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33화 (33/126)

도약(1)

*

그로부터 일주일 후, SFF프레스의 ‘사이언스앤드판타지’ 편집부 사무실.

“으흐흐흐···.”

에곤 K의 담당자 마크는 자신의 모니터를 보며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던 지라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가운데.

[#1 Bestseller in YA SF]

지금 그는 아마존의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상세페이지에 붙은 ‘YA SF부문 베스트셀러 1위’ 라벨을 행복하게 응시하는 중.

‘부문별 베스트셀러 1위라니.’

이 회사에 들어온 이래, 1위를 기록한 책은 랜든 비숍의 작품밖에 없었다.

‘그것도 구간을 커버만 바꿔서 낸 개정판이었지.’

이 SSF프레스가 SF&판타지 장르에선 손꼽히는 명문 출판사이지만, 5대 대형 출판사라 불리는 곳에 비하면 미약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펭귄랜덤하우스, 아셰트, 맥밀란, 하퍼콜린스, 사이먼앤슈스터.

···미국의 ‘빅파이브’라 불리는 이 5대 출판 대기업은 미국 도서시장의 80퍼센트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출간 전부터 남다른 차원의 홍보와 마케팅을 펼치는 만큼, 그 결과 또한 판이하게 다른 상황.

‘하지만, 우리 에곤 작가님은 입소문으로 이걸 이뤄냈다는 것···!’

언젠가부터 ‘우리 에곤 작가님’이란 말이 입에 붙은 마크는 습관처럼 물류 시스템에 접속해 판매량을 확인했다.

‘하드커버판, 페이퍼백판 합쳐서 누적 5만 3천 부!’

SF분야 베스트셀러의 1년간 평균 판매부수가 1만 부라는 걸 감안하면, 고무적이다 못해 기적적인 수치였다.

“으흐흐···.”

또다시 기이한 웃음소리를 내며 마우스 휠을 움직이던 그때.

띠링-

알림음과 함께 저작권 담당부서에서 사내메신저가 왔다.

[저작권담당_루시 : 에곤 K 작가님 담당 에이전트가 있으셨던가요?]

무슨 일이지, 고개를 갸웃한 마크가 곧바로 답장했다.

[S&F 편집부_마크 : 어, 아뇨. 왜요?]

[저작권담당_루시 : 잠시만요, 아예 파일로···.]

잠시 후, 그녀가 보내준 보고서 파일을 열어본 마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That’s sick(대박)!”

“왜 그래, 마크. 설마··· 해외판권 문의?”

으흐흐흐 웃던 그가 동료의 말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 한국, 일본까지 총 5개 국에서 판권 문의를 해왔다는 것.

‘이거, 아무래도 빨리 에이전트를 구하셔야겠는걸.’

곧바로 우리 에곤 작가님께 연락드려야지, 하며 마크가 폰을 들던 순간.

지잉- 진동음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에곤_K : 잘 지내셨나요 담당자님.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후속편 원고가 완성되었습니다.]

[에곤_K : 멸망한세계의피터팬_2편.doc]

잠깐만, 벌써···.

2편 집필을 마무리했다는 말인가?

‘분명, 2주 전에만 해도 진행 방향이 고민된다고 나와 한참 대화를 나누셨는데.’

멍하니 파일을 클릭해 다운로드받던 그때.

지잉, 또 한 번의 진동과 함께-

[에곤_K : 멸망한세계의피터팬_3편.doc]

[에곤_K : 3편도 같이 보내드립니다. 이렇게 세 개를 묶어서 한 권으로 출간하면···]

픽스업 소설의 편집방향에 관해 에곤이 뭐라 뭐라 말을 이어나갔지만, 그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3편···이라고?”

아니, 얼마 전만 해도 2편을 쓴다던 양반이-

‘어떻게 3편을, 그것도 완성본으로 보낸 거야?’

하,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다.

한동안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여파로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일상을 되찾은 느낌.

‘나야 그렇지만, S&F 편집부는 안 그런 느낌이던걸.’

어제 오후,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2부와 3부 원고를 보냈더니만.

[S&F편집부_마크 : 으아니]

[S&F편집부_마크 : 잠깐만요, 3부? 어째서? 아니 어떻게?]

[S&F편집부_마크 : 아 맞다,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마크는 곧바로 ‘중요한 용건’을 내게 알렸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해외 판권 문의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

[S&F편집부_마크 : 현재는 총 5개 국입니다, 5개 국.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 경합이 붙을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 에이전트 계약을 맺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해외판권의 로열티는 6, 7, 8이 기본이다.

즉, 5천 부까지는 6퍼센트, 1만 부까지는 7퍼센트, 그 이상은 8퍼센트의 인세가 적용된다는 의미.

그런데 판권을 확보하려는 출판사가 여러 곳인 경우, 해당 국가의 해외판권은 옥션을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선인세 가격이 상당히 올라가지.’

이는 비단 해외판권 옥션에만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다.

에이전시에 소속된 작가의 경우, 아예 출간 전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돌려 경합을 붙이는데.

‘그게··· 힐러리 클린턴이었나.’

그녀의 회고록은 8백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의 선인세로 초대형 출판사 사이먼앤슈스터에 낙찰된 바 있다.

여하튼, 에곤 K 또한 하루 빨리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마크의 말에-

[에곤_K : 안 그래도 마음을 정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답을 보낸 터였다.

[S&F편집부_마크 : 앗 정말요? 혹시 어디와 계약할 생각이실까요]

[에곤_K : ‘라이터스홈’의 케빈 클레그 에이전트와 계약하고자 합니다.]

그러자 한 박자 후에야 망설이듯이 온 대답.

[아··· 케빈이요? 그 친구가 센스도 좋고 일을 아주 잘하긴 하는데]

[이제 갓 신입을 벗어난 처지라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살펴보니 이제 겨우 입사 3년 차인 듯했으니.

하지만-

[담당자님도 이제 3년차라고 하셨지 않나요]

[근데 이렇게 제 작품을 훌륭하게 담당해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연차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냐는 말에, 마크의 프로필 옆에 잠시 ‘···’라는 표시가 뜨더니.

[아하하 그건 그렇네요! 역시 우리 에곤 작가님만큼 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우리 에곤 작가님.

그 표현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좋습니다! 제가 라이터스홈 쪽에 연락 보내놓을게요!]

그렇게 담당자와 얘기를 잘 마친 다음 날.

···지금 나는 에이든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들른 참이었다.

“유쥐이이인——!”

쿵짝쿵짝-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EDM이 귓전을 세차게 때리는 가운데.

파티 호스트인 에이든이 나와서 나를 껴안았다.

“유쥐이인이다—!”

“힐크레스트의 문학천재!”

“으흐흐, 얼른 오라고! 저기 피자 먹어 피자!”

벌써부터 정신이 나간 듯한 학교 애들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이힉, 힉, 왜 이렇게··· 늦게, 왔어어···.”

···이 자식은 왜 이래.

발개진 얼굴로 흐느적거리는 네드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평소 이런 파티에 좀처럼 오지 않는 네드와 아델은-

‘뭐? 에이든의 홈파티? 으음···.’

‘유진 니가 가면 가고.’

셋이서 같이 오라는 에이든의 초대에 못 이긴 척 나선 참이었으니 말이다.

“니들 설마 술 마셨냐?”

옆에선 에이든에게 대뜸 묻자,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에 술 파티를 벌였다가 부모님한테 걸려서 죽을 뻔했으며, 오늘은 아무도 술을 가져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는 것.

“오늘도 그러다 걸리면 좆됨, 한 번만 더 그러면 엄마가 내 채널 강제로 닫아버린다고-”

“근데 네드는 왜.”

그때, 구석에 있어서 있는 줄도 몰랐던 아델이 끼어들었다.

“쟤, 레드볼 마신 거.”

“레드볼···?”

그거 그냥 에너지드링크 아닌가?

“카페인 부작용이라나 뭐라나, 암튼 그런 듯?”

쯧쯧.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그나저나.’

너무 시끄러워···.

벌써부터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

한편, SFF프레스 사무실.

빅토리아 첸은 책상에 또다시 산더미처럼 원고용지를 뽑아놓은 터였다.

아침부터 대표실에 불려간 데다, 능글맞은 해리슨이 자꾸만 친한 척을 하는 통에 짜증은 좀 났지만.

“그래도, 그 대가가 <피터 팬> 신작이라면 참을 만하지.”

따지고 보면 대표실에 간 것도 이 <피터 팬> 때문이었다.

이런 중편소설은 잡지에 실어서 그 반응을 본 뒤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반응? 살펴볼 것도 없습니다, 대표님. 이건 무조건 빠르게 출간해야 해요! 안 그래 비키?’

‘···비키라고 하지 마, 저도 해리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대표님.’

‘계속 말해보게, 해리슨.’

대표의 말에 신이 난 해리슨은 SFF프레스 대표를 돌아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제 의견은 이래요. <사이언스앤드판타지> 2월호에는 2부를, 3월호에는 3부를 싣는 거죠. 그래서 한창 출판계가 이 피터 팬 이야기로 시끌시끌할 타이밍에 맞춰서 4월쯤에-’

‘단행본도 내자는 거지? 아예 페이퍼백판, 하드커버판 동시에 출간하면 좋겠네.’

‘역시, 비키는 척하면 척이라니까!’

빅토리아는 질색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어, 우리 요즘 좀 친해진 것 아니었나? 너도 날 해리, 라고 불러도 되는데-’

‘입 다물어요 미스터 해리슨. 그럼 바로 출간 일정을 잡아보죠. 일단 표지디자인 일정부터 확인하면···.’

···해리슨이 느글거리던 것이 떠올라 또다시 미간이 좁아졌지만.

빅토리아의 관심은 금세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2부로 향했다.

“어디.”

단행본팀실 안에 별도로 마련된 그녀의 개인 사무실 안.

온통 조용한 가운데 사라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

“···하아.”

마치 긴 꿈을 꾸었다 깨어난 기분으로 고개를 들자.

여느 때와 변함없이 깔끔하고 편안한 자신의 사무실이 시야에 들어왔다.

···피터 팬의 아포칼립스 세계에 있다가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한 기분에 빅토리아는 일순 두 눈을 깜박였지만.

“다음, 다음 편.”

···이럴 줄 알고 미리 출력해놓은 3부 원고를 꺼내며 씩 웃었다.

‘에곤 작가님이 3부 원고도 같이 보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하지만 자신과는 달리.

잡지 <사이언스앤드판타지>를 통해 2부를 읽을 독자들은 꼬박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엄청 괴로울 것 같은데.”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시각, 바로 아래층에 자리한 잡지 <사이언스앤드판타지> 편집부.

“어우, 바쁘다 바빠.”

에곤 K의 담당자 마크는 어제부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제 오후,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이 2부와 3부가 동시에 들어온 바람에 그것을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은 것은 물론.

‘으아아아 너무 좋잖아···.’

그 여운에 좀 더 취해 있고 싶었지만 그럴 새도 없이-

‘이럴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허둥지둥 일어나 곧바로 편집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해리슨 편집장은-

‘이, 이럴 때가 아니야! 대표실! 대표실로 가야지!’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대성공으로 맨날 희희낙락이던 대표는, ‘에곤 K의 새 원고’라는 말을 듣자마자.

‘···임원회의를 소집하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던 것이다.

덕분에 에곤 K를 담당하는 마크 또한 점심도 에너지바로 때울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럴 만한 보람이 있단 말이지, 흐흐.’

그런 생각에 어깨춤이 절로 났다.

그리고 지금은 바쁜 일을 대충 다 처리한 상황.

‘단행본팀이랑 회의도 마쳤고, 회의 내용도 각 부서에 다 전달했으니.’

진득하게 앉아서 잡지용 원고의 교정교열을 시작해볼까 생각하던 그때.

책상 위 내선전화가 울렸다.

“네, S&F 편집부 마크입니다. ···네? 영화 판권 문의요? 잠시만, 메모 좀 할게요.”

사각사각.

메모지 위로 빠르게 펜을 놀리던 그때.

“···잠깐만요, 네 군데요?”

수화기 저편에서 이어진 말에, 마크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