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성(3)
“그 원고, 어땠어? <멸망한 세계의 피터팬> 말이야.”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선배 편집자 몇 명이 자신을 둘러싸고 선 것이 보였다.
“이거, 엄청난데요? 다크호스··· 아니 이건 아무리 봐도 신인의 작품이 아니에요.”
“그래?”
“네네, 피터의 심리에 독자를 몰입시키는 솜씨가 엄청난데···.”
잔뜩 신이 나 말하는 마크.
좀비처럼 축 늘어져 있던 몸에 기운이 펄펄 솟고, 갓 잡은 생선처럼 심장이 펄떡거린다.
···이건 재미있는 글 앞에서 그의 몸이 본능적으로 보이는 반응.
“그래, 역시 그렇지?”
“역시··· 라뇨?”
마크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선배 편집자가 씩 웃었다.
“우리도 똑같은 결론을 내렸거든.”
이번 심사를 담당하는 나머지 네 명의 편집자들 또한, 그 자신과 똑같이 희열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사실, 너 아까 다른 원고들 보고 있을 때-”
“우리가 먼저 읽어봤거든,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어···.”
“좀 걱정했지 뭐야.”
“걱정이라뇨?”
마크가 멍하니 묻자, 웃음기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이거, 이번 공모전의 1등작이라고 다들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어서.”
그 말에 마크의 표정이 한순간 환해졌다가 이내 흐려졌다.
“근데··· 넘어야 하는 산이 하나 남아 있잖아요?”
그렇다.
편집부 심사를 통과한 공모전 작품들이 거치는 마지막 단계.
그것은 이번 공모전의 특별심사위원이자-
‘SF계의 전설적인 거장이라 불리는 랜든 비숍의 최종심!’
그는 무척 깐깐한 것은 물론, 신인이라 해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글쎄, 걱정할 필요가 있으려나.’
심사를 맡은 편집부 직원들이 저희들끼리 떠드는 것을 지켜보던 편집장은 확신했다.
‘내가 아는 비숍 작가님이라면···.’
이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눈빛이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
오픈하우스 행사 이후.
우리집 분위기는 한층 더 좋아졌다.
‘정말 자랑스럽구나, 유진. ···여보 당신도 한마디해.’
‘음, 잘했다.’
‘당신도 참.’
미스터 레너드에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케이트와 아버지 두 분 모두 기뻐 어쩔 줄 몰라하셨으며.
‘오빠 머이쪄! 완전 체고!’
클로이는 영문도 모르는 채 내게 엄지 두 개를 척 들어 보였다.
‘아 그리고 그 소설 말인데요, 아이오와주립대학 출판부의 의뢰를 받아서···.’
단편으로 개작되어 셰익스피어 앤솔로지에 실릴 거라고 하자.
‘설마, 셰익스피어 축제 때 매년 발행되는 앤솔로지?’
두 분 다 얼굴이 잔뜩 상기될 정도로 흥분하시는 것이 아닌가.
‘맙소사, 유진! 정말 엄청난 서프라이즈구나!’
‘그···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나도, 나도 읽어봐도 괜찮을까 유진? 그 작품이 어떻게 개작될지 너무 너무 기대가 돼.’
···누가 독서광 아니랄까 봐.
개작원고가 완성되면 보여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여하튼, 그렇게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 다음 날.
나는 수업을 마친 뒤 문예창작 클럽룸 앞에 도착한 참이었다.
삑삑삑-
도어락 비번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자.
‘집에서만 작업하면 지겨울 텐데, 유진. 우리 문예창작 클럽의 가장 큰 장점이 뭔 줄 아니?’
레너드 선생님의 말마따나, 클럽원들이 다같이 모여 집필할 수 있는 ‘공동작업 공간’이 펼쳐져 있다.
그래 봤자 한가운데에 책상 여러 개가 둥근 형태로 붙여진 정도이지만.
‘좋네.’
나는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꺼냈다.
준비도 마쳤으니 슬슬 작업을 시작해보려던 그때.
삑삑삑- 도어락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안녕.”
자연스레 뒤를 돌아보며 인사하자.
안경을 쓴 차분한 인상의 갈색머리 여학생이 서 있었다.
“···.”
새초롬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말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거기에 집중했다.
인사가 씹힌 것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요즘 애들은 참.’
그러려니 하고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지잉- 폰이 울리더니 메신저앱에 알림이 떴다.
[샬롯_데인즈: 안녕 나도 반가워! :)]
뭐지, 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자.
아까 그 여자애가 -눈을 피하며- 제 스마트폰을 가리켜 보이더니.
클럽룸 문 옆에 붙은 부원 명단을 가리킨다.
[샬롯 데인즈]
-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과 동일인이다.
‘얘가··· 샬롯이구나.’
근데 뭐지?
왜 대체 인사를 메신저로-
[샬롯_데인즈: 난 얼굴 보고 말하는 걸 어려워해서 말이야 (இ///இ`。)]
[샬롯_데인즈: 너만 괜찮다면··· 이런 식으로 소통해도 괜찮을까?]
토도도독—
스마트폰 타이핑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내 키보드 타자 속도와 비슷한 느낌인걸.
“그럼, 상관없어.”
···저 화려한 이모티콘도 그렇고, 뭔가 기분이 좀 묘하긴 하지만.
본인이 불편하다는데 거기에 맞춰야지 어쩌겠나.
[샬롯_데인즈: 히히 이해해줘서 고마웡! ;)]
[샬롯_데인즈: 우리 문예창작 클럽에 온 걸 진심! 완전! 환영해 유진 :)]
[샬롯_데인즈: 앞으로 같이 클럽활동 잘해보자 (*ᴗ͈ˬᴗ͈)ꕤ*.゚]
···음.
메시지를 확인 후 고개를 들자.
샬롯은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 그으래··· 나도 반가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역시나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샬롯.
뭐랄까 참 특이한 아이구나···.
그 정도 감상이 전부였고.
‘이제는 <로렌스 수사의 고백> 파일을 열어봐야지.’
일단은 가장 전형적인 방식으로 개작해볼 생각이다.
즉-
[존경하는 에스칼루스 대공 각하께,
저는 베로나 교구를 담당하는 수사 로렌스입니다···]
기존의 초단편에 살을 붙여가며 단편 분량으로 만드는 것 말이다.
첫 문장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후우, 심호흡을 했고.
새 창을 하나 더 켜서 집필해나가기 시작했다.
*
샬롯 데인즈는 부지런히 집필을 하는 유진을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역시, 날 모르나 보네.’
그녀는 유진과 같이 영문학 수업을 듣는 사이.
사실 샬롯은 그 수업 수강생들, 더 나아가 문예창작을 지망하는 학생들 사이엔 꽤 유명했다.
전국고등학생 문학 컨테스트.
프린스턴대학 주최 단편소설 컨테스트.
스콜라스틱 글쓰기 대회···.
그 외의 수많은 학생 백일장이란 백일장은 모조리 휩쓸어왔으니까.
지역신문에도 그녀의 이름이 ‘아이오와시티의 천재 문학소녀’라고 종종 실릴 정도.
그때마다 샬롯의 부모님은 동네사람들에게 딸의 소식을 자랑하곤 했다.
그럼에도 유진이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것과 달리, 샬롯은 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아마 전교생이 다 알지 않을까 싶지만.’
이 힐크레스트 고등학교에 몇 없는 아시아인, 그중에서도 단 한 명뿐인 한국인 학생이다.
케이팝 열풍 때문에 한국에 관심 있는 학생도 많다 보니, 유진의 존재를 다들 알고 있었지만.
‘막상 본인은 굉장히 소극적이었는데.’
샬롯이 이상하게 생각한 건 바로 그 점이었다.
사람이 몇 주 만에 저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학기가 시작한 후로 이어진 세 번의 영문학 수업.
거기서 유진은 단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먼저 손을 든 적이 없는 것은 물론, 미스터 레너드가 발언을 시켜도-
‘아··· 잘··· 모르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끝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수업을 같이 듣는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고 말이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갑자기 한순간에···.
‘아니,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로렌스 수사의 고백>.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 정도 소설을 과제용으로 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대체 그런 글을 어떻게 썼는지, 정말로 1주일 만에 쓴 게 맞는지 내내 궁금했는데.
‘질문을 할 절호의 기회!’
심지어 그 베일에 싸인 유진이 집필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다니.
“···.”
저 역시 노트북을 꺼내놓은 샬롯은 유진의 동태를 살폈다.
유진은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고.
그것을 시작으로 그대로-
타다닥, 다다다다닥.
무척 빠른 속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속도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기이한 것은-
‘한 번도··· 지우거나 고치질 않네?’
그녀가 본 바로, 유진의 손가락은 백스페이스로 간 적이 없었다.
문장을 고치기 위해 방향키를 움직인다거나 마우스에 손을 올리지도 않았다.
‘뭐지, 설마··· 타자 연습 같은 걸 하는 건 아니겠지?’
3분, 5분, 10분···.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타자만 치는 시간이 계속되더니.
‘한눈도 안 팔고 계속 쓴다고?’
어느새 30분이 지나가는 상황 속.
샬롯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글이 저렇게 술술, 고민 없이 나올 수가 있는 걸까?
‘보고 싶다.’
유진의 손 끝에서 탄생하는 글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싶다.
그런 강렬한 열망을 애써 숨기며 샬롯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유진, 그거 봐도 돼?’
아니 아니지. 그건 너무 예의 없게 들리잖아.
다시 한 번, 샬롯은 할 말을 연습해보았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네가 쓰는 글을 내가 옆에서 지켜봐도 괜찮을지···.’
아 이것도 아니다. 이건 너무··· 사회성 없는 너드 같잖아.
후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샬롯이 작게 한숨을 내쉬던 그때.
“저, 샬롯.”
“으어? 어? 나··· 부른 거야?”
내내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던 유진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말간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말, 할 줄 아네? 목소리 처음 들었어.”
“아, 어어···.”
“다른 게 아니고 이거, 혹시 한 번만 봐줄 수 있을까? 이제 겨우 초반부이긴 한데, 좀 고민이 돼서 말이야.”
“···!”
샬롯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톡, 토도독-
[샬롯_데인즈: 그럼 그럼! 물론이지 o(≧∇≦o)]
메신저앱으로 날아온 뜨거운 반응에 유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자-
“···.”
샬롯은 이미 엄청난 속도로 원고를 읽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집중했다간 노트북 화면 속으로 들어가버릴 기세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약 5분이 지난 후.
샬롯은 신이 난 채 저도 모르게 외쳤다.
“재밌다, 유진. 재밌는데 왜?”
“그래? 음···.”
그러나 그런 반응에도, 유진은 영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샬롯_데인즈: 왜? 뭐 고민되는 거 있오? (8_8)]
그녀의 물음에 유진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지금 이것처럼 원본을 디테일하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버전도 나쁘진 않지만.
“뭔가 임팩트가 부족한 느낌이라서. 좋게 말하면 정석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뻔하다?”
“흐음.”
유진의 고민을 들은 샬롯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샬롯_데인즈: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뭐가?”
[샬롯_데인즈: 그냥, 니가 쓴 거 읽으며 로렌스 수사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했거든 ;)]
그 순간.
유진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평소의 유하디유한 인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랄까.
[샬롯_데인즈: 로렌스 수사 말고, 니가 쓰는 다른 조연들은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더라고]
그녀의 메시지를 보며 한참 입을 다물고 있나 싶더니.
“···이거야.”
“응?”
유진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패리스 백작!”
“뭐?”
검은 눈동자에서 일순 희미한 광기가 번뜩이는 듯했다.
“샬롯, 넌 천재야.”
“···?”
샬롯이 뭐라 물어보기도 전, 유진은 곧바로 키보드로 두 손을 가져갔고.
타다다다닥-
[2장. 패리스 백작의 고백
이 일기가 세상에 발견된다면, 나 패리스 백작은 이미 목숨을 잃은 후일 것이다···]
패리스 백작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2장’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천재는 너겠지, 유진.’
샬롯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