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183화 (183/206)

182. 위험한 바다

정말 많은 변이체를 보았지만, 레이저를 쏘는 변이체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엄청나게 위력적인 공격능력이었다. 갖고 싶은 능력이었다.

원거리 공격 수단이 딱히 없는 나에게는 마침 딱 좋은 능력이다. 사용 조건이 설마 저 녀석처럼 대머리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겠지?

“크허헝!”

여러번 사용하면서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사자후를 한번 질러준다. 굳이 이렇게 짐승소리를 내진 않아도 되지만 그것은 사자후가 아니니까.

놈이 몇개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많아봐야 서너개일 것이다. 운좋게 레이저를 쏘는 능력을 처음에 봉인시킬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쉬운 전투가 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내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놈의 머리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땅을 박찼다.

후끈한 느낌이 들며 거대한 빛의 기둥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방향 전환이 없이 정직하긴 했지만, 전속력으로 하강할 때 족히 수백킬로의 속도는 되었을텐데도 적중시켰던 레이저다.

미리 예측하고 피하지 않았다면 맞았을 것이다. 아스트로퍼도 좀 쉬어야한다. 물론 그냥 맞는다고 해도 오러의 방벽이 어느정도는 막아줄 것이지만, 확실하게 막아낸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 레이저를 연속해서 쏠 수 있는 것은 아닌듯 하다. 즉 지금부터 몇 초간은 나의 턴이다. 9성 기사에게 100m가 조금 넘는 거리는 제약이 될 수 없다.

내가 폭발적인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가며 거리를 줄였지만, 변이체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뒤로 물러나며 시간을 벌고 다시 한번 공격을 노리겠지만, 변이체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다. 이것이 인간 혹은 반마와 진짜 변이체의 차이다.

녀석은 양손바닥에 있는 입에서 괴성을 지르며 오히려 앞으로 뛰어나왔다. 놈의 움직임이 무척 빨랐다. 단순히 레이저 공격만 가지고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그 정도는 되니 대도시의 주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와 변이체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슈바르거트에 오러가 층을 쌓아올리며 당장이라도 변이체의 힘을 흡수하고 싶은 혓바닥처럼 넘실거렸다.

그런데 첫번째 격돌이 일어나기 직전 녀석의 머리가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레이저의 쏘던 텀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빠르다.

둘 사이의 거리는 십여미터 피하기엔 늦었다. 그렇다면 몸으로 받아낸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몸 주위에 오러의 방벽을 쌓아 공격을 대비하며 그대로 부딪혔다. 변이체의 양손에 달린 입이 크게 벌어지며 날카로운 이빨이 슈바르거트를 막아섰다.

우드득!

양손에 달린 입으로 슈바르거트를 받아냈다. 이빨 수십개가 잘려나가고 부러졌지만, 놀랍게도 놈은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이빨로 오러가 몇겹으로 둘러진 슈바르거트를 꽉 물고 놓지 않았다. 몇겹으로 이루어진 오러가 거칠게 날뛰며 녀석의 손인지 입인지 모를 것을 박살내고 있었지만, 검을 쉽게 놓아줄 것 같지 않았다.

여태까지 내 공격을 이렇게 받아낸 변이체가 있던가? 역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놈들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욱 봐줄수는 없었다.

슈바르거트를 감싸고 있던 오러를 한꺼번에 쏘아냈다. 이미 걸레처럼 변해있었던 변이체의 입이 터져나갔다. 어쨌든 이제는 내 차례다.

녀석의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머리가 바로 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빛이 쏘아졌다.

지이잉!

대기를 순간적으로 태워버리는 고열과 빛이 덮쳐왔다. 오러로 벽을 만들고 가까스로 풀려난 슈바르거트의 검면을 앞으로 내밀어 근거리에서 쏘아지는 레이저를 막아냈다.

오러의 방벽으로도 막을 수 없는 열이 뚫고 들어와 살을 태웠다. 그런데 생각보다 막을만 하다. 사실 꽤 큰 피해를 입을 줄 알았다. 여태까지 레이저의 위력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맞았다.

‘아, 시간?’

원래 쏘아내던 시간보다 좀 당겨서 사용했으니 위력이 줄어드는건가? 나름 충전식이었던 모양이다.

여태까지와 다르게 길게 쏘아지지 못한 빛의 기둥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재생력이 재빨리 일을 시작하며 벌겋게 익은 피부를 재생시키기 시작했다.

레이저가 쏘아질 때 눈을 보호하기 위해 눈을 감았었다. 눈은 재생시키려면 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그래도 완전히 보호하진 못했다. 눈꺼풀이 익으면서 망막에도 조금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눈을 뜨니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초감각으로 주변을 탐지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눈을 감고 있더라도 움직이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그 사이에 변이체가 오러에 터져나간 양 팔을 무기처럼 찔러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흐릿한 시야에서 녀석의 머리가 다시 빛나는 것이 보였다.

충전식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 연속으로 다시 쏴봐야 그리 큰 위력은 없을 것이다. 찔러들어오는 팔을 피하고 슈바르거트를 빛나는 머리에 그대로 찔러넣어줬다.

소리는 없었다. 놈에게는 소리를 질러야할 입이 이미 없었으니까. 막 달아오르기 시작한 머리에 박힌 슈바르거트에게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가 빨려들어왔다.

그것을 그대로 오러로 전환해 놈의 머리와 몸속을 그대로 헤집어주었다.

털썩!

잠시 후 광주의 주인이었던 녀석이 힘없이 쓰러졌다. 여태까지 만나본 변이체와는 확실히 다른 녀석이었다.

이런저런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소실된 체력을 복구하기 위해 사탕을 씹어먹으며 기다리자 눈이 회복되며 사물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레이저를 쏘는 능력을 갖고 싶지만, 녀석의 능력이 하나가 아닌 것을 확인했으니 운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뭐 언제는 운이 있었던가? 이렇게 새로 태어나 운좋게 막강한 힘을 얻은 것을 보면 운이 없는것 같진 않은데 운을 그런 쪽으로 다 썼는지 뽑기 운 같은것은 좋지 않은 편이다.

마음을 비우고 예전 모바일 게임을 할 적에 가챠 뽑기를 하는 심정으로 변이체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뽑는다고 해도 무조건 좋은게 아닐 수도 있다. 대머리여야만 사용할 수도 있는것 아니겠는가? 그런 것은 안 걸리는게 차라리 낫다.

그리고 손이 닿는 순간, 이게 왠일인지 대박이 터졌다. 레이저를 쏠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하게 이것은 레이저를 쏘는 능력은 아니었다. 변이체가 그렇게 활용을 했을 뿐으로 빛을 조종하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충전이 필요했다.

나는 대머리가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빠르게 충전이 되지 않았다. 사실 대머리 때문인 것은 아니라 변이체는 좀 더 빠르게 충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변이체처럼 빠르게 강력한 레이저를 연발로 쏘는 것은 불가능할것 같았지만, 충전해두고 있다가 쏘는 것은 가능할것 같았다. 비장의 한발이라고 해야할까.

녀석처럼 꼭 머리에서 쏴아햐는 법도 없는것 같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머리로 쐈다가 머리카락이 다 타버려서 대머리가 될지도 모르니까.

광주까지 정리를 한 후 내가 가야할 곳은 더 아래였다. 반쯤 녹았던 검에서 읽은 기억에는 대구의 불거인을 상대했던 수수께끼의 인물이 언급했던 장소는 바로 제주도였다.

나에게 섬지역은 미지의 장소다. 대격변 이전에도 제주도를 포함해 섬으로 여행을 간 적이 한번도 없을 뿐더러 이후에도 섬에서 내륙으로 피난을 온 생존자는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일단 바다에 사는 변이체들이 너무 강력해서 배편이 끊긴 것이 가장 컸고 비행능력자들도 섬에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오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당장 본인도 살기 어려운데 목숨을 걸고 그런 것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광주에서 남하해 제주도를 향해 날았다. 제주 관광을 이런식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제주에는 과연 대격변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존자들이 하는 말로 어떤 섬은 안전하다. 어떤 섬이 낙원이라더라 하는 소문이 많았다. 물론 사실은 하나도 확인되지 않은 그냥 소문이었다.

그래도 섬에는 사람이 적게 살아서 변이체가 나타날 확율도 적어 내륙보다는 훨씬 안전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해양변이체가 막아낼 힘이 있다는 가정하에서는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섬에 살았던 생존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나보다 먼저 죽은 것만은 확실했다.

바다를 건너는 도중 파란 바닷물 아래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동체들을 확인했다. 부산에서 만났던 물개보다 몇배는 더 거대해 보이는 대형 해양 변이체였다. 그런 것들을 바다는 건너는 동안 몇마리나 봤다.

대격변 초기에는 배나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도망가려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봐야 전세계가 똑같은 상황이었으니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을 것이다.

비행기들도 비행형 변이체들에게 격추당하는 것이 많았지만, 그래도 해외까지 도착한 것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초기에 외국에 있다가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온 생존자를 만난 적이 있으니까. 물론 그 이후로는 비행기의 운항이 전면 중지 되었다.

그러나 배편으로 돌아왔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저런 대형 변이체들이 널려있던 바다를 건너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당장은 저것들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예전에 얻어놓은 수중 호흡 능력이 있으니 물속에서 싸우는 것이 불가능 하진 않겠지만, 굳이 불리한 장소에서 싸울 이유도 없고 바다의 모든 변이체를 사냥하려고 한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유유히 바다를 건너고 있는 도중 제주도가 가까워지기 시작할 때 제주도쪽에서 무언가가 날아올라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 시대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단 두가지 뿐이다.

나 혹은 비행형 변이체다. 그것은 처음엔 작은 점이었지만, 급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그것의 주위에 구름같은 것이 보이는 것을 보면 저것의 속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속도로는 싸움이 되지 않는다.

이리저리 회피기동을 해봤지만, 그에 맞춰서 반응하는 것이 보였다. 그렇다면 피하는 것도 어렵다. 그렇다면 정면승부 밖에 남지 않는다.

마침 딱 좋은 것이 있다. 날아오는 것은 검은색의 새 형태였다. 군데군데 흰색 깃털이 보이는 것이 까치를 연상시키지만, 오랜만에 제주도를 찾아온 반가운 손님을 찢어죽이려고 날아오는 것을 보니 전통이 파괴된 느낌이다.

놈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는 몇초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새로 얻은 능력을 써먹어보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손으로 정확히 조준한 레이저가 정면으로 날아오는 까치 변이체를 향해 쏘아졌다. 충전했던 에너지를 남김없이 모두 사용했다.

빛의 기둥이 정확히 까치 변이체에게 적중하며 그렇지 않아도 까만 색이었던 녀석을 새카맣게 태워버렸다. 하지만 상대는 이 시기까지 살아남은 변이체다. 이 정도로 죽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했다. 녀석이 연기를 뿜어내며 바다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고속비행보다 몇배는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녀석의 능력이 꽤 탐이 났다.

그래서 녀석이 추락하고 있는 쪽으로 빠르게 날아 쫓아갔다. 추격해서 끝을 내고 능력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레이저도 운좋게 한번에 뽑혔으니 이번에도 꽤 괜찮을 능력을 뽑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데 바다 속에서 구경하고 있던 관중께서 난입했다.

푸하하학!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오르며 바다 속에서 공중전을 구경하고 있던 대형 변이체가 튀어나왔다.

악어처럼 생겼지만, 워낙 거대하다보니 공룡 영화에서 봤던 해룡처럼 보이기도 했다.

촵!

수백미터의 물기둥과 함께 솟아오른 그것은 추락하던 까치를 한입에 삼키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조금만 빨리 까치를 쫓아갔다면 한입에 삼켜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변이체끼리 싸우는 것을 처음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한입에 삼켜버리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황당했다. 그렇다고 쫓아가서 저 악어에게 삼킨 것을 내놓으라고 따질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고도를 높이고 제주도를 향해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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