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40화 (40/126)

상실과 애도(1)

*

2월 중순, 뉴욕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대형 출판사 ‘리암홀트’.

이곳은 미국 출판계의 ‘빅파이브’ 중 하나인 맥밀란 그룹에 속한 회사다.

맥밀란 산하에 이 리암홀트 같은 대형 브랜드가 십여 개 있고, 그 아래 또다시 중소형 임프린트(대형출판사 하위의 별도 브랜드)가 몇십 개씩 포진하는 형태.

“마커스 스톤의 차기작이라.”

리암홀트의 편집장은 4월에 출간될 작품 리스트를 놓고서 잠시 고민에 잠겨 있었다.

늘 그렇듯, 그달의 메인 타이틀을 결정해야 하는 타이밍.

“닉, 책임편집자로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편집장이 책상에 놓인 <전선의 끝에서>를 툭 치며 묻자, 책임편집자 닉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음, 나쁘지 않습니다.”

“···나쁘지 않아?”

좋다, 가 아니라 나쁘지 않다라.

편집장이 입안으로 중얼거리는데 닉의 말이 이어졌다.

“아니, 사실 초고는 오히려 좋았어요.”

“그런데?”

“근데··· 수정을 마쳤다며 보내온 최종고가 더 별로더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편집장은 어느 정도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그 작가가··· 샌포드 에이전시 소속이었나?”

“네 맞습니다.”

초고에 그쪽 에이전트가 손을 댔나 보군.

···작가를 쥐고 흔드는 것은 물론, 작품마저 좌지우지하려는 에이전트가 한둘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 터였다.

“그 마커스 스톤 작가 말이야, 혹시 직접 만난 적은 있나?”

“없습니다.”

저자 인터뷰나 화보 촬영 등 외부에 얼굴 노출은 많이 하는 편인데-

“스케줄 끝나면 곧바로 이동하고, 사담도 못 나누게 하고. 개인 연락처 주고받는 것도 절대 안 된다고 하더군요.”

“누가, 거기 에이전트가?”

“네.”

“···하, 누가 양아치 아니랄까 봐.”

작가가 출판계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자기네 에이전시에만 의존하게 하는 것.

고전적인 가스라이팅 방식이었다.

“거기라면 놀랍지도 않은 얘기로군. 어쨌거나 자네 의견은 잘 알겠네. ···그건 그렇고.”

편집장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뉴욕타임스 북리뷰> 이번 호로 향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있는 서평지로, 미국 출판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체다.

“자네, 이번 호에 실린 ‘이달의 리뷰’ 읽어봤나?”

“읽지는 못 했는데··· 혹시 에곤 K 데뷔작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평이 엄청 호의적이던데.”

“그 작가, 요즘 여기저기서 얘기가 많이 들리더군요.”

“그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첫 번째 중편으로 S&F문학상을 받고 첫 장편은 벌써 7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으며-

“여기 이 반응 보여?”

대충 구글에만 검색해도 쏟아지는 게시물들만 봐도, 에곤 K의 화제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지 않는가.

“영화화 판권도 팔리고, 해외 판권도 벌써 5개국인가 팔렸다고.”

“그거야 그렇지만, 해외 판매인세야 수준이 뻔하잖습니까···.”

전 세계 출판시장의 30퍼센트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

그 말인 즉, 그 나머지 각국의 출판시장 규모가 그만큼 작다는 뜻이기도 하다.

출판강국이라 불리는 영국 정도가 -그것도 유명 기성작가나- 1만 부 이상의 초판을 소화한다면, 독일, 프랑스 등 그 외 국가들은 초판 3천 부가 기본.

인구가 1억을 넘지 않는 국가들은 1500부도 힘겨워하는 것이 현실.

‘그렇다 보니 신인 작가의 선인세 옥션은 1천, 2천 달러부터 시작하는 것이 관례이지.’

자국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경우, 투자한 선인세조차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보니 소극적으로 딜에 임하기 때문.

물론 가끔 가다 몇십 만 달러를 훌쩍 넘어가는 선인세 경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거야 이미 해당 국가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춘 월드와이드급 스타 작가에게나 가능한 경우이고.’

그마저도 팬데믹 이후론 선인세 규모가 더더욱 줄어든 상황.

“자네 말대로 해외 판권의 액수는 얼마 안 되는 게 사실이지, 하지만 중요한 건 금액 자체가 아니지 않나.”

“그럼···.”

편집장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 작가의 작품이 해외에서도 먹힌다는 대중성과 확장성을, 더 나아가서는 스타성을 가졌다는 게 중요한 거지.”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 같은 게 아닐까요?”

어쩌면 지금 이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가 처음이자 마지막 홈런일지도 모르지 않냐는 부하직원 닉의 조심스러운 말에-

편집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실망인걸 닉, 자넨 고작 이 정도를 홈런이라고 보나?”

“···네?”

“에곤 K 작품, 읽어봤어?”

“아,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안 읽어봤다니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네도 읽어보면 알걸세.”

주제에 따라 달라지는 작풍과 문체.

어찌 보면 클리셰에 가까운 소재를 맛깔스럽게 변주하여 펼쳐 보이는 그 솜씨는-

“타고난 이야기꾼인데, 거기에 문학적 깊이까지 있다?”

“···.”

“내가 보기에 지금까지는 그저 안타에 불과해.”

편집장의 말에 편집자가 눈을 빛냈다.

“그 말은 곧-”

“그래, 지금 글 쓰는 속도로 보면 머잖아 에곤 K의 차기작이 나오겠지.”

라이터스홈이라는 대형 에이전시도 붙었으니 이제 차기작은 SFF프레스에서 하기보다는-

“본격적인 옥션을 열지 않겠어?”

퍼블리셔스마켓.

즉 본격적인 출간 전, 수많은 출판사가 원고를 두고 벌이는 경합의 장소에서 말이다.

“그리고 아마 이 차기작에서··· 홈런이 터지겠지.”

“···.”

“그때 그 홈런이 터지는 곳은-”

편집장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우리 리암홀트에서가 되어야 할 거야.”

“···!”

닉의 눈이 커졌지만, 편집장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차기작을 두고 이뤄질 어마어마한 선인세 경쟁.

···거기에 뛰어들 결심을 이미 마친 리암홀트의 편집장이었다.

*

한편, 그들의 대화에 잠깐 등장한 바 있는 마커스 스톤은-

‘오전에는 잡지 화보 촬영, 끝나자마자 인터뷰장이라···.’

에이전트 캠벨의 차를 타고 다음 스케줄로 바쁘게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럴 때마다 ‘연예인도 아닌데 대체 뭐하는 거지’ 싶어 현타가 오기는 했지만.

‘전에도 말했지, 마커스? 저자의 인지도가 곧 책의 판매로 직결된다고!’

캠벨은 그 말과 함께 온갖 숫자와 그래프가 가득한 보고서를 던져주고는 했다.

사실, 마커스는 그걸 봐도 잘 이해가 안 됐지만 ‘그래도, 캠벨이 내게 해가 되는 걸 할 리가 없잖아?’라고 여겼다.

어린 나이에 파병을 나가 몇 년을 전장에서 병사로 지낸 그였다.

미국에 돌아온 후에도 전쟁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 치료의 일부로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 잘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

제대로 된 사회생활 역시 한 적이 없기에, 마커스는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순진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 주면 저자교가 올 거야.”

그때, 앞좌석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캠벨이 한마디했다.

“아, 알겠어.”

“그건 내 선에서 알아서 볼 테니까, 너는 대충 보기만 하고.”

“그래.”

“하아, 내가 네 원고 고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마커스?”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안 받은 티가 난다든가, 원고에 매번 기름칠하는 것도 질린다든가···.

언제나 비슷한,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타박과 애정 어린 잔소리를 가장한 핀잔이 이어지다가.

“흐으, 니가 나 같은 에이전트를 만난 게 진짜 행운이지. 세상에 어느 에이전트가 매니저처럼 온종일 옆에 붙어서 케어해주냐.”

“···고마워.”

그의 말에 픽 웃는 에이전트.

“마커스, 우린 그냥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잖냐.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인생의 동지야, 동지. 안 그래?”

마커스는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지만, 그 속은 말이 아니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절반 이상 캠벨이 고쳐준 원고를 내 이름으로 출간하는 건 독자를 기만하는 게 아닐까.

아니, 애초에 이 정도 자질을 가진 인간이 소설가를 자칭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게 아닌가···.

‘나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어쩌면 자신은 전쟁터에 있는 게 가장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며 자책하던 그때.

지이잉— 핸드폰이 진동하며 알림이 떴다.

‘어, 에곤 K 관련 소식이잖아.’

SFF프레스 뉴스레터를 구독 신청해놓길 잘했다. 그런 생각으로 메일을 열어보자, 역시나 반가운 소식이 와 있었다.

[에곤 K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단행본 출간일 4월 5일로 확정!

예약구매 신청을 잊지 마세요.

클릭-> 예약구매자 전용 특전 확인하러 가기]

오, 예약구매라.

방금 전 우울해하던 것을 까맣게 잊은 마커스가 자연스레 ‘특전 확인하러 가기’를 클릭했다.

‘어떤 특전이 있으려나, 후후.’

싱글거리는 그의 두 눈이 어린애처럼 기대감으로 빛났다.

*

문예창작 클럽활동을 한 지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나의 에이전트 케빈 클레그는 막성스 라미 감독과 연락해 미팅 일정까지 잡은 후였다.

-원래는 최대한 빨리 잡을까 했는데, 라미 감독 본인이 조금 시간을 달라고 하더군요.

“시간을 달라고요?”

-네, 본인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다고.

에곤 K 작가를 만나기 전, 최선을 다해 준비해가고 싶다는 것이다.

“어···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어차피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기도 하고 말이다.

-저도 그렇게 얘기하긴 했는데, 라미 감독님이 에곤 작가님의 대단한 팬인 것 같더라고요.

“···제 팬이요?”

놀라서 되묻자, 케빈이 곧바로 스샷 하나를 보내왔다.

‘이건.’

막성스 라미라는 이름으로 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사진.

그것은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속의 문장을 손글씨로 쓴 사진이었다.

[그것에는 이름이 없다. 명확한 형체나 물리적인 실체도 없다.]

-그거 보이시죠? 본인이 직접 손으로 쓴 글씨더라고요.

“오, 꼭 캘리그라피 아티스트 같네요···.”

-몇 년간 배웠다던걸요? 아 그리고-

영화 제작사들을 상대로 하는 피칭 이벤트도 진행했는데, 이미 몇 군데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

“와, 그거 다행이네요.”

-흐흐, 요즘 제일 핫한 에곤 K 작가님의 작품인데 당연하죠. 거기에 ‘막성스 라미’라는 이름까지 나오니 분위기가 확 달라지더라고요.

라미 감독의 첫 단편 <사라진 여름>.

세자르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후로 영화업계에서 그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았단다.

-거기서 제일 적극적으로 나온 곳들과 별도의 미팅 일정도 잡아놨습니다!

다 마치고 나면 한 번에 비교할 수 있게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주겠다는 미스터 케빈.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미스터 케빈.”

-뭘요, 이게 제 일인데요. 여튼 작가님은 라미 감독과의 미팅을 어떻게 할지만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겠다, 라고 대답하고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나도 마음 같아선 막성스 라미 감독과 직접 영화화 작업 논의를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함부로 얼굴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고민이 된다.

어쨌든, 나 또한 저자교라든가 이런 저런 급한 일을 마무리한 덕분에 여유가 생긴 상황.

“이제는 본격적으로 를 써볼까.”

그로부터 꼬박 몇 시간 동안, 뭔가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집필을 했다.

···충분한 구상과 고민을 마친 뒤, 플롯을 촘촘하게 계획했던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과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와는 아예 다른 양상이라고 해야 할까.

[미국의 연평균 교통사고 사망자 수, 약 3만 8천 명.

매일처럼 들려오는 뉴스에 우리는 무감각해진 지 오래이다.

그러나 그 3만 8천 명 중 한 명이 나의 가족이라면.]

손이 저절로 키보드 위를 질주한다.

내면의 뭔가가 바깥으로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느낌이라고 할까.

[“스쿨버스에서··· 내리다 사고를 당했다고요?”

그것도 이제 갓 열 살이 된 내 딸이라면.

···나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기 마련이다.]

‘내 안에 오래도록 억눌러두었던 뭔가가-’

텍스트라는 껍질을 입고서 제 스스로 탄생하는 듯한, 생생한 동시에 기이한 감각.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하다 보니 ‘이렇게 써도 괜찮은 걸까?’라는 희미한 불안감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원고를 붙잡고 있었을까.

“···후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눈꺼풀조차 몇 번 깜박이지 않고 집필에 몰두한 탓인지 두 눈이 뻑뻑해진 가운데.

‘초고라는 걸 감안해도 너무 휘갈겨 쓴 느낌인걸.’

나는 얼추 3분의 2 지점까지 집필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매번 그러하듯 원고 1페이지로 돌아가 첫 장면을 다시 읽어보았다.

[데이지.

D-A-I-S-Y.

매일 같이 불러보지만, 공기 중에서 공허하게 흩어지는 소리.

그것은 내 딸의 이름이다.

열 살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열 살일 나의 딸.]

···앞으로도 영원히 열 살일 나의 딸.

어째서일까.

그 문구를 읽는 순간, 오래도록 입에 담지 않았던 호칭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엄마.”

소설 속 ‘데이지’를 부르짖는 어머니 엘라.

그녀의 모습이 어딘가 우리 엄마와 겹쳐 보이는 탓이었다.

내가 열 살 때 세상을 떠났으며, 내 머릿속에는 영원히 젊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우리 엄마 ‘김현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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