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부교주
‘뭐지?’
뭔가 수상하다.
근접전으로 단숨에 끝내버리고 싶지만,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초월급이 되었다는 것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실력을 보여줬는데도 포교자놈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거라면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포교자는 변이를 하며 능력이 더 강화되었는지 초감각이 교란되고 있었다. 그래서 근접하는 것이 조금 더 꺼려졌다.
부교주가 다시 통로를 열 수 있는 시간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포교자를 처치하기 힘들다면 마법사들이라고 치워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감각이 막혀있고 근접전을 하지 못하더라도 공격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러로 만들어진 굵은 채찍이 마법사들을 후려쳤다.
마법사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일제히 산개하며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경지의 차이는 분명했고 모든 마법사가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채찍을 피하지 못한 마법사 한명의 허리가 그대로 잘리며 쓰러졌다. 조금 놀란 점은 이 마법사들이 반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변절자도 아닌 7 서클 이상의 마법사를 이렇게 많이 육성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직도 숨겨져 있는 마신교의 저력이 대단했다.
마탑주와 동급의 마법사가 여럿이라니 위협적인 전력이다. 이 마법사들만 전면에 나선다고 해도 라이브러쉬나 제멜아크 왕국이 이를 막아내려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요리조리 공격을 잘 피하는 포교자를 포기하고 마법사들에게 공격을 집중하자 마법사의 숫자가 금세 줄어들기 시작했다.
초감각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해도 원거리 공격 보정을 받는 오러의 연사공격은 고공에서 폭격을 할 때보다 훨씬 가까운 지근거리에서 쏘아질때 더욱 큰 위력을 발휘했다.
마법사들은 오러 채찍을 피하기 위해 산개했다가 연사 공격에 하나씩 제거당했다.
여러 명이 뭉쳐있을 때는 힘을 합쳐 연사 공격을 막아냈지만, 산개하면서 따로 떨어지게 되자 뚫린 보호막을 다시 만들기 전에 쏟아지는 오러의 산탄을 막아낼 수 없는 마법사들은 종이 인형처럼 뚫려 나갔다.
마법사들이 모두 쓰러질 동안 포교자는 그저 상황을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도망가지도 않았고 내가 마법사들을 노리는 사이 틈을 봐서 공격하려는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허세였나?’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녀석의 표정에는 아직도 여유가 있었다. 어쨌든 혼자 남은 포교자는 이제 지켜줄 호위가 없다. 이제는 함정이 있거나 말거나 밀고 들어가서 제거할 생각이었다.
“이제 혼자네?”
혼자 남은 포교자를 도발했다.
“왜 대답이 없어? 아, 맞아 그 얼굴로는 사람 말을 하기 힘들겠구나.”
도발을 하는 사이에도 오러의 채찍은 날카롭게 포교자를 노리고 날아갔다. 하지만 포교자는 이 공격도 제법 여유있게 피해냈다.
공격을 피하는 것에 특화된 변이체라고 해야 할까. 저런 타입의 변이체는 처음 보았다. 주변의 생물체를 조종할 수 있으니 제대로 진화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크크크큭!”
공격을 피한 포교자가 기분 나쁜 웃음을 터트렸다. 오히려 내가 도발을 당하는 느낌이다.
포교자의 능력으로 초감각은 봉인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지만, 묘한 기분이 들어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푸욱!
뒤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어깨를 관통하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시커멓고 거친 악어 꼬리 같은 무언가가 어깨를 뚫고 앞으로 나와 있었다.
노리고 있던 것이 이것이었나? 슬쩍 뒤를 돌아보니 바로 뒤에 통로가 열려있었고 꼬리처럼 보이는 것은 거기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이런 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욕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어깨가 꿰뚫린 채로 통로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끌려 들어가는 순간 바로 영체화를 사용했다. 몸이 영체가 되어 어깨를 꿰뚫은 꼬리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날카로운 손톱이 달려있는 커다란 손이 내가 있던 자리를 쓸고 지나갔다.
일단 거리를 벌렸다. 게임에서나 보던 악마왕처럼 생긴 괴물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저 손은 본 적이 있다. 지난번 장로를 잡아채 갔던 그 손이다.
영체화가 풀리기 전에 신체 변형으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서 덜렁거리고 있는 어깨를 원래 상태로 이어 붙이자 나머지 상태를 복구하기 위해 재생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꽤 큰 피해를 봤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지만, 어깨에 크게 구멍이 나면서 생긴 출혈이 상당했고 신체 변형으로 상처를 막아본 것은 처음이지만, 이것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엄청났다. 물론 지독한 고통은 덤이었다.
괴물과 꽤 먼 거리까지 이동한 후 영체화가 풀리자마자 사탕 한 주먹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오랜만이야. 부교주”
인간일 때의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저 괴물은 분명히 부교주였다.
“다시 만날 땐 죽인다고 했었지.”
괴물의 머리통이지만, 놀랍게도 부교주는 사람 말을 할 수 있었다. 괴물의 구강 구조로도 꽤 정확한 발음이었다. 저게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걸까? 어쩌면 저런 능력이 따로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승님이 늘 나는 잡념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셨는데 강한 적을 앞에 두고도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이것은 고칠 수 없는 고질병임이 분명했다.
마주한 변이체는 강했다. 여태까지 상대했던 어떤 적보다 강한 것은 확실하다. 포교자가 능력을 펼치고 있는 범위를 벗어나자 동작하기 시작한 위험감지가 격렬하게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부교주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우려했던 가장 최악의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혼자네?”
교주가 없다.
이곳이 지구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한가운데였다. 적어도 내 감각에는 다른 어떤 생명체나 변이체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것이 중요한가?”
“중요하지.”
교주가 있었다면 내가 이곳에서 살아날 확률은 제로였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텐데”
“그건 해봐야 아는 거지”
통로를 사용해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부교주의 능력에 대한 정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너는 왜 우리를 방해했지?”
바로 격렬한 전투가 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부교주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것을 왜 막느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는데?”
“우리와 함께하자.”
“이제 와서 회유하는 건가?”
이것도 함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의외의 제안이었다.
“그래, 미천한 나로서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분께서는 너를 매우 신경 쓰고 계신다.”
교주, 아니 마왕이 나를 신경 쓰고 있다니 이것은 또 새로운 정보다. 마왕으로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아주 높으신 분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것이니까. 그것이 나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교주는 어디에 있지?”
“지금은 아주 멀리 계시다.”
그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래 봬도 용사거든.”
“상관없지 않은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 것이 될 것이다.”
“너희 것이 되면 뭐가 달라지는데?”
“썩어빠진 세상을 고칠 수 있지.”
“너도 모르고 있는 건가?”
지구를 오갈 수 있는 부교주조차도 마왕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무엇을 말인가?”
“이곳 말이야. 여기도 예전에는 아노더스 이상으로 많은 인간이 살았던 것을 알아?”
“안다. 죄를 지은 인간들에게 그분께서 벌을 내리셨다고 했다.”
죄를 지은 인간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지구의 인간들이 옳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그냥 내버려 뒀어도 지들끼리 지지고 볶다가 멸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반대의 사람들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벌을 받은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명체다. 그것을 마왕 식으로 해석하여 죄인에게 벌을 내렸다고 하는 것인가?
“사람들은 그렇다 치자. 다른 생물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벌을 받았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는 과정일 뿐이다.”
음, 역시 광신도와는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길 자신이 없다. 대격변 이전이나 이후에나 종교단체와 나는 잘 맞았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신을 직접 영접했던 용사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종교인이 된 건가?
“너 속고 있어.”
“그분은 한 번도 우리를 속이지 않으셨다.”
“역시 말이 안 통하네. 그냥 싸우자.”
“내가 할 말이다.”
변이체와 대화를 한다니 처음부터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자.”
“뭔가?”
“이 말은 참 오랜만에 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내뱉었다.
“괴물 새끼 주제에 사람 말을 하지 마라.”
이미 흉악한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는 부교주의 얼굴이 진짜 악마처럼 변했다.
그렇게 시작한 부교주와 나의 싸움은 그야말로 괴물들의 싸움이었다.
초월급에 오르며 인간의 한계를 몇단계나 벗어난 경지에 오른 나이지만, 부교주는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나처럼 부교주는 수십 개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양쪽에서 능력을 봉인하는 포효가 터져 나오고 고속 비행으로 공중전을 펼쳤으며 어쩌다 공격이 적중해도 신체 변형과 재생력으로 빠르게 상처를 치유했다.
입에서 불을 뿜어내고 눈에 독을 뿌리고 레이저를 쏘아댔다. 초월자를 넘어서 인간이 싸움이라고 볼 수 없었다.
아주 긴 싸움이었다. 때로는 화려한 원거리 공격을 서로 퍼부었고 때로는 가까이 붙어서 개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부교주의 공격을 받아낸 아스트로퍼의 방패가 녹아내리며 아스트로퍼가 비명을 지르며 팔찌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슈바르거트를 부교주의 몸에 박아넣어 생명력을 잔뜩 빨아냈다.
그사이에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 서있는 부교주의 입이 어깨를 물어 살덩이를 한 움큼 뜯어갔다. 부교주의 상처에 마탑에서 얻었던 모든 독을 처넣고 발로 걷어차며 거리를 벌렸다.
싸우기 시작한 지 몇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부교주도 나도 거의 한계점에 도달해있었다.
아무리 초월자와 변이체라고 해도 무한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숨을 헐떡이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처를 재생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고 뿜어내는 기세도 줄어들었다. 그것은 나도 부교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조금씩 내가 승기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교주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신성력이 섞인 오러는 변이체에겐 상극이었고 슈바르거트는 틈이 생길 때마다 부교주에게서 생명력을 흡혈귀처럼 빨아내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내가 이긴다.
부교주가 이를 갈며 다시 몸을 던져왔다. 그러나 움직임이 조금 둔하다. 조금 전에 상처에 쑤셔 넣었던 마탑의 악마용 독이 조금 작용하는 것 같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
나의 반격으로 틈을 보인 부교주의 몸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금세 재생되었지만, 그렇다고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노우볼이 굴러가듯이 부교주의 몸에 생기는 상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상처의 재생이 느려지면서 바닥에 쏟아지는 검은색 피의 양도 늘어났다.
나도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번이나 배가 갈라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팔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아스트로퍼를 다시 주워오기도 했다.
부교주와 나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을 계속했다.
*
부교주가 열었던 통로에 빅터 하네스가 꼬치가 되듯 뚫린 채 끌려들어 가고 통로가 닫히자 혼자 남게 된 포교자는 인간으로 다시 모습을 바꾼 채 통로가 다시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었다. 빅터 하네스와 전투에서 벌어진 큰 소란 덕분에 주변에 사람이 몰렸들었지만, 그것들을 다시 수족으로 삼아 조종해 그사이에 숨었다.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는지 꽤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찾아왔지만, 그것들도 역시 수하로 삼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 때 통로가 열렸다.
포교자는 존경하는 부교주님이 승리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통로가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가 부교주를 영접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통로를 열고 나온 것은 존경하는 부교주가 아니었다.
“오래 기다렸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몸이 굳었던 포교자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