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낙동강에 사는 것
“뭐?”
친구들이 단체로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던전에서 봤던 곳은 마왕을 막아낸 세계, 여기는 막아내지 못해서 멸망한 세계지.”
설명을 해줬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젊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천재들이라서 그런 것인지 친구들은 그것을 쉽게 납득했다.
“그렇군.”
“그럼 여긴 던전 같은 것은 아닌 거지?”
[여기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은 어떻게 얻게 된 건가요?]
나는 친구들을 위해 또 긴 시간 동안 설명했다. 그리고 지구의 마나를 체험하게 해주었다.반응은 당연히 열광적이었다.
“이런 좋은 것을 너만 알고 있었단 말이냐?”
“굉장해···.”
[오늘부터 전 여기서 살기로 했어요.]
친구들의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지구의 마나를 맛보게 해준 시점에서 녀석들이 이곳을 거부하거나 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아예 눌러사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여기 굉장히 위험한 곳이다.”
[그럼 빅터도 여기서 계속 함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계속 움직여야 해. 이곳에 남아있는 악마들도 처리해야 하고 마신교의 간부가 이 세계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 같거든.”
부교주를 찾고 싶다. 놈이 국왕과 에인프라흐 공작의 합공에 진짜로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이미 모두 회복했겠지만, 지구 어딘가에 숨어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이 세계 어딘가에 광검제가 계시다. 그분을 찾아야 해.”
“뭐?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그분의 나이가 몇살인데?”
슬라이트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이 세계 어딘가에 계신다고 찾아오라고 하셨지.”
슬라이트는 이것만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지만 상관없었다.
“그런데 이 세계는 여전히 매우 위험하다. 악마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거든. 그것들은 우리가 봤던 반마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게 강하다.”
“그것은 내가 보증하마. 너희들로는 아직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게다.”
스승님이 지원사격을 해주셨다.
“그러니 너희들은 강해져야 해. 적어도 7성에는 올라야 할 거야. 그런데 이미 느껴봐서 알겠지만, 이곳의 마나는 진하고 성질이 좀 달라서 너희들이라면 경지를 올리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녀석들은 진짜 천재다. 그러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거다.
“그리고 스테이시 너에겐 맡기고 싶은 물건이 있어.”
[뭔가요?]
“이거 엄청난 물건이라서 진짜 조심해야 한다.”
나는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에게 받은 물건 세 가지를 꺼냈다.
[어?]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인지 스테이시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커졌다.
“던전에서 멸악의 마법사에게 받은 물건이야. 고민해봤는데 나보다는 네가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폭 인형과 스트라이더 1000번을 나도 몇 번 사용하려고 시도해봤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는 어렵지 않다고 했으나 그것은 희대의 천재들에게나 그런 것이고 나 같은 둔재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자폭 인형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게 힘들 정도였고 스트라이더 1000번은 마력 파장을 조절하라는데, 감을 전혀 못 잡고 있었다. 혹시 자칫 잘못하면 주변을 죽음의 대지로 만들어버리는 게 아닐까. 무서웠다.
“먼저 이건 보통 인형처럼 보이지만, 폭발 마법이 걸려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물건이야. 마력으로 조종해서 움직일 수도 있으니 움직이는 방법을 숙달해봐. 시범을 봤을 때는 8성 기사와 비등할 정도로 움직이더라고 그리고 이게 터지면 마왕에게도 한방 먹일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이니 절대 터트리면 안 된다. 터지는 순간 무조건 다 죽는 거야.”
스테이시는 손을 벌벌 떨며 자폭 인형을 받아서 들고 마치 어린 여자아이가 처음 선물 받은 인형처럼 품에 꼭 안았다. 그러려고 했는데 통짜 금속으로 만든 녀석이다 보니 워낙 무거워서 앞으로 쓰러졌다.
[헤헤헤]
그래도 스테이시는 마냥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진짜 좋은 것이 더 남아있었다.
“이건 스트라이더 1000번이야.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주변의 마력 파장을 바꿀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하더군.”
완드처럼 생긴 말뚝도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스테이시에게 건넸다.
[이게 스트라이더 1000번이라고요?]
“그래, 이게 있으면 이곳의 마력 파장을 바꿔서 생명이 자라게 할 수 있다고 하더군. 그것도 연구를 해봐 줬으면 좋겠어.”
[마력 파장을 조절할 수 있다고요?]
“응, 제국의 마지막 비밀무기라고 해야 할까. 그런 물건이야. 생명을 자랄 수 있게 할 수 있으면 반대로 하면 뭔지 알지?”
[무시무시한 무기네요.]
스테이시는 표정이 굳었다. 천재답게 마력 파장을 바뀌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금세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리고 사실 너에겐 이게 진짜로 도움이 될 물건인데.”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준 마법서가 남았다. 스테이시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사실 이건 받기는 했는데 사용법을 들지도 못했고 몇 번 시도해봤는데 전혀 모르겠어.”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몸통만큼이나 거대한 마법서는 내가 펼쳐봤을 때는 여전히 백지였다. 이런저런 방법도 사용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대체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는 이 책에서 무엇을 보고 마법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책은 무슨 책인가요?]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의 마법서야.”
“꺄아아아악!”
스테이시가 갑자기 육성으로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스테이시는 갑자기 무슨 힘이 솟았는지 그 무거운 자폭 인형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마법서를 껴안고 뒹굴고 있었다.
“이건 내 거야!”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이 이성을 잃은 것 같다.
“우리는 뭐 없냐?”
슬라이트가 기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스테이시에게 어마어마한 보물을 몇 가지나 주었으니 자신에게도 뭔가 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없다. 기사가 쓸만한 물건이면 내가 쓰지 널 주겠는가. 스승님과 내가 신흥 대귀족으로 떠올랐다고 해도 그래봐야 가진 것이 없다. 반대로 이놈은 진짜 다이아몬드 수저 아닌가?
“아! 줄 만한 거 있지. 둘 다 손 줘봐.”
슬라이트와 자칼이 얼른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위에 사용하지 않고 있던 토끼꼬리풀 영약을 수북이 담아주었다.
“이, 이!”
자칼이 멍한 표정을 지었고 슬라이트가 부들부들 떨었다.
“왜? 그거 진짜 영약이라고? 효과도 봤으니 알잖아?”
“이 개똥 맛이 나는 걸 또 먹으라는 거냐!”
슬라이트가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지만, 나는 한마디로 제압했다.
“먹고 강해져서 돌아와라, 약해빠진 애송아”
첫날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결국 슬라이트와 자칼은 교수대에 끌려가는 죄인의 표정으로 영약을 먹었으나 승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영약으로 7성에 오르는 것은 무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구에서 연공과 실전을 겪다 보면 빠르게 해결될 일이었다.
우리는 다음 날부터 강행군에 들어갔다. 안동에서 낙동강 지류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안동으로 올 때 이 방법을 사용했으니 적어도 틀릴 일은 없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이동하면 문경시에 도착하게 된다.
다만 이렇게 강변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전생에서는 길을 잃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렇게 이동하는 것이 물을 얻기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단점이라면 강에 서식하는 변이체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에 서식하는 수생형 변이체도 일종의 자기 구역이 있었다. 내가 낙동강 지류를 타고 이동하면서 보았던 녀석들도 꽤 여러 종류였는데 가장 위험하게 생각했던 녀석들은 바로 지금 친구들이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놈들이었다.
“죽어어어!”
슬라이트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놈들을 쳐내고 있었다. 자칼도 특유의 방어형 검술로 주위로 변이체가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고 조금 뒤편에서 스테이시가 미친 듯이 마법으로 폭격하고 있었다.
스승님과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종의 실전 단련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슬라이트를 비롯한 친구들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피라니아라고 부르던 녀석들인데 우리나라의 강에 피라니아가 살진 않으니 진짜 피라니아가 변이한 것은 아니었고 아마도 피라미나 붕어가 변이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생김새는 물론 원래 귀여운 피라미나 붕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물고기의 형태는 가지고 있되 개구리처럼 다리가 생겼고 뭍에서도 다리를 이용해 무척이나 빠르게 움직이는 능력을 가졌다. 그리고 지느러미의 가시는 사람을 찔러 죽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길고 날카로운데 여기에는 마비독도 가지고 있어서 찔리면 꼼짝없이 산채로 뜯어먹히게 된다.
가장 무서운 점은 이 녀석들의 크기가 남자 손바닥 두 뼘 정도로 크진 않지만, 수천마리가 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나는 소형 변이체이니만큼 이 녀석들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돌개미처럼 강가의 뻘 속에 숨어서 잠을 자고 있다가 우리가 지나가자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이 녀석들이 숨어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침 친구들의 상대로 이것처럼 좋은 녀석들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놈들의 먹이로 친구들을 던져주었다.
“괜찮겠느냐?”
스승님이 걱정을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은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크기가 작다고 해서 약한 것이 아니다. 여태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이 작은 피라니아 놈들이 한때는 무척 강한 변이체였다는 뜻이다.
작고 빠르고 단단하다. 6성 기사의 오러에도 베이기는 하지만 깊은 상처를 주지 못한다. 그런 것이 수천마리가 떼로 덤비는 것은 멀리서 보기에도 꽤 끔찍한 모습이었다.
전생에는 물을 뜨러 내려가다가 녀석들을 마주했는데 위험감지가 격렬히 반응하는 바람에 강가로 내려가기 전에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하여 녀석들의 추적을 뿌리칠 수 있었지만, 안동에 가서 들어보니 피라니아에게 당한 생존자의 수가 엄청나다고 들었다.
심지어 녀석들은 자기들 영역에 들어온 다른 변이체도 저런 방식으로 공격해 쫓아내는 것이 아닌 죽일 정도로 포악한 녀석들이었다.
“한번은 경험해야 할 전투고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일격에 죽을 걱정도 없고요.”
“그러기에는 이미 상처가 많다만”
자칼은 비교적 상처가 적었지만 슬라이트는 이미 크게 몇 입 베어 먹혔는지 팔과 다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스테이시의 후방 지원이 없었다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스테이시도 주변에 피라니아가 몰리면서 지원을 해줄 여유가 없었다.
공중에 떠올라서 마법을 쓰고 있지만, 피라니아는 뛰어난 도약력으로 스테이시의 보호막을 마구 물어뜯고 있었다.
“으, 너무 징그러워요.”
오늘도 스승님을 따라온 구경하며 폴켄이 몸을 떨고 있었다. 아이에게 보여주기에는 너무 자극적이었나?
“그럼 슬슬 구해주도록 할까요?”
나도 9성에 오르고는 제대로 힘을 써본 적이 없었다. 안동에서 만난 바퀴벌레는 너무 약해져 있었다. 적어도 피라니아는 숫자가 많으니 제법 힘을 써야만 할 것 같았다.
“나도 움직여야 되지 않겠느냐?”
“일단 저 혼자 해보겠습니다.”
나는 폴켄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달려 나가서 서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수세에 몰리고 있는 슬라이트와 친구들의 주위를 돌았다.
내가 스쳐 지나간 곳의 피라니아들이 토막 나 하늘로 솟구쳤다. 역시 피라니아도 위협적이진 못했다. 단지 숫자가 좀 많을 뿐이었다.
내가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라니아들은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슬라이트는 포션으로 목욕을 하며 쓰러져 있었고 자칼도 상태가 좋진 않았다. 스테이시도 마력을 과도하게 사용해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놈들 가장 약한 놈들 중의 하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개별 개체로 치면 피라니아는 최약체에 가깝다.
“그러니 강해져라.”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교주가 힘을 되찾고 과거의 마왕처럼 수만의 악마들을 이끌고 세계를 침공한다면 이 정도는 일상이 될 것이다.
친구들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나를 향한 원망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아이들이 아니기에 이곳으로 데려올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굉장한 녀석이 사는 곳이 나올 것이다. 낙동강 지류에는 일정 간격을 두고 변이체가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이 녀석은 워낙 대단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멀리서 보고 피할 수 있었다.
그것은 변이체라는 것을 떠나 전설에 나오는 강의 주인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물론 그러기 전에 오늘의 수확을 챙겨야 했다. 몸이 반토막이 나서도 아직도 펄떡대고 있는 피라니아의 몸에 슈바르거트를 꽂아 숨을 끊어주고 손을 댔다.
바퀴벌레를 처리하고 얻은 능력은 ‘생존력’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바퀴벌레라고 해야 할까. 피라니아에게서는 어떤 능력을 얻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