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1화 (1/126)

다시, 열일곱 살(1)

나는 활자중독자, 아니 ‘허구중독자’였다.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부터 그림책을 붙들고 있거나 TV 앞에 앉아 있기 일쑤였고.

더 커서는 소설책, 만화나 드라마, 영화···.

이야기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게걸스레 흡수했다.

현실만으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이처럼 늘 공상의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그런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오롯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도 열심이었는데.

“···유진, 너 어릴 때부터 니가 쓴 거 친구들한테 돈 받고 팔았다고 하지 않았어? 한 편당 오백 원이랬나.”

“오백? 오백 원이면 엄청 큰돈 아냐?”

“50센트야 50센트.”

내가 누운 침대 옆에 앉아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는 나의 절친 네드와 아델.

이 둘의 존재만으로 병실 안은 한층 생기가 넘친다.

‘선생님한테 걸려 된통 혼난 이후로 돈 받고 파는 건 관두긴 했지만.’

병상에 누운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지만, 머릿속은 또다시 과거의 기억으로 흘러갔다.

‘중학생 때는 야심차게 인터넷 연재도 했는데.’

미국으로 이민 온 후,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자신감이 확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나의 ‘픽션(fiction)’을 향한 열정은 미국 이민 후에도, 내내 방황하던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다 결국-

‘운명처럼 미국의 어느 출판사에 들어가게 됐지.’

영세한 곳이라 박봉이긴 했지만 편집 일은 내게 잘 맞고 즐거웠다.

매일처럼 새롭고 재미난 원고를, 심지어 돈까지 벌며 읽을 수 있다니!

저자와 머리를 맞대고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 또한 기쁘고 보람 가득한 일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편집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고, 뉴욕의 대형 출판사에서 인기 타이틀을 담당하는 유명 편집자가 되었다.

“그거 기억 나, 유진? 너희 편집장, 니가 쓴 원고 보고 까무라칠 뻔했잖아.”

“푸흐, 그때 네드 너도 같이 있었다고 했지? 차기작 미팅 때라고 했나?”

“어어. 그 깐깐한 양반이 눈 튀어나오게 놀라는 거 보고···.”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절친이자 전도유망한 그래픽노블 작가인 네드.

이 자식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 원고를 세상에 평생 내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는다니까. 출간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게 완전 대박-”

“아니 아니지. 그건 대박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었다니까?”

그러자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아델이 생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그건 맞아. 오죽하면 우리 학교 학생들이 다 니 책 얘기를 한다니까? 책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애들이···.”

둘은 베스트셀러가 된 나의 첫 작품에 관해 열성적으로 대화하는 중이었다.

‘베스트셀러도 그냥 베스트셀러가 아니긴 하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확정.

10주 연속 아마존 1위.

37개국 번역 출간, 워너브라더스사 영화화.

<타임매거진> <피플> <베니티페어> 선정 올해의 책···.

‘[한국계 신인 소설가 권유진, 세계환상문학상 수상]이라는 기사 제목이 아직도 기억나는걸.’

나의 데뷔 소설 <잊혀진 성자들(The Forgotten Saints)>.

이 책은 미국 전역에서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고.

결국 전 세계 베스트셀러 1위가 되는 기염을 토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잠시 환자분 혈압 체크하겠습니다.”

똑똑-

노크와 함께 들어온 간호사가 내 소매를 걷어부쳤다.

1년 전부터 단 한 번도 움직인 적 없는 팔은 주삿바늘 자국으로 가득했다.

‘···.’

쓴웃음을 짓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오래도록 염원한 소설가의 꿈을 이룬 것도 잠시, 출간한 지 석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입니다.’

불과 34세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침대에서 못 일어나는 몸이 되었으니까.

‘뇌와 신체 근육 사이의 연결이 끊어져 사지가 마비됐지만, 감각과 사고는 정상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전부 다 느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

‘음주량, 흡연량 모두 평균적인 수준입니다만 가족력에 동맥류가 있으시더군요.’

전신이 구속된 채 영영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갇힌 거나 다름없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동자뿐.

그리하여 한동안은 절망과 실의에 빠져 지냈다.

매일같이 더해지는 병마의 고통에 굴복하고 싶은 순간마다-

‘다음 소설을,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

창작을 향한 강렬한 열망이 나를 붙잡았다.

부자유한 육체에 갇힌 만큼, 정신은 자유로운 환상의 세계에 있기 바랐던 까닭인지도.

무엇보다-

‘이제 막 첫 소설의 달콤한 성공을 맛봤잖아?’

비록 그 첫 소설이 전 세계 1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지만.

나는 아직 굶주려 있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고, 그 글이 세상에서 빛을 보고 독자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욕망이야말로-

‘내게는 그 어떤 욕구보다도 원초적인 욕구였으니까.’

그러나 그럴 수 없는 몸이었기에.

병상에 누운 채 두뇌를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10년 가까이 편집자로 일하며 읽어온 수많은 원고들, 소설들.

하다 못해 실용서나 코믹스를 비롯, 온갖 장르를 망라한 책들의 내용을-

‘머릿속에 폴더를 만들어놓듯.’

분류별로 하나 하나씩 정리해놓았다.

···그 모든 것이 내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해줄 레퍼런스가 될 거라는 걸 잘 알았기에.

나머지 시간에는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하거나, 머릿속으로 글을 써나갔다.

‘재료를 모아 한 채의 견고한 집을 짓듯이.’

한 문장, 한 문장씩 뽑아낸 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을 통째로 외웠다.

매우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오히려 좋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하게 보일 이 행위가.’

결국은 내 정신을 지금까지도 온전하게 유지시켜준 듯하다.

글쓰기야말로 나의 생존 전략이자 나 자신을 필사적으로 다잡는 유일한 방편이었으니···.

“유진 씨, 몸에 감각이 느껴지는 곳이 있나요?”

문득 들려온 간호사의 질문에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

눈동자를 천천히  왼쪽으로 굴리자 ‘아니오’ 램프에 불이 들어온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호출하세요.”

간호사가 나간 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자리잡았지만.

“아 맞다, 내가 앨런 얘길 했던가?”

네드가 웃는 얼굴로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버티고 레이블 수석담당자인데, 그 친구가 유진 너의 엄청난 팬이더라고. 아 그리고, 버티고가 DC 산하에서 독립한다는 소문으로 아주 난리인데-”

“아, 네드 좀! 업계 얘기 좀 그만하라고. 그건 그렇고 유진, 지난주에 클로이가 다녀갔댔지?”

네드의 말을 끊은 아델이 새어머니와 동생의 안부를 전해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물심양면으로 나를 보살펴준 케이트.

어릴 적부터 한결 같이 나를 따랐던 여동생 클로이···.

내 곁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축복 받은 건지도 모르지.

그리고 잠시 후.

면회 가능시간이 끝났다는 간호사의 말에 두 사람이 아쉬워하며 자리를 일어섰다.

“다음 달에 또 올게, 유진.”

“몸 잘 챙기고, 알았지?”

그 둘이 나간 뒤 병실 안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내 심장이 제대로 뛰고 있음을 알려주는 삑삑거리는 기계음뿐.

‘시력이 점점 나빠지네.’

공기 중에 떠도는 알코올 냄새.

진통제 효과가 떨어져가며 희미하게 느껴지는 둔통.

···그보다 더 강렬하게 밀려드는 지독한 외로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불안감.

나는 그 부정적인 감정들을 애써 모른 척하며 흐릿한 병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

그날 밤, 아니 새벽.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소름끼치는 통증에 눈이 절로 떠졌다.

‘으윽.’

아픔에 익숙해졌다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달랐다.

어마어마한 중력에 전신이 압도당하는 감각에 일순 숨이 쉬어지지 않더니.

‘이게, 이게 죽음이라는 건가.’

비상등이 켜진 희끄무레한 병실 안.

나는 애타게 죽음을 피하려 몸부림쳤다.

‘유진, 넌 회복되면 뭘 하고 싶어?’

언젠가 들었던 친구들의 말이 머릿속을 울린다.

뭘 하고 싶냐고?

‘온전히 삶을 살고 싶어.’

마음대로 움직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숨이 찰 때까지 거리를 달리고 싶다.

지긋지긋해하던 사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사람들로 가득한 통근 지하철을 타고 싶다.

무엇보다-

‘글을, 글을 쓰고 싶어.’

내 안에 넘쳐나는 이야기들.

1년간 누워서 생각해낸 수많은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들려줘야 하는데.’

···이야기는 누군가의 귓가에 가닿을 때 비로소 그 존재 가치가 생겨나므로.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숨 막히는 통증은 더욱 거세졌고-

‘···!’

거대한 종 속에 갇힌 듯.

의식이 저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동시에 무거운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 이제···.’

끝이구나, 그렇게 체념하려던 순간.

[계약에 따라 기적이 실현됩니다···.]

머릿속에서 음성이 들리더니, 눈앞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

“···유진아, 권유진. 정신 차려!”

꿈에 그리던 한국어.

그것도 이제 더는 듣지 못하리라 여겼던 아버지의 중후한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려왔다.

“머리는, 괜찮은 거냐? 여기 봐봐라.”

머릿속이 징징 울려대는 가운데.

온몸의 오감이 미세하게 주변을 파악했다.

피부 너머로 느껴지는 건조한 공기.

머리 위로 내려 꽂히는 아이오와주의 강렬한 태양빛.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의 풍경까지.

“···아버지.”

나는 열일곱 살의 어느 여름날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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