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향(2)
그로부터 5분간.
담당자 마크의 메시지가 1초 간격으로 쏟아졌다.
[S&F 편집부_마크: 으아아아 어떻게 벌써-]
[S&F 편집부_마크: 아니 아니지 작가님 이번 신작 내용은···.]
보글보글-
물이 끓기 시작한 냄비 앞에서 폰을 붙잡고 있으려니.
“뭐 하냐.”
네드가 슥 다가와 나 대신 라면사리를 끓는 물에 집어넣는다.
“아아, 담당자.”
“아, 에곤 K 말이지?”
“어.”
나도 스프봉지를 기계적으로 찢어서 탈탈 털어넣었다.
“신작 썼다니까 되게 놀라시네.”
“아, 신작. ···신작?”
무심코 따라하던 네드가 눈이 동그래진 채 나를 돌아보았다.
“신작이라고? 에곤 K 이름으로?”
“···어.”
“신작이라고?!!!”
그때.
식탁 앞에 앉아 있던 아델도 벌떡 일어나 내 곁으로 달려왔다.
“뭐야 뭐야, 신작이라니!”
“음, 그게-”
“유진 너 또 나한텐 얘기도 안 하려고 했지!”
···아델이 자기한테만 뒤늦게 얘기한 걸 은근 마음에 두고 있었나 본데.
그녀의 뾰로통한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너한테 먼저 보여주려고 했는데.”
“···진짜지?”
“어어, 니가 좋아할 만한 얘기라.”
그 말에 두 친구 모두 흥미를 보인다.
“뭔데 뭔데.”
“내가 좋아할 만한 거?”
잔뜩 들뜬 둘의 얼굴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무서운 이야기.”
“···억, 그건 좀.”
“완전 좋아아아—!”
역시나.
공포영화 매니아인 아델이 좋아할 줄 알았다.
“완성하면 나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는 거야, 알았지?”
“어어.”
잠시 후.
호로록, 후루룩- 면발 들이켜는 소리만이 식당을 울렸다.
“아흐, 맛있다.”
“아무래도 라면 스프에 마약 같은 게 들어 있는 게 분명해.”
네드와 아델은 라면을 먹는 와중에도 열심히 떠들어댔다.
‘그리운 기분이네.’
회귀 전에도 이 둘은 한 달에 한 번은 우리 집에서 라면을 먹고 가곤 했으니까.
“근데 말야 유진, 넌 어떻게 아무렇지 않아 보이냐?”
“···아무렇지 않다니?”
“아니 아니, 이거 말야!”
네드가 제 스마트폰을 식탁 한가운데로 밀어 보였다.
녀석이 검색하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아··· SF팬덤 포럼이야?”
“그래. 에곤 K 정체가 대체 뭐냐고 다들 난리인데, 으흐흐.”
모르는 척하기도 쉽지 않다, 라는 네드의 말에 아델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여기 맨날 접속하는 거 알아? 니 정체 추측하는 스레드가···.”
어째 나보다도 이 둘이 더 신이 난 모양인데.
그 말대로, 에곤 K에 관한 검색결과가 점점 더 늘어나는 중이긴 하다.
‘S&F 편집부에서도 잔뜩 흥분한 것 같고.’
그렇지만 회귀 전, <잊혀진 성자들>의 어마어마한 여파를 경험해본 내게는 그저 평온한 수준이라고 할까.
“그나저나 너.”
벌써 라면을 거의 다 먹어치운 네드가 돌연 진지하게 물었다.
“내일 홈커밍, 진짜로 안 가냐?”
한 달 전부터 홈커밍으로 전전긍긍해하던 놈에게, 나는 딱히 갈 생각이 없으며 문예창작클럽에서 하는 파티에 가기로 했다고 얘기한 터.
“안 간다니까. 파트너도 없고.”
“진짜로? 야, 앰버, 앰버 브라운이 혹시 너한테 홈커밍 가자고-”
“그럴 리가.”
강하게 부정하자 “아니 왠지 분위기가 그럴 것 같았는데···”라며 말을 흐리는 네드.
‘앰버랑 최근에 메신저를 주고받긴 했지만.’
지난 일요일이었나.
앰버가 <6인의 고백>을 너무 재밌게 읽었다며 말을 걸어왔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홈커밍파티가 화제로 올랐고.
[앰버_브라운: 유진 너는 홈커밍 가?]
나는 당연히 아니라는 답을 보냈다.
댄스는 쥐약이며, 문예창작 클럽에서 하는 피자 파티에 가기로 했다고.
[앰버_브라운: 아 그렇구나]
[앰버_브라운: 클럽원들이랑 재미있게 놀아 >_<]
그래서 너도 재미있게 놀아, 라고 답을 보낸 게 전부였으니.
우리 이야기를 듣던 아델이 끼어들었다.
“앰버는 리암이랑 간다던데? 11학년 쿼터백 말야.”
“아, 미래의 프롬킹과 퀸 커플이네. ···아델, 너 혹시-”
“안 가. 그냥도 안 가고, 너랑도 안 가.”
“야 나 아직 말도 안 꺼냈거든?”
“누가 뭐래?”
또다시 투닥거리는 두 사람.
그 둘도 그렇지만 홈커밍 파티를 앞두고 잔뜩 들뜬 학교 아이들을 보면···.
참 좋을 때네, 뭐 그런 생각이 든달까.
“근데 얘들아.”
나는 국물까지 다 마셔버린 두 친구의 빈 그릇을 보며 한마디했다.
“국물은 웬만함 마시지 마라.”
“···응?”
“라면이 맛있긴 한데, 국물에 염분이 많아요.”
어쩐지 조용해진 가운데 내 목소리만이 이어졌다.
“미국인들 대부분이 염분을 하루 권고량 두 배 수준으로 과다 섭취하는 상황이란 말이지. 이게 나중에는-”
“뭐, 고혈압, 심장질환, 당뇨에 걸릴 수 있다고?”
내가 하려던 말을 이어나가는 아델을 보며 씩 웃었다.
“잘 아네.”
*
다음 날, 홈커밍 데이.
학교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시끌시끌했지만-
‘아, 결말이 좀 맘에 안 드는데.’
나는 신작 장편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원래 완성돼 있던 이야기를 수정해 살만 붙인 수준.
그것도 책으로 200페이지 남짓한 분량이라 집필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마지막이 좀··· 이대로는 역시 아쉬울 것 같단 말이지.’
그런 탓에, 퇴고까지 마쳤는데도 아직 담당자 마크에게 보내지 않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유진 작가님, 아직도 여기저기서 연락 오는 거 아세요?’
아이오와 대학 출판부의 담당자 셜리.
그녀의 말에 따르면 문학 에이전트들은 물론, 타 출판사 에디터들까지 연락해 나를 소개시켜달라 한단다.
‘아 그건 그렇고, 좋은 소식! 저희 3쇄 찍게 됐어요!’
‘···3쇄요? 벌써?’
물론.
대형서점을 제외한 교내서점 및 일부 학술서점에서만 판매하는 것이다 보니 애초 300부밖에 찍지 않았단다.
근데 그것이 <6인의 고백>을 소개한 북톡의 영향으로 축제 기간 동안에 다 팔려버렸고.
‘2쇄도 금방 매진! 그래서 3쇄는 아예 500부를 찍기로 했어요.’
담당자의 말로는 역대 셰익스피어 앤솔로지 중에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이 팔린 수준이라고 한다.
‘···와, 엄청난걸요.’
나도 편집자 생활을 해본 만큼 잘 안다.
이런 대학 출판부에서, 그것도 축제용으로 출간한 책이 3쇄를 찍는다는 게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일인지.
‘그래서 많지는 않지만, 인세를 곧바로 입금했어요. 맘 같아서는 유진 작가님께 젤 많이 드리고 싶은데···.’
계약상 저자 수대로 나눠서 지급하기로 돼 있다는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뜻 깊게 쓸게요.’
그리하여 들어온 인세가 총 300달러 정도.
저자가 총 10명이라는 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금액이다.
지난번에 받은 공모전 상금은 아버지 선물로 썼으니, 이번엔 새어머니와 동생 선물을 사볼까 싶기도 하고.
이처럼 <6인의 고백>이 톡톡히 제 몫을 해준 가운데.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의 여파 또한 생각보다 오래 가는 중이었다.
지잉, 지이잉-
[네드_밀러: 아이오와SF 북클럽의 이번 달 선정작품 - 멸망한 세계의···]
[https://litlovers.com/run-a-book-club]
[아델_애시번: 댄 에이브러햄의 리뷰_멸망한 세계···]
[https://litistbookreviews.com/2023/peter-pan-of-doomedland/
···
네드와 아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에 관한 새 소식을 공유했다.
‘누가 보면 내 매니저인 줄 알겠어.’
장르문학 북클럽을 비롯, SF장르의 유명 북리뷰어(도서 검토자)들 사이에서 꽤 화제가 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정말로 실감하게 된 건-
“야! 니들 이거 봤어?”
···다름 아닌 문예창작 클럽 파티에서였다.
*
지금 이곳은 힐크레스트 고등학교의 문예창작 클럽룸.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말이지?”
“아, 사이언스앤드판타지 공모전 수상작?”
“그거 여기저기서 난리더라.”
피자 파티에까지 문학지를 들고 와서 토론하는 모습은 확실히 놀랍긴 했다.
···홈커밍에 당연한 듯 안 간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샬롯, 너도 읽어봤어?”
제이든이 던진 질문에 샬롯은 고개만 끄덕이더니.
문예창작 클럽 채팅방에서 이모티콘이 가득한 메시지를 쏟아냈다.
[샬롯_데인스 : 완전 어어어엄청나더라아아아 (>_<)]
[샬롯_데인스 : 너어어무 좋아!!!!!
[샬롯_데인스 : 우리, 담번 모임에선 이걸로 토론해보는 거 어때? @[email protected]
]
그 말에 같이 신나하는 아이들.
“오 그것도 좋지!”
“난 SF는 원래 잘 안 읽는데, 이건 진짜 좋더라.”
“팬들 사이에선 완전 난리 났다니까! 이거 봐봐. SF서브레딧인데···.”
판타지와 SF 매니아라는 로완은 더더욱 신이 난 기색으로-
“유진, 너도 이거 읽어봤어?”
“···어? 나?”
나를 붙들고는 내 앞에 <사이언스앤드판타지> 이번 호를 펼쳐 보였다.
“아, 어.”
“어땠냐-! 감상 좀 말해봐!”
콧김이라도 뿜을 기세로 흥분한 로완.
···SF팬의 전형적인 반응이랄까.
“음, 나쁘지 않던데.”
“나쁘지 않다고? 겨우 그 정도야?”
“아니 그게-”
“유진, 네가 아무리 평가에 박한 편이라고 해도 이건 최소한 ‘아주 좋아’ 정도는 나와줘야 한다고!”
내 앞에서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의 매력을 하나부터 열까지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음, 뭐랄까.
일상에서 나와 에곤 K를 명확하게 분리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이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낯뜨거운 기분인걸.’
민망한 마음에 뺨을 긁는 가운데.
이제 로완은 아이들 몇몇을 끌어들여 <피터 팬>에 관한 토론까지 시작한 참이었다.
물론 말이 토론이지, 핵심은-
‘피자 파티.’
갓 배달된 따끈따끈한 피자에 콜라와 몇몇 스낵.
거기에 친구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까지.
···예전의 내가 왜 클럽활동을 안 했을까, 아쉬워질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다.
그나저나 로완은 큰 덩치만큼 아주 잘 먹었는데.
“안 그래? 우적, 아포칼립스 장르에서, 쩝쩝-”
“로완, 제발 다 먹고 얘기해!”
피자 두 쪽을 토핑이 있는 면끼리 붙여서 샌드위치처럼 먹어대는 그의 모습에 다들 낄낄거린다.
“이렇게 먹으면 케사디아 같은 거 알아?”
“로완, 너··· 케사디아 한 번도 안 먹어본 거 맞지?”
다들 신이 난 가운데, 유독 조용한 한 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소 통통한 체격에 도수 높은 안경이 트레이드마크인 제이든은, 작년에 이미 문학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은 걸로 유명했다.
상당한 규모의 출간 계약이었다고 지역신문에 기사도 났던 것 같은데···.
‘지난번 합평 때 혹평을 들은 후로 계속 풀이 죽어 있네.’
정확한 분석과 계산을 바탕으로 명민한 글을 써내는 샬롯.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글쓰는 걸 즐거워하는 로완과 달리-
‘제이든은 뭐랄까, 굉장히 괴롭게 글을 쓰는 느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때마침 고개를 든 제이든과 눈이 마주쳤다.
“저, 유진.”
의외로 먼저 말을 걸어오는 녀석.
“응?”
“저기,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
글쓰기에 관련된 고민인 걸까.
“그럼, 뭐든 편히 물어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이 있는데 자신감이 부족한 작가를 보면 괜한 오지랖을 부리고 싶어지는 건, 편집자의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꽤 진지한 질문이 들어오리라 대비하고 있던 때.
“넌 왜 홈커밍 안 갔어?”
“···뭐?”
예상 외의 질문에 눈을 크게 떴다.
“홈커밍, 파트너 하자는 여자애들 많지 않았어? 분명 있을 것 같았는-”
“잠깐, 지금 그게 궁금했던 거였어?”
황당한 마음에 되묻자.
제이든은 본인이 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그게 궁금하지 뭐가 궁금하겠냐, 홈커밍 데이에.”
···문학에만 진심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네드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구나.
“아 우리 불쌍한 제이든.”
“미아랑 그으렇게 같이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다들 시끄러!”
벌개진 얼굴로 소리치는 제이든의 모습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가운데.
“뭐, 홈커밍도 좋기는 한데.”
나는 여전히 답을 기다리는 녀석을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그것보다 훨씬 더 근사한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어서.”
“···더 근사한 이벤트?”
“오오, 그게 뭔데?”
제이든과 로완, 나머지 친구들도 귀를 쫑긋하며 궁금해했지만.
“일단은 비밀.”
씩 웃으며 말을 자르자 야유하는 친구들.
“아 뭐야 궁금하게···.”
“흐, 유진 너 의외로 파티피플이었구나?”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게 뭔지 알아? 첫째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둘째는.”
“뭔데 뭔데~~”
저희들끼리 신이 난 친구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홈커밍 파티 주간이 지나간 뒤, 어느덧 10월 중순.
[오클랜드 국제공항]
나는 공항 바로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여기로 가주세요.”
기사에게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SF의 거장 랜든 비숍의 작업실 주소.
···근 한 달간 가장 고대했던 이벤트가, 바로 오늘 이루어질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