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K(1)
*
한편 그 시각,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작가 랜든 비숍의 작업실.
이곳은 SF 팬들에게 성지 같은 곳이었다.
각종 SF 장서들이 고전부터 현대작품에 이르기까지 도서관 수준으로 갖춰졌을 뿐 아니라-
“오 이거 처음 보는 거네요? 이게 그 14K 금으로 만들었다는 피규어인가요? 데뷔 40주년 기념으로 헌정받으셨다는.”
비숍 자신의 대표작 ‘스타라이트 크로니클’의 영화화 시리즈 피규어가 가득 전시된 공간이었으니까.
“이야 이건 또 크리스탈로 돼 있네? 이거 이거, 제국기사 리드슨의 피규어 맞죠?”
그리고 그 진귀한 작업실 안을, 랜든 비숍을 오래전부터 담당해온 해리슨 편집장은 신나게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만 돌아다니고 이제 얘기 좀 하지, 해리슨.”
<사이언스앤드판타지>의 개국 공신이자 SF씬의 전설적 에디터로 불리는 해리슨.
그는 랜든 비숍이 오늘날 SF 거장으로 불리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결론은 내리셨습니까 작가님?”
해리슨 편집장은 -두툼한 턱살에 숱많은 새하얀 수염이 산타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71세의 노작가 랜든 비숍과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편집장인 그가 직접 여기까지 온 것은 SF 공모전의 최종심사평을 듣기 위해서.
‘사실 평소의 작가님은 봐주는 게 전혀 없는 스타일로 유명하지.’
의례상 좋은 말을 써주곤 하는 심사평에서도 호된 비판을 서슴지 않고.
단점이나 아쉬운 부분을 거침없이 지적하기로 유명한 그가 아닌가.
하지만 오늘만큼은 제법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흠, 뭐, 이번엔 생각보다 심사하기 쉬웠네.”
노작가는 싱긋 웃더니 테이블에 놓인 과자를 하나 집어들었다.
“쉬우셨다고요?”
“그래, 이번처럼 압도적인 작품이 있으면 심사위원의 일이 한결 쉬워지기 마련이니까.”
아그작 아그작. 과자를 즐겁게 먹으며 그가 내놓은 원고는-
“역시 그거로군요.”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해리슨 자신 또한 이 작품 외에는 1등작이 없다고 확신하는 바였다.
“그래. 지금 나의 최대 관심사는···.”
비숍의 살집 많은 손가락이 원고 겉장에 적힌 저자명을 톡톡 두드렸다.
“이 에곤 K라는 작가야. 대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단 말이야.”
인터넷을 싹 뒤져봤지만, 출간 이력은 물론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
“아마 새로 만든 필명이겠지.”
“그렇죠. 저도 이 작가가 이게 첫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노작가의 시선이 해리슨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럼 자네는 에곤 K가 기존의 유명한 작가라든가, 아니면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필명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일단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근데 말이야, 나는 좀 의견이 달라.”
“다르다니, 쌩신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 완전 신인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해리슨의 질문에 노작가가 어깨를 으쓱했다.
“열정이랄까?”
“열정···이요?”
“글쎄, 뭐라고 해야 되려나··· 흥분감? 열정? 신인 작가 특유의 뭔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있어.”
그럼에도 여전히 해리슨이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노작가가 옅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러니까··· 정말로 글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이, 참다 참다가 써낸 글이라고 하면··· 내 말이 뭔지 알겠나?”
“신인 특유의, 작품 활동 초반에만 느껴지는 그런 에너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편집장의 깔끔한 정리에 비숍이 손뼉을 쳤다.
“그래! 바로 그거야. 신인 특유의 에너지. 이런 느낌은 신인 때만 나오는 거라고.”
그러나.
해리슨 편집장은 그럼에도 회의적인 의견이었다.
“음, 저도 그게 무슨 느낌인진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작품을 신인이 써낸다고요? 저는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물론,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도 일리가 있어.”
비숍은 생크림을 잔뜩 올린 카라멜 마키아토를 홀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20~30대에 최전성기에 이르는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문학은 집필 경험이 쌓일수록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분야이지.”
소설가들의 대표작이 대부분 중장년 시기에 나오는 것은 바로 그러한 까닭이다.
그리고 이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은-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통찰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
문장마저도 전문 교정자의 손을 거친 듯 깔끔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이 베테랑 편집장이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하지만 가끔, 예외도 있지 않은가.”
아작, 과자를 기분 좋게 먹어치운 노작가가 손가락에 묻은 설탕을 쪽쪽 빨며 말을 이었다.
“그게 바로 천재라 불리는 경우이지.”
천재라.
···저 까다로운 노작가의 입에서 그런 표현이 나왔다는 것을 해리슨은 잠시 믿을 수 없었지만.
“작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더욱 기대가 되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가 맞을 것 같은데요.”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그렇게 말하자, 노작가의 얼굴에도 장난기가 떠올랐다.
“좋아, 내기하겠나?”
“그러죠. 작가님은 에곤 K가 신인이라는 것에, 저는 장편소설을 출간해본 기성작가라는 것에.”
“흐흐 그래. 그러면··· 내기로는 뭘 거는 게 좋겠나.”
즐겁게 과자를 먹는 노작가를 보며 해리슨이 씩 웃었다.
“차기작 어떻습니까? 3부작 장편으로.”
“아 제발, 이 노인네를 말려 죽일 셈인가.”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
‘나중에 샬롯한테 밥이라도 사야겠네.’
그녀와의 대화로 힌트를 얻은 덕분에 <로렌스 수사의 고백> 개작 작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확신을 얻었다.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해진 가운데, 지금 나는 새벽 조깅에 나선 참이었다.
“헉, 허억, 흐어억···.”
참고로 이건 내가 낸 소리가 아니다.
“유진아, 흐억, 조금만, 천처언히···.”
아버지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헐떡거렸다.
나는 자연스레 뒤로 돌아가 그 옆에 섰다.
“제가 너무 빨리 달렸죠?”
“흐으, 그렇게··· 빠른 건··· 아닌데에···.”
사실, 평소보다 훨씬 더 늦춰서 달리고 있었지만.
그조차도 아버지한테는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지.’
지금 내 신체 나이는 돌을 씹어 먹어도 튼튼하다는 열일곱 살.
반면 아버지는 관리라고는 전혀 안 한 40대 중반이 아닌가.
연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운 가운데.
“음, 아버지. 내일은 뛰지 말고 일단 걷기부터 할까요?”
“후우, 그러, 자.”
나야 좀 근질근질하겠지만.
아버지 체력이 올라올 때까지는 서서히 페이스를 조절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아버지랑 단둘이 뛰는 게 아직도 이렇게 어색할 줄이야.’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가끔씩 속도를 늦추자거나 조금 쉬어가자거나, 그런 말 외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고 있으니까.
“···.”
게다가 그건 어쩌면-
우리가 지금 한국어를 쓰고 있고, 두 사람 모두 한국어로 대화하는 게 드문 일이어서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어색한 침묵이 흐르던 찰나.
“···유진아.”
“네?”
“그, 뭐라고 해야 하지, 그러니까.”
말문을 열어놓고 한참을 망설이는 아버지.
“뭐, 할 말 있으세요?”
“그러니까··· 수류탄, grenade가.”
“아.”
곧바로 떠오르는 생각에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그 원고, 한국 작가의 번역 원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그거 제가 고친 거 맞아요 아버지.”
“아.”
처음에는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얼떨떨한 얼굴로 허, 혀를 찬다.
“어쩐지, 그랬구나···.”
그의 옆얼굴을 지켜보던 내가 슬쩍 물었다.
“그거 어떻게, 계약 성사됐어요?”
그 말에 아버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처음에는 영 상황이 안 좋았지. 근데 네가 원고를 고쳐준 덕분인지, 분위기가 확 바뀌어서 여러 군데서 입찰이 들어왔지 뭐냐.”
덕분에 기대했던 옥션가보다 두 배나 더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는 것.
‘잘됐네.’
슥 입꼬리를 올리던 그때,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았다.
“고맙다 유진아.”
···이렇게 솔직하게 고맙다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조금 낯설었지만.
“뭘요. 다음에 또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세요. 그건 그렇고, 아버지.”
나는 회귀한 첫날부터 생각했던 것을 입 밖에 냈다.
“건강검진, 가장 최근에 하신 게 언제예요?”
“···건강검진? 왜 갑자기 그런 소릴.”
웬 생뚱맞은 소리를 하냐는 반응.
“진짜로요.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예요?”
“한··· 5년 전이었을 거다.”
한국에서 일할 적 받은 것이 마지막이라는 아버지.
“그런 거 신경 쓰지 마라. 가끔씩 숨이 차는 것 빼곤 아무 문제도 없어.”
“숨이 차는 게 이미 문제 아닐까요?”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검진을 굳이 받아서 뭐해, 돈 낭비다 돈 낭비-”
“그게 무슨 낭비예요.”
저절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
느리게 걷던 아버지의 발 또한 멈췄고.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아버지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진짜, 진지하게 드리는 얘기예요. ···할아버지가 고혈압이 있으셨다면서요.”
“그래.”
“큰할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지셨고. 그러니 우리도, 어? 가족력이라든가 그런 게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죠.”
아버지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렇지만 건강검진 비용이 좀 부담이 돼야 말이지.”
그건 나도 잘 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제대로 된 검진을 하려면- 상상도 못 할 비용이 드니까.
차라리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서 받고 오는 게 낫다고 말이다.
“네 학자금도 그렇고, 클로이도 크려면 한참 남았지 않냐. 그러려면 허투루 쓰지 않고 잘 절약해가며···.”
자식에게 돈 얘기를 하는 게 겸연쩍으신 것 같다.
그런 아버지가 오랫동안 짊어졌을 부담과 책임의 무게가 느껴졌다.
‘게다가 대략 이때쯤.’
아버지의 에이전시에서 계약이 여러 개 불발되며 가세가 크게 기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그런 일이 없도록 나도 신경 쓰겠지만.
“제 학자금은 제가 알아서 할 거니 걱정 마세요.”
“···.”
“요즘 장학재단도 많고, 학자금 지원 제도도 다양하거든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말하자.
두 눈을 끔뻑거리던 아버지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깃들었다.
“그래, 안 그래도 레너드 선생님도 그 얘길 하셨어. ···참, 든든하구나.”
마치, 자식의 이런 변화가 새삼스럽고도 감사하다는 듯.
‘이렇게 쉬운 걸.’
···예전에는 왜 하지 못했을까.
가슴이 조금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며 슬쩍 물었다.
“제가 돈 벌어오면, 건강검진 받으러 한국 다녀오실 거예요? 5천 달러 정도면 충분하려나?”
아버지는 웃으면서도 엄하게 말했다.
“유진아, 5천 달러는 큰 돈이야. 세상에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그렇죠,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회귀 전, 통장 속에서 기록을 경신하던 천문학적인 액수를 떠올리며.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던데.”
“···?”
아버지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떠오른 그때.
지잉-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사이언스앤드판타지> 공모전 심사 결과 관련하여···.]
빠르게 메일 본문을 확인한 순간.
“아버지.”
“응?”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국행 비행기표, 빨리 알아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버지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