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근원(1)
*
“<6인의 고백>이라니, 제목부터 근사하지 않아?”
며칠 뒤 라이터스홈 본사.
케빈 클레그는 잔뜩 흥분한 채 동료에게 <6인의 고백>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으음, 나 이거 왜 들어본 제목 같지···.”
동료가 고개를 갸웃하거나 말거나, 케빈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동반자살 사건. 이걸 총 여섯 명의 캐릭터의 시선으로 다루는데···.”
여러 명의 화자.
여러 개의 시선.
그리하여 단 하나의 진실은 여러 개의 옷을 입게 된다.
처음만 해도 A였던 것이 다음 화자의 시점에선 B가 되며, 그다음 화자의 시점에선 다시 A로 돌아갔다가-
“결국 마지막 화자에 이르면, 모든 예상을 뒤엎는 진실이 드러나게 되지.”
각자의 이해관계나 상황 이해도에 따라 ‘진실’이 무엇인지 달라지는 식.
그 말에 동료가 아, 소리를 냈다.
“한때 일본 추리소설 쪽에서 자주 쓰이던 서술트릭 같은 건가?”
“그렇지.”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 흑곰을 연상케 하는 험상궂은 인상과는 달리.
섬세한 감수성을 자랑하는 케빈의 눈이 부드럽게 빛났다.
“근데 그런 서술트릭을, 설마 <로미오와 줄리엣> 패러디에서 맞닥뜨릴 줄은 상상도 못했단 말이야.”
“흐흐 케빈 자네가 흥분할 만한데? 아직 계약된 작가는 아니라고 했나?”
케빈이 자신 있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본사에 출근하자마자 ‘유진 권’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전역의 작가 등록 명단을 검색해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온다! 예이-!’
그리하여 매우 안심한 채로 <셰익스피어 앤솔로지>를 출간한 아이오와 대학 출판부 쪽에 문의를 넣어둔 상태였다.
···그 하이에나 같은 출판 에이전트들 가운데, 이 원석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이 자신이라고 확신하며 말이다.
“이 앤솔로지는 학생 작품만 싣는 걸 규정으로 하고 있거든. 그러니 아마 석박사 과정, 아니면 학부 과정 중인 학생일 거야.”
“정식 데뷔는 안 했다는 거지. 그나저나···.”
미간을 좁힌 동료가 폰을 들어 무언가를 찾아보았다.
“내가 이 제목을 어디서 분명 들어본 것 같거든?”
“그럴 리가. 난 처음 들어봤는-”
“여깄네.”
고개를 젓던 케빈에게 동료가 폰 화면을 보여줬다.
그것은 다름 아닌 ‘booktok’이라는 해시태그로 검색된 것 중 하나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좋아해?! 이건 당장 읽어야 한다고!!!!!! @케이티_북스]
···<셰익스피어 앤솔로지>에 실린 <6인의 고백>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여러분 스릴러 좋아하시죠? 저도 좋아해요! 로미오와 줄리엣도 좋아한다고요? 저도요! ···근데 그 두 개를, 섞어놓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유명 틱톡커인 걸까.
-이거 그냥, 대학 축제에서 우연히 집어든 거거든요? 근데 진짜··· That’s sick(미쳤어요)!···
팔로워수도, 조회수도, 그 아래 달린 댓글수도 어마어마한 것을 본 케빈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
간만에 맞이하는 여유로운 주말.
권상준과 권유진은 낚시를 하러 가기로 한 참이었다.
‘낚시라니, 참 오랜만이로군.’
부웅-
상준은 조수석에 앉은 아들의 존재를 의식하며 운전하는 중.
한국에 있을 적, 특히 유진이 어릴 때만 해도 둘은 꽤 오붓한 부자관계를 자랑했다.
‘아빠, 아빠 하며 참 잘 따랐는데.’
가족끼리 자주 놀러 가는 편이기도 했는데.
언제 한 번은 물놀이를 갔다가 얕은 물에 빠진 유진이 -물을 좀 먹고는-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바다든 호수든 물을 질색하게 되었는데···.
뒤늦게 그 사실에 생각이 미친 상준이 슬쩍 물었다.
“···유진이 너, 요즘은 물 안 무서워하냐?”
“네? 아 당연하죠.”
언제적 소리를 하냐는 듯 웃어버리는 유진.
“그래. 그건 그렇고···.”
상준은 그동안 고민하던 화제를 입 밖으로 꺼냈다.
“출판 에이전트가 뭔지는 알고 있지?”
“어, 대충은.”
미국 출판시장에는 ‘출판 에이전트’라는 직종이 있다.
이들은 작가의 권리를 대변하고 모든 대소사를 케어해주는, 이른바 매니저 역할을 하는 셈.
에이전트 없이 직계약도 얼마든 가능하지만, 미국 출판사들은 기본적으로 투고원고를 살펴보는 인원을 따로 두지 않는다.
‘그러기엔 너무나 많은 원고가 쏟아져 들어오니까.’
이 수많은 투고원고 중 가려낸 옥석을 출판사와 매칭시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에이전트의 핵심적인 역할이자.
담당작가의 영상화 및 해외 판권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그··· 아버지가 앤솔로지에 실린 네 글을 읽어봤거든.”
<로렌스 수사의 고백> 때는 그저 놀랐다면.
이번 <6인의 고백>을 읽고 나서는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이걸 우리 유진이가 써냈단 말인가?’
···그것도 학교수업을 듣고 클럽활동까지 해가는 틈틈이.
신기하고, 대견하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솟아오르는 와중에도.
권상준은 확신할 수 있었다.
‘유진이에게는 재능이 있어. 그것도 아주 뛰어난 재능이.’
자신이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이제껏 수많은 문학작품의 운명을 봐온 에이전트로서의 냉철한 평가였다.
‘다만, 이런 재능을 제대로 피워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문재를 지녔어도 제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 한다거나, 단기적인 보상에만 눈이 멀어 길을 잘못 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실제로 그렇게, 작품 활동을 하는 와중 꺾여나가는 작가를 수없이 본 권상준으로서는-
‘유진이에게도 정식 에이전트가 필요해. 이 시장을 제대로 볼 줄 아는 건 물론, 유진이의 장단점을 완벽하게 파악하여 커리어를 제대로 이끌어줄.’
그처럼 지극히 업계인다운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직접 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내 전문 분야는 그쪽이 아니지 않냐.”
상준의 에이전시는 해외판권, 그것도 한국 작품의 해외판매 독점권을 수출하는 것 전문이다.
“직접은 못 하더라도, 아버지가 잘 아는 좋은 에이전트들을 소개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출판계에서 일하며 쌓아온 네트워크.
그걸 활용한다면, 유진이 더 넓은 물로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음, 아버지. 이게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는데···.”
하지만.
유진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일단 에곤 K로서는 상업 출판 활동을 계속 할 거예요.”
“에곤 K. 그러니까, 얼굴도, 신상도 드러내지 않고 말이냐.”
“그렇죠. 어쨌거나 이 에곤 K로는 상황을 봐서 에이전트 계약을 할 생각이지만···.”
유진의 시선이 자동차 앞유리 너머로 펼쳐진 근사한 가을 풍경으로 향했다.
“‘유진 권’이라는 이름으로는 한동안 아마추어로 남을 생각이라서.”
“아마추어.”
“네. 그리고 제가 에곤 K라는 걸 알리는 건 대학 간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거고요.”
고등학생 아들에게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말에, 상준의 입이 저절로 다물렸다.
내심, 유진이가 이 <셰익스피어 앤솔로지>에 제 글이 실렸다는 사실에 너무 들떠 있다거나 과한 기대를 한다거나-
‘더 나아가서는 자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자신의 우려를 일축해버리는 유진의 말에 상준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버지, 혹시 ‘벤자민 코너’라는 작가 기억하세요?”
“아, 그 학생 작가 말이냐.”
“네. 한때 천재 작가니 어쩌니 난리였던.”
상준도 기억했다.
바로 옆동네 디모인에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16살의 천재 소년 작가.
그 작가의 데뷔작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물론, 전 세계 십여 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단 소식으로 한동안 업계가 떠들썩했는데···.
“그 친구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면, 절반 이상이 나이 얘기예요.”
“···.”
“대체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글을 썼냐고.”
유진의 목소리가 조금 씁쓸하게 들렸다.
“그 친구가 쓴 ‘작품’에 관한 질문은, 글쎄요. 거의 못 본 것 같네요.”
그리고 상준 자신이 기억하기로-
‘아마 그 작가, 첫 작 이후로는 잘 안 되지 않았던가.’
어린 나이에 지나칠 정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탓인지, 아니면 단순한 소포모어 슬럼프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재 고등학생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은 처참할 정도로 실패했고, 그 후로는 들려오는 소식이 없었다.
“아까 이유가 뭐냐고 물으셨죠?”
유진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고등학생 작가이니 뭐니, 영재니 뭐니 그런 이미지로 소비당하고 싶지 않아요.”
···아.
상준이 대답 대신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썼냐, 그런 멍청한 질문보단 제 작품 세계에 관한 질문을 받고 싶거든요.”
그러면서 씩 웃어 보이는 유진.
그 모습이 순간 너무도 낯설어, 상준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비볐다.
“···.”
어째서일까.
이렇게 당차게 포부를 밝히는 아들의 모습에 괜스레 목이 메어오는 것은.
‘현희야.’
그래. 이게 아마도 자식의 성장을 마주하는 부모의 기분이겠지.
‘우리 유진이가··· 벌써 이렇게 자랐어.’
잘 보고 있으려나.
한국에 가면, 오랜만에 아내의 무덤에 들러 밀린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마음 먹는 상준이었다.
*
차로 20분쯤 달렸을까.
우리는 아이오와시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코랄빌 호수에 도착했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드넓게 펼쳐진 호수 물 위로, 이제 막 가을에 들어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크으, 보기만 해도 좋네요. 눈호강하는 기분이네.”
기지개를 쫙 켜며 한마디하자, 아버지가 신기한 기색으로 나를 돌아본다.
“니가 여길 맘에 들어할 줄은 몰랐는데.”
“뭐, 살다 보면 취향이 바뀌기도 하는 거죠.”
“하긴 니가 좀 오래 살았어야지 말이다.”
아버지가 웬일로 농담을 다하시네.
하긴 뭐 그렇게 따지면 예전의 나는-
‘아 할 얘기 없다고요.’
‘학교가 왜, 뭐요. 관심도 없으면서 물어봐서 어쩌게.’
‘아 씨 이놈의 촌구석, 지긋지긋하다고!’
···그만 떠올리자.
“이건 여기 놓음 돼요?”
“그래.”
아버지를 도와 낚시 준비를 마쳤다.
“···.”
그저 고요한 가운데.
나는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좋구나.’
어렸을 땐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낚시 취미.
이제는 이걸 왜 좋아하시는지 알 것 같다.
낚시의자에 앉은 채 맑은 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달까.
그나저나···.
‘저, 유진 작가님. 이거 어떻게 하죠?’
어제 저녁.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건 셜리 담당자의 용건이 기억났다.
‘작가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여기저기서 난리인데.’
‘제 연락처요? 대체 왜-’
‘그게 그러니까, 북톡이 올라왔거든요.’
북톡이란 책 소개를 전문으로 하는 틱톡 컨텐츠.
그중 어느 유명 북톡커가 나의 단편 <6인의 고백>을 소개하는 영상을 업로드했다는 것.
‘그게 지금 조회수가 엄청나요.’
자기네 대학 출판부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다들 깜짝 놀랐다는 것.
‘맥마혼 아시죠? 유명 문학 에이전시인데.’
맥마혼을 비롯, 에이전시 여러 군데에서 내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문의를 넣었다고 한다.
‘음, 제가 고등학생이란 건 얘기 안 하셨죠?’
‘당연하죠! 출판부 내부에서도 단단히 입단속하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내 메일 주소만 알려주라고 했고.
지잉- 지이잉-
지금 스마트폰이 자꾸만 진동하는 것은 다 그런 메일들 때문이다.
[불릿츠에이전시에서 문의드립니다]
[유진 권 작가님께, 에이전트 한나 케이츠라고 합니다]
···
그러나 이 중 누군가와 계약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같은 이유.
‘벌써부터 어느 에이전시에 묶일 필요가 없을 뿐더러.’
일단은 내 이름값을, 몸값을 높이는 게 최우선이니까.
그래야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내 쪽에서 상대를 골라가며 계약할 수가 있다.
‘가능하면, 그게 어디였더라.’
케빈C 에이전시 같은,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렸던 유능한 에이전시와 하는 게 좋겠지.
근데 그 에이전시도 십 년 뒤에나 생기니-
“···거기 대표도 지금은 아직 애송이 에이전트이려나.”
여하튼.
내 이름을 가지고 검색해봐도 뭐 하나 나오는 게 없어서 다행이었다.
‘···SNS를 안 하길 천만다행이지.’
나는 아버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맞다 아버지, 비행기표는 다음 달 걸로 예약하셨다고 했죠?”
“그래.”
비행기표는 물론, 종합건강검진 예약까지 마쳤다며 담담하게 말하는 아버지.
···나한테는 표를 잘 안 내지만, 사실은 굉장히 신이 나신 것 같다.
언제 한 번, 아버지가 한국의 친척들과 통화하는 걸 지나가다 들은 적이 있는데.
‘삼촌, 저희 유진이가 말입니다, 이번에 공모전에서 상을 타서···.’
‘그 상금으로 절 한국에 보내주겠다고, 허허 맞습니다 형님.’
‘저도 벌써 이렇게 효도를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 뭡니까.’
···얼마나 내 자랑을 하시는지 낯이 다 화끈거릴 정도였으니까.
그건 그렇고.
‘내가 어릴 땐 확실히 물을 무서워하긴 했어.’
지금이야 저기 저 깊은 호수를 봐도 아무 생각이 안 들지만.
어릴 때는 물을 엄청나게 무서워했었다.
‘물에 빠진 것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무서워했더라, 옛 기억을 더듬던 그 순간.
병상에 누운 채 구상했던 소설 중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저 아래, 깊은 호수 속.]
···유난히 겁이 많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만들었던 이야기가.
[살아서는 안 될 무언가가 살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