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10화 (10/126)

천재성(2)

*

현란한 색의 플래카드가 걸린 교정 안은 인파로 가득했다.

[힐크레스트고등학교 오픈하우스데이]

[학부모님들을 환영합니다]

간만의 학교행사라 그런지 꽤 많은 학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나 또한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는데.

“유진, <스쿨씬> 특별판 나왔다! 13페이지 봐봐!”

제일 먼저는 교지편집부 선배가 날 불러내 교지를 건네줬다.

“와, 근사한걸.”

학생들이 만드는 잡지라고는 믿기지 않는 퀄리티에 감탄이 나왔다.

“흐흐, 인쇄된 지 얼마 안 된 거라 따끈따끈해. 아, 이따 클럽룸 쪽에서 전시회도 하니까 한 번 들러라.”

그렇게 선배가 떠난 후, 나는 곧바로 13페이지를 펼쳤다.

[특별판 특집코너|초단편소설

<로렌스 수사의 고백>

존경하는 에스칼루스 대공각하께···]

그 아래로는 내가 직접 쓴 글이, 제대로 된 조판 양식에 맞춰서 가지런하게 인쇄돼 있었고.

맨 마지막 줄에 가니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진 권(힐크레스트 고등학교 10학년)]

“···.”

내 글이 책으로 나올 때 느낄 수 있는 벅찬 기분이 나를 사로잡았다.

‘두 번 다시는 이런 기분을 맛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내 이름이 실린 교지라니···.

그렇게 잠시, 혼자만의 감상에 빠져 있을 때.

“오우, 유진!”

“안녕! 잘 지냈어?”

“다음 수업 가는 중?”

지나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영문학 수업을 같이 듣거나 문예창작 클럽, 교지편집부 소속인 애들은 물론이고.

“<스쿨씬> 나온 거 봤어 유진!”

“글은 대체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거야? 니가 소설을 쓸 거라곤 생각도 못했네···.”

“되게 재밌더라! 클럽룸 복도에 붙어 있는 거 선 채로 끝까지 다 읽었어 크흐흐.”

교내잡지치고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얘기가 진짜인지.

한 번도 얘기해본 적 없는 애들까지도 친한 척 말을 걸어오거나, 내 어깨를 툭 치며 친근하게 군다.

아주 오래전.

네드와 아델, 간혹 에이든 말고는 인사하는 친구가 거의 없었던 나의 과거를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한걸.’

과제 하나로··· 아니 그 과제가 <스쿨씬>에 실려서 전시됐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기도 하는 걸까.

여하튼, 그것만으로도 이미 정신이 없었지만.

“요 브로! 드디어 디데이야 디데이! 그래, 소감은 어때?”

날이 날이라서 그런가.

오늘 따라 텐션이 한 단계 더 올라간 에이든이 내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통에 아침부터 진땀을 빼야 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소감이란 걸 말하고 나니.

“크흐흐 땡스 유진. 맞다, 요즘 너 내 댓글에 점점 더 많이 언급되는 거 알아?”

“내가? 대체 왜-”

“아 잠깐 뭐야 뭐야, 너 설마 내 채널 구독 안 하는 건 아니지 브로? 알림은, 알림해놨을 거 아냐.”

아니 구독이야 해놨는데···.

평소 유튜브를 잘 안 보는 편이라는 해명을 듣고 나서야 에이든은 나를 놔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버지랑 같이 클럽룸 복도로 가고 있단다. 거기서 곧 보자꾸나.]

-라는 새어머니의 문자에 클럽룸 쪽으로 향했다.

‘저기 계시네.’

미스터 레너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케이트.

그리고 그 옆에 멍하니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케이트!”

반가운 마음에 큰소리로 두 분을 부르며 다가가자.

“어, 유진아, 이게 대체···.”

···아버지가 아주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

서점을 너무 오래 비워뒀다는 케이트가 따로 자신의 영업장으로 출발한 후.

상준은 유진과 단둘이서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유진이와 둘이 외식이라니.’

생각만 해도 어색··· 아니 지금도 이미 충분히 어색한 상황이긴 했다.

방금 전, 문학교사 레너드 하인스가 분명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아, 유진이 본인 소설이 교지에 실린다는 얘기를 아버님께 안 드렸군요.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었나 봅니다 하하.’

게다가, 유진에 관한 놀라운 사실은 그뿐이 아니었다.

학교 오면 말 한 마디 않던 아이가 최근 들어 제일 열심히 참여한다든가.

어떤 수업이든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고 손 들어 질문하는 것은 물론, -그간 하나도 참여하지 않던- 클럽활동을 두 개나 새로 시작했다는 것.

‘그중 하나는 저희 문예창작 클럽이고요, 하하. 저희 클럽원 애들이 유진과의 활동을 무척이나 기대하더군요.’

아들의 180도 달라진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대체 무슨 계기가 있었기에, 아니 그보다도···.

“그러니까, 그, 아까 그 소설 말이다.”

<로렌스 수사의 고백>.

그걸 정말로 우리 유진이가 썼단 말인가?

“그거··· 유진이 네가 쓴 거라고?”

어색하디어색한 질문에, 아들은 희미하게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네, 제가 쓴 거예요.”

“···.”

묻고 싶은 건 참 많았다.

언제 그렇게 실력이 늘었는지, 어떻게 그런 형식으로 써낼 생각을 해냈는지 아니 그것보다-

‘대체, 얼마나 노력했기에 저런 글을 써낼 수 있게 되었는지.’

그러나 그 수많은 질문을 상준은 가슴 속에 묻어두었다.

···지금은 그보다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었기에.

“유진아, 아버지가···.”

시선은 여전히 자동차 앞유리를 향하는 가운데.

상준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힘겹게 뗐다.

“미안···하다.”

“···.”

“그러니까, 네게 너무 심하게 말했던 것 말이다.”

네게는 재능이 없다거나.

그 정도 어설픈 실력으로는 아예 꿈도 꾸지 말라거나···.

그 외에도 아들에게 했던 모진 말들이 상준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사실은 그 전에 사과했어야 했지만.’

유진에게 설령 재능이 없다 하더라도, 진작에 사과했어야 한다.

부모가 되어서 자식의 속을 헤집어놓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법이 아닌가.

입술을 지그시 깨문 상준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들의 옆얼굴을 돌아보았다.

“···.”

유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핸들을 잡은 채 미세하게 떨리는 아버지의 손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아버지.”

“···.”

“사과해줘서 고마워요.”

그것으로 마음의 응어리가 전부 풀리지 않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는 듯.

지금 이 순간, 유진이나 상준이나 모두-

마음속 해묵은 감정 하나가 사라진 기분에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

한편 그 시각.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위치한 <사이언스앤드판타지> 편집부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이러다 진짜 죽을 것 같아···.”

“원고가 아직도 이렇게 남았다고?”

“커피! 얼른 커피 좀 갖다줘! 샷 꽉꽉 채워서.”

평소 지성과 열정을 겸비한 최고의 장르 전문 편집자들이 근무하는 이곳 사무실은-

지난 며칠 이래로 아포칼립스를 연상케하는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선배, 대체 며칠째 안 씻은 거예요? 설마 첫날부터 집에 안 들어가신-”

“그러는 마크 너야말로, 거울은 봤냐?”

예년에 비해 너무 많은 원고가 밀려든 탓에, 공지해둔 심사기한 내에 심사를 끝내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

그리하여 편집부는 철야까지 불사하며 공모전 심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원고 몰리는 거, 비숍 작가님 때문이죠?”

“뭐 상금도 대폭 늘긴 했지만, 역시 작가님 때문이겠지.”

오늘날의 SF판타지 씬을 대표하는 거장.

랜덤 비숍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는데, SF컨벤션에 가면 그의 사진을 프린트한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는 팬들이 흔히 눈에 띄곤 했다.

“하긴 비숍 선생님을 볼 수 있다 하면 저도 일단 참가신청부터 할 것 같네요.”

“그렇지. 우리야 개고생하지만, 비숍 작가님이 선뜻 오케이해주신 덕분에 엄청 화제가 되고 있다고. ···또 누가 알아? 이번 공모전에서 엄청난 다크호스, 아니 라이징 스타가 탄생할지.”

“그러면 진짜 좋겠네요···.”

그래, 그러면 그들의 이 고생도 헛된 일이 아니게 되겠지만.

산처럼 쌓인 원고들을 빠른 속도로 훑어보던 3년차 편집자 마크가 한숨을 쉬었다.

‘괜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주제로 한 건가.’

그나마 대중에게 제일 친숙한 장르로 공모전을 열어보자, 라는 의견 때문에 이렇게 되었지만.

이건 뭐, 새로운 원고인지 이미 본 원고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대부분이 핵전쟁 아니면 3차 대전, 아니면 외계 침공이나 천체 충돌···.

‘그나마 빙하기가 오는 건 좀 참신하네.’

사람들이 죽고 죽이고 물자를 두고 다투고,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드러나고···.

뭐, 클리셰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절대 나쁜 건 아니지만.

‘어째 뭐 하나 예상을 벗어나는 얘기가 없을까.’

마크는 하품을 하면서 빠르게 원고들을 읽어넘겼다.

앞의 세 장 정도만 읽고 내려놓은 경우도 있었다.

“···기본도 안 된 경우가 너무 많단 말이지.”

소설을 쓴 건지 인터넷 썰을 쓴 건지 구분이 안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철자법도 잔뜩 틀리고 문장의 주술 호응조차 안 되는 수준 미달 원고가 너무 많았다.

“흐으···.”

형편없는 원고의 연속에 몸이 절로 뒤틀리던 그때.

처음으로 흥미가 생기는 제목의 원고가 눈에 들어왔다.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이라.’

피터 팬 이야기를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로 재해석한 걸까?

호기심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손이 빠르게 원고 겉장을 넘겼다.

[A.D. 2080.

성인만이 죽음에 이르는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창궐한 지 6개월 뒤.]

그리고 이어지는 강렬한 첫 문장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피터는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어른이 되었다.]

어른들 사이에서 홀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지내야 했던 불행한 주인공의 이야기.

흔치 않은 도입부에 대한 호기심은, 어느새 완벽한 몰입감으로 변해갔다.

“···.”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이 이 원고를 심사하는 입장이라는 것도 완전히 잊은 채.

그저 한 명의 평범한 독자가 되어 읽고 있었다.

‘재밌다.’

재밌다. 미친 듯이 재밌다.

진정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났을 때의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더는 우리들(us) 중 하나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본능에 가까운 두려움.

그 강렬한 공포가 차디찬 오한처럼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이 작품은 장르적 재미도, 진행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도 모두 훌륭하지만.

가장 큰 매력은 따로 있었다.

‘주인공 피터 팬딧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욕망이, 손에 잡히듯 그려진다는 것.’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도 피터는 늘 ‘정상’에서 벗어난 존재였다.

35세의 나이임에도 어린 아이의 외모 탓에 성인 취급을 받지 못하는.

그리하여 절대로 ‘그들’ 중 한 명이 될 수 없는 존재.

‘그래서일까. 집단의 완벽한 일원이 되는 것에 집착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주인공의 심리가···.’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된다.

그랬던 그가,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리더 피터팬의 가면을 쓰고 망해버린 세상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너무, 감동적이잖아.’

어쩐지 마크의 가슴을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어 놓았다.

울컥하는 기분에 침을 꿀꺽 삼키며 감정을 다스려야 했을 정도.

“···.”

어느새 뻑뻑해진 눈을 의식도 못 한 채 그저 다음 문장을 게걸스레 읽어나갔다.

그렇게 읽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아침 해가 떠오르자마자 피터는 캠프를 나섰다.

그들의 영원한 리더이자, 네버랜드의 상징인 ‘피터 팬’으로 남기 위해.

피터 팬딧, 아니 영원한 소년은 미지의 땅으로 두 발을 내디뎠다.]

“···아.”

마지막 문장이 가슴 깊은 곳에 박히는 기분이다.

아직도 그 남은 감정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때.

“마크, 뭐 하냐.”

뒤늦게 선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소리도 못 들을 정도로 푹 빠져서 읽다니.’

마크의 심장이 보물 같은 글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로 쿵쾅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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