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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전승자-147화 (147/206)

147. 빈집

오늘은 활약한 기회가 없었던 아스트로퍼가 갑자기 튀어나와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형제가 사라지며 나온 물건들은 검은색 구체 하나와 열쇠 그리고 가위 하나였다. 아스트로퍼가 원하는 것은 아마도 저 가위일 것이다. 딱 봐도 금속의 색상이 아스트로퍼나 백룡이와 같았으니까.

같은 재질의 물건을 원한다는 말을 했었고 나는 그것을 구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말을 하는 아스트로퍼를 가브리엘 스피노자가 매우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건 뭡니까?”

“라이브러쉬 왕실 보고에서 얻은 보물입니다. 아스트로퍼라고 하지요.”

-안녕! 너는 이름이 뭐야?

“가브리엘 스피노자라고 합니다. 제멜아크의 남작이지요.”

가브리엘 스피노자는 예의 바르게 자신을 소개했다. 마치 어린 조카를 대하는 삼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빅터! 빅터! 저거 나에게 줘!

“내 물건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줄 수 없어”

나 혼자 있었다면 모를까. 가브리엘 스피노자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보물을 임의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저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가브리엘 스피노자가 미레이의 주배를 알아본 적이 있기에 저 범상치 않아 보이는 가위의 정체를 물었다.

“저것은 저도 잘 모르겠군요. 멸악의 마법사가 만든 물건임은 분명하겠지요.”

가브리엘 스피노자도 가위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일단 어떤 물건인지 알고 나서 별로 가치가 없는 물건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협상을 해보겠지만, 정체조차 모른다면 협상을 시작도 하지 못한다.

미레이의 주배처럼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엄청난 가치를 가진 물건일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아스트로퍼, 당신은 왜 저 물건이 필요한 것이지요?”

가브리엘 스피노자의 질문에 내가 말릴 사이도 없이 아스트로퍼가 냉큼 대답해버렸다.

-먹을 거야!

“호오?”

가브리엘 스피노자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피어났다. 뭔가 불길한 느낌의 미소였다.

“저것이 뭔지 알고 있는 겁니까?”

-내 형제! 아이아포네야.

아스트로퍼는 저것이 뭔지 알고 있었던 건가?

“아이아포네라면 330번이었던가? 그렇지요?”

-번호는 몰라!

가브리엘 스피노자도 알아보진 못했어도 이름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스트로퍼의 말로 0번과 9번은 특별한 물건이라 했었다.

“이것 참, 어떻게 한다?”

가브리엘 스피노자가 고민하는듯하면서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빅터 하네스 공자도 저것을 아스트로퍼에게 주고 싶겠지요?”

“가능하다면 그렇습니다.”

“이것 참 제 입장이 난처하군요?”

장난스러운 가브리엘 스피노자의 태도를 보고 숨은 뜻이 있음을 알았다.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발언권을 되찾고 싶습니다.”

보물 한 개, 그것이 스트라이더 시리즈라는 것을 생각하면 값어치에 비하면 원하는 것이 너무 적었다.

“겨우 그걸로 되겠습니까?”

“저에겐 빅터 하네스 공자와의 대화가 저 가위보다 더 값어치가 있습니다.”

“스트라이더 330번이 뭔지 알고 있는 겁니까?”

가브리엘 스피노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구나?

“기능이 뭡니까?”

아스트로퍼에게 주기로 약속했지만, 그 가치가 터무니없이 높은 것이라면 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330번의 또 다른 이름은 용기의 가위입니다. 저 가위를 손에 든 사람은 굉장히 용감해지는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애매하다. 용기를 얻는 것은 좋으나 가위를 들었을 때만? 작은 손가위를 들고 싸우는 기사라니 참으로 추했다.

“별로 인기 있는 보물이라고 할 수는 없겠군요.”

“그렇지요. 아녀자들이나 쓸법한 가위니까요.”

“아스트로퍼가 저것을 먹어 치운다면 보물 하나가 비게 될 텐데요. 그건 괜찮겠습니까?”

가브리엘 스피노자가 나를 따라온 것을 이렇게 내가 혼자 보물을 독식하게 될 것을 감시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안내인이나 처단자를 처치하면 보물이 무조건 나온다고 누가 그럽니까?”

가브리엘 스피노자가 조금 뻔뻔하게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그런 법칙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고 어딘가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다른 보물을 먹어 치우는 에고 아이템을 빅터 하네스 공자가 가지고 있다? 이 정보가 더 가치가 높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것을 직접 본 사람이고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굳이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스트라이더 330번 아아이포네 다른 이름으로는 용기의 가위를 주웠다.

가위를 손에 드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정신에 간섭하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나에게 통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나에게만 그런 것인지 몰라도 경지에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결국 경지 높은 기사에게는 쓸모도 없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전장에서 실력 없는 자가 용기만 앞선다면 그것처럼 골치 아픈 것이 없다. 대격변 이후 그런 무능하면서 자신감만 가득한 사람들의 선동질로 참 많은 사람이 죽었다.

“호의를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가브리엘 스피노자는 어서 해보라는 손짓을 했다..

“아스트로퍼 이제 먹어도 돼”

아까부터 맛있는 것을 눈앞에 둔 아이처럼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침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던 아스트로퍼가 굶주린 아이처럼 달려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단지 홀로그램만이 아니라 손목에 있던 아스트로퍼가 액체 괴물처럼 쭈욱 늘어나서 손에 든 가위를 덮쳤다. 몸에서 마나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밥이고 내 마나는 반찬쯤 되는 건가?

와구와구 무언가를 씹어먹는 모습을 홀로그램을 보여주던 아스트로퍼가 조금 성장했다. 원래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의 젊은 시절을 구현하고 있었으므로 더 늙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홀로그램이 조금 더 커졌다.

-꺼억!

포식이라도 한 것처럼 걸쭉하게 트름을 하는 것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나 성장했어! 나는 더 강해졌다아아아!

“호오? 어떻게 성장한 겁니까?”

가브리엘 스피노자가 강한 흥미를 보였다. 솔직히 나도 궁금했다. 아스트로퍼가 강해진다는 것은 내가 강해진다는 것과 같으니까.

아스트로퍼는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키가 커졌음!

설마, 그게 끝?

가브리엘 스피노자도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느끼고 있었다. 마나 소모량이 다르다. 평소에 아스트로퍼가 나에게서 가져가던 마나가 월등히 증가했다.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다.

아스트로퍼는 묘하게 사람 같은 부분이 있다. 지금 가브리엘 스피노자에게 한 말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큼! 그렇군요.”

가브리엘 스피노자가 실망하는 것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나머지 물건들도 챙긴 후 우리는 곧바로 SV 타워를 떠났다.

“여기서 다음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 바로 이동하면 내일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바로 출발하지요.”

아직 파이프와 정육면체 그리고 원구 이것들을 어떻게 조합해서 마왕을 상대할 무기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오늘 얻은 원구는 아직 기억을 읽지 못했지만, 정육면체와 삼각뿔은 오는 길에 기억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쓸모있는 기억이 나오지 않았다. 파이프의 기억을 읽었을 때와 정확히 같은 장면이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만들어진 물건이니 그럴 수 있었다. 그래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원구의 기억도 읽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마지막 물건을 얻어야 수수께끼가 풀릴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것에서도 단서를 찾지 못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마왕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물건이라면 어마어마한 위력일 것이다. 그것이 보통 사람의 손에 들어간다? 재앙이 따로 없다.

마왕의 힘을 최소한 초월자로 잡는다고 해도 초월자에게 강한 일격을 먹일 수 있을 정도의 위력? 상상도 가지 않는다. 도시 한두개 정도 날려버릴 정도의 공격 마법을 날리면 될까? 아니다. 웃으면 튕겨버릴 그런 인간들이었다.

한마디로 이것은 핵폭탄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물건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장소를 향해 달렸다. 가브리엘 스피노자는 발언권을 되찾아 쉴새 없이 떠들었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아스트로퍼와 잘 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스트로퍼 덕분에 나에게 향하는 질문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가브리엘 스피노자는 마치 어린 조카를 상대하듯이 아스트로퍼를 구슬려가며 과거의 지식을 뽑아내고 있었기에 상당히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도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고 그때와 아스트로퍼의 대답이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었다.

즉, 가브리엘 스피노자에게 알려주는 과거의 지식은 미묘하게 어긋난 지식이었다. 저런 거짓말을 하는 기술은 대체 어떻게 구현한 것인지 모르겠다.

전생에 대격변이 망하기 직전에도 뛰어난 AI가 많이 나왔었지만, 아스트로퍼의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하루를 달려 우리는 마침내 마지막 장소에 도착했다.

국정원 본부, 보통 사람들은 평생 올 일이 없는 곳이고 그래야 하는 곳이었다. 물론 나도 사진으로 한두 번 본 기억은 있지만, 직접 와본 적은 없었다.

“굉장히 무서운 느낌의 곳입니다.”

며칠 같이 있으면서 생각한 것인데 가브리엘 스피노자는 은근히 촉이 좋았다. 국정원 본부에 들어서자마자 한 말이 저것이었다.

“그렇군요.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진짜도 아니고 구현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었다.

우리는 국정원 본부의 가장 큰 건물로 들어섰다. 이곳에는 과연 또 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국정원 건물이니만큼 국정원장 정도가 있지 않을까 예상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대격변 이후에 나는 국정원장에 대한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국정원장쯤 되면 대통령과 함께 방공호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딱히 악행을 저지르지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물론 저희끼리만 살겠다고 그곳에 들어간 것 자체가 죄일 수도 있지만, 그런 책임을 묻기에는 국정원은 애매한 기관이 아닐까?

모든 것은 직접 만나보면 금방 드러날 일이다. 그런데 중앙에 있는 가장 큰 건물에 들어가 안내인을 찾는데 건물 안에서 마법 생명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국정원장의 집무실까지 들어갔는데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이 건물이 아닌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나에게 이곳을 알려준 정성화의 정보가 틀린 것이다.

“흩어져서 찾아보지요.”

“그러지요. 요 앞의 비석 앞에서 다시 만나지요.”

가브리엘 스피노자의 제의에 우리는 둘로 흩어져 국정원 부지에 있는 건물을 모두 샅샅이 뒤졌다. 숨겨진 지하실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 그 부분도 정밀하게 조사했지만, 정말로 국정원 지부 안에는 안내인이 없었다.

결국 허탕을 친 우리는 비석 앞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쩌지요?”

“잘못된 정보를 받은 것 같습니다. 다른 거점이 어디인지는 지금으로선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 본대로 돌아갈지 아니면 계속 거점을 찾아볼 것인지 결정해야겠지요.”

가브리엘 스피노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바로 답을 내었다.

“우리끼리 계속 찾도록 하지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리셔도 괜찮겠습니까?”

“돌아가 공략대를 사방으로 풀어서 수색한다면 찾는 것은 조금 빨라질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죽겠지요. 전 그것이 싫습니다. 전 처음부터 이곳에 제물로 바칠 병사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도 반대했습니다.”

제멜아크 왕국의 천재는 생각보다 바른 사람이었다. 보통 왕의 참모라고 하면 대의를 위해 다른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가브리엘 스피노자는 좋은 군사가 되긴 어려울 것 같았다. 물론 앞으로 그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본대로 돌아간다면 빅터 하네스 공자나 아스트로퍼와 함께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요.”

이 사람은 역시 왕의 참모나 이런 것보다는 그냥 학자가 더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다. 검술도 경지가 높을 뿐 딱히 연마하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마법사는 성격이 꽤 어울리지만, 그것도 그리 열심히 해서 올린 경지가 아닌 것 같다.

“그럼 우리끼리 찾도록 하지요. 그런데 오늘은 일단 늦었으니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출발하도록 하지요.”

겨우 군인 둘이 상대하는 것이긴 하지만 밤의 습격을 막아내고 식사를 한 뒤 한두시간 자는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가브리엘 스피노자가 만드는 제법 괜찮은 요리를 먹은 뒤 밤의 습격을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훨씬 지난 것 같은데도 군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곳이 진짜 거점이 맞는 것 아닐까?

“여기 뭔가 이상···.”

가브리엘 스피노자도 나와 같은 것을 느꼈는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멈추었다. 나도 뒤늦게 내 등 뒤에 무언가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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