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고치
피라니아와 접촉하며 새로 생긴 능력은 ‘번식’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정말 쓸모없는 능력이다. 나중에 결혼이라도 한다면 왕국의 인구 증가에 일등 공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능력이지만, 지금은 정말 쓸모없었다.
그래서 수천마리나 널려있는 다른 피라니아의 시체에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 혹시라도 능력이 강화되어 색마처럼 변하기라도 하면 큰일이 아닌가.
그리고 적어도 앞으로 10년간은 누군가와 연애를 하거나 결혼할 생각도 없었다. 세상이 멸망할지 모르는데 그런 세계에 자식을 낳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지금은 큰 목표를 향해 집중할 때였다. 당장 조금만 이동해도 내가 봤던 그 거대한 변이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엔 그냥 큰 메기와 같았다. 그런데 보통 크기가 아니다. 일곱번 쓰러져도 일어나는 눈이 큰 개구리가 나오는 옛날 만화에 최종 보스처럼 긴 수염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무엇이든지 잡아 삼키는 거대한 메기, 그것이 내가 봤던 낙동강 지류의 주인이었다.
피라니아를 상대하고 난 후 친구들은 자신들이 이 세계에선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실감했는지 분위기가 무척이나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냥 좌절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더욱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으니까.
“다음엔 다를 거다.”
[제법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자만심이 단번에 사라졌어요.]
“저, 저기···.”
자칼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손을 들었다.
“왜 그래?”
“지, 지난번처럼 우리끼리 싸울 때 대형이나 작전 같은 것을 짜보는 게 어떨까?”
예전에 자무새를 상대하기 위해 연습했을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때도 연습했던 작전은 하나도 써먹지 못했긴 했다. 그땐 우리가 약했고 상대가 터무니없이 강했으니까.
[좋은 생각이에요.]
스테이시가 찬성했다. 지금은 내가 빠진 대신 스테이시가 들어왔기에 조합은 훨씬 좋다. 슬라이트와 자칼도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좋은 생각인데?”
[그럼 작전을 짜보도록 해요.]
세 천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니 뭔가 좋은 생각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작전이 다음 상대에게도 통할까? 물론 그 메기가 아직도 있다면 그것을 친구들에게 상대해보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메기는 피라니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녀석이다. 직접 싸워보지 않았어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밤이 되어 스승님과 폴켄만 돌아가고 우리는 지구에서 머물며 저녁에는 수련하고 낮에는 다시 이동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각이 되자 내가 통로를 열었고 기다리고 있던 스승님이 다시 합류했다.
오늘은 폴켄을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다. 만약 메기가 그곳에 있다면 어떤 식으로 전투가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승님이 폴켄을 지키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만의 하나라는 것이 있었다.강변에는 떠돌이 변이체도 없었고 꽤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메기를 발견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미친”
강 가운데 불쑥 솟아있는 거대한 아치형의 구조물을 보고 슬라이트가 욕을 내뱉었다. 아치형의 구조물이라는 것은 메기의 뼈였다.
“어때 싸울 수 있었겠어?
“저런 것하고? 장난하나?”
슬라이트와 친구들이 남아있는 뼈만 보고서도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메기는 살아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약해진 변이체들은 자연적으로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메기도 그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메기가 약할 리는 없었다. 다만 덩치만큼 에너지 소비가 컸던 모양이고 피라니아나 돌개미처럼 힘을 아끼고 동면하는 능력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메기는 저렇게 거대하진 않았었다. 제대로 본 것은 아니었지만 30~50m 정도였달까. 그런데 지금 보이는 뼈만 해도 100m는 가뿐히 넘을 것 같다. 내가 못 본 사이에 더욱 성장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큰 덩치를 유지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정도의 초대형종의 변이체들을 만날 확률은 대폭 줄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았다. 좋은 소식이다. 초대형종은 그 덩치만으로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잠시만 있어 봐.”
나는 강변에서 훌쩍 뛰어올라 강 위에 생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메기의 거대한 머리뼈 위로 내려섰다.
이런 보너스 같은 것을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피라니아처럼 꽝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강해질 기회가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메기의 새하얀 머리뼈 위에 손을 댔다. 이번은 복부에서 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뭔가 개운한 느낌? 그리고 떠오르는 새로운 능력은 ‘섭식 강화’였다.
효과 좋은 소화제를 먹은 느낌이 들더라니 그런 능력이었다. 아마도 메기가 저 정도로 덩치를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이 능력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나쁘지 않다. 내가 메기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 먹는 것도 아니고 먹는 것을 잘 소화시키는 능력이라면 없는 것보다는 낫다. 최소한 섭식 장애에 걸릴 일은 없을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니 강물 속에 살아있는 생물이란 것은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맑아서 가장 깊은 곳까지 보일 지경이다.
오히려 너무 맑으니 이 물을 마셔도 될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메기의 뼈도 잘하면 쓸만하지 않을까? 검을 꺼내 내리쳐보니 머리뼈에 흠집도 나지 않는다. 이것을 가공해서 뭔가 만든다면 제법 쓸모가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이것이 아노더스 사람들이 질색하는 악마라는 것이다.
이 뼈로 갑옷이나 무기 같은 것을 만들어도 사용할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미련은 짧을수록 좋다고 했다. 나는 생각을 접고 다시 훌쩍 뛰어올라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가서 뭐한 거냐?”
“쓸모가 있을지 확인해봤지.”
[뼈를 가공해서 뭔가를 만든 생각이신가요?]
스테이시가 정확하게 짚었지만, 이미 끝난 일이다.
“그런 생각을 잠깐 했는데 가공할 사람도 없고 사용할 사람도 없을 것 같더라고 너희들 저걸로 뭘 만들면 쓸래?”
셋이 동시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에게 슈바르거트나 아스트로퍼가 없다면 나는 마다하지 않았을 텐데 사람의 인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우리는 다시 빠르게 이동했다. 이곳으로 계속 가다 보면 문경시에 도착하기 전에 강에 사는 다른 변이체가 하나 더 있었다.
문경시에서 꽤 오래 있었기 때문에 근처에 놈이 자리 잡고 있던 것을 알고 있던 나는 놈을 간단히 피할 수 있었다.
문경시 인근에 자리 잡았던 수생형 변이체는 피라니아와 다르게 완전히 물속에서만 살았던 녀석이었다. 그래서 피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녀석은 물속에서만큼은 무척이나 강한 녀석이었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목격자의 말로는 다른 변이체로 끌고 들어가서 잡아먹었다고 하니 무척이나 강한 개체였을 것이다.
강의 근처에만 가도 우주 외계인 영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늘어나는 입으로 물고서 끌고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 늘어나는 길이가 20m에 가깝고 엄청나게 빨라서 피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들었다.
그 변이체가 아직도 살아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초인과 초인에 근접한 인간들이 모여서 작정하고 뛰니 속도는 자동차로 달리는 것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저녁이 되기 전에 우리는 문경시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슬라이트와 자칼이 밤에 남아서 수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지만, 억지로 돌려보냈다.
문경시와 문경시 인근에 살았던 놈은 지금 친구들이 작전을 짜고 뭘 한다고 상대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다. 변이체가 약해졌다고 가정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변이체야 이 대한민국 안에만 해도 얼마든지 많이 남아있었다. 친구들이 7성에 오르기 전까지는 조심하는 것이 맞았다.
친구들과 스승님을 돌려보내 놓고 나는 혼자 앉아서 식사를 했다. 통로가 열리자 밖에 폴켄이 치킨을 한 바구니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어서 그것을 받아들고 돌아왔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홀로 앉아 치킨을 뜯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치킨을 먹으면서 확실히 섭식 강화의 효과를 느꼈다.
난 원래 뭔가를 많이 먹는 체질이 아니다. 능력을 사용하고 난 후 어쩔 수 없이 사탕을 많이 먹긴 하는데 그 외에 식사는 굉장히 소식을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치킨이 끝도 없이 계속 들어간다. 그리고 소모되었던 에너지가 빠르게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먹는 양이 늘어났지만, 소화 흡수력이 좋아진 것 같다.
수북이 쌓인 닭 뼈를 내버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아직도 물속에 그 녀석이 사는지 알아볼 시간이었다.
예전에 변이체의 팔에서 뽑아낸 덕분에 수중 호흡 능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물고기처럼 수영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초인이기에 보통 사람보다야 훨씬 빠르겠지만, 진짜 수중생물과 무식하게 물속에서 수영시합을 할 생각은 없었다.
녀석이 살았던 문경시 외곽의 강줄기를 따라 걷다 보니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탐지 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초감각이 저 멀리 물가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왔다.
이놈은 아직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수중형이라서 먹이를 찾아 먹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든 버틴 모양이었다.
돌개미처럼 동면하던가 뭐 대충 그런 것이겠지만, 딱히 궁금하진 않았다. 내가 변이체에 대한 논문을 따로 쓸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지 않을까.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자 어스름한 저녁임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강가의 말라비틀어진 고목에 무언가가 커다란 것이 붙어있었다.
“번데기?”
말 그대로 거대한 번데기였다. 먹는 번데기야 작으니까. 별로 징그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4m가 넘는 번데기는 별꼴을 다 본 내가 보기에도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 저것은 지금 꿈틀거리면서 움직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보통 여자들이 봤으면 기겁할 장면이었다. 마법사라서 저런 종류에 내성이 높은 스테이시라도 저것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움직인다는 것은 놈이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다. 꼴을 보니 곧 튀어나올 것 같다.
물속에 살다가 고치를 트는 생물이 뭐가 있었더라? 생물 시간에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해둘 것을 그랬다. 그래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뭐가 나오든 죽여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변신 시간을 지켜줄 정도로 매너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저것이 뭐가 됐든 밖으로 튀어나오면 귀찮아질 것이 뻔하니 나오기 전에 처리할 생각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검을 박아넣기만 하면 된다. 그럼 나머지는 슈바르거트가 알아서 해줄 것이다.
푸학!
내가 아주 간발의 차이로 늦었다. 번데기의 윗부분이 폭발하듯이 터지면서 무언가가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것은 하늘 위에서 두 쌍의 투명한 날개를 활짝 펴고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수중형 변이체를 상대하러 왔더니 느닷없이 비행형 변이체를 상대하게 되었다. 수중형보다 월등하게 상대하기 어려운 것이 비행형 변이체다.
보통 곤충들은 번데기에서 나오면 날개를 펴고 말릴 시간이 필요하지 않던가? 하지만 저것은 보통 곤충이 아니고 변이체니까.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것은 날갯짓을 하며 그 자리에 떠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나에게 고정했다. 크고 투명한 날개 두 쌍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녀석은 무척 예쁘장하게 생겼다.
아마도 내가 본 변이체 중에서는 가장 미형이 아닐까 싶은데 어디까지나 변이체 기준일 뿐이다.
이제 나도 스승님이나 에인프라흐 공작 정도는 아니어도 오러를 제법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예전보다 실력이 월등히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절대적인 오러의 양이 적다 보니 제대로 효과가 나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것도 제법 잘 할 수 있다. 슈바르거트에 세겹으로 중첩되었던 오러 한겹을 떼어내 건방지게도 공중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녀석에게 날렸다.
날카로운 초승달 형태의 오러는 저녁 하늘에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정확히 놈에게 날아갔다. 물론 그 위력은 당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절대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