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무언가가 산다(2)
*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우리 가족 또한 차를 타고 출발했다.
케이트의 친정 어머니인 브리짓 할머니댁에서 지내러 가는 길.
“어머님 뵙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냥 브리짓이라고 부르라니까, 당신도 참.”
“···입에 붙어야지 말이지.”
앞좌석에서는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내 옆에서는 클로이가 토끼 인형을 안은 채 카시트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햇살을 받아 금색으로 반짝이는 머리카락,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통통한 뺨.
‘눈이 부시려나.’
쌔근쌔근 자는 동생을 가만히 보다가, 햇빛가리개를 내려주고는 앞을 돌아보았다.
“아빠, 약은 챙겨오셨죠?”
“그럼 물론이지.”
핸들을 잡은 채로 말을 잇는 아버지.
“거기서도 매일 운동할 거다.”
“저도 같이 할 테니 걱정마세요.”
지난 주, 아버지의 건강검진결과가 나왔다.
‘고지혈증···이라더구나.’
혹시라도 동맥경화증이 진행 중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건 다행히 아니었고.
다만 고지혈증은 동맥경화, 더 나아가 뇌졸중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아주 조심해야 하는 상황.
‘콜레스테롤 수치가 이렇게 높은 줄도 몰랐고 말이다. 조기에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지 뭐냐.’
제대로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그 길로 병원에 갔고.
자세한 상담을 받고선 약을 처방받아왔다.
‘식이요법, 운동, 금연과 금주··· 꾸준한 관리가 제일 중요하다더구나.’
그 결심을 입증하듯, 아버지는 그 후로 정말 건강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요즘은 나보다도 더 운동을 열심히 하실 정도.
‘정말 다행이야.’
내심 어떤 결과가 나올지 걱정했는데, 나도 이제는 조금 안심이 된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며 꾸준히 도움을 드려야겠지만.
‘아.’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름에 폰을 들어 메시지를 작성했다.
[에곤_K : 비숍 작가님 크리스마스에도 운동은 빼먹으심 안 됩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교외의 어느 주택에 도착했다.
머리가 하얗게 샌 70대 노인, 케이트의 어머니 브리짓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터.
“엄마, 저희 왔어요.”
“잘 지내셨죠.”
“그래, 오느라 고생많았다.”
“할머니이이이!!”
“아이고 우리 강아지.”
품에 달려든 클로이를 꼭 안아준 노인의 눈이 나와 마주친 순간.
내 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브리짓. 잘 지내셨어요?”
···내 존재를 못마땅해하던 그녀와 말조차 섞지 않았던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
갑작스레 살가워진 나의 태도에 클로이의 외할머니는 눈을 크게 떴지만.
“···그래, 유진. 다들 얼른 들어와라.”
벽난로로 훈훈하게 데워놓은 거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
한편, 지금 이 시각에도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판매순위는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초반에는 SF팬덤과 커뮤니티 내부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면.
굿리즈에서의 인기를 시작으로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큰 반향을 얻은 덕분이다.
출간 직후 아마존 베스트셀러 100위로 진입한 이래, 꾸준히 순위가 올라 현재는 50위, 청소년 SF분야에서는 2주째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기세를 놓치지 않고 <가디언>지의 에곤 K 인터뷰 기사 또한 시기적절하게 공개되었는데.
[에곤 K와의 대화 : ‘내 안의 괴물과 마주하여 살아남는 법’]
솔직하게 쓰인 인터뷰는 뜨거운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A: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절망에 빠지는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그 무력감을 잘 극복하고 내 안에서 엿본 희망에 관해 쓴 것이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이라면.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는 그 절망 속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괴물’에 관한 이야기다.]
[···(중략)···아 물론, 작중에 등장하는 호수괴물이 ‘내면의 괴물’인지, 아니면 실재하는 괴물인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웃음).]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과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에 관한, 즉 작품에 관련된 내용도 좋았지만.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에곤 K라는 작가의 일면을 알게 되어 좋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특히나 SF서브레딧에서는 작가의 신상에 관한 추측이 눈덩이처럼 커져갔는데.
[35.9k 가디언지 인터뷰 보니까 에곤 K 나이가 상당히 있는 작가인 듯]
└그러게 ‘인생의 치명적인 위기’라는 것도 그렇고
└ㅇㅇ 건강 얘기 계속 하는 거 보면 몸이 되게 안 좋았나 본데
└최고 50대 이상이라는 데 내 손목을 건다
└니들 이러는 동안에도 스트레칭은 꼭 해줘라
에곤 K에 관한 추측은 그 외에도 다양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한 뒤 평생 고대했던 소설 쓰기에 도전한 케이스라든가.
더 나아가서는-
└사실 <피터팬>은 작가의 자전적 얘기가 아닐까? ···에곤 K 본인이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고 있다든가
└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피터처럼 성인의 정신에 소년의 외모?
└진짜면 대박이겠다
└ㄷㄷㄷ 나 방금 팔뚝에 소름돋았음
의외로 날카로운 동시에, 묘한 부분에서 핀트가 어긋난 추측이었다.
*
바로 그 시각, 맨해튼에 위치한 뉴욕타임스(NYT) 본사.
이곳에서 발표하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는 출간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리스트만 보고 책을 구매하는 독자의 수가 엄청나기 때문.
아마존 베스트셀러 리스트가 오로지 자사의 판매 수치를 기반으로 집계된다면, NYT의 리스트는 그 방식이 조금 다르다.
미국 전역의 독립서점부터 중대형 온라인서점의 판매량을 종합한 것에-
‘독자 리뷰, 입소문, 저자의 성장 가능성 등.’
여러 요인을 함께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순위를 작성해 발표하는 것.
그리고 이곳은 바로 이 NYT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집계 및 결정하는 ‘뉴스서베이’ 부서.
‘···에곤 K라.’
뉴스서베이 부서장은 이번 주 리스트 초안을 놓고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금 그들은 이 신인 작가의 데뷔작을 NYT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리냐 마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중이었기 때문.
‘사실, 이 이름이 처음 거론된 건 몇 달 전이었지.’
사이언스앤드판타지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이 중편으로서는 드물게 크나큰 화제를 몰고 오지 않았던가.
그것을 쓴 신인 작가가 이렇게 빨리 신작, 그것도 장편을 내리라고는 다들 예상 못 했지만.
‘이 정도 완성도일 거라는 상상도 못 했다, 라는 것이 더욱 즐거운 반전이었고.’
이미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상당한 선주문량을 자랑하던- 이 책을 출간 전부터 주시하고 있었으며.
출간 후에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아마존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형서점 판매순위에서 상위권을 기록했다.
부서장은 그저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책을 펼쳤다.
···대체 이 책이 어떻길래 그렇게들 난리인지 궁금했기 때문.
눈길을 사로잡는, 강렬하기 그지없는 에밀 프랭클의 표지를 열어서.
[-이 책을 지난날의 고통에 바친다.]
···라는 작가의 의미심장한 헌사 페이지를 넘기고 나자.
[그것에는 이름이 없다.]
제법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명확한 형체나 물리적인 실체도 없다.
느낄 수 있는 거라곤 명명할 수 없는 혼란과, 선명하기 그지없는 공포감.
···곁에 다가가는 순간 코를 찌르는 죽음의 냄새만이 그것의 정체를 눈치채게 해줄 뿐이다.]
범상치 않은 도입부에 마른침을 삼킨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그보다 훨씬 중요한 사실을 고백하자면, ‘그것’과 나는 꽤 오래도록 공존해왔다는 것.]
부서장은 작품 속으로 훌쩍 빨려들어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 이것은 나 일라이저의 회고록이자.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마감하기 앞서 남기는 유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출판사 보도자료에 소개된 대로, 소설은 1인칭과 3인칭의 두 가지 시점으로 진행된다.
[지금도 내가 본 광경이 사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된다.
다만 기억나는 거라곤, 형체가 불분명한 무언가의 입속에서-
아그작, 우적우적.
한때 ‘스티브’였던 것이 조각나고 있다는 것.]
자신을 향한 린치를 주도하던 가해자가 호수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일라이저.
[일순 속이 메스꺼웠지만, 그것은 이내 기묘한 카타르시스로 변해갔다.
···내가 괴물과 하나가 된 듯한 기이한 감각이랄까.
‘마침내 스티브가 대가를 치르고 있어.’
뒤틀린 만족감, 이내 해방감이 찾아왔다. 저 압도적인 광기가 나를 나약함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소년의 내면 심리가 1인칭으로 생생하게 드러나는 파트가 광기와 생동감으로 가득하다면.
[“스티브 피어슨의 실종 사건을 조사 중인 루스라고 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두 분께서는···.”
그때와 여전히 변함없는 가게 안을, 루스는 건조한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호수 괴물 사건을 조사하러 온 루스 형사의 파트는 한결 건조하고 차분하다.
‘···문체가 너무 달라서 그런가, 두 명의 작가가 쓴 듯한 느낌이로군.’
NYT 부서장은 완전히 몰입한 채로 독서를 이어나갔다.
일라이저는 가해자 소년들이 사라짐에 따라 자신의 상황이 한결 나아짐을 깨닫는 한편.
루스 형사는 소년들의 실종 사건에 관계된 모든 증인을 빠짐없이 만나며 자료를 수집한다.
‘의외로 둘이 마주치는 장면은 없단 말이지.’
그렇게, 꼬박 두어 시간을 정독해서 읽던 그는 어느새 마지막 챕터에 다다랐고.
“···맙소사.”
상상도 못 했던 반전에 육성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마지막 장에 가서야 밝혀지는 진실.
그것은 소년 일라이저와, 루스 수사관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이다.
[“저는 십 년 전 이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엔 주로 병신 일라이저, 라고 불렸죠.”
루스 수사관, 아니 ‘일라이저 루스’가 마른입술을 혀로 축이며 말했다.
“늘 허름한 옷차림에, 얼굴은 알콜중독자 아버지에게 맞아서 생긴 멍투성이. 그런 아이만큼 딱 좋은 먹잇감도 없는 법이니까요.”]
성인이 되어 마을을 떠나 형사가 된 일라이저 루스.
그는 미제로 남은 호수괴물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왔던 것.
‘생각지도 못한 서술 트릭이 아닌가···!’
독자 입장에서는 동일시간대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보이던 일라이저 파트와 형사 파트.
이 둘은 사실 10년의 격차를 두고 진행되는 이야기였던 것.
[“재조사하는 이유를 물으셨죠? 지금도 사실은 머릿속에서 이런 의문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실은, 내가 스티브를 죽였던 게 아닐까?”
맞은편에 앉은 상담사의 눈이 커졌다.
“새뮤얼, 데이빗, 잭··· 그 모두를 직접 죽여버리고는, 미쳐버린 내가 상상의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차분한 목소리 너머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광기에 상담사가 마른침을 삼키는데.
“하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습니다.”]
조사에 조사를 거듭할수록.
그는 괴물이 실재한다는 증거를 얻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후, 일라이저 루스는 호수의 괴물과 대면하기에 이른다.
[온몸의 신경이 저릿저릿해지는 강렬한 공포감 속, 일라이저는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았다.
썩어서 흐물거리는 형체 한가운데서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강렬한 고통과 함께 그의 머릿속으로 소리, 아니 메시지가 침투해왔다.
—나약한 인간이여—
—나는—너의—친구가—아니었나?]
그대로 기절해버리는 일라이저.
다음 날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그는, 호숫가에 빠진 자신을 어느 낚시꾼들이 구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호수 바닥에서는 여태 나오지 않았던 백골들이 발견되는데, 그것이 ‘호수괴물 사건’ 피해자들의 것임이 밝혀지고···.
[호수 주변에 쳐놓은 폴리스라인을 꽤 많은 인파가 둘러싼 가운데.
그 안으로 들어선 형사 루스는 여전히 을씨년스러운 호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친구라고? ···아니지.”
검은 수면에 비친 그의 얼굴 속에서 기이한 안광이 번득였다.
나는 너, 너는 나.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보게 된다고 했던가.’
형사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폴리스라인을 넘어선 그는 인파 사이로 유유히 섞여들어갔고, 이내 그의 형체가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졌다.]
마지막 문장을 읽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
가슴팍 아래 심장이 여전히 세차게 울려대는 가운데.
부서장은 제 안에 남은 강렬하고도 지독한 여운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이제 곧, 우리 NYT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발표할 차례인가.’
방금 전, 고민하던 것이 깨끗하게 해결됐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