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34화 (34/126)

도약(2)

*

다시, 에이든의 홈파티.

그리 늦지 않은 시각이었는데도-

“야 이 새끼들아, 제발 진정 좀 해!”

“미친, 왜 여기서 웃통을 까고 지랄인데.”

“방귀 스프레이 누가 가져왔어! 그만 뿌리라고!”

테스토스테론이 폭발하는 시기의 고등학생들이 한가득이기 때문일까.

술 한 방울 안 들어갔는데도 미친 듯이 놀아댄다.

‘그냥 오지 말걸 그랬나.’

샬롯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한편, 조금 후회하고 말았다.

원래 이런 자리와는 담 쌓고 지내는 편이지만.

‘에이든이 홈파티 한다는데 안 갈래?’

건장한 체격에서 드러나듯, 문예창작클럽뿐 아니라 스포츠클럽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제이든.

그의 권유에 샬롯은 처음만 해도 칼 같이 거절했지만-

‘진짜 안 갈 거야? 유진도 간다는데.’

‘···유진? 유진이 에이든이랑 친했나?’

‘아, 둘이 되게 다른 타입이긴 한데- 에이든이 유진 전학왔을 때 잘 챙겨줬잖아? 유진도 가고, 미아도 갈 거야. 샬롯, 너도 같이 가보자.’

‘···그럼 난 얼굴만 비칠게.’

친한 친구들이 여럿 있으면 그래도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대답했지만.

‘대체 저런 미러볼은 어디서 구한 걸까.’

번쩍거리는 천장 조명, 스피커가 터져라 틀어대는 음악, 레드볼과 탄산을 섞어 만든 기괴한 맛의 음료.

이런 건 정말 취향이 아니었다.

정신이 나갈 것 같다고 생각하며, 문예창작 클럽 친구들을 찾아 주방 쪽으로 가보려던 그때.

“오, 이리 와 이리 와—!”

“귀여운 뉴페이스!”

“같이 놀자, 응? 이름이 뭐야?”

에이든이 발이 넓다더니 다른 학교 학생들도 온 걸까.

처음 보는 애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

“응? 뭐라고? 안 들려.”

샬롯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는 애들이 보이지 않는다.

마침 파티 호스트인 에이든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바쁜 상황이었으니.

“···.”

그녀가 대답하지 않는 것은 물론,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하자.

아이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험악해졌다.

“야, 이름이 뭐냐니까?”

“아 너무하네, 우리가 뭐, 응? 뭐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같이 놀자는 건데···.”

자신의 이런 태도가 상대방에게 쉽게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걸 잘 알았지만.

‘어떡해, 무서워.’

샬롯은 몸이 굳은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5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지던 그때-

“얘는 샬롯이야.”

“뭐?”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구해주었다.

“너희들, 에이든 영상에 나오는 애들 맞지? 브룩필드 퍼블릭스쿨.”

유진은 생긋 웃으며 그녀와 남자아이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오 맞아! 우릴 아네?”

“에이든 채널 구독하거든. 그건 그렇고, 샬롯 좀 데려갈게, 얘가 낯을 좀 가려서.”

딱히 너희를 무시하려는 게 아니고, 초면의 상대를 대하는 걸 어려워한다- 라고 설명하자.

“아 그랬구나! 몰랐네.”

“우리가 미안하지, 쏘리 쏘리!”

오해가 풀리고 나자, 남학생들은 양 손바닥을 내보이며 길을 비켜주었다.

“샬롯, 잠깐 바람이나 쐬러 갈래?”

“···어?”

콜라 잔 두 개를 들더니 그중 하나를 건네는 유진.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여기 공기가 너무 답답하네.”

“아, 그래.”

그리고 잠시 후.

샬롯은 손에 콜라 잔을 든 채 유진과 함께 뒷마당으로 나왔다.

“에이든네 집이 엄청 크네.”

씩 웃으며 너른 마당을 둘러보는 유진.

그 친절한 얼굴을 보며 샬롯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도 이런 내가 너무 답답하니까.’

샬롯 데인즈.

어릴 적부터 똑똑하기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대인관계만은 유독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현실의 사람들을 마주하는 대신 책 속의 세계로 도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온라인상이나 채팅으로 소통하는 건 훨씬 나았지만.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친 채 이야기하는 게 너무 어려우니까.’

샬롯이 잠시 자책에 빠져 있던 그때.

“있잖아, 샬롯. 나, 어릴 적부터 뭘 되게 잘 잃어버렸다?”

유진이 돌연 뜬금없는 화제를 입에 올렸다.

“···응?”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신발주머니’라는 걸 들고 다니거든.”

“신발주머니?”

학교 안에서는 실내화를 신고, 바깥에서 신던 신발은 그 안에 넣어둔다는 것.

처음 듣는 얘기에 샬롯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이어지는 유진의 말.

“근데, 어릴 때 난 그 신발주머니를 자주 잃어버렸어.”

“···.”

“되게 이상한 거야. 학교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안 잃어버리려고 손에 꼭 쥐고 있는데, 집에 와보면 어느새 없어져 있더라고.”

“그게···.”

그게 말이 되냐, 라고 무심코 물으려던 샬롯이 입을 다물었다.

‘아마 나도, 다른 누군가가 보기엔 그냥 말이 안 되는 경우일 테니까.’

“흐흐, 말도 안 되지? 근데 그게, 애를 써도 잘 안 고쳐지더라고.”

신발주머니뿐 아니라 보조가방.

더 커서는 카드지갑, 나중에는 신분증 등···.

하도 뭘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제는 잃어버려도 아무렇지 않아.”

“···진짜로?”

“응. 그냥, 뭐 그거야 다시 구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게 된달까? 그게 없다고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말야, 하하.”

한참을 얘기하던 유진은 샬롯을 가만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못 하는 거라든가, 유난히 약한 부분이 있잖아?”

“···응.”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이는 유진.

“샬롯 너도, 오늘 일 맘에 담아두지 말라고.”

“···.”

그 한 마디가 제 마음에 훅 들어오는 기분이다.

샬롯은 잠시 눈꺼풀을 깜박거리다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몇 마디 더 해보려던 그 순간-

“샬롯! 여기 있었구나!”

“···어?”

어깨를 덮는 풍성한 금발에 푸른 눈.

오늘 따라 더 화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앰버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제이든이 너 찾더라고.”

“아아.”

“저기 미아도 있어.”

문예창작 클럽 친구들의 이름에 샬롯이 안심하며 미소 지었다.

*

잠시 후, 여전히 뒷마당의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홀짝거리는 가운데.

나는 저 멀리 문예창작 클럽 아이들과 섞여 환하게 웃는 샬롯을 지켜보았다.

‘기분이 괜찮아진 것 같아 다행이네.’

이런 자리에 샬롯이 왔다는 것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아마 본인 나름으로는 껍질을 깨고 나가려는 시도가 아닐까.

회귀 이전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 특히 작가들 중에는 심하게 내향적인 스타일이 많아 괜스레 마음이 쓰인다.

“유진, 여기 계속 있었어?”

그때 잔 하나를 들고 내 옆으로 와서 앉는 앰버.

“응. 샬롯 챙겨줘서 고마워, 앰버.”

“아, 어. ···그거야 당연하지.”

언뜻 인상은 차가워 보이는데 은근히 친절하구나- 라고 생각하던 그때.

“저기, 유진.”

옆을 돌아보자, 어쩐지 조금 긴장된 얼굴을 한 앰버.

“나, 리암이랑 아무 사이도 아냐.”

“···응?”

여기서 리암 얘기가 왜 나오는 걸까. 아니 그보다 리암이 누구였더라.

“클럽활동 하다 보니 가끔 얘기만 하는 사이인데, 홈커밍 파트너가 없다고 하도 귀찮게 하길래.”

아, 홈커밍.

그녀의 홈커밍 파트너가 그런 이름이었다는 것이 뒤늦게 기억났고.

‘어, 이건 설마.’

한순간 묘한 촉이 왔지만, 앰버가 민망해할까 봐 얼른 덧붙였다.

“알려줘서 고마워.”

“···.”

앰버가 어색한 미소를 짓던 그때, 지이잉- 내 폰이 울렸다.

“···어, 아니네.”

기다렸던 연락이 아니라는 것에 쩝 입맛을 다셨으니.

‘케빈 클레그 쪽에선 언제 연락이 오려나.’

담당자 마크가 라이터스홈 쪽에 곧 정식으로 연락하겠다 했으니, 아마 내일이나 모레 안으로는 연락이 오겠지만 중요한 것은-

‘케빈에게는, 내가 에곤 K라는 걸 알려야 한다는 것.’

내 얼굴과 신상을 드러내고서 말이다.

···각각의 책을 담당하는 편집자나 디자이너와는 얼마든 그러지 않고서 소통이 가능하다.

애초 나부터도, 저자와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채 책을 편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하지만 에이전트는 경우가 다르다.

내 분신이자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매니저나 마찬가지인 만큼,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같이 일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에이전트를 신중하게 골랐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지.’

그리고 회귀 전의 정보로 미루어 보건대.

케빈 클레그는 믿어도 좋을 만한 에이전트였으니 말이다.

“저기, 유진. 뭐 기다리는 연락이라도 있어?”

가만히 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들려오는 앰버의 목소리.

“···응? 아, 어. 좀 중요한 연락이라.”

그러자 앰버가 두 눈을 빛냈다.

“누구야, 니가 연락 기다린다는 그 사람?”

“어?”

“음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스타일이야?”

왜 그런 걸 묻는 건가 싶어 옆을 돌아보자 황급히 손을 내젓는 앰버.

“그냥, 호기심이야 호기심. 성격은 어때?”

몰아붙이는 기세에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음. 성격은, 밝고 붙임성이 좋은?”

“흠, 그렇구나. 외모는?”

“키가 나보다 클 거야. 체격도 그렇고.”

“진짜?”

“응. 근데 친해지면 나름 귀염상···으로 보일 스타일?”

“아, 어. 그렇구나.”

그러고는 잠깐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나를 돌아본 앰버가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 넌··· 너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여자가 취향이라는 거지?”

“응?”

이거 아무래도··· 단단히 오해한 것 같은데.

조금 당황스러워하던 그때-

[S&F 편집부_마크 : 에곤 작가니이이이님—]

요즘 들어 흥분하는 일이 더 잦아진 담당자 마크에게서 메시지가 쏟아졌고.

그것을 읽은 나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영화 판권 문의라.’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

나는 아쉬워하는 친구들을 두고 조금 일찍 파티장을 나섰다.

의외로 신이 나서 노는 네드와 아델, 여기 와서도 자기들끼리만 얘기하는 문예창작 클럽 친구들을 지나쳐 에이든에게 인사하러 왔더니-

“흐으 유진···. 파티는 이제 시작이라고오···.”

뭘 어떻게 논 건지, 평소 헤어밴드로 깔끔하게 올리고 다니는 뽀글머리가 산발이 돼 있었다.

“···넌 어떻게 알콜 한 방울 없이 그렇게 미친 놈처럼 노냐.”

“음? 방금 나 칭찬한 것 맞지? 술은 거들 뿐이지, 크크. 야 근데 지금 가는 건 솔직히 너무하지이~~ 우리에겐 새벽이 있다고-”

“늦어도 12시 전에는 자는 편이라.”

“···왓?”

평소 10~11시 사이에 자고 5시 반쯤에 일어난다고 하자.

“···.”

질렸다는 눈으로 나를 놓아주는 에이든.

“그래 가라··· 가서 일찍 자고 키도 쑥쑥 크라고.”

“그럼 그래야지.”

6피트(약 183cm)까진 커야지, 하고 덧붙이니 비교적 단신인 에이든이 나를 째려보았다.

···여하튼,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내 책상 앞에 앉은 지금.

나는 담당자 마크가 보내준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영화화 관련 자료를 하나 하나 살펴보는 중이었다.

“총 네 군데라.”

1번과 2번, 스타라이트픽처와 문스톤필름.

그쪽에서 보내온 자료들에 따르면, 둘 다 적당한 크기의 영화제작사다.

무던한 영화들을 무난하게 성공시켜왔지만-

“제작자 측에서 판권을 문의한 거고, 감독은 미정이라.”

각색을 원하는 감독을 찾을 때까지 한세월이 걸리는 것은 물론.

그 상태로 판권이 붕 떠 있다가 제작 자체가 무산되는 케이스가 부지기수다.

[S&F 편집부_마크 : 그냥, 제 사견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3번이 제일 낫다고 봅니다]

마크가 덧붙인 대로, 3번은 나쁘지 않은 선택지이긴 하다.

아예 감독과 제작사가 입을 맞춘 채로 러브콜을 보내온 만큼 감독 선정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며.

골든게이트필름.

십여 년 후에도 그 위세가 여전한 대형 제작사인 데다 무엇보다도-

“감독이··· 자비에 산도발이라고?”

흐음, 나도 모르게 신음했다.

자비에 산도발.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히트를 친 <씨몬스터 시리즈>의 감독으로, 일종의 재난물 전문가이다.

회귀 전까지도 늘 중박은 무난하게 치는 양반이었고.

그렇지만-

‘이 사람의 연출 스타일이 과연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와 어울릴까.’

좋게 말하면 정석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전형적인 헐리우드 상업영화 스타일.

다른 작품은 몰라도 이 작품과는 궁합이 최악이 아닐까.

고민에 잠긴 채 마지막 4번으로 내려갔다.

‘막성스 라미··· 왜 이렇게 익숙하게 들리지.’

독립영화감독이라는 그의 이력은 몇 줄 없었다.

아직 젊지만 단편영화제에 몇 번 출품한, 촉망 받는 신인이라는 모양이다.

“검색을 좀 해볼까.”

그리고 잠시 후.

인터넷에서 그의 위키 항목을 검색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어? 이건.”

그의 필모그라피 맨 아래, <사라진 여름(L'été absent)>이라는 제목이 있었으니까.

<사라진 여름>은 세자르영화제 신인상을 거머쥔 작품이자-

‘···맥스 래미의 첫 작품이잖아!’

막성스 라미라는 본명만 봤을 때는 몰랐지만, 이내 기억났다.

그가 바로 첫 작품부터 대박을 치는 것은 물론 향후 10년 내에-

칸, 베니스, 베를린, 세계 3대 영화제를 모조리 휩쓰는 천재 감독이라는 것을.

‘그 맥스 래미가 내 작품을 각색하고 싶다고 연락해오다니.’

···어쩌면 나 외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엄청난 행운에 두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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