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37화 (37/126)

두 명의 작가?(3)

*

비숍스플레이스 3층.

랜든 비숍은 자신의 팬이자 동료 작가인 유진과 한 시간 가까이 통화하는 중이었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안심이로군.”

사실은 보내놓고 나서 꽤 긴장했었지만.

그랬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유진의 피드백은 찬사로 가득했다.

···내용 없는 공허한 칭찬이 아니라-

‘눈에 그려지듯 구체적이면서도, 쓰는 이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달까.’

전화하는 내내 씰룩이는 입꼬리를 주체 못하는 가운데, 유진의 말이 이어졌다.

-···네 작가님.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뭐랄까, 그··· 비숍 세계관을 향한 독자로서의 갈증이 확 해소되는 느낌이었달까.

“하하, 세상에 그런 갈증은 또 처음 들어보는군.”

-무슨 소리세요, 지금도 비숍 팬사이트 가면 신작 기다리면서 울부짖는 독자들이 잔뜩인데.

“···그렇지.”

그 또한 모르지 않았다.

아니, 신작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독자들을 실망시켜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잘 알았다.

‘이제는 마음의 빚을 좀 덜 수 있겠구만.’

그러나 그렇게 오래 기다려온 독자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아쉬운 작품을 내보일 수는 없는 법.

그런 마음에 비숍은 주변 동료작가들 여럿에게 초안을 보여가며 개선 방향을 고민하는 터였다.

그리고 에곤 K에게도 그러한 말을 꺼내자-

-흐음, 개선 방향이요. 지금도 이미 너무 좋은데···.

“거리끼지 말고, 뭐든 편히 말해주게나.”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유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 ‘방문자들’을 묘사하는 장면 말인데요.

<어둠 속의 방문자들>.

시공의 틈을 타고 들어와 평범한 일상에 균열을 내는, 알 수 없는 존재들.

-지금 원고상으로는 이게 초중반부에 등장해서 굉장히 구체적으로 외형 묘사가 이루어지는데.

그런 만큼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생생히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좋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약간, 이 ‘방문자’가 지니고 있는 , 말하자면-

“미지의 존재만이 지닐 수 있는, 이른바 ‘환상성’이 급격히 퇴색해버린다 이 말이로군.”

-네 바로 그겁니다.

스마트폰 너머 유진의 목소리에서 희미한 흥분감이 느껴지는 가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군.”

-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거라고, 으하하하하—!”

노작가는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어둠 속의 방문자들>이 지닌 환상성.’

그것을 해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현실감을 줄 방법이 머릿속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음, 작가님···?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워 보이시니 좋군요.

그런 반응에 당황하면서도 유진은 저 역시 기분이 좋은 기색이었고.

‘매번 느끼지만.’

이 친구와 대화하다 보면 신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란 말이지-

비숍은 기분 좋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양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

한편 그 시각.

“Damn it(이런 젠장)!”

북디자이너 아마라 아체베와 미팅을 마친 후.

담당작가 마커스를 차에 태운 에이전트는 여전히 분통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그 때문인지 운전 또한 거칠기 짝이 없는 상황.

“그 빌어먹을 에곤 K인지 뭔지, 아주 신경에 거슬린단 말이지.”

명망 높은 문학상 두 개를 연달아 수상해 화려하게 데뷔한 젊은 남성 작가 마커스 스톤.

그가 독점하고 있던 ‘떠오르는 신성’이라는 타이틀을, 이 신인 작가에게 빼앗기게 생겼기 때문.

“그 따위 별것도 없는 신인의 원고 때문에 우리 샌포드 에이전시의 요청을 거절해?”

그래 봤자 거품에 불과하다느니, 조금 있으면 그 바닥이 드러날 것이라느니, 폭망할 거라느니 저주에 가까운 말이 이어졌고.

“기분 풀어, 캠벨.”

반삭의 갈색머리, 근육질의 건장한 체구.

작가라기보단 직업 군인에 가까운 외모를 지닌 마커스가 에이전트를 달랬다.

“디자이너가 그 사람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 작가 글이 워낙 좋아서 그럴 수도 있는 거고.”

그러자.

에이전트가 이를 드러내며 그를 돌아보았다.

“뭐? 글이 워낙 좋아서? 장난해 지금? 그 에곤 K인지 뭔지랑 니 신작이 딱 겹치게 생겼는데!”

샌포드 에이전시가 대대적으로 미는 마커스 스톤의 신작.

그 출간 시점이 에곤 K의 <피터팬> 출간 시점과 맞물린다는 것이다.

“아···.”

“아오, 애초에 뭣도 없는 널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게 누군데.”

마커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대로, 이십여 군데에서 모조리 거절당한 자신의 원고를 받아준 에이전트는 이 미스터 캠벨뿐이었으며.

‘이라크전 참전용사? 이거 대박이네! 좋아요 좋아, 이걸 포인트로 홍보하면 되겠어.’

그 같은 전략과 대대적인 홍보에 힘입어 책이 날개돋친 듯 팔린 것은 물론, 문학상 수상이라는 영광까지 안게 된 것이었으니.

‘봐봐 마커스, 대중이 원하는 건 너의 이미지야 이미지. 건장하고 젊은 군인 출신 작가가, 직접 경험한 전쟁의 참상을 늘어놓는다? 이미 게임 끝났지.’

에이전트는 늘상 당부했다.

절대 밑천이 드러날 만큼 보여줘서는 안 되며.

유명세가 곧 출간의 성공을 좌우하는 만큼, TV 출연과 강연을 꾸준히 해서 인지도를 쌓아야 한다고.

···마커스은 그 같은 조언을 꾸준히 따랐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불안감이 자리했다.

어쩌면 자신이 참전용사가 아니었다면-

‘내 글은··· 애초에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를 가장 오랫동안 괴롭혀온 의혹 중 하나였으니.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남자는 ‘에곤 K’라는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사이언스앤드판타지>에 실린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링크가 나왔고.

‘어디.’

구독 결제 버튼을 충동적으로 누른 뒤,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A.D. 2080.

성인만이 죽음에 이르는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창궐한 지 6개월 뒤.

피터는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어른이 되었다···]

1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

덕분에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완독했지만.

“···.”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일까.

남자는 쉽사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마커스, 뭐 해.”

흥분이 한결 가라앉은 채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에이전트의 물음에도.

“···잠깐, 눈 좀 붙일게.”

감정을 억누르며 대꾸한 마커스는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그토록 불완전했던 내가, 이 멸망한 세상에서야 비로소 온전해졌다는 것.]

지금쯤 제 얼굴은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을 테니까.

[그것은 피터가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하지 못할, 부끄러운 깨달음의 일부였다.]

소설 속 문장들이 마치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는 가운데 문득 궁금해졌다.

···<피터 팬>을 쓴 작가가 이런 자신의 감상을 듣는다면, 어떤 말을 해줄지.

*

어느덧 1월 마지막 주.

피터 팬 2부가 실릴 <사이언스앤드판타지> 2월호의 인쇄가 완료되었고.

[에곤 K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관련 공지]

S&F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지사항에 팬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그니까 정리하자면, 피터팬 2부는 2월호에, 3부는 3월호에 실린다는 거지?

-ㅇㅇ 4월에는 단행본 나온다 함

-페이퍼백+하드커버 동시 출간!!!!

-열일하시는군요 감사합니다

-SFF프레스가 일 하나는 확실하게 한단 말이지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가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속편이 (심지어 3편까지) 나온다는 것에 놀라는 반응이 대다수.

-아니 잠깐만 벌써 2편이랑 3편을 다 썼다고?ㄷㄷㄷ

-교정 일정까지 잡으면 에곤 작가님 넘 무리하시는 거 아닌가···

-밥 먹고 글만 쓰시는 듯

-작가님 건강 중요합니다 근데 글이 우선이에요

-근데 오디오북은 왜 안 내주냐

-오디오북은 <피터팬>보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가 잘 어울릴 듯

-대박 무섭겠다ㄷㄷㄷㄷ

팬덤 독자들이 소식을 여기저기로 퍼뜨려준 덕분에 꽤 많은 수의 독서 커뮤니티에서 에곤 K의 이름이 다시금 언급되는 상황.

“오디오북이라···.”

그리고 그 시각 나는-

아이오와시티 시내의 어느 대형카페.

그 안에 예약해둔 별도의 미팅룸에서 인터넷 반응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바로 나의 에이전트 케빈 클레그와 만나기 위해서.

스포츠클럽 활동이 취소된 탓에 약속 시각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버렸다.

커피를 시켜놓은 채 여유롭게 책도 읽고, 그러다 <피터 팬> 신작에 관한 인터넷 반응도 살펴봤는데도 아직 시간이 남은 상황.

“간만에 요에이든 채널도 구경해볼까.”

날 볼 때마다 새 동영상은 봤냐, 좋아요는 눌렀냐고 들들 볶는 에이든을 떠올리며 채널에 접속하자.

‘에이든 채널이 인기가 많긴 한가 보네.’

지난번 에이든이 올린 홈파티 영상에 댓글이 잔뜩 달려 있었다.

[@kvz_4131 : 앰버 반짝반짝 너무 예뻐요

@loorwy : 여신 미모

@183_uop : 눈호강하네요 히히

@kaokao33 : 앰버 님 메컵 영상 좀 찍어주심 안 돼요]

제일 언급이 많은 것은 역시 앰버였고.

우리 클럽 친구들과, 나에 관한 댓글도 제법 있었는데.

[@faithdlock1 : 오 제이든? 미아? 뉴페이스들이 있네요

@dk_4133 : 샬롯 귀엽다 ㅋㅋ 자주 나와줘요

@lycee8503 : 유진은 왜 조금밖에 안 나오나요 ㅠㅠ

└@dk_4133 : 중간에 간 걸 보니 파티스타일이 아닌 듯

└@cute_bookish : 저도 유진 더 많이 보고 싶은데!!!

└lycee8503 : ㅋㅋ bookish 님도 유진 팬이시구나!]

그러고 보니 이 cute_bookish라는 구독자.

에이든 말로는 이 사람이 집요하게 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단다.

‘아 왜, 귀여운 누나 같던데 한 번 만나보지 그래.’

···댓글 말투를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딱히 그런 쪽에 쏟을 여유도 시간도 없다.

‘일부러 각 잡고 만나는 것보단,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게 내가 선호하는 연애 스타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지금 나는 여전히 -벌써 꽤 여러 작품을 썼는데도- 집필을 향한 갈증에 사로잡혀 있다.

이걸 해소하는 방법은 하나뿐.

“···얼른 신작 써야지.”

지금은 페이스 조절을 위해 일부러 좀 참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잠시 딴짓에 빠져 있던 그때.

‘어.’

카페 문이 딸랑 열리더니.

어디서든 눈에 확 띄는 거구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나는 미팅룸 밖으로 나가,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는 케빈 클레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여기예요, 미스터 케빈.”

“···어?”

나를 발견한 케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미팅룸 쪽으로 걸어왔다.

*

다시, 약속시각으로부터 5분 전.

‘미리 나와 있으려고 했는데.’

바로 앞에 잡힌 미팅이 생각보다 길어지는 통에 딱 정시에 도착하게 생겼다.

괜찮아, 늦지만 않으면 되잖아.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괜스레 불안해지던 와중.

“후우, 제 시간에 도착했다.”

오늘의 약속 장소인 어느 대형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들 몇 명만이 있을 뿐 꽤 한산했다.

‘작가님은 어디쯤 오시려나.’

장년의 남성 작가를 머릿속으로 그리던 케빈이 폰을 들어 에곤 K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던 그때.

“여기예요, 미스터 케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힐크레스트’라고 적힌 고등학교 점퍼를 입은 소년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곱상하고 훤칠한 외모, 선한 인상의 저 아시아인 학생은 분명-

“어··· 권유진 작가님, 맞죠? 근데 어떻게 여기에.”

우연인가.

멍하니 중얼거리며 그쪽으로 다가가자, 미팅룸 문 앞에 서 있던 유진이 씩 웃었다.

“오늘은 우연이 아니고 약속을 잡아서 나온 거라.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케빈은 당황한 가운데에도 미팅룸 안으로 따라 들어갔고.

상대가 손을 내밀자 얼떨결에 악수하며 말했다.

“···잠시만요, 약속이라면.”

그러자 목소리를 확 죽여서 속삭이듯 말하는 유진.

“에곤 K.”

“···.”

“오늘은 유진이 아니고 에곤 K로서, 케빈 클레그 에이전트를 만나러 온 겁니다.”

잠깐만, 방금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여전히 어안히 벙벙하던 그때.

“아, 아무래도 실감이 안 나실 것 같으니.”

제 폰을 들어 뭐라뭐라 메시지를 적는 유진.

그리고 다음 순간, 케빈 자신의 폰에 지잉- 하고 진동이 왔다.

[에곤_K : 이렇게 하면 좀 더 믿어지려나요?]

“···.”

케빈은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다가.

다시 멍하니 고개를 들어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 고등학생 작가가··· 에곤 K라고?

“자, 잠깐만요··· 그러니까, 권유진 작가님이.”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그러니까-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작가가 두 명이나 있다니!’ 하며 기뻐했던 그 작가가···.

‘두 명이 아니고, 한 명이었다고?’

거구의 사내, 케빈은 어마어마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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