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197화 (197/206)

196. 중심

기상연구소를 중심으로 빠르게 새로운 지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스테이시와 뮤어 아이번은 내가 대충 지어놓은 가건물을 보수하더니 제대로 된 집을 지었다.

꼬꼬 가족들도 지구로 다시 불러들였다. 집에 있는 닭장이 크고 넓긴 했지만,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넓은 땅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꼬꼬 가족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날아다녔다.

스테이시와 뮤어 아이번이 그렇게 새로운 영지를 가꾸는 동안 나는 한국 땅을 벗어났다.

처음은 북한이었다. 사람 수가 적어서일까? 북한에 남아있는 변이체들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그 숫자도 적었다.

대격변 이후 북한이 어떻게 됐는지 정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국보다는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가장 큰 것은 저장하고 있던 물자와 식량이다. 한국은 크고 작은 마트나 각종 저장고 쪽에 비축된 물자와 식량이 꽤 많았다. 대격변 초기에 그것은 매우 컸다.

상대적으로 그런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던 북한의 주민들이 생존에 불리했을 것이라는 것은 안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북한의 주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소문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런 시도조차 할 기회가 없을 정도로 어려웠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그렇게 소리 소문도 없이 멸망했었다.

강한 변이체도 없었기에 북한의 모든 변이체를 모두 처리하는 것은 며칠 걸리지 않았다.

평양을 탐색하다가 북한의 최고 존엄이 피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깊은 지하 벙커도 발견했다. 지하 100m 이상의 깊이에 설치된 벙커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북한의 지배자가 그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함께 백골이 되어 있었다.

모두 머리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살로 추정되었다. 벙커 내부에는 고급품들이 꽤 남아있었다. 거의 쓸모없는 것이었지만, 개봉되지 않은 위스키들은 잘 챙겨두었다.

방송에서만 보던 백두산 천지에 올라 치킨을 뜯고 깃발을 꽂았다. 태극기는 아니고 하네스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이었다.

딱히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까지 있었지만,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남북통일은 성사되지 못했었는데 내가 그것을 이뤘다고 기분이 들어 한 일이었다.

한반도의 통일 후에는 중국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확실히 중국에는 강한 변이체가 많이 남아있었다.

중국의 대도시에는 서울의 지네보다 훨씬 강력한 대형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국을 정리하는 것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 나무가 말했던 지구의 중심을 찾는 일도 중요했지만,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힘을 늘리는 일도 중요했다. 교주가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지금 교주를 만나기 전까지 가장 확실하게 힘을 늘리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강한 적과 싸울수록 진화된 성장 능력은 체감이 될 정도로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거기에 변이체들로부터 흡수하는 이능력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절대 강자와의 싸움에서 이능력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부교주와 싸움에서 이능력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것은 인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변이체와 변이체의 싸움에 더 가까웠다.

물론 마왕의 힘을 받은 교주와의 싸움은 또 다르겠지만,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한국을 벗어나 대륙에서 만나는 강한 변이체들의 능력은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이 많았다. 포교자처럼 감각을 흐리는 영역을 전개하는 놈도 만났고 정신 조종의 진화판 같은 강력한 뇌파를 발산하는 녀석도 있었다.

몸을 전기로 변환시키거나 작은 언덕을 들어서 던질 정도로 아주 강력한 염동력을 사용하는 변이체도 만났다. 그런 변이체들을 하나씩 이겨내고 능력을 흡수하며 나는 강해졌다.

중국과 러시아 일부를 토벌하고 난 후에는 일본을 향했다. 일본은 딱히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대격변 이후에 몇 번 정도 엄청난 기상이변이 있었던 적이 있는데 일본은 그 영향을 제대로 받은 모습이었다.

지진을 얼마나 정통으로 맞았는지 육지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있었고 무슨 산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산이 분화한 곳도 있었다. 그렇게 남아있는 얼마 되지 않은 육지에는 북한보다도 변이체가 더 적고 약했다. 변이체도 버티지 못하는 가혹한 환경에서 인간이 오래 버텼을 리가 없다.

이렇게 보면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내가 일본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내가 위험감지를 이용해 요령껏 움직였다고 해도 살아남은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한국 근처의 동아시아 인근을 모두 토벌하고 난 후에는 본격적으로 지구의 중심을 찾기 시작했다. 적도를 중심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기도 하고 북극점과 남극점에도 방문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태백 기상연구소의 새로운 영지도 돌봤다.

기상 연구소의 새로운 지구는 크게 손댈 것 없이 그저 새로운 생명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 불과했으나 실질적으로 지구에서 머물며 영지를 돌보고 있는 스테이시나 뮤어 아이번은 가끔 아노더스로 돌아가 물자를 챙겨오거나 휴식을 취해야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노더스의 일을 완전히 등한시할 수는 없었다. 본의 아니게 너무 커져 버린 하네스 파벌의 일도 봐야 했고 암테일 영지에도 가끔 들러야 했다.

왕실과 협력을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라이브러쉬 왕국은 공식적으로 마신교를 적으로 선포하며 마왕과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마탑에서 발명한 반마 판별기로 아직도 숨어있는 반마들을 색출해 제거했다. 각계각층에 악마가 숨어있던 것이 발각되며 한동안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다.

왕실 내부에서도 반마가 아니면서도 마신을 따르는 교도를 찾아내어 숙청에 들어갔다. 정보부에서부터 시작한 숙청작업은 점점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마신교도가 숨어들어 정보 조작을 당했던 왕실 정보부는 치욕을 씻기 위해서인지 정보부 요원들이 이를 악물고 마신교도들을 찾아내기 위해 눈을 벌겋게 뜨고 돌아다녔다.

반마는 확실히 악마로 변하니 별 충격이 없었지만, 일반인 중에 마신교도들이 잡혀가기 시작하자 왕실에서 공포 정국을 만들어 귀족들을 억압하려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으나 그것은 에인프라흐 공작의 파벌과 하네스 파벌이라는 두 개의 거대 파벌이 나서서 눌러버렸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마신교도인 것이 적발되어 처형당했다.

라이브러쉬 왕국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제멜아크 왕국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마신교를 뿌리뽑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정도쯤 되면 마신교에서 뭔가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 지구로 건너가지 않고 긴장한 채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마신교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비록 핵심 간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모두 당했다고 해도 여전히 장로급의 인물들은 남아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교주가 남아있었는데도 마신교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할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마신교에 대한 경계가 조금 느슨해져 나도 다시 지구로 건너가 아직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지구의 중심을 찾고 있을 때 사고가 터졌다.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라이브러쉬 왕국의 대표로 온 나는 제멜아크 왕국의 왕궁에 도착해 왕세자에게 위로를 건넸다. 아니 이제 왕세자가 아니게 될 것이다. 왕세자는 곧 제멜아크의 국왕이 된다.

제멜아크 왕국의 국왕 레안드로 제멜아크가 마신교의 손에 암살당했다. 대륙을 뒤흔드는 대사건이었다.

“자네의 경고를 좀 더 새겨듣지 못한 내 잘못이네.”

“전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마신교의 잘못이지요.”

나는 왕세자를 위로했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로써 라이브러쉬와 제멜아크 양 국가는 마신교에 대해 더욱 경계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그동안 몇번이고 마신교의 위험성에 대해 강조해왔다. 하지만 막연한 교주의 힘이나 숨어있는 마신교의 세력을 실감하지 못하는 왕실의 대처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번 암살 사건으로 죽은 사람은 제멜아크 국왕뿐만이 아니었다.

양 국가에서 수백명이 암살당했다. 성공한 것이 수백건이고 실패한 것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숫자였다. 암살 대상은 단순히 왕족이나 고위 귀족 뿐만이 아니었다. 유명한 기술자나 예술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 반마가 아닌 일반 마신교도의 손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 몇 년간 마신교를 열심히 잡아 죽였음에도 숨어있는 마신교도가 아직도 많다는 뜻이었다.

대륙 전체가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다. 제멜아크 왕국은 공식적으로 국왕의 암살에 대한 복수를 천명하며 마신교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라이브러쉬 왕국도 이에 동참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라이브러쉬의 국왕에게도 암살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시 두 번째 마신교에 대한 대규모 척살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엔 마신교도 가만히 당하지 않았다.

어느새 또 만들어낸 것인지 반마들이 지방에서 게릴라식으로 유격전을 펼치기 시작하자 피해가 매우 컸다.

지방 영지의 경우 잘해야 4성 기사 한둘 정도를 거느리고 있을 뿐이다. 반마 몇 명만 모여 다녀도 그들을 딱히 막을 수단이 없었다.

중앙의 고위 기사들이 지방을 돌며 최대한 나섰지만 치고 빠지는 식의 전술을 구사하는 반마들을 잡아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섰다. 음속이 넘는 속도로 날아다니며 반마들을 척살하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지방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이브러쉬 왕국만 손을 댈 수 없어서 제멜아크 왕국도 도와야 했다. 물론 보수는 두둑하게 받았지만, 이제는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재산이 있었고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지구에서 광검제를 찾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한동안 마신교의 잔당들을 소탕하고 지구로 돌아오자 스테이시가 성장해 있었다.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의 마법서를 가지고 그것에 녹아있는 마법의 정수를 습득한 스테이시의 성장세는 놀라울 정도였다.

지금 당장 슬라이트와 자칼이 동시에 덤벼도 스테이시를 당해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 정도였는데 한층 더 성장해 있었다.

“이거 이제 조종할 수 있어요.”

지구에서 지내면서 이제는 아예 언령마법을 포기하기로 했는지 육성으로 말을 하고 있는 스테이시가 자폭 인형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저걸로 과연 교주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조금 회의적이었지만, 일반적인 마법보다야 일발 화력은 훨씬 뛰어날 테니 조종이 능숙해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별다른 일은 없었지?”

“꼬꼬들이 낳은 알이 부화한 것?”

“얘네들을 이제 슬슬 그만 번식시켜도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예전처럼 알을 낳는 족족 먹어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병아리들이 얼마나 많이 태어나서 번식을 해대는지 지구의 영지가 꼬꼬들의 후손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다. 아노더스에서 닭 모이를 공수해 오는 것도 적은 양이 아니었다.

“하지만 귀여운걸요.”

꼬꼬들과 함께 닭장 안에서 살기도 했던 스테이시는 꼬꼬들의 병아리들도 매우 예뻐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연구 가치가 있어요.”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던 꼬꼬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어떤식으로 진화가 되는지 아직 연구 중이었다. 인간도 과연 이 지구로 넘어와서 정착이 가능한지에 대한 중요한 연구였다.

“그렇게 말한다면 할 수 없지. 다른 개도 필요하지 않아? 똘똘이라든지 똘똘이라던가 하는 것 말이야.”

우리 집 개지만, 언제부터인가 집을 나가 옆집인 아이브 공주의 별궁에서 살고 있던 건방진 멍멍이는 공주가 왕궁으로 돌아가며 최근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곳에서 얼마나 입이 고급으로 변했는지 일반적인 개밥을 잘 먹지 않아서 처벌이 필요했다. 지구에서 며칠 굴리다 보면 다시 예전의 겸손한 개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러려면 똘똘이도 짝을 찾아줘야겠네요.”

순간 번뜩이는 스테이시의 눈빛에서 예전 지구에서 유전자 실험으로 유명했던 과학자가 생각났지만, 똘똘이도 드디어 장가를 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리 손해는 아닐 것이다. 이제 똘똘이도 한 가정의 기둥이 되겠구나.

아이브 공주가 왕궁으로 돌아간 것은 본격적으로 신부수업을 하다는 이유였다. 그 결혼 대상이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나를 향한 무언의 압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결혼 생각은 없다.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나 그것을 막으려는 싸움에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따로 떼어놓더라도 아직 한 가정의 중심이 되어 화목한 가정을 만들 자신이 없었다.

‘가정의 중심?’

가정의 중심이라고 하니 뭔가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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