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157화 (157/206)

157. 날다

순간 놈의 표정을 보았다. 사람과 잠자리의 얼굴을 묘하게 섞어놓은 것 같은 얼굴은 살짝 비웃는 것처럼 묘하게 일그러지더니 내가 날린 오러를 가볍게 피해버렸다.

9성 기사가 날린 오러를 공중에서 가볍게 피했다. 친구들을 억지로라도 돌려보낸 것이 천만다행으로 느껴졌다. 이놈은 여태까지 내가 지구로 돌아와 만났던 변이체 중에서 가장 강한 녀석이다. 전성기의 변이체 어쩌면 그 이상이다.

부우우웅!

녀석의 거대한 날개가 고속으로 움직이며 묘한 저음의 울림을 저녁 강가에 퍼트리고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녀석의 움직임은 마치 벌새나 잠자리를 닮은 것 같다. 어쨌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중에 떠 있는 저 녀석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

오러를 날리는 방법이 통하지 않으니 사실상 내가 녀석에게 원거리에서 타격을 가할 방법이 없다. 광검제가 무슨 방법으로 마왕과 그런 공중전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점프를 해서 녀석을 친다? 물고기와 물속에서 싸우자고 하는 것과 똑같은 짓이다. 공중은 저 녀석의 영역이다.

끽끽!

녀석이 기계가 삐걱거리는듯한 높은음의 기묘한 소리를 냈다. 입에서 내는 소리는 아니다. 몸 어딘가에서 나는 소리인데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녀석은 공중에 떠서 마치 간 보듯이 이리저리 움직일 뿐 나를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변이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이다. 변이체라면 나를 발견하는 즉시 달려들었어야 했다. 이놈도 아귀처럼 인간을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여러모로 골치 아픈 상대다.

고속의 비행형 변이체라는 것부터가 인간으로서는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형태였다. 전생에 비행형 변이체를 몇 번 만나본 적이 있다.

그때 만났던 놈들은 저 정도로 고속으로 움직이는 능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들은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날지 못하는 인간에게 비행형 변이체는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존재다.

저 잠자리 같은 놈을 전생에 만났다면 아마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놈은 충분히 강한 개체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위험한 지가 그리 강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더 강하다는 뜻이다.

적어도 언제든지 도망은 칠 수 있으니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뭐하냐? 와 봐”

검을 까닥거리며 도발을 했지만, 녀석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곤충을 눈을 하고 공중에서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뭐 하는 짓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먼 거리에서 다른 움직임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문경시 쪽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북쪽의 예천군 방향에서도 또 하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엔 남쪽의 의성군 쪽에서도 뭔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원군을 부른 거였나?”

문경시 쪽에서 달려온 녀석은 알고 있는 녀석이다. 과거에 문경시 쉘터를 박살 냈던 녀석이다. 전성기의 그때와 달리 외형은 조금 볼품이 없었지만, 한 지역의 주인인 만큼 여태까지 살아남았던 모양이다.

문경시의 쉘터를 박살 냈던 변이체를 우리는 평소에 빨간 풍뎅이라고 불렀었다. 풍뎅이처럼 반짝거리는 갑각질의 갑피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것이 빛을 받으면 진짜 풍뎅이처럼 무척 예쁜 색으로 반짝이고는 했었다.

물론 그런 예쁜 색을 보일 때보다는 사람 피를 뒤집어써서 붉은색일 때가 더 많았다. 빨간 풍뎅이의 갑피는 무척이나 단단해서 화약 무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문경시 쉘터가 무너질 당시에 쉘터장이 어디에 숨기고 있었던 것인지 대전차 미사일을 쐈었는데 녀석은 껍질에 흠집도 가지 않은 상태로 밀고 들어와 대학살극을 벌였었다.

그랬던 빨간 풍뎅이는 여기저기 흠집이 나고 낡은 갑피를 두르고 나타나 잠자리의 발밑에서 얌전히 대기를 하고 있었다. 역시 정상이 아니다.

잠자리에게 돌개미 여왕처럼 정신 조종을 하는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이윽고 예천군과 의성군 쪽에서 접근했던 녀석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놈들은 처음 보는 놈들이지만, 짐작이 가는 것은 있었다. 이놈들이 실제 예천군이나 의성군에서 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즉 이놈들은 자신의 구역을 가지지 못하고 근처에서 밀려난 떠돌이들이다.

그런데 이 녀석들도 빨간 풍뎅이처럼 잠자리의 밑에서 대기를 하기 시작했다.

“잠자리 새끼 주제에 무슨 여왕벌 흉내를 내려고 해?”

오히려 좋다. 근처에 있는 놈들을 한 번에 소탕할 기회다. 여전히 위험감지는 심각한 경고를 보내지 않고 있었다.

내가 한마디 하자. 잠자리 쪽에서 예의 그 거슬리는 고음이 다시 울리기 시작하더니 불러 모은 세 마리가 나를 둘러싸듯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웃기는 놈들이네”

변이체답지 않다. 어쩌면 저 잠자리는 한종류의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예천군 쪽에서 달려온 녀석은 도착하자마자 사족보행에서 이족보행 형으로 모습을 바꿨다. 신체 변형을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보아 도플갱어의 일종일 것이다.

의성군 쪽에서 나타난 놈은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태백시를 영역으로 가지고 있었던 미친개와 형태가 비슷하다. 뭐 비슷한 종류가 아닐까 싶다.

끼이익! 끽!

내가 저 고음을 알아듣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상으로 보면 누가 들어도 공격 명령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 마리가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가 왜 이 녀석들을 불러들여서 마음대로 하게끔 그냥 두었을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먼저 팔을 길게 늘여 찔러 들어오는 도플갱어의 날카로운 촉수를 피하면서 잘라내 주었다. 그러자마자 미친개 친구 같은 녀석의 커다란 입이 내가 있던 자리를 물어뜯었다.

그러나 당연히 피할 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대한 몸체로 밀고 들어오는 빨간 풍뎅이였다.

잠자리가 직접 조종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몰라도 제법 괜찮은 합공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텅!

중전차처럼 밀고 들어오던 빨간 풍뎅이가 방패로 변한 아스트로퍼에게 막혀 뒤로 튕겨 나갔다. 아스트로퍼는 던전에서 보물 하나를 더 흡수하면서 더 강해졌다. 그리고 조금 더 똑똑해졌다고 해야 할까? 인공지능이 조금 더 강화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사람 말을 안 듣는 느낌도 있지만, 이럴 때는 알아서 상황 판단하고 움직여주니 훨씬 좋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스트로퍼가 빨간 풍뎅이를 막아줄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었기에 나는 뒤를 노렸던 미친개의 목을 그대로 잘라냈다. 9성 기사의 검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떠돌이 변이체 따위가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미친개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미친개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목이 잘린 주제에도 훌쩍 뛰어오르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목을 노렸다. 그리고 그사이에 도플갱어가 몇 개의 촉수를 더 만들어 찔러 들어왔다.

나는 아예 빨간 풍뎅이 쪽으로는 등을 돌리고 미친개와 도플갱어를 상대했다. 풍뎅이가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발로 아스트로퍼를 후려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정도로 어떻게 될 아스트로퍼가 아니다.

그 사이에 도플갱어의 촉수를 잘라내고 진짜 미친 것처럼 목이 없는 상태로 달려드는 미친개의 앞다리를 잘라냈다.

놈들을 벨 때마다 슈바르거트는 녀석들의 에너지를 쭉쭉 빨아먹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약해질 대로 약해진 떠돌이 변이체인데 슈바르거트에게 당하자 힘이 쭉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미 미친개는 거의 무력화가 되었고 나는 도플갱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플갱어가 얼굴을 변형시켰다.

“살려주세요!”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였다. 어딘가에서 이 녀석에게 잡아먹힌 희생자일 것이다.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다.

도플갱어가 여자아이의 얼굴을 하고 도망치듯이 뒤로 몸을 뺐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은 도망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수작이다.

검을 휘둘렀다. 다시 만들어두었던 세겹의 오러중에 하나를 쏘아냈다. 도플갱어가 반으로 찢어지는 것을 감상할 틈도 없이 나는 뒤를 돌아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촹!

검이 막혔다. 도플갱어도 미친개도 거침없이 베어 넘겼던 슈바르거트가 이번엔 적을 가르지 못했다.

소리도 없이 뒤로 날아온 잠자리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잠자리가 불러낸 세 마리의 변이체는 처음부터 눈속임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공중에 있는 녀석이 내려오지 않을까 봐 속아준 척한 것이다.

그렇게 방심시킨 후 크게 한 방 먹이려고 했던 것인데 잠자리가 공격을 막아낼 줄은 몰랐다. 잠자리도 자신의 공격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지 잠시 몸이 굳어있었다. 역시 이 녀석은 아귀처럼 인간화가 되어있었다.

순수한 변이체였다면 미친개처럼 목이 잘리더라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어야 했다. 덕분에 나에게 다시 기회가 생겼다.

녀석이 멈칫거린 찰나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검이 움직였다. 놈이 세 쌍의 다리 중 두 개를 움직여 여유롭게 그것을 막아내려고 했지만, 내 검은 처음부터 몸통을 노리고 있지 않았다.

방향을 튼 검이 녀석의 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놈이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샤악!

얇은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자랑이었을지도 모르는 투명한 날개가 잘려 나갔다. 그리고 날개를 잃은 녀석은 당연하게도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이게 인간의 검술이다. 이 새끼야.”

지구에서만 살았던 변이체 주제에 이런 고급검술을 구경이나 해봤을까? 인간을 우습게 본 대가는 이런 것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왜 하필 인간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인간을 따라 해서 녀석들이 얻는 이득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날아다닐 때는 곤충 중에서 하늘의 제왕에 가깝지만, 날개가 날려서 땅에 떨어진 잠자리는 다른 곤충들의 먹이일 뿐이다.

눈앞의 잠자리 변이체도 마찬가지다. 녀석이 까다로운 것은 공중에 있을 때뿐이지 땅에 떨어진 이상 다른 변이체와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녀석은 전성기의 변이체와 거의 비슷한 힘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나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빨간 풍뎅이의 무적일 것 같았던 갑각은 오러를 버티지 못했고 몇 차례는 빠른 움직임으로 검을 피해내고 막아내던 잠자리도 날개가 떨어진 잠자리의 운명이 그렇듯이 결국 목이 떨어졌다.

마지막 확인 사살까지 마치고 난 후 정산의 시간이 왔다. 잠자리가 변이체를 불러 모아준 덕분에 오늘은 수확이 좋다.

도플갱어에게서 신체 변형을 다시 얻으며 능력이 강화되었다. 미친개에게서는 이번에도 후각이 아니라 신체 강화를 얻었다.

의외인 것은 빨간 풍뎅이였는데 피부를 강화하거나 경질화 하는 그런 능력을 생각했는데 얻은 능력은 ‘위장’ 이었다. 아마도 풍뎅이가 반짝거리거나 핏빛으로 물들거나 했던 것이 능력이었던 모양이었다. 인간 카멜레온이라도 되는 걸까? 사용하기에 따라선 유용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직접 사용해보는 것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오늘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잠자리 차례가 왔다.

놈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었던 ‘성장’이나 혹은 근처에 있던 녀석들을 불러 모아 조종했던 정신 교란의 상위기술 같았던 능력도 좋았다. 어느 것도 나에게는 버릴 것이 없는 좋은 능력이었다.

“음?”

그러나 막상 흡수된 능력은 또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비행?”

정확히는 ‘고속 비행’ 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날개가 없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잠자리도 그 큰 덩치를 얇은 날개 두 장을 아무리 펄럭거린다고 해도 그 정도 속도로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이 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날아볼까?”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하늘 위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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