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201화 (201/206)

200. 광검제를 만나다.

“조엘 에이크만님의 비전이 유실되었군요.”

“맞습니다. 한 눈에 알아보시는군요.”

내가 기억속에서 봤던 조엘 에이크만은 다른 용사들과 비교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강자였다.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기술은 오러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이능력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대단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후손들은 너무 약하다. 자질이 없어서 기술을 익히지 못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비전을 익히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제가 그 기술을 되찾아주실 원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저희도 잊은 기술을 어떻게 찾겠습니까?”

“되는데요.”

“예?”

예전에는 안됐겠지만, 지금은 된다. 내가 조엘 에이크만의 기술을 아예 몰랐다면 안됐겠지만, 기억 속에서 본 적이 있다. 지금의 나라면 아주 똑같진 않더라도 비슷하게 구현할 수는 있다.

“대충 이런 느낌이던가?”

조엘 에이크만은 그림자를 조종한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그림자를 조종했던 것은 아니다.

내 손에서 칠흑같은 검은색의 오러가 뿜어져 나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수장의 눈이 크게 떠지며 당장이라도 튀어나올것만 같았다.

“어떻게 그것을?”

“그냥 해보니까. 되는군요.”

“허어! 수십년간 그렇게 찾으려고 노력했건만”

어둠의 수장은 얼마나 허탈했는지 의자 위에서 몸이 허물어졌다.

“조엘 에이크만님의 기술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완전히 익힌다면 위력은 비슷할겁니다.”

이론상으로 뛰어난 연공법이라고 해도 자질과 노력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있는 상급의 연공법을 얻기 위해 많은 돈과 피를 흘리기도 한다. 하물며 용사가 사용했던 기술이라면 그 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럼 거래는 성립되었군요.”

며칠 더 연구하여 조엘 에이크만의 기술을 최대한 복원시킨 연공법과 활용법 그리고 간단한 수련방법까지 정리해서 다시 집을 찾아온 정보부장에게 건넸다.

그렇게 거래는 완료되었고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조직인 ‘어둠’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어둠에게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다. 마신교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고 마왕 강림에 대비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숨어있는 마신교의 세력을 색출해내는 것은 덤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둠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들이 파악하고 있었던 일반인 마신교도들 수천명의 명단을 보내왔고 나는 그것을 바로 양 국가의 왕실에 넘겼다.

다시 한 번 피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여론은 전과 확연히 달랐다. 어둠이 뒤에서 여론 조작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광검제는 활동할 당시에 여러가지 검술을 만들어서 연이 있는 가문이나 개인에게 전한 것으로도 꽤 유명했다.

생각해보니 이런식으로 힘을 키워주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아무에게나 그런 은혜를 베풀어줄 이유는 없었다. 광검제도 아무에게나 검술을 전수했던 것은 아니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일정을 소화하면서 틈이 나는대로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여러가지 방식의 검술을 만들었다. 내가 무슨 무협 소설에 나오는 대종사의 자질을 가졌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높은 산에 올라왔을 때 보이는 경치가 있듯이 내 경지에서 보이는 대로 검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5개의 검술을 만들어냈다.

슬라이트와 자칼에게 하나씩 줬다. 원래 사용하던 검술을 각자 특성에 맞게 뜯어고친 것이었다. 물론 이제 검술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시기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본인의 특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뭐 조금 틀린 면이 있다고 해도 나보다 훨씬 뛰어난 천재들이니 알아서 뜯어고치겠거니 했다.

나머지 검술 세개중 하나는 라이브러쉬 왕실에 하나를 넘겼다. 감격한 국왕이 부마가 혼수를 미리 해왔다는 식으로 난리를 치는 것을 떼어놓느라 혼이 났다.

다른 하나는 스승님에게 건넸다. 스승님이 이 검술을 보고 승급을 하시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폴켄에게 가르칠 검술을 건넨 것이다.

폴켄도 슬라이트나 자칼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뛰어난 천재였다. 만약 마왕의 침공 때 살아남는다면 충분히 일가를 이룰 것이다.

가장 신경 써서 만든 검술은 암테일 영지에 있는 집으로 보냈다. 아버지도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형도 이미 검을 놓았지만, 가문을 대표하는 검술이 하나쯤 있다고 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형은 얼마 전에 결혼도 했다. 상대는 하네스 파벌에 속해있는 백작가문의 여식이었는데 사실상 부마로 정해져있는 나를 노리기 보다 형을 노려서 연을 이어보려는 귀족들이 꽤 많았고 팔자에도 없는 여난을 맞이한 형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사람이었다.

형수는 앞에서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일을 하는 차분한 성격의 여자였다. 그래서 조금 무서운 면도 있었다. 앞에서 나서지 않으면서도 뒷공작으로 형의 반려 자리를 차지한 것이니까.

어쨌든 잡혀 살며 고생을 하는 것은 형의 인생이니 내가 간섭할 수는 없었다. 이미 형수의 뱃속에 조카가 생겨있었고 형은 행복해보였다. 나중이야 어쨌든 지금 행복하면 된거지 뭐.

할라트의 공격 이후 마신교에서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기에 나는 대외활동을 병행하며 지구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작업을 여전히 하고 있었다.

할라트를 처치하며 내가 얻은 능력은 두가지였다. 통로가 진화했고 할라트만의 고유기술 같은 느낌이었던 공간을 자르는 능력도 얻었다.

진화된 통로를 이용해 아임샤르라는 세계로 통로를 열 수 있다는 느낌이있었지만, 실행해보진 않았다. 그곳에는 아임샤르의 강림체가 있다.

지금의 나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장 해야 하지만 지구의 변이체가 거의 모두 사라진 지금 나는 빠른 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다.

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을 얻기 위해서라도 지구 어딘가에 있는 광검제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쉬지 않고 지구의 중심으로 가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었다.

무식하게 땅을 파는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진화한 통로 능력으로 지구 중심 근처 어딘가에 있을 광검제를 찾아 그곳에 통로를 열어야 하는데 지구의 중심 어딘가라는 막역한 것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구 전체로 보자면 에베레스트 산맥이 귤 껍질에 있는 작은 돌기와 같다는 얘기를 본 기억이 있다. 그만큼 나머지 부분이 넓다는 얘기다.

그렇게 다시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몇번인가 아임샤르에서 상급 반마 수십명 정도를 보내왔지만, 어둠의 정보력과 나의 기동성이 합쳐지자 큰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슬라이트와 자칼을 끌고가서 실전경험을 시켜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급 반마들과의 전투에서 슬라이트와 자칼은 깨달음을 얻었는지 승급했다.

승급이 시작되려는 기운을 감지하고 재빨리 지구로 던져넣어 주변에 피해를 막아낸 것은 운이 좋았다. 스테이시도 이제는 제법 그럴듯하게 지어진 지구의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던 중에 8서클 마법사가 되었다.

덕분에 잘 지어놨던 연구소가 날아가고 주변의 식물들이 큰 피해를 입었지만, 놀랍게도 꼬꼬와 후손들은 한마리도 다치지 않았다.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여전히 광검제를 찾는 일은 지지부진했고 나는 한걸음만 내딛으면 넘을 수 있을것 같은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급해 보이는구나.”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이 세계에 주어진 시간이 딱 절반이 남아 5년 밖에 남지 않았다. 그 사이에 피체둘라의 강림체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은 어림도 없었다.

확실히 나는 조급해져 있었다. 벽을 넘지도 못하고 있었고 광검제를 찾는 일도 요원했다.

“그렇습니다.”

“너무 광검제를 찾는 일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냐?”

“예?”

“내가 볼때 너는 스스로도 충분히 벽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이 생각지도 못하는 답을 찾아내왔지 않느냐?”

스승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누군가 뒤통수를 세게 때린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사실 스승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스승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많았다.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오는 법이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너무 광검제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검제를 만나서 그의 힘을 얻거나 혹은 그에게 지도를 받아 강해지는 일을 생각했었다.

전생의 나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길을 찾아 살아남았었다. 이번 생에서도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광검제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순간 벽을 넘었다. 일반적으로 승급을 할 때처럼 엄청난 마나의 폭풍이 몰아친다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벽을 넘는 순간 주위의 모두가 내가 벽을 넘었음을 알았다.

심지어 멀리 제멜아크 왕국에 있는 검제에게서도 라이브러쉬 왕국에 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지 연락이 왔다.

초월의 이상에는 따로 칭하는 경지가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확실히 뚜렷한 경계선을 넘었다. 경지의 칭호조차 없는 초월급 이상의 경지다.

던전 안에서 보았던 광검제와 피체둘라의 무위를 이제는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통하면 얻는다고 했던가 얼마 후 나는 그토록 찾을 때는 찾을 수 없었던 광검제를 드디어 찾아냈다.

광검제는 정말로 지구의 중심에 있었다.

통로를 열고 광검제가 머물고 있는 아무 것도 없는 작은 공간에 들어가자 광검제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인사를 건네왔다.

“왔는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역사적으로 절대적인 인물이며 마왕을 두번 아니 본래 세상에서까지 포함하면 세번 싸워 세번 이긴 인물이다. 그리고 또 다른 세상의 나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내 목표로 자리잡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기억 속에서 보았던 광검제와 던전 안에서 보았던 광검제는 언제나 감히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의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광검제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예상 밖인가?”

광검제는 늙었다. 칠흑같았던 검은 머리는 흰색으로 물들어있었다. 팽팽했던 피부는 주름이 가득했다. 느껴지는 기세만은 여전히 그가 대단한 강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나 감히 대적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강해진 것도 있겠지만, 이것은 광검제가 약해진 것이다.

인간이 늙는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사실 광검제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되어있는 광검제를 보는 나는 너무 이질적인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언젠가는 죽지. 당연한 자연의 섭리야.”

“당신이라면 다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초월을 넘어선 이후 나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인간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광검제라면 진즉에 그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랬지.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어.”

인간으로서 죽고 싶은것, 부교주나 할라트가 인간으로서 죽고 싶어했던 것과는 다르다. 광검제는 인간을 버린 적이 없었으니까.

“여기 계신 이유가 있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지. 그리고 지키고 있었지.”

“저를 기다리신 겁니까?”

“그렇지.”

나를 기다렸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이곳에서 무엇을 지켰다는 것일까?

이곳은 기묘한 공간이다. 따지고 보자면 있을 수 없는 공간이다. 펄펄 끓고 있는 지구의 핵 근처에 주변 상황에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것 같은 이런 토굴 같은 곳이 있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자면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만들었던 이공간과 비슷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엇을 지키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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