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203화 (203/206)

202. 귀환 후의 사건들

3년간 몇 번이나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을 때도 있었다. 통로를 열어 잠시 돌아와 재정비를 하고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그런 제의를 몇번이나 했지만, 슬라이트와 자칼이 거부했다. 그렇게 잠시 쉬었을 때 다시 돌아와 싸울 자신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가면서 싸웠던 두 사람의 성장은 눈부셨다.

나 역시도 그랬다. 초월급에서도 한 단계 더 올라간 경지에 올라있던 나였지만, 그런 나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물론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즉사라도 당하지 않는 한 다시 몸을 만들고 싸울 수 있었기에 위험의 기준이 다르긴 했지만, 그만큼 친구들이 상대할 수 없는 강적들을 상대했고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덕분에 몇 번이나 벽을 더 넘을 수 있었다. 지금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되지 않지만, 내가 기억 속에서 보았던 광검제의 전성기의 수준과 비슷하지 않을까. 속으로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 결과 아임샤르의 강림체를 쓰러뜨린 것으로 힘을 증명했다. 아임샤르의 강림체가 약한 것이 아니다. 아임샤르의 강림체도 충분히 괴물이었다.

초월급에 오른 두 천재가 전투가 벌어지는 근처에 다가오지도 못할만큼의 혈투였다. 수백킬로미터 정도의 면적이 초토화가 되었고 일부는 아예 육지가 사라져서 호수나 바다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하나의 세상을 구원한 우리는 지구로 돌아왔다. 그런 우리를 맞이한 것은 완전히 달라진 영지였다.

“이게 뭐지?”

우리가 떠날 때와는 너무 달라진 모습이었다. 엘프의 숲과 인간의 도시가 결합된 모습이라고 해야할까? 당장 결과물만 보자면 엘프와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닌것 같았다.

우리가 통로를 열고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냈군.”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인 광검제는 잘 성장한 자식을 보는 느낌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사랑은 사람을 달라지게 만드는 것인지 다 죽어가는 노인 코스프레는 끝낸 광검제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말끔히 정리한 미중년의 모습이었다.

“세 사람 다 완전 달라졌네요!”

두번째는 스테이시였다. 우리도 많이 달라졌겠지만, 정작 많이 달라진 것은 스테이시였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가 많이 달라져있었다. 여자로서 완전히 물이 올랐다고 해야할까? 나이가 나이인만큼 당연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 변화의 폭이 너무 컸다.

“스테이시야 말로 못 알아보겠는데?”

“흠흠! 마법은 참 좋은거에요! 매일 엘프들과 사니까. 좀 변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이었나? 확실히 외모가 뛰어난 엘프들과 매일 부대끼고 살다보니 자존감이 떨어졌던건가? 그냥 엘프도 아니고 여왕도 있으니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생사를 넘나드는 고행을 한 것도 아니지만 스테이시도 초월 직전에 거의 닿아있었다. 이 정도면 그날이 오기 전에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에 이은 인류의 두번째 초월급 마법사가 되는 것도 가능할것 같았다.

그리고 세번째로 엘프 여왕 이시리엘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긴 했네. 그곳의 마왕은 어땠는가?”

“아니 그보다 품에 안고 계신 것은···맞습니까?”

여왕의 양 팔에는 두 명의 아이가 안겨있었다.

“흠흠!”

도둑이 제 발이 저린 것인지 광검제가 헛기침을 했다. 그럼 저 아이들이 말로만 듣던 하프엘프인건가? 소설 속에서는 많이 봤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애초에 전례도 없었고 식물과 동물의 사이 아닌가?

“맞다. 지르크와 나의 아이들이다. 노비아와 테라에다.”

여왕은 거리낌 없이 아이들을 소개했다. 품에 안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머니의 그것이었다. 나는 시선을 광검제에게 돌렸다.

곧 죽는다며? 그런 사람이 이렇게 애를 막 낳아도 되는건가?

광검제는 내 시선을 슬쩍 피하더니 진지한 표정을 만들며 돌아보았다.

“시간이 빨라졌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피체둘라가 침공하는 시기가 당겨졌다는 말이야.”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니지 네가 그쪽 세상의 강림체를 죽여버렸지 않나. 힘을 쓸 곳이 줄어들었으니 이쪽에 더 힘을 줄 수 있는것이지.”

무슨 등가교환의 법칙도 아니고 그렇다면 굳이 저쪽 세상을 구원할 필요가 없었던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저쪽 세상을 구하며 싸운 덕분에 이쪽은 그 이상으로 전력이 올라갔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얼마나 앞당겨진겁니까?”

“이제 1년 정도 남았다.”

그것을 광검제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둘째치고 그래도 1년 정도면 많이 당겨진 것은 아니었다. 인류가 준비할 시간으로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

지구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다 준 후 집으로 돌아왔다.

스테이시도 오랜만에 아노더스로 데려다줄까 했는데 초월에 다다른 두 친구에 자극을 받았는지 지금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자 스승님과 성장기여서 그런지 훌쩍 키가 큰 폴켄이 나를 맞이했다. 전생에 정처없이 떠돌며 어디 한 곳에 정을 붙이지 않고 살았던 나에게 이곳은 단순히 주택 이상의 애틋한 감정이 있는 곳이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주는 안정감이라고 해야 할까. 생존자로서 살아갈 때는 다음에는 어디로 도망을 가야할까를 생각했다면 아임샤르에서 몇번의 사선을 넘으며 내가 떠올린 것은 바로 이곳이었다.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스승님께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나는 길었던 무사수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귀환을 축하하는 작은 파티가 열렸다. 보안문제를 신경쓰지 않긴 했지만, 얼마나 소문이 빠른 것인지 파티에는 왕도에서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파티에서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들었다. 아임샤르로 떠나면서 내가 걱정했던 것은 내가 없을 때 또 어딘가 다른 세상에서 이쪽으로 변이체나 반마를 보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는데 그런 대규모 습격은 없었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라이브러쉬 왕국과 제멜아크 왕국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의 말로는 거의 전쟁직전까지 갔었다고 하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큰 문제가 없었던 두 국가 사이가 틀어진 원인은 결국 나였다. 나와 친구들이 이곳에 남아있었다면 제멜아크에서 감히 라이브러쉬를 어떻게 해볼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꺼번에 모두 사라지고 3년이 흐르는 동안 의심암귀가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야 금세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빅터 하네스와 젊은 실력자들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젊은 세대에서 절대자들이 다수 등장하며 완전히 힘의 균형이 무너져 있던 판국에 그 젊은 절대자들이 사라지자 수그리고 있던 제멜아크에선 무너진 균형을 되찾을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가만히 두면 안되겠네.”

곧 교주가 힘을 되찾아 인간을 침공할 때가 온다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약속된 시간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해도 2년 남짓한 시간 밖에 남아있지 않았는데 이 인간들은 서로 힘싸움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러면 멸망한 지구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곧바로 어둠의 수장을 만나 몇가지 부탁을 한 후 다음 날 제멜아크로 날아갔다.

제멜아크 왕도의 상공에서 나타난 나는 힘을 개방했다. 그리고 두번째 생존자에게 얻었던 기상변화를 사용했다.

제멜아크 왕도에 있는 사람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인 위압감이 내려앉았다. 심지가 약한 사람은 정신을 잃거나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어야 할 정도였다.

동시에 먹구름이 끼고 광풍이 불며 천둥번개가 치자 사람들은 그 중심에 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 상태로 나는 천천히 왕궁으로 하강했다. 워낙 큰 소란이었던지라 국왕까지 밖으로 나와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국왕의 앞으로 내려서 앞으로 걸어가자 호위기사들이 막아서려 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손짓 한번에 기사들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얼마나 높아졌는지도 모르는 지금의 내 경지는 그 정도였다.

지구로 돌아와서 내가 놀랐던 부분이 있었다. 전에는 많이 약해졌다고 생각했던 광검제였는데 그 경지가 잘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광검제가 이미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도 상당히 그것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었다.

앞을 막아서는 기사들을 물리친 나는 국왕의 앞으로 가서 대뜸 물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내 위압감에 대항하여 버티고 있지만, 국왕으로서는 그것이 한계였다. 오히려 이렇게 버티고 있는 정신력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하네스 백작, 왜 이러는 것이요?”

국왕에게 딱히 집중하고 있진 않지만 주변의 위압감을 해소하며 나선 것은 쿼런틴 공작이었다.

“지금은 인간끼리 싸울 때가 아닙니다. 아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충분히 막으실 수 있지 않으셨습니까?”

내 시선이 공작에게 향하자 검제는 얼굴을 붉혔다. 말 그대로였다. 내가 여러가지 일을 해결해준 덕분에 아임샤르로 떠나기 전에 제멜아크의 왕권은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의 국왕은 왕세자 시절부터 나와 친분이 있었고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잠시 사라졌다고 해서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과격파나 뭐가 난리를 쳤다고 해도 충분히 찍어누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왕실과 쿼런틴 공작을 비롯한 실력자들이 묵인했다는 뜻이었다.

공작은 대답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지금 제가 너무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마왕의 힘을 얻은 마신교주는 지금 제가 보여드린 것의 수십배는 더 강하고 공포스러울 겁니다.”

어둠의 세력을 이용한 정보조작으로 그렇게 경각심을 불어넣었음에도 아직 이 세상의 사람들은 마왕의 힘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신교주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아주 간단히 보여드리지요.”

슈바르거르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나는 빈 손으로 성벽의 한쪽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가벼운 손짓이었으나 결과는 파괴적이었다.

쿠콰콰콰쾅!

거대한 고랑이 생기며 내가 손을 휘두른 쪽의 성벽이 무너지고도 그것은 계속 이어져 왕궁에서 외성벽까지 이어진 왕도의 대로가 사라졌다.

압도적이고 폭력적인 힘 앞에 이것을 지켜본 이들이 정신을 놓았다. 8성의 끝에 다다른 쿼런틴 공작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으로서 펼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내가 이런 힘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손짓 한번으로 일어난 일 치고는 엄청난 재난이었지만, 다친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것까지 계산하고 한 일이었다. 기상변화로 공포분위기를 연출한 탓에 대부분 사람들이 집으로 대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청나지요? 전 다른 세상에 가서 그 세상의 마신교주라고 할 수 있는 놈과 싸웠습니다. 방금 이것 이상의 공격을 서로 퍼부으며 한달 동안 싸웠습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때에 따라서는 무한하지만 반대로 상식 이상의 것을 떠올리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만약 제멜아크 왕국이 그 싸움에 훼방을 놓으려고 한다면 마신교주가 이 세상을 침공하기 전에 없애버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작은 분노를 담아 담담하게 말했다.

개인이 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용사들은 대륙을 통일 했던 제국을 상대로 그것이 가능했고 지금의 나도 가능하다.

“내, 내가 잘못했네.”

국왕이 무릎을 꿇었다. 국왕을 시작으로 쿼런틴 공작을 비롯한 제멜아크 왕국의 대신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내게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제멜아크의 국왕의 목을 날린다던가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과격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인류는 하나가 되야했다.

“이번만 봐드리는 대신 한가지 조건을 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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