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44화 (44/126)

경험에서 우러나온(2)

*

집으로 돌아오는 스쿨버스 안.

“대학··· 조기 진학이라.”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제안에 머릿속이 멍하던 그때.

지잉-

핸드폰이 진동하며 미스터 케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막성스 감독 얘기인가?’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영화화 관련 미팅이 다음 주로 잡혀 있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케빈의 용건은 그게 아니었다.

[에이전트_케빈 : 작가님! 이것 좀 보시죠 https://www.instagram.com/egon_k]

아, 드디어 SNS 계정을 개설했구나.

보내준 링크를 클릭해서 들어가자.

네드가 그려준 프로필 이미지-폭탄 맞은 보라색 머리에 볼이 움푹 들어간 미치광이 박사-가 곧바로 보였고.

[에곤 K 프로필 이미지.jpg]

[egon_k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에곤 K입니다. 독자님들 모두 건강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첫 게시물로는 내가 작성한, 어색하기 그지없는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

뭔가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던 그때, 케빈의 메시지가 왔다.

[에이전트_케빈 : 이거, 겨우 10분 전에 만든 겁니다.]

···잠깐만, 10분 전에 만들었다고?

“···.”

나는 어안이 벙벙한 기분으로 SNS 페이지 맨 위를 보았다.

[게시물 1| 팔로워 12k| 팔로우 0]

10분 전에 만들었다는 페이지의 팔로워수가···.

벌써 만 명이 넘어가 있었다.

*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작가 에곤 K.

그가 SNS 계정을 개설했다는 소식은 SF 팬포럼과 SF 서브레딧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31.4k 에곤 K 인스타 계정 열렸음!!!!!!!]

[https://www.instagram.com/egon_k

QNA 이벤트도 한다고 함. 내일까지 질문 받아서 그중에 10개 골라서 답변한다고.]

└오 정보 고맙다

└THNX(고마워)—!!!

└난 이미 팔로우했지

└나는 질문도 남겼다 ㅋㅋㅋㅋ

└와 생각도 못 했네ㄷㄷ 에곤 어르신 인스타 하는 법은 아시려나

└보니까 에이전트가 관리해주는 듯?

···

또 한편으로는 -라이터스홈 공식 홍보를 통해- 출판계에도 이 소식이 금방 알려졌는데.

“와, 벌써 팔로워 수가 엄청난걸?”

“난 이미 팔로우했음, 흐흐.”

“이거 어떻게 가입하는 거야?”

“아, 선배 여태 인스타 계정도 없이···.”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S&F 편집부 사무실 또한, 이 기분 좋은 뉴스로 떠들썩한 상황이었다.

‘에곤 작가님이 SNS 계정을 개설하셨다니!’

이제는 단순한 담당자를 넘어, 아예 한 명의 진성 팬이 되어버린 마크.

그 또한 에이전트 케빈 클레그의 연락을 받자마자 에곤 K의 SNS 계정에 접속했는데.

[egon_k]

[게시물 1| 팔로워 40.5k| 팔로우 0]

——————————

Egon K.

소설가. 출간작-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모든 문의는 @kevin_cleg로 주시길 바랍니다.

——————————

“와···.”

개설한 지 하루 만에 4만 명을 돌파한 것을 보고 탄성을 내고 말았다.

‘물론 진짜 유명 작가들은 팔로워가 백만 단위를 넘어가기도 하지만.’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신인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만큼 에곤 K가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의미.

“아, 이거 4월이 기대되는걸.”

곧 다가올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단행본 출간.

잔뜩 기대되는 기분에 마크는 입맛을 다셨다.

*

그로부터 1주일간 SF 커뮤니티는 에곤 K의 SNS 계정 얘기로 시끌시끌했다.

[에이전트_케빈 : 작가님 이거 이거 반응이 장난 아닙니다! 열기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그럼에도 아직은 어디까지나 팬덤 안에서만 이름이 알려진, ‘촉망받는 신인 SF 작가’ 수준이긴 하지만.

나야 워낙 SNS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그런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계정에 접속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최근 나는 미스터 레너드의 제안을 곰곰이 고민하는 중.

“조기 진학이라···.”

사실, 지금 이 고등학교 생활도 절대 나쁘지는 않다.

전에는 마음껏 즐기지 못했던 시간을 누리는 것도 그렇고, 문예창작 클럽 친구들과 책 이야기나 작품 토론을 하는 것도 즐거우니까.

‘하지만, 또 한편으론 조금 욕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지.’

대학이라는 좀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간다면.

회귀 전에는 받아본 적 없는 전문적인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면.

‘지금보다도 더 다양한 이야기를, 더 높은 밀도로 작품에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레너드 선생님은 아이오와대 외에도 선택지는 많다고 했다.

‘유진, 사실 지금 네 실력이라면 전액 장학금을 주고서도 널 데려가려는 학교가 줄을 설 거다. ···물론 네가 여러 글쓰기 대회나 공모전 등에서 실력을 입증했을 때의 얘기이지만.’

문예창작학과로는 전국 1위라는 브라운대, 2위인 아이오와대도 좋은 선택지이며 그 외에도 꽤 많은 학교가 있다고 들었다.

나는 책상에 올려놓은 입시 관련 서류를 눈에 담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기왕이면 통학 가능한 거리가 낫겠지.’

아버지, 케이트 그리고 클로이.

네드와 아델은 물론이고, 새로 친해진 친구들과도 함께하면서 대학공부까지 하는 방법은-

“역시, 아이오와대학교가 최선이겠네.”

그렇게 어느 정도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있던 그때.

[에이전트_케빈 : 작가님, 독자들에게서 받은 질문 중 10개를 추려보았습니다.]

인스타그램 QNA 이벤트를 위한 질문 리스트가 도착했다.

‘대부분이 작품과 관련된 것들이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영감은 어디서 받았냐.

사이언스앤드판타지 공모전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

앞으로 주로 어떤 장르의 글을 쓸 생각이냐.

혹은···.

나는 마지막 10번 질문을 눈에 담았다.

[Q. 작가님의 작품에 등장하는 청소년 캐릭터들은 모두 생동감이 넘칩니다.

특히 <피터 팬>의 최연소 캐릭터인 올리비아는 다섯살 짜리 아이이자, 암울한 세계에서 ‘작은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인데요···]

올리비아.

내가 특별히 아끼던 캐릭터를 언급하는 질문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이 캐릭터가 정말 살아 있는 아이처럼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런 생생한 어린이 캐릭터를 만들기가 참 어렵더군요.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유의하시는 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특히 이 올리비아 캐릭터는 어떻게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아주 좋은 질문인걸.”

나는 씩 웃으며 곧바로 대답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A.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소설을 지탱하는 두 가지 축 중 하나가 플롯이라면.

또 다른 축이 바로 이 ‘캐릭터’일 겁니다···]

제대로 된 캐릭터 없이 플롯만 촘촘한 이야기는 멀쩡하게 굴러가기 어려운 법.

왜냐하면-

[캐릭터야말로, 소설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도 얼마든지 가능하긴 하다.

주인공이 동물이라든가, 혹은 기계와 로봇이라든가.

그럼에도 그 캐릭터들은 대부분-

[우리 인간을 닮은 모습이고, 독자들은 거기서부터 ‘공감’을 시작합니다. ···공감이란 내가 이 작품 속 세계로 풍덩 뛰어들게 해주는 첫 단추이니까요. 그리하여···]

어떻게 보면 조금 원론적으로 느껴질 이야기를 늘어놓은 후.

마지막은 가볍게 마무리했다.

[아 그리고 ‘올리비아’로 말하자면.

이 친구는 저희 집 귀염둥이를 보고 만든 캐릭터입니다.

아무래도 현실의 인물을 토대로 만들어서인지, 더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즉석에서 쓴 QNA 내용을 두어 번 정도 더 검토하고는 케빈에게 보냈고.

곧바로 지잉- 하며 핸드폰이 진동했다.

[에이전트_케빈 : 작가님 QNA 파일 잘 받았습니다! 아 그리고, 어떻게 결정은 내리셨을까요?]

여기서 그가 말하는 ‘결정’이란 건-

“막성스 라미 감독···.”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관련 미팅을 말하는 거였다.

‘에곤 작가님이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건 저도 잘 압니다만, 너무 아쉽군요.’

‘딱히 이건 제 팬심이라든가 그런 게 아니고, 순수하게 성공적인 각색 작업을 위해···.’

‘꼭 얼굴을 보여주시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 어떻게 같이 논의할 방법이 없을까요?’

막성스 감독 본인도 매우 원하고 있을 뿐더러, 나 역시 미팅에 직접 참여하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를 꼽아보자면-

‘훗날 천재감독으로 불릴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할까.’

회귀 전, 그의 영화들을 아주 감명 깊게 보지 않았던가.

절반 정도는 미래의 대감독과 대화해보고 싶다는, 일종의 팬심에 가까웠으니까.

“음.”

잠시 고민하다 미스터 케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가님! 안 그래도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스터 케빈, 혹시···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내 아이디어를 듣는 미스터 케빈이 처음엔 조금 놀라는 듯하더니.

-오, 메시지를 입력하면 음성으로 출력된다고요? 그거 괜찮은데요?

음성채팅으로 미팅을 진행하자는 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

그로부터 이틀 뒤.

SFF프레스의 빅토리아 팀장은 에곤 K의 담당자 마크와 함께 아마존 서점 미팅을 온 참이었다.

다만 지난번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때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아마존 측에서 먼저 미팅을 제안해왔다는 거지!’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가운데, 마크는 냉정함을 유지 중인 빅토리아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첸 팀장님은 어떻게 저렇게 침착하실까.’

지난번에 듣기론 아마존에서 우리 에곤 작가님 책을 깠다고 했던데 말이다.

이미 프로모션 슬롯이 한 달은 다 차 있다고, 장르 페이지에도 노출시켜줄 수 없다고 딱 잘라서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마크가 ‘크, 봤냐 아마존? 이게 바로 우리 에곤 작가님의 실력이라고!’라고 외치고 싶은 걸 꾹 참는 와중.

아마존 MD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첸 팀장님, 지난번에 뵙고 또 뵙네요.”

“저도 다시 보니 좋군요. 그때는 대차게 거절당했지만 말이죠, 후후.”

무심한 듯하나 뼈가 있는 그녀의 대답에 유들거리며 웃는 아마존 MD.

“하하하, 원래 출판 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조용하던 작가가 빵 터지기도 하고, 잘 나가던 작가가 가라앉기도 하고.”

“그래요. 사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책의 성공도 함부로 점칠 수 없는 법이죠, 특히나-”

그 말을 부드럽게 받아넘기던 빅토리아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어떤 책은 작가의 손을 떠난 후에도 질긴 생명력으로 독자들의 입에 오래도록 회자되기도 하니까요.”

“질긴 생명력, 말입니까.”

MD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빅토리아 첸.

“읽는 이의 머릿속에 영감을 떠올리게 해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하고, 독자들 사이에 끝없는 토론과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식으로.”

그 말에 아마존 MD가 한동안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하던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결말 해석 논란을 떠올리는 가운데.

“···그리고 난, 에곤 K의 작품들이야말로 그런 ‘생물(living things)’같은 책이라고 믿어요.”

“···.”

빅토리아 첸.

출판 편집계의 네임드를 가만히 보던 아마존 MD가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이거, 첸 팀장님껜 못 당하겠군요 하하. 하지만 아시죠? 출판사엔 출판사의 사정이 있고 저희에겐 저희 나름의 사정이 있는 법.”

한마디로 매출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니냐-를 돌려말하던 그는 이내 덧붙였다.

“그리고 그런 저희가 보기에도, 에곤 K 작가님의 신작은 놓쳐선 안 되는 작품이 맞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던 중년 여성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이 이번에야말로 교집합을 찾을 것 같군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마크가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

빅토리아 팀장과 아마존 MD는 에곤 K의 <피터 팬> 단행본 프로모션에 관해 완벽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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