 늙은 모습이었다.

외모가 변함없는 것은 광검제와 엘프 여왕 이시리엘 뿐이었다.

즉 이 물건은 용사들이 모두 살아있을 시절에 거의 마지막으로 만든 물건이라는 것이다.

“시끄러워! 죽을래?”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앙칼지게 소리치자 조엘 에이크만이 찔끔해서 물러났다.

“그래도 이번엔 진짜라는 모양이야. 한번 들어나 주지.”

광검제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했고 이시리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무엇인 거 같아?”

“네가 설명해줘야 알지!”

광검제의 뒤에 숨은 조엘 에이크만이 머리만 빼꼼 내밀고 소리를 질렀다.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는 그것을 보고 콧방귀를 끼고 설명을 이어갔다.

“흥! 우리가 죽고 나서 마왕이 또 나온다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때를 대비한 물건이라고.”

“그건 지르크가 또 막으면 되지 않냐?”

이번에도 조엘 에이크만이 딴죽을 걸었다.

“이 새끼야! 나만 일하냐? 그리고 나도 인간이야 언젠가 죽어!”

조엘 에이크만을 등에 숨겨두고 있던 광검제가 손바닥을 휘둘러 조엘 에이크만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겼다.

빡!

별것 아닌 동작이었지만, 마치 무의 끝을 본 느낌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저 조엘 에이크만이 자신의 뒤통수를 쉽게 허락할 리가 없다.

“인간 아니지 않냐? 이게 가능하다고?”

맞은 조엘 에이크만이 중얼거리며 한박자 늦게 그림자로 변해 광검제에게서 떨어져 이시리엘의 뒤로 움직이려 했으나 그곳에는 이미 화살 하나를 손에 든 이시리엘이 화살 끝을 그림자를 향해 내밀고 있었다.

“나만 가지고 그래!”

다시 사람 모습으로 돌아온 조엘 에이크만 소리를 빼액 지르며 삐진 것처럼 멀리 떨어져서 앉았다. 이것이 진짜 용사들의 모습이고 초월자들이라고 한다면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엄연히 진짜로 있었던 일이다.

“그래서 그걸로 마왕을 죽일 수 있다고?”

광검제가 조금 진지한 얼굴로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에게 묻자 늙은 여자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내가 뛰어나도 거기까진 힘들지 너도 실패한 것을 누가 할 수 있겠어. 하지만 방심하고 있을 때 한방은 먹일 수 있을걸?”

“그 정도면 충분하지, 미래의 일은 당대의 녀석들이 해결하는 것이 맞으니까. 그런데 나머지 부분을 만드는데 뭐가 부족하다고?”

광검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 순간 기억이 끝이 났다.

이번 기억은 오랜만에 터진 대박이었다. 무엇부터 생각을 정리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대부분은 용사들이 침략한 마왕을 죽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히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광검제도 실패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사들은 분명히 마왕이 한번 더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용사들이 모두 살아있었을 때이니 두 번째 침공이 있기 전이다. 두 번째 침공은 광검제가 단신으로 막아냈다.

두번째 침공에서 광검제는 마왕을 죽였을까? 아니다. 죽였다면 강림체니 뭐니 하면서 마신교 교주가 날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쇠 파이프를 보았다. 그냥 평범한 쇠 파이프다. 마력도 뭣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게 마왕에게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무기라고?’

나머지 부분이 있다고 했으니 이것만으로 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너무 평범하다. 이것을 처음 보고 들었던 생각이지만 조립식 총의 부품이 아닐까도 생각해봤었다.

그런데 가늠쇠도 없고 파이프 안에 강선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쇠 파이프 그 자체다. 혹시 그냥 휘두르는 무기가 아닐까 싶어서 공중에 몇 번 휘둘러보기도 했으나 휭휭하는 바람 소리만 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것을 물어볼 만한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아스트로퍼 너는 이게 뭔지 알겠어?”

-주인님의 냄새가 나긴 하는데. 모르겠어. 걔는 우리 형제가 아니야.

아스트로퍼도 모르는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 제작의 대 마왕용 무기... 의 부품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그때 정찰을 나갔던 기사 중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오면서 소리쳤다.

“제멜아크 공략대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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