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근원(2)
*
호수 낚시는 꽤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트렁크에서 아이스박스를 꺼냈다.
물고기가 가득 담긴 아이스박스를 열어보이자-
“어머, 생선 파티를 해도 되겠는데?”
“Fish! I like fish~~”
두 눈을 반짝이는 새어머니와, 생선이 좋다며 노래를 부르는 클로이.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다양한 생선 요리를 배 터지게 먹었다.
‘이제 슬슬 신작 집필을 시작해볼까.’
가볍게 샤워를 마친 뒤 노트북 책상 앞에 앉았다.
새하얀 화면을 보자마자 떠오르는 것은-
“아까 그 호수에서 생각난 걸 적어볼까.”
그러니까···.
호수 속에 ‘무언가’가 사는 이야기.
그게 아마 병원에 입원한 지 1년 가까이 되는 시점에 쓴 습작이었을 거다.
“···.”
책상 앞에 앉은 채 그대로 눈을 감자.
새카만 시야 속에서 폴더 리스트 같은 것들이 죽 떠올랐다.
[···습작···]
[···호수 이야기···]
‘이거네.’
머릿속에 보관된 이야기를 잠깐 열람한 뒤.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타이핑에 착수했다.
타닥, 다다다닥——
“···.”
적막이 내려앉은 방 안,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만이 리드미컬하게 울려퍼진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디, 한 번 다시 읽어볼까.”
이야기는 어느 소년의 일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호숫가의 어느 외딴 집에 사는 소년.
소년의 세계는 불행하기 그지없다.
술만 마시면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 자신을 괴롭히는 학교 아이들, 일방적인 폭력을 알고도 모른척하는 교사들···.
평소 인적이 드문 호숫가.
그 앞에 앉은 채 아이는 비관적인 현실을 입 밖으로 내어본다.
고요한 수면을 마주한 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들을 털어놓고.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던 그때-
‘···!’
오싹한 감각이 전신을 스치고 지나가며 소년은 깨닫는다.
···지금 이곳에 자신 말고 누군가가 있다는 걸.
스스스슥—
삭삭삭—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
소년은 비명을 꾹 삼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벗어난다.
···그리고 다음 날.
소년은 자신을 괴롭히던 학생 중 하나가 ‘호수 괴물’에게 잡아먹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것을 시작으로-
“후우.”
나는 30분간 정신없이 집중해 읽고 나서야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있었다.
‘···팔등에 소름이 다 돋았네.’
나 또한 그 오싹한 호숫가에 있는 듯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이 이야기는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누군가를 대신 잡아먹어주는 괴물과-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게 소년이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에 관한 이야기.’
나는 문서창을 하나 더 켜서 방금 전 느낀 감상을 적어보았다.
[지금 이대로도 나쁘진 않지만.]
[지나치게 평면적임.]
흐음.
잠시 고민하다가 한 가지를 덧붙여 적었다.
[<6인의 고백>처럼 서술트릭을 활용한다면?]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플롯을 훨씬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권의 장편 서사를 끌고 나가기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포··· 공포에 관한 좀 더 근본적인 고찰이 필요할 듯.]
거기까지 적은 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양 어깨를 돌리기도 하고, 두 팔을 휘젓기도 하고.
고개를 뒤로 쭉 당겨 뻐근한 목을 풀어주고 나자.
“좋아.”
머릿속이 한결 개운해진 것을 느끼며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타닥, 다다다—
‘공포란 무엇일까’에 관한 나의 생각을, 화면상에 자유로이 적기 시작했다.
[두려움이란 무엇일까]
[어릴 때··· 호수 속에 사는 무언가. 피라니아?]
피라니아.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어릴 때 내가 진짜 겁이 많긴 했네 싶어서.
“그게 아마, 여덟 살 때였지?”
부모님과 함께 얕은 계곡에 놀러갔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다.
겨우 무릎께까지 오는 물 안에서 허우적대다가 물을 좀 먹었는데.
내 딴에는 그게 꽤 많이 무서웠나 보다.
그래서 동네의 어떤 형-그래 봤자 열 살 남짓한-에게 그 얘길 늘어놓았더니.
‘야 너 잡아먹힐 뻔했어!’
‘잡아먹히다니?’
‘물속에 피라니아 살잖아!’
사람의 살을 뜯어먹는다는 육식 물고기, 피라니아.
···내 머리가 조금만 더 컸다면 산 속 계곡에 피라니아가 산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믿지 않았겠지만.
‘으으으, 진짜로?’
여덟 살의 나는 지나치게 순진했으며.
그때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같은 괴담집이 어린이들 사이에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후로 물이라면 질색을 했으니···.
[유년기의 공포 - 초자연적인 무언가]
그래.
어린 시절에는 흔히 귀신이나 유령 같은, ‘비현실적인 공포’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청소년기에만 접어들어도 그 형태가 바뀌는데.
[청소년기의 두려움]
[-성장 혹은 변화에 대한 불안감]
···말하자면 보다 더 실존적인 두려움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머릿속에 쏟아지는 생각들을 천천히 화면 속으로 옮겨나갔다.
[성인기의 두려움]
[-내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데서 발생하는···]
거기까지 적은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성인으로서 느끼는 두려움이라.’
유령이나 괴물을 무서워하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그 원인도, 형체도 명확하지만.’
성인기의 두려움은 그 정체를 인지해도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몸집을 부풀리는 법이다.
마치 통제하기 어려운 내 안의 괴물처럼-
“···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냈고.
무심코 고개를 들자.
자동으로 화면이 꺼진 탓에 어두워진 노트북 화면 안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무척이나 앳된, 열일곱 살의 나.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서른다섯 살의 나.’
그 순간,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할 아이디어 하나가 머릿속에서 번뜩였다.
*
나는 주말 내내 원고 집필에 매달렸다.
겨우 이틀을 작업한 것치고는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써내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
비록 손 볼 곳이 많지만, 이전에 써둔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뼈대로 삼아 살을 붙여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제목도 벌써 정했고.”
제목.
이래 저래 열심히 고민해봤지만, 역시 이 이야기의 첫 문장-
‘살아서는 안 될 무언가가 살고 있었어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결정했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Something Lives in the Lake)>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진 채, 나는 월요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점가로 향했다.
그중 제일 안쪽에 자리한 낡고 수수한 서점 앞에 멈춰 섰다.
[클린트 선장의 희귀서적상]
딸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훅 끼치는 오래된 책 냄새.
바닥부터 천장에 이르기까지 사면이 낡은 고서로 가득한 이곳은-
“어머, 왔구나 유진.”
새어머니 케이트가 운영하는 고서적상이다.
얼마 전에는 <월든>의 희귀 판본이 들어왔다며 얼마나 신나하시던지.
“네, 간만에 들렀어요.”
웃는 낯으로 들어가 서점 안을 슬쩍 둘러보던 그때, 익숙한 표지의 책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 이건.”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려진 <셰익스피어 앤솔로지>.
따끈따끈한 새책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질문을 던지기도 전.
“후후, 근사하지?”
“어··· 새책은 취급 안 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 그건 그런데.”
새어머니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 말을 받았다.
“우리 유진의 첫 책인데, 자랑을 안 할 수가 없잖니?”
“자랑···.”
단골 손님들이 올 때마다 내 책을 보여주며 자랑한다는 말에, 뺨이 절로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케이트도 참.’
늘 느끼는 거지만, 새어머니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참 한결 같으신 분이다.
우리 아버지와 결혼한 후로 내 마음을 열려고 많이 노력하셨는데.
‘어릴 적의 나는 그런 행동을 위선이라고만 생각했지.’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지금은, 새어머니의 행동 하나 하나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잘 안다.
“···고마워요 케이트.”
“고맙기는, 아 그리고 <사이언스앤드판타지>는-”
새어머니가 돌연 아, 하며 주변에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더니.
이내 소리를 죽여 물었다.
“내일 나온다고 했지?”
“네 맞아요.”
내일.
내일은 드디어 <사이언스앤드판타지> 호에 공모전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더불어-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도 심사평과 함께 실릴 거고.’
“아우 어떡해, 왜 내가 다 떨리는지 모르겠다.”
발을 동동 구르는 새어머니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전 안 떨리는데.”
“후후, 우리 유진이 보면 볼수록 참 강심장이란 말이야.”
떨리지는 않지만, SF 팬덤의 반응이 어떨지는 솔직히 좀 궁금하긴 하다.
여러 장르들 가운데 가장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제일 깐깐하기로 유명한 것이 바로 이 SF팬들이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기대되는 건.’
다름 아닌 랜든 비숍 작가와의 만남 일정이 확정되었다는 것.
[작가님, 혹시 10월 중순에 일정이 어떠실까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랜든 비숍의 작업실.
SF 팬들에게는 성지나 다름없는 곳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비숍이 직접 나를 맞이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물론 항공료와 숙박비용은 전액 저희 측에서 부담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뭐, 거절할 이유가 어딨겠는가.
주말 안에 다녀올 수 있는 일정이 아니다 보니, 학교에는 미스터 레너드를 통해 미리 허락을 받아놨고.
신상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사비로 항공편이나 숙박 비용을 처리한 뒤 나중에 입금받기로 했다.
‘후우, 랜든 비숍을 직접 만나다니.’
날짜와 장소까지 확정했는데도 여전히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벌써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자 서점 안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새책은 새책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이렇게 헌책들, 그 가운데서도 희귀한 고서적을 모아놓은 고서점은 유난히 독특한 매력을 자랑한다.
반쯤 감탄하며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새로 들어온 책들이 제법 있네요.”
“맞아, 이번 주에 괜찮은 것들이 많이 입고됐더라고.”
케이트가 가리킨 ‘신규 입고 코너’를 둘러보던 그때.
“···.”
허름한 가죽 장정의 책 한 권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이루지 못한 꿈 - 에곤 언윅]
‘에곤’이란 이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책을 꺼내들었다.
“이 책도 ‘에곤’이 쓴 건데요?”
그 말에 내 쪽으로 다가오는 새어머니.
아, 소리를 낸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에곤 언윅, 그래. 어쩐지 네 필명이 귀에 익다 했더니···.”
“유명한 작가예요?”
“음, 유명해지려다 말았달까?”
케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1920년대에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와 교류했던 젊은 작가라고 한다.
“당시 작가들 사이에서 젊은 천재라고 불렸다는데, 안타깝게도 첫 소설을 집필하던 중 요절하고 말았다고 해.”
“···아.”
사후에 그의 동료들이 그의 미완성 원고를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 바로 이 <이루지 못한 꿈>이라고.
“헤밍웨이의 회고록에 종종 보이는 이름이라 관심이 생겼거든. 근데 이번에 경매에 떴길래 한 번 가져와봤지.”
“흠, 그렇군요.”
그런 얘기를 들어서인가.
회귀 전의 내가 떠올라 자꾸만 책 내용에 관심이 가던 그때.
“유진, 그 책 가지렴.”
“네? 어, 안 그래도 되는데.”
“선물이야 선물.”
내 눈에 떠오른 호기심을 알아차렸는지, 케이트는 ‘공모전 수상 선물’이라며 책을 내게 떠안겼다.
*
다음 날 오전 9시.
라이터스홈 본사는 평소보다 활기가 넘쳤다.
“<사이언스앤드판타지> 홈페이지에 결과 떴어?”
“아직이요.”
“아니 9시 땡하면 떠야지, 언제까지 기다리게 만들 셈이야.”
···명망 높은 장르문학 전문지 <사이언스앤드판타지>의 공모전 결과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
단순히 SF팬덤만이 아니라 미국 전역의 에이전시가 이 결과를 주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S&F 공모전이야말로 향후 SF 장르를 주름잡을 작가들을 대거 배출하는 등용문이기 때문.
“흐으, 이번에도 괜찮은 신인들이 좀 있겠죠?”
“아마 여기저기서 주시하고 있을 거다.”
“이거, 결과 뜨자마자 연락해도 이미 늦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리하여 에이전트들 대부분이 컴퓨터 앞에 앉아 S&F 홈페이지를 새로고침한 지 약 5분이 다 되어가던 때-
“떴다!”
다들 일제히 마우스에 손을 가져갔다.
한동안 딸각, 딸각 마우스 클릭소리만 나는가 싶더니.
“에곤 K?”
어느 한 명을 시작으로 경악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게 대체 누구야?”
“프로필 사진 대신 그림이 있는데?”
“신상도 비공개라니, 거참.”
<사이언스앤드판타지> 아포칼립스 공모전의 1등 수상작.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