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새로운 기능
얻은 게 있으면 써먹어야 하는 법이다. 비록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수뇌부들은 일단 전부 다른 곳에 정신이 없을 테고 관찰력이 좋은 기사나 병사가 한두명 정도 나를 볼 수는 있겠지만, 확실하게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은 권력과 권위를 조금 이용해 묵살하면 된다. 나는 권력자들이 나쁜 짓 해놓고 그런 식으로 뭉개는 것을 아주 싫어했던 사람이다.
일종의 내로남불이긴 하지만, 이것은 나쁜 짓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쁜 놈들을 처리하기 위함이니 그래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세 명의 초인이 괴물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죽은 반마들도 없었다. 변이체 특유의 생명력과 재생력으로 어지간한 상처로는 치명상이 되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변이체와 어울리지 않게 전술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컸다.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다시 얻은 영체화를 사용해 자신이 이놈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광고했던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동안 내가 성장해서 그런 것인지 과거보다 영체화를 훨씬 길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사용해보는 것은 처음이라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상황을 주시하며 정신없이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녀석의 근처로 접근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녀석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곧바로 녀석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이어서 심장을 뚫고 허리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이 정도면 반마라고 해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밤마다 찾아오는 군인들 말고 아스트로퍼를 얻은 뒤 반마를 상대로 사용해본 것은 처음인데 슈바르거트와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다만 이 녀석도 역시 유지하는데 마나를 많이 사용한다. 백룡이였을 때보다 소모량이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지배력을 사용하는 녀석을 처치하자 주변에서 녀석을 호위하고 있던 놈들이 반응했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늦었다. 나는 목표를 처리하자마자 곧바로 통로를 열고 안으로 몸을 숨긴 후 통로를 닫아버렸다.
영체화는 연속해서 사용하지 못한다. 그 시간을 지구로 넘어와 보낸다는 계획이었다.
지금쯤 분명히 지배력의 영향을 받고 있던 놈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을 것이다.
반마들이 광전사처럼 변하면 오히려 세 명의 초인들로서는 상대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안에서 윌리암 와일러스의 곁에 있던 나머지 녀석들도 밖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이 더 쉬워진다.
영체화를 다시 쓸 수 있게 되는 시간을 기다리는데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조급해지면 안 된다. 마음을 다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승님과 여행이 중단된 이후 지구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없기에 이곳은 돌개미들과 싸운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황량한 벌판이었다.
생명이라고는 오래된 고목밖에 남지 않은 세상, 그마저도 이 나무들이 쓰러지고 나면 이 세상에는 생명체라는 것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마왕의 강림이라는 교주 놈이 바라는 세상은 바로 이런 것일까? 내가 살던 지구에 쳐들어왔던 변이체들의 두목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났지만, 결론은 나와 있었다. 다시는 내가 사는 세상을 이렇게 만들고 싶지 않다. 전생에 나는 매일을 힘겹게 연명하는 생존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힘이 생겼고 더 강해질 조건이 주어졌다. 전생처럼 힘없이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광검제가 살았던 지구는 변이체를 막아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라고 못 할 것이 있겠는가? 꼭 나 혼자 힘으로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 주변에 얼마나 괴물들이 많은가.
나는 허허벌판인 지구를 보며 생각했다. 일단은 윌리암 와일러스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사제 놈부터 처리하는 것이다.
영체화를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통로를 열었다. 통로 저편은 왜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텅 비어있었다. 곧바로 영체화를 쓰고 밖으로 나가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예들의 전투를 지켜보며 대기하고 있던 반마들이 모두 뛰쳐나간 것이다. 인간과 반마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피해는 있겠지만, 전황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정예 반마들이 상당수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덕분에 여유가 생겼는지 스승님과 김경식이 막아내고 바이런 후작이 후방으로 빠져서 반마들을 그야말로 폭풍처럼 쓸어버리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반마들이 참으로 탐스러웠지만, 영체화 상태에서는 건드릴 수 없었고 시간이 끝나기 전에 국방부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던전에서 치렀던 탐욕의 시험보다 이것이 더 어려운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이겨내고 나는 재빨리 국방부 건물 안으로 침투했다.
국방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영체화의 시간이 끝났다. 안에 있던 반마들이 밖으로 대부분 나갔는지 통로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초감각으로 주변을 탐지하며 정성화가 있던 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성화는 대통령처럼 어딘가에 숨는 패턴은 없었는지 방의 근처에 가자 안에서 사람이 느껴졌다.
3명과 하나의 마법 생명체다. 마법 생명체는 인간이나 반마들과는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 윌리암 와일러스 외에 호위가 아직 둘이나 남아있다는 것이 조금 부담이었다.
저것들이 가장 강한 놈들이라고 하면 과연 내가 상대할 수 있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쪽에서도 나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밖에 누구냐!”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마 호위 중의 하나가 감각이 예민한 녀석인 모양이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안에는 윌리암 와일러스와 정성화 그리고 호위 둘이 남아있었다.
“빅터 하네스, 네가 올 줄 알았다.”
윌리암 와일러스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기는 뭘 알아? 괜히 있는 척하지 마라 사이비 교주 같은 놈아.”
마신교는 진짜 마왕을 섬기고 있으니 사이비가 아닐지 모르지만, 윌리암 와일러스 이놈은 교도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으니 진짜 사이비 교주 같은 놈이다. 내 반격이 윌리암 와일러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윌리암 와일러스가 손짓을 하자 두 명의 호위가 변이체로 변이를 시작했다.
내가 올 줄 알았으면 미리 준비를 해두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는 변신 매너 같은 것은 모르는 사람이다.
“아스트로퍼 방어 부탁해”
그리고 나는 슈바르거트를 꺼내 들었다. 보는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는 굳이 아스트로퍼를 검으로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검으로서 성능 자체는 슈바르거트가 더 좋으니까. 아스트로퍼를 방어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변이를 하고 있는 놈 중 먼저 밖에 있던 나를 감지하고 소리를 질렀던 녀석을 목표로 삼았다. 감각이 뛰어난 놈은 상대할 때 매우 까다롭다.
다른 사람이 나를 상대할 때 그런 느낌일 것이다. 오러를 한껏 빨아들인 슈바르거트가 변신 중인 녀석의 몸을 크게 베었다.
“크르르륵!”
사람이라면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야 마땅한 상처였지만, 반마들은 이 정도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는 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슈바르거트로부터 무언가가 쑤욱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마나도 아니고 오러도 아니지만, 그것 자체로 힘이 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슈바르거트에 새로운 기능이 생긴 건가? 그러고 보니 돌개미 여왕의 능력을 얻고 난 후 슈바르거트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끼에에에!”
슈바르거트에게 힘을 빨린 반마다 고통스러운 듯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어찌 됐든 슈바르거트의 새로운 기능이 상대에게 큰 고통을 주는 것만은 확실했다.
“빅터 하네스 비겁하다!”
변신 매너를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호위들 뒤에 숨은 윌리암 와일러스가 나를 비난했다. 그런데 나는 기사도 아니고 상대는 인간도 아닌 반마다.
“뭐 어쩌라고?”
예전에 읽었던 기억에서 광검제조차도 마왕이 쓸 때와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던 슈바르거트가 자기 손에서는 보통 검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한가지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고통에 몸을 뒤틀고 있는 반마에 슈바르거트를 몇번이나 박아넣었다. 그때마다 알 수 없는 힘이 뭉텅이로 뽑혀 나왔다. 그때마다 반마가 눈에 띄게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하나를 공격하고 있는 동안 변이를 마친 다른 녀석이 포탄처럼 몸을 날려왔다. 인간일 때보다 몇 배나 커진 덩치로 밀고 들어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위협이었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몸을 날려 피하자 녀석은 벽을 뚫고 저편으로 사라졌다. 신체 강화 쪽 녀석이었던 모양인데 뇌는 강화하지 못한 것 같았다.
덕분에 덩그러니 내 앞에 나타난 윌리암 와일러스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윌리암 와일러스는 곧바로 인상을 굳히며 무언가를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지금 상황에서 녀석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정신 교란이었다. 이미 한번 당해봤기에 예측할 수 있는 행동이기도 했다.
머리가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윌리암 와일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 어째서!”
지난번 정신 교란에 당해준 척했던 것을 진짜 당했다고 믿었던 것일까? 반마로부터 힘을 잔뜩 흡수해서 오러를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는 슈바르거트가 거의 무방비 상태로 있던 윌리암 와일러스를 향했다.
힘을 잔뜩 빼앗기긴 했지만, 아직 죽지 않은 반마가 그것을 막으려고 몸을 날려왔지만, 아스트로퍼가 타이밍 좋게 방패로 변하며 강하게 밀쳐내었다.
스걱!
막아내려던 두 팔과 함께 윌리암 와일러스의 목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물론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지만 십수년간 두 왕국을 넘나들며 활약하던 마신교의 간부치고는 허무한 최후였다.
그러나 아직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아스트로퍼에 의해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반마에게 달려들어 심장에 슈바르거트를 박아넣자 엄청난 에너지가 뽑혀 나왔다.
에너지 드레인 같은 것일까? 다만 뽑아낸 에너지를 나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슈바르거트가 바로 사용해버린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게서 가져가는 오러가 훨씬 줄어들뿐더러 검기도 오러를 뽑아내 만들어질 때보다 훨씬 강력했다.
“끄에···.”
반마의 반응도 이상했다. 내 상식으로 변이체라는 것은 겨우 심장에 검이 박혔다고 이렇게 힘없이 당한 놈들이 아니다.
녀석은 멀쩡한 팔과 다리로 반격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기운 빠진 소리를 내며 몸을 경련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위험감지에 느껴지는 위험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었다. 검에 기운을 빨아 먹히는 것만으로도 죽는다는 얘기다.
이 정도면 슈바르거트가 변이체의 천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놈을 완전히 끝낼 수는 없었다. 벽을 뚫고 날아갔던 녀석이 돌아오고 있었다.
검을 뽑아내고 학습 능력이 없는 것인지 이번에도 포탄처럼 몸을 날려오는 녀석을 상대할 준비를 했다.
“아스트로퍼!”
쾅!
아스트로퍼의 방패가 몸을 럭비선수처럼 달려드는 녀석을 막아냈다. 그 틈을 이용해 검을 찔러넣었다.
“크에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옆구리에 검이 살짝 박혔던 것 뿐인데 힘을 빼앗긴 녀석이 힘이 풀린 것처럼 한쪽 무릎을 꿇었다.
“슈바르거트 너 굉장하구나?”
우우우웅!
내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슈바르거트가 검명을 토해냈다. 이 녀석 광검제가 사용했기 때문에 신검이라 불리고는 있지만, 새로운 기능도 그렇고 원래 주인이 마왕이다. 남들이 본다면 누가봐도 마검이 아닐까?
신체 강화 능력을 가진 반마와 전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슈바르거트의 새로운 능력과 아스트로퍼의 방어 앞에 반마는 힘을 쓰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이어서 아직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던 다른 반마의 목숨도 확실히 끊어주었다.
남은 것은 목이 잘린 채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윌리암 와일러스였다. 변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 녀석도 반마다. 그렇지 않으면 양손과 목이 잘린 인간이 살아있을 수 없다. 그리고 재생을 하지도 않는다.
녀석의 심장에 슈바르거트를 꽂아 넣었다. 슈바르거트가 기쁜 듯이 진동하면서 윌리암 와일러스에게서 에너지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윌리암 와일러스의 생명이 심지가 다 된 촛불처럼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윌리암 와일러스, 이것은 가명이니 진짜 이름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름 높은 마신교 사제의 최후였다.
윌리암 와일러스의 목숨이 끊어지자마자 구석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정성화가 열렬하게 손뼉을 치며 환호를 보내왔다.
짝짝짝!
“굉장하군요. 이런 전투는 처음 보았습니다.”
나는 천천히 슈바르거트를 뽑아낸 뒤 정성화를 겨누었다.
“다음은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