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194화 (194/206)

193. 마신교의 역습

왜 마신교가 제국의 유적에서 뭔가를 찾아서 가져간다고만 생각했을까?

역으로 뭔가를 놓고 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눈에 띄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다.

나에게는 이것에 관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존재가 아주 가까이 있다.

“아스트로퍼, 제국의 유적에 대해서 알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걸?

일단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자. 그 시대에 태어났고 많은 지식을 저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유적, 아니 그때는 유적이 아니었겠지만, 당시에 대형 건축물을 지을 때 고려했던 점이 있어?”

-너무 많아서 대답을 못 하겠는데?

“아까 왕세자가 보여준 지도 너도 봤지?”

아스트로퍼는 밖에 나와 있지 않아도 주변의 상황을 늘 살피고 있다. 그러니 내가 위험할 때 임의로 발동해서 공격도 막아줄 수 있는 것이다.

-봤지.

“그 장소들에 연관성이 있어?”

제멜아크에서는 제국 시대의 유적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연관성을 찾지 못한 것 같지만, 아스트로퍼라면 다를 수도 있다.

아스트로퍼는 왕세자가 보여줬던 지도를 홀로그램처럼 만들어서 띄웠다. 그곳에는 이미 마신교가 다녀간 지역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제국 시절에는 중요시설에 급이 나뉘어 있었어.

“그랬던가?”

그런 이야기를 얼핏 본 기억이 나기는 한다.

-그랬어. 왜 급을 나눠놨을 거라고 생각해?

“중요도?”

-그건 당연한 이야기지 바보야.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알려달라고.”

-이동 방법이야.

“아?”

-알겠어?

아니 모른다. 그냥 뭔가 생각난 척 추임새를 넣었던 것에 불과하다.

“아니 모르겠는데.”

-흥! 중요시설일수록 무슨 일이 터지면 빨리 가서 사태를 수습해야 될 것 아니야. 그래서 등급이 높은 중요시설일수록 빠른 이동 수단이 갖춰져 있는 거야.

“아?”

이번엔 그냥 추임새가 아니다. 뭔가 알 것 같다.

“그러니까. 여기 마신교가 다녀간 곳들이 모두 등급이 높은 중요시설이라는 거네.”

-맞아. 모두 2급 이상의 시설들이야.

“2급 이상의 중요시설에는 뭔가 특수한 이동시설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래, 황궁에서 직접 이동이 가능한 장거리 이동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지.

그런 거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제국 시절에 소실된 기술이다. 정확히는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 이후에 그것을 구현할 능력을 가진 마법사가 없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장치들은 제국의 멸망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제국이 멸망할 때 그걸 우선으로 파괴했다는 말이 있던데?”

-그랬을 거야. 이쪽에서 이동하기도 쉽지만, 그것을 사용해서 적이 황궁으로 바로 넘어오면 큰일이잖아. 유사시에 가장 먼저 파괴하도록 방침이 정해져 있었어.

“그럼 마신교에서 지금 그 장거리 이동 마법진을 다시 살리려는 건가?”

-그쪽에 주인님과 동등한 실력의 마법사가 있다면 그렇겠지.

그건 아닐 것 같다. 초월급의 마법사가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는 경지를 떠나 아노더스의 인간 역사를 통틀어도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천재였다.

“그건 아닐 것 같은데 그렇다면 놈들이 노리는 것은 뭐라고 생각해?”

-왜 그걸 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멸악의 마법사 정도가 아니라면 써먹을 수 없는 것 아니었어?”

-장거리 이동 마법진이라면 그렇지. 하지만 마법진을 변형시켜서 다른 용도로 써먹을 수는 있을 거야. 물론 그것도 아주 뛰어난 마법사여야 하겠지만.

이미 제국 시절부터 살아왔던 변절자를 보았다. 그런 마법사가 더 있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런데 그 마법진은 다 파괴된 것 아니었어? 그게 아직 남아있기는 한가?”

-가동하지 못하게 망가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겠지. 하지만 주인님이 만든 물건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 것 같아?

아우쿠스 뇌옥을 탐색할 때 어딘가 숨어있는 공간을 발견하진 못했었다.

“아우쿠스 뇌옥도 2급 이상의 시설이었겠지?”

-당연하지. 제국에서 가장 흉악한 놈들을 모두 모아놓았던 곳이니까.

가장 흉악했던 놈들은 아니지 않을까? 당시에 가장 흉악했던 놈들이라면 반마 같은 변절자나 마신교 놈들이었을텐데 놈들은 재판조차 열지 않고 그냥 즉결 처형에 처했었다. 뇌옥엔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법진의 흔적 너는 찾을 수 있지?”

-나를 뭐로 보는 거야? 당연히 찾을 수 있지.

밤에 늦었지만, 나는 여관을 몰래 빠져나가 아우쿠스 뇌옥으로 향했다.

밤하늘을 날아 도착한 아우쿠스 뇌옥에는 의외로 사람이 꽤 있었다. 관광객들은 아니었다. 은신하고 있는 기술이나 움직이는 동선 같은 것을 보면 모두 왕실에서 파견된 정보부처럼 보였다.

다시 한번 초감각으로 뇌옥을 살펴봤지만, 마법진이 설치된 숨겨진 공간 같은 것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여기 어디 마법진이 있다는 거야?”

-이 구역 전체가 마법진이야.

“뭐?”

-주인님의 마법진이 보통 마법사들처럼 물건 위에 낙서하듯 그려놓은 그런 것인 줄 알았어?

애초에 숨겨져 있지 않았던 건가? 숨길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 아우쿠스 뇌옥 전체를 한 번에 보았다. 그런데 봐도 잘 모르겠다.

이러니 후세의 어떤 마법사도 따라 하지 못했던 것이겠지.

“그럼 어떤 식으로 구동이 되는 거야?”

-마법진을 가동하기 위해선 엄청나게 많은 마나가 필요해.

그럴 것이다. 지금도 장거리 이동 기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아주 한정된 조건에서 엄청나게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하고 장거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거리를 이동하기에 제국 시절의 기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 실전된 기술이라고 할 뿐이다.

그런데 정말 엄청나게 먼 거리에서 수십 혹은 수백명을 이동시킬 수 있는 장치라면 그 마나 소모량이 엄청난 것이 당연했다.

“그렇겠지. 그럼 파괴된 것은 그 핵심 장치나 핵 같은 것만 파괴된 거야”

-맞아. 저쪽에 빈 곳이 보이지?“

넓은 대지 위에 여러 채의 건물이 세워진 아우쿠스 뇌옥에는 한 구석에 꽤 넓은 면적의 빈 공간이 있었다.

-저기가 핵심 기관이 있던 자리일 거야. 깔끔하게 날아간 거지.

제국의 멸망때 자폭하며 날아간 흔적일 것이다.

“그럼 나머지 기관들은 지금도 구동이 되는 건가?

-그건 나도 모르지.

아스트로퍼도 모른다면 나도 당연히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일단 저런 시설이 남아있으니 언제가 되었든 포교자를 비롯한 마신교 놈들이 찾아오는 것은 확실할 것이다.

“그럼 놈들이 재사용도 하지 못하게 더 부수는 것은 어떨까?”

-그건 가능해

아스트로퍼의 도움을 받아 건축물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겨진 마법진의 회로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예전이라면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벽 안이나 땅속에 숨은 연결선 같은 것도 오러를 주입해 제거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정도면 누가 와도 복구하지 못할거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제거작업을 한 지 3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젠장 이거 꽤 힘들었다.”

나로서도 꽤 힘든 작업이었다. 작업의 난이도도 그랬지만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퍼붓는 아스트로퍼 감독님 덕분이었다.

-그래도 나 아니었으면 하지 못했을걸?

“그건 맞다. 그런데···응?”

감각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반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왔다.”

나는 빠르게 움직였다. 작업을 하던 뇌옥의 안을 빠져나가 감각이 느껴진 곳으로 날아갔을 때는 통로에서 튀어나온 반마들이 이미 근처에 있던 정보부 요원 몇 명을 살해한 뒤였다.

여전히 열려 있는 부교주의 통로에서는 반마들이 일사불란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며칠 동안 이런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해서 꽤 많은 작전을 생각했었다. 당장 저 통로 안으로 들어가면 부교주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만약 저 통로 건너편에 부교주 뿐만 아니라 교주까지 있다면? 깊게 생각해볼 것도 없이 너무 슬픈 엔딩이 되어버릴 것이다.

부교주가 통로 밖으로 나와준다면 모르겠지만, 통로를 건너가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일단 기본적인 목표는 포교자다.

반마들이 약 200마리 정도 넘어온 후에 일반적인 반마가 아닌 것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폭검 고트린 후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겉으로만 봐서는 변절을 한 것인지 조종당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예전에 포교자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던 고트 백작도 겉으로 봐서는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트린 후작의 뒤로 마법사 로브를 입고 있는 여러 명이 통로를 건너왔다. 멀리 있지만, 꽤 높은 경지가 느껴진다. 저 마법사들이 이곳에서 작업을 할 일꾼인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교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기세등등한 얼굴로 특유의 기묘한 영역을 전개하고 있었다.

일단 목표물이 모두 모였으니 이제 내가 움직일 차례다. 나는 놈들의 감각이 닿지 않을 거리에서 움직이며 높은 하늘 위로 이동했다.

그리고 목표물에 정확히 조준하여 내가 원거리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했다.

손에서 뻗어나간 빛의 기둥이 포교자가 방금 빠져나온 곳을 폭격했다. 큰 폭발음이나 그런 것은 없었지만, 결과는 확실했다.

통로가 사라졌다. 예전에 암테일 영지의 던전에 도전했을 때 통로도 부서진다는 것을 알았다. 통로를 다시 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교주와 내 능력이 같은지는 모르겠다. 부교주의 능력이 한두단계 위의 것이라고 해도 통로가 망가졌을 때 연달아서 사용할 수 없는 것만은 분명했다.

“일단 막아봐.”

이어서 오러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통로가 다시 열리기 전에 포교자를 처치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슈바르거트에서 기관총처럼 쏘아지는 오러가 원거리 공격 보정을 받아 정확하게 포교자를 노렸다.

콰콰콰쾅!

고공에서 쏟아지는 폭격에 지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포교자를 지키기 위해 주위에 있던 상급의 반마와 마법사들이 달려들고 마법을 사용했지만, 그 정도로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오러는 약하지 않았다.

오러의 탄환을 막아내던 반마들이 찢겨나가고 마법사들의 보호막이 물먹은 종이처럼 뚫렸다. 하지만 덕분에 포교자는 아주 짧은 시간을 벌었다.

포교자는 그 혼란 속에서도 상당히 냉철하고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포교자의 실력을 너무 얕잡아 봤던 것 같다.

포교자가 딱히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미리 빠져나왔던 반마들이 몸으로 폭격을 받아내고 그 찰나에 포교자가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녀석도 변이체로 변이를 시작했다. 부하들이 벌어준 시간 덕분에 변이를 마친 녀석은 보통의 반마보다 뛰어났다. 반마라고 하기 보다는 인간성을 가진 순수 변이체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그리고 여전히 주위에는 강한 호위들이 남아있었다. 상급의 반마 열댓 마리, 고트린 후작 그리고 7 서클 이상으로 보이는 마법사 다섯이다. 이것만 해도 상당한 전력이다.

포교자의 부대가 내가 있는 이곳이 아니라 제멜아크의 전력이 모여있는 곳으로 먼저 갔다면 제멜아크의 전력은 오늘 낭패를 봤을 것이다.

저런 전력이라면 완전한 원거리에서만 상대하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거리를 좁혀 밑으로 하강하기 시작하자. 반마 중에 비행 능력이 있는 것들이 날아올라 오기 시작했다.

놈들은 별것 아니다. 급강하하며 검을 몇 번 휘두르는 것으로 단순히 비행 능력이 있는 녀석들을 처치한 후 오러를 길게 뽑아내며 포교자의 핵심 전력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숫자는 저쪽이 많지만,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다. 단지 부교주가 다시 통로를 열기 전에 포교자를 처치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완전히 변이를 마친 포교자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머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고 팔다리는 가느다란 예전에 지구의 사람들이 상상하던 외계인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습이 그렇다고 움직임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보기와 다르게 포교자는 매우 민첩했다. 뱀처럼 꿈틀거리는 오러를 놈이 몇번이나 피해낸 것이다.

놈은 반격할 생각이 없었다. 부교주를 믿고 시간을 끌 생각인 것이 분명했다.

그 사이에 마법사들이 캐스팅을 끝내고 일제히 공격 마법을 퍼붓기 시작했다. 7 서클 마법사 다섯이 순간적으로 뿜어내는 화력은 나라고 해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크게 위협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마법을 튕겨내거나 막아내자 이번에는 상급의 반마들과 고트린 후작이 나섰다.

앞을 막아서는 반마들을 베어내고 고트린 후작의 뒤로 빠르게 이동하여 후두부를 가격했다. 고트린 후작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7성 기사를 때려거 기절시켜본 적이 없으니 힘 조절이 잘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뭐 조금 잘못되더라도 설마 제멜아크에서 이것 가지고 뭐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7성 기사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 반마들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큰 걸림돌이 아니었다. 더구나 반마들은 공격을 피할 생각도 없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반마들을 모두 해치운 내 앞에는 이제 포교자와 마법사들만이 남아있었다.

아직까지도 내가 유리한 것이 분명하지만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포교자에게 조종을 받는다고 하지만 너무 단순하게 밀어붙이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괴물로 변한 포교자의 커다란 머리통에 달린 조그맣고 못생긴 얼굴에 비웃는듯한 표정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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