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타임(1)
바로 그 시각, 빅토리아 첸은 여러 개의 서점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온 참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고는 휴게실로 향한 그녀가 커피머신을 작동시켰다.
치이익-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소리가 시끄러운 가운데, 머릿속은 오늘의 미팅 결과를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일단 장르서점들 반응은 아주 좋아.’
SF나 판타지, 더 넓게는 코믹스까지 취급하는 장르 전문 서점들.
SF팬덤 안에서 에곤 K가 지닌 화제성을 잘 알았기에, 이들 대부분은 데뷔작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덕분에 선주문이 꽤 들어온 건 상당한 호재이지만.’
미국 도서업계의 독과점 기업.
이북 시장의 80퍼센트, 종이책 시장의 40퍼센트를 점유하는 아마존.
‘아마존과의 미팅은··· 별 소득이 없었단 말이지.’
아마존의 메인페이지에 잠깐 노출되는 것만으로 단숨에 판매수치가 확 오르는 것은 물론.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장기적으로 남을 가능성이 몇 배로 뛴다.
그러니 어떻게든 어필하고 싶은 마음에 MD와 미팅을 했지만-
‘아, 그렇군요. 근데 잘 아시겠지만 안타깝게도···.’
한 달 정도는 이미 프로모션 슬롯이 기존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신작만으로 꽉 차 있다는 것.
어느새 추출이 끝나 휴게실 안에 커피 향기가 그윽한 가운데.
“어떻게, 장르 페이지에라도 좀 노출되면 좋은데···.”
빅토리아가 멍하니 중얼거리던 그때, 익숙한 인물이 휴게실에 들어와 섰다.
“빅토리아, 서점 미팅 다녀왔다며? 이야, 이거 간만에 열정적인걸.”
“···.”
빅토리아는 싱글싱글 웃는 상대를 말 없이 마주 보았다.
해리슨 호프.
그녀와 입사 동기였던 시절부터 정반대 성향 탓에 사사건건 부딪쳤으며.
‘단편집을 한 달 만에 출간하라고요? 아니 팀장님, 이게 말이 되나요?’
‘저희 단행본팀이 무슨 <사이언스앤드판타지> 짬 처리반도 아니고···.’
월간지 <사이언스앤드판타지>를 메인으로 하는 회사 정책상, 그녀와 해리슨은 팀 리더로서 어쩔 수 없이 대립해야 할 상황이 많았다.
“‘우리’ 에곤 작가님을 위해 그렇게 애써주다니 이렇게 고마울-”
“뭔가 착각하나 본데.”
빅토리아는 커피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냉랭하게 말했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는 우리 팀 소관이란 거, 벌써 잊었나 봐?”
“아, 뭐 그렇지. 그거야 당연한 얘기고.”
히죽 웃는 해리슨.
“에곤 작가님 원고, 어땠어?”
“우리가 그런 감상을 나눌 사이는 아닌 걸로 아는데.”
“무슨 소리야, 비키. 우리 그래도 예전엔 꽤 잘 지냈-”
“다시 한 번만 비키라고 불러봐.”
인상을 팍 쓰며 빅토리아가 던진 말에 해리슨은 항복의 의미로 두 손을 들어 보였고.
잔을 들고 휴게실을 나서려는 그녀의 등 뒤로 한마디 덧붙였다.
“성질 하고는. 아니, 진짜 궁금해서 그렇단 말야. 원고, 훌륭하지 않았어?”
“···.”
걸음이 멈추는가 싶더니.
뒤를 돌아본 빅토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했어.”
“···.”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그대로 등을 돌려 휴게실을 나가버렸고.
“···와우.”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해리슨이 혼잣말을 중얼거렷다.
“지금 내가··· 저 빅토리아 첸의 입에서 ‘완벽하다(perfect)’는 말이 나온 걸 들은 거, 맞지?”
입사한 이래로 단 한 번도 그녀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해리슨 편집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실실거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SFF프레스는 에곤 K의 데뷔작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를 위해 대대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제일 먼저는 떡밥용 보도자료를 꾸준히 뿌렸는데.
[SF씬의 떠오르는 총아, 에곤 K 첫 장편 신작 나온다]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에곤 K, 신작은 YA소설이라고?]
[에곤 K, YA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다! 패기 가득한 도전의 향방은···.]
[대형 신인의 데뷔작, 거품일까 아니면 기대만큼일까]
대놓고 작품을 홍보한다기보다는, 은근슬쩍 반론을 끼워넣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부채질하는 식으로.
그리고 이에-
SF팬덤은 기다렸다는 듯 즉각적이고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1.1k 에곤 K 신작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이번 신작은 YA라고 함. 근데 장르는 공포라고.]
└청소년용 공포소설이라고? 구스범스(미국의 대표적인 아동공포소설 시리즈)도 아니고···
└에곤 K가 YA라니 의외인데?
└신인의 패기인 듯?
└좀 띄워주니까 정신 못 차리고 나대네
└YA 호러라니ㄷㄷ 너무 마이너한 거 아님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로 한 번 검증을 받은 작가가 굳이 위험한 도전을 한다는 것.
그 자체에는 부정적인 이들이 대부분인 가운데에도.
└근데 궁금하지 않냐 대체 뭘 썼을지
└ㅇㅇ 글고 피터 팬도 어떻게 보면 YA 느낌이었음
└어 그렇긴 하네 피터 빼고 전원 청소년이니
└십대 애들 캐릭터 좋더라
에곤 K가 과연 어떤 작품을 들고 올지에 대한 호기심 또한 과열되었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논쟁을 부풀려 ‘기대감’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우리 SFF프레스가 정확히 의도한 바.’
빅토리아 첸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마케팅은 다방면으로 진행되었다.
이름난 SF 북리뷰어들, 북토커, 북튜버들에게 사전 제작한 가제본을 발송해 리뷰를 요청했는데.
다른 출판사들처럼 그냥 아무 유명 리뷰어에게 무턱대고 보낸 것이 아니라-
앞서 <피터 팬>을 읽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리뷰어들로 한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피터팬도 좋았는데··· 더 좋다고? 에곤 K의 미친 신작 리뷰!!! @루나_북톡]
[북토피아 채널| 이번달 읽을거리//피터팬보다 난 이게 더 좋더라/에곤 K 신작]
[댄 에이브러햄의 리뷰_괴물과의 기묘하고도 완벽한 공존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안 그래도 에곤 K에게 관심이 많았던 리뷰어들은 앞다투어 빠르게 리뷰를 생산했다.
여기에 코믹스계 대부 에밀 프랭클이 그린 표지가 <사이언스앤드판타지> 커버로 실린 덕분에-
└에곤 K? 신인 작가인가 보네
└요즘 여기저기서 얘기 들리던데
└신작 리뷰영상 보니까 기대되더라
└루나 님이 완전 팬인 듯 ㅋㅋㅋ
팬덤 바깥의 일반 북클럽이나, YA 소설 포럼 등지에서도 조금씩 반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뭐가 되었든 간에,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흥행에는 모두 긍정적인 신호였다.
*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출간이 정말로 며칠 안 남은 시점.
‘나의 첫 작품으로, 에곤 K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결정되겠지.’
현재 SF팬덤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대형신인.
그의 실력이 거품인지, 아니면 진짜인지가 말이다.
“하지만, 뭐.”
그건 이제 내 손을 떠난 일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다음 행보를 결정하는 것인데.
[S&F 편집부_마크 : <피터 팬> 속편에 관해 다시 한 번 문의드립니다···]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S&F 편집부에서 장편화를 원하는 것은 물론, 비숍 작가님 또한 한 편으로 끝내기는 아쉬운 세계관이라 언급했던 바 있다.
···그리고 거기에 나 또한 동의하는 만큼.
“어디 속편을 기획해볼까.”
멸망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피터 팬딧의 이야기는 중편 3부작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1편에서는 피터가 자신의 그룹을 홀로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는데···.
“···.”
<사이언스앤드판타지>에 실린 나의 글을 다시금 정독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
‘영웅 신화의 원형구조.’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영웅의 여정 17단계.
오늘날 들어서는 스토리텔링 이론의 대표격으로 꼽히기도 하는 이 이론을 짧게 요약하자면.
우리가 아는 영웅신화 대부분이 고향을 떠나고(출발)-고난을 통해 성장한 후(입문)-고향으로 돌아온다(귀환)는 구조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멸망한 세상의 피터 팬> 주인공 피터 팬딧은···.
‘이 서사구조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유형.’
그런 결론이 떨어짐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수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그룹을 떠난 피터 팬딧이 마주할 법한 고난이라면···.’
사각사각, 그것들을 꼼꼼히 기록해두는 한편.
여유가 될 때마다 SF팬사이트나 독자 사이트에 접속해 <피터팬>에 관한 독자 반응을 찾아보았다.
‘독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글을 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글의 어떤 점이 부족하고 아쉬운지, 어떤 감상을 느끼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부지런한 저녁 시간을 보내던 그때.
띠링-
[랜든 비숍 님께 보낸 택배가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 내용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아버지가 삼촌에게서 받았다는 인삼환.
나는 그것을 직접 쓴 편지와 함께 랜든 비숍 작가님에게 보낸 후였으니까.
[작가님, 입이 심심하실 때 한 번씩 드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식단을 관리하고,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운동량을 늘리고.
그 정도만으로도 한참 더 오래 사시지 않을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비만과 관련된 합병증이었던 것 같단 말이지.’
그런 마음을 담아 잔소리··· 아니 진심 어린 조언을 잔뜩 적어서 보냈으니 말이다.
흐뭇하게 웃으며 가볍게 기지개를 켜던 그때.
“유진-!”
1층에서 나를 부르는 새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드와 아델이 왔어. 그리고···.”
네드, 아델에 이은 또 하나의 반가운 손님. 그것은 다름 아닌-
“히이이익,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잖아!”
···SFF프레스에서 보내준, 인쇄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나의 데뷔소설이었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에밀 프랭클의 그림 위로, 금박으로 된 타이포가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언뜻 보면 그저 검은 호수처럼 보이는 홀로그램 표지이지만-
“···!”
책을 가볍게 옆으로 기울이면, 감춰져 있던 그림이 튀어나온다.
···호수 바닥에서 튀어나온 듯, 흉포한 동시에 신비로워 보이는 괴물의 모습이.
“히익, 깜짝 놀랐네!”
“우와 완전 좋은데? 괴물 그림도 넘 근사해!”
네드와 아델은 나보다 더 몸이 달아오른 모양이었다.
“으아아 드디어 에곤 작가님 신작 출간이 눈앞에··· 이틀 뒤, 맞지?”
“흐으 왜 내가 다 떨리는지 모르겠네.”
“아델 너만 그런 거 아님. 나 요즘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거 아냐?”
“···잠 못 자는 건 오버 아냐?”
둘이서 흥분해서 떠드는 가운데.
나는 가만히 책 표지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
회귀 이전의 삶에서는 나올 일이 없었던, 나의 새로운 데뷔 소설.
‘<잊혀진 성자들>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묘한 감상에 젖은 채 표지를 살짝 넘겨보던 그때.
“유진, 넌 긴장 안 되냐?”
“···긴장?”
문득 들려온 네드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음, 글쎄. 아예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잔뜩 흥분한 탓인지 두 뺨이 벌겋게 달아오른 친구들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희 둘보단 덜 긴장한 듯?”
“크으 강심장···.”
“역시 그릇이 큰 사람은 달라도 뭐가 다르구나.”
농담처럼 말했지만, 상대적으로 담담한 편에 가까웠다.
‘물론, 사람들의 고생에 보답이 될 정도로는 잘됐으면 좋겠지만.’
지금도 이미 첫술에 배부르다 못해 배가 터질 지경이 아닌가.
그러니 이제는 천천히, 몇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라는 생각이니까.
“이제 겨우 시작이잖아? 데뷔라고, 데뷔. 잃을 것도 없는데 긴장할 필요 없어.”
나는 멍한 표정의 두 친구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네드 니가 그렇게 말했었잖냐.”
그 말에 네드가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 그랬다고? 언제?”
아, 회귀 전이었나.
“음, 미래에서?”
“뭔 소리야, 크큭.”
네드의 웃음에 아델도 웃음을 터뜨렸다.
*
그로부터 정확히 이틀 뒤, 12월 3일.
에곤 K의 첫 장편소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Something lives in the Lake)>가 미국 전역에 출간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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