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46화 (46/126)

경험에서 우러나온(4)

*

이처럼 SFF프레스 그리고 라이터스홈이 축제를 벌이고 있을 무렵.

마커스 스톤을 담당하는 샌포드 에이전시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제기랄, 하필이면 우리 신작 시기랑 딱 겹쳐가지고···.”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우리가, 아니지, 리암홀트에서 내건 광고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입 닥쳐, 잭.”

마커스 스톤의 두 번째 작품 <전선의 끝에서>는 원고 단계부터 -자극적인 전략에 힘입어- 수많은 출판사의 관심을 받았고.

뜨거운 옥션 끝에 높은 가격으로 리암홀트에 낙찰됐다.

‘빅파이브’에 속하는 맥밀란 그룹 산하 출판사인 리암홀트에선 초반에만 해도 이 책에 많은 기대를 건 듯했지만-

‘아쉽게도 이번 분기의 메인타이틀로 다른 작품이 확정되어서요.’

‘그래도 사전에 말씀드린 광고 및 마케팅 이벤트는 예정대로 진행되는···.’

그것도 이미 상당한 수준이긴 했지만, 마커스 스톤 한 명에게 사활을 거는 샌포드 에이전시 입장에선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이었으며.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던 ‘아마존 에디터픽’마저 선정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방금 전달받았던 것.

“이미 다른 작품이 선정됐다고? 그래서, 그게 누구 타이틀이래?”

“에곤 K.”

“이런, 제길. 또 그 이름이야?”

미팅룸 안에 앉은 채, 마커스가 에이전트들 간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중.

에이전트 캠벨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마커스? 니가 그때 그 인터뷰에서 에곤 K를 언급만 안 했어도-”

“그거랑 이거랑은··· 크게 상관없을 것 같은데.”

“뭐? 야, 너 지금 장난하냐?”

캠벨의 목소리가 커지자, 또 다른 에이전트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미팅룸을 나갔다.

탁,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터지는 캠벨의 노호성.

“···.”

선을 넘을락말락, 점점 더 수위가 높아지는 에이전트의 말을 듣고만 있던 마커스가 입을 열었다.

“캠벨.”

“···뭐! 할 말 있으면 해보라고!”

제 분을 못 이겨 씩씩대는 에이전트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어쨌거나, 다 네가 시킨 대로 했잖아. 토크쇼도 나가고, 화보도 찍고, 인터뷰도··· 적어준 그대로 했고.”

쉴 틈 없는, 그리고 의미 없어 보이는 일정에도 슬슬 환멸을 느끼던 차이기도 했고.

“근데··· 그럼에도 잘 안 된 거라면, 접근 방식이 잘못된 거 아닐까? 그리고 아직 책이 출간되기 전이기도 하니-”

“뭐, 뚜껑 열어보면 다를 거다? 하, 지금 장난해?”

양 허리에 손을 짚고 선 캠벨이 미간을 잔뜩 구겼다.

“야, 솔직히 니 글이 지금까지 어떻게 팔렸다고 생각해.”

“···.”

“전쟁의 참상? 죽음의 무게? 누가 그런 무겁고, 징징대는 얘기를 듣고 싶어하냐고.”

출판사에서 쏟아부은 광고가 아니었다면, 그를 작가로 ‘띄우기’ 위해 샌포드가 기울인 노력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 책이 팔렸겠냐고.

무엇보다도-

“말마따나, 참전용사가 아녔음 팔렸을 것 같아? 네 책이 아니고 네 이미지를 사는 거야, 사람들은.”

“···.”

마커스는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쏟아지는 모멸적인 말들에 반박도 못 하고 있다가, 간신히 입술을 뗐다.

“···캠벨, 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 한동안 연락하지 마.”

선을 넘었음을 깨달은 캠벨이 뒤늦게 그를 붙잡았지만.

“잠깐만 마커스, 그게 아니고!”

마커스는 캠벨을 뿌리치고는 곧바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떻게 운전해서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엔 아까부터 쉴 새 없이 전화해대는 캠벨의 번호를 수신 차단했고.

자리에 앉아 <사이언스앤드판타지> 지난 호들을 꺼냈다.

[사이언스앤드판타지 중편 공모전 1등작|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 에곤 K]

1부, 2부, 3부···.

누구보다 불완전했던 피터 팬딧이 수많은 고난을 모두 이겨내고, 영웅이 되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과정.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이야기이지만, 읽을 때마다 마음의 평화를 되찾게 된다.

그렇게 가까스로 마음을 다스리던 마커스는 충동적으로 폰을 들어 구글에서 이름 하나를 검색했고-

[Egon K(@egon_k)]

“···인스타그램?”

에곤 K의 계정을 보자마자 팔로우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

막성스 라미 감독은 사담을 나눈 덕분에 긴장이 좀 풀린 듯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설명 시작하죠.”

2B 연필로 손수 그려낸 커다란 스토리보드판을 세워놓고서 설명하는 식.

“영화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일라이저’의 1인칭 독백으로 시작되는데···.”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화상회의용 캠으로 지켜보는 중이었다.

미스터 케빈이 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준 덕분에, 현장의 생생함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다.

‘이런 식의 회의도 꽤 괜찮은걸.’

노트북 화면 너머에서 막성스 감독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원작의 서술 트릭 효과를 영화로 충분히 살리기 위해, 소년 일라이저 파트와 루스 형사 파트를 아예 색조부터 차이를 두어서···.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연필로 그려놓은 흑백의 스토리보드일 뿐인데.’

눈앞에서 영화가 펼쳐지는 듯한 기분에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내 안의 괴물’과 마주함으로써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런 게 바로 연출의 힘에서 오는 효과일까.

아무것도 없는 흰 바탕에 그려진 손그림이-

‘저절로 움직이는, 아니 살아 숨 쉬는 듯한 감각.’

그저 압도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막성스 감독은 소개를 마무리했다.

-이것으로 간략한 설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가 조금 긴장한 듯한 얼굴로 노트북을 돌아본 순간.

타다닥, 타닥.

나도 모르게 곧바로 메시지를 입력했다.

[에곤_K : 정말로 훌륭합니다.]

[에곤_K : 제가 생각했던 바로 그대로예요.]

그리고 이 연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

그것은 바로-

[에곤_K : 감독님이 그리신 스토리보드에는··· ‘괴물’의 형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더군요.]

그래.

그러니까 이건, 괴물이 나오지 않는 괴물 영화인 셈이다.

괴물을 가장 어두운 곳에,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하고, 그 실체를 절대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지 않는 영화.

그저 그 존재감만, 냄새와 그림자와 흔적만 드러냄으로써-

‘괴물을 향한 관객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것.’

그러한 나의 감상에, 막성스 라미가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맞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의도한 건데요. 음, 꽤 오래전에 나온 영화이긴 한데··· 혹시 <블레어 위치>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마녀에 관한 전설을 확인하러 숲에 들어갔다가 실종된 세 명의 영화학도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발견된 필름이라는 설명에, 영화는 엄청난 화제가 되었는데.

-이 <블레어 위치>에는 단 한 번도 유령이라든가, 그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의 모습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핸드헬드 기법으로 찍은 탓에 불안하기 그지없는 카메라 워킹.

이는 관객의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시각 정보를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자신이 ‘실제 사건’의 증거를 목격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죠···.

그리하여 불안감이 서서히 고조되다가.

관객의 심리적 공포가 극단으로 치달을 즈음-

-충격적인 결말을 선사하고 끝나버리죠. ···그동안 ‘공포 요소’로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건, 주인공들이 잠자던 텐트 위로 찍히는 어린아이들의 손바닥 자국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 말에 나 또한 회귀 전에 이 영화를 봤던 것이 기억났다.

[에곤_K : 저도 그 영화, 오래 전에 본 기억이 나는군요.]

그게 아마 고전 공포영화 수업에서였나.

유령도, 괴물도 보여주진 않지만-

[에곤_K :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속에 유령의 ‘존재감’만 느껴지게 함으로써 오싹하게 만들고···.]

마지막 5분간 관객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이른다.

그리고 개봉 한참 후에야 이 영화가 사실은 -진짜가 아니고-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냐, 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막성스 감독.

-네, 맞습니다. 파운드푸티지라는 장르의 시초가 되기도 했고··· 아, 얘기가 잠깐 샜는데.

그가 노트북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이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라는 제목의 ‘무언가(Something)’를, 영화 결말에서도 여전히 ‘무언가’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

즉, 괴물에 대한 관객의 상상의 여지를 계속해서 남겨두고 싶다는 뜻.

그리고 그건 어쩌면···.

‘괴물이 각 관객에게 의미하는 바를, 각자가 완성시킬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결론에 다다른 나는 곧바로 메시지를 입력했다.

[에곤_K :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제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그대로 꺼내오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내 경악하면서 지켜보았다는 감상에, 막성스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이거, 에곤 작가님에게 이 정도의 찬사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요.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내 씩 웃으며 말을 잇는 젊은 감독.

-‘에곤 K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다’라는 말을 들을 자신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나는 진심 놀라고 말았다.

[에곤_K : 잠깐만요, 열 번이나 읽으셨단 말입니까?]

- 네, 처음부터 끝까지 열 번씩 정독했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 자리한 행간의 의미까지도 읽어내려 했다- 라는 감독의 말에 일순 당황하고 말았다.

너무 감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작가로서 조금 부끄러워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음, 작가님도 보신 적 있으실지도 모르겠는데··· 한창 SF 서브레딧에서 화제가 됐던 게시물 중에 이런 게 있거든요.

이 소설의 챕터 1.

그것이 결말 이후의 내용이자, 에곤 K의 큰 그림이자 숨은 반전임을 설명한 게시물.

-그거 사실, 제가 쓴 겁니다.

그 말에는 나도, 미스터 케빈도 깜짝 놀랐다.

-헉, 정말로요?

“···네?”

그러자 조금은 민망해하는 막성스.

-아하하, 제가 아까도 얘기드렸지만 보기보다 좀 더 덕후거든요.

잡식성이라 장르를 가리진 않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면 관련 커뮤니티나 포럼에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

‘SF서브레딧에 글을 남기는 막성스 감독이라니.’

외모만 보면 어쩐지 상상이 안 되네, 라고 문득 생각하는데.

-그 정도로 치밀하게 설계를 해놓은 작품이잖습니까,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가.

들려오는 막성스 감독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 읽으면 읽을수록 그 안의 숨겨진 의미가 드러날 것 같다···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읽었고, 그 덕분에 아까 보여드린 스토리보드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

그 열정 가득한 말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에곤_K : 아, 그렇군요. 깊이 있게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감독님.]

-감사는 제가 해야죠 하하하.

···그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보며 나는 다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막성스 라미 앞에선 1챕터의 반전이-

‘···저건 딱히 내가 노리고 쓴 게 아닌데?’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음을, 죽어도 얘기해서는 안 되겠다고 말이다.

*

막성스 감독과의 미팅이 거의 1시간 가까이 이어지던 그때.

“오빠아, 나 심심해애~”

한참 장난감을 갖고 놀던 클로이가 질렸는지, 자연스레 내 무릎에 올라와 앉았다.

“내려가, 클로이. 오빠 지금 일하는 거야.”

“이잉, 1시간 지났자나, 1시간 지나면 나랑 놀아준댔쟈나.”

무심코 시계를 돌아보자 정말로 1시간이 다 되어가는 상황.

“···어 그러네 정말?”

그렇게 대꾸한 나는 클로이가 아직 시계를 볼 줄 모른다는 것을 뒤늦게 기억해냈고.

“나도 해볼래~~”

잠시 내 신경을 돌리는 데 성공한 클로이는 내 무릎에 앉은 채 키보드를 다다다 두드렸고.

“잠깐, 클로이-”

[에곤_K : adfkajlkdjaksfa···]

···말릴 새도 없이 엔터를 눌러버렸다.

그러자 곧바로-

-아드파카즐크드작스파···.

···무슨 크툴루의 음성도 아니고, 기이하게 나오는 기계음.

-어, 작가님? 방금···.

-아아.

화면 너머 두 사람이 잠깐 당황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야, 클로이 얼른 내려가.”

“미얀해 오빠아~ 나 심심해셔어~”

“알았으니까 내려가라.”

“웅.”

클로이를 내려놓고는 얼른 메시지를 썼다.

[에곤_K : 어, 이거 미안합니다.]

그러자 더 밝게 웃는 막성스 감독.

-아니 괜찮습니다, 작가님. 짐작이지만, 작가님 댁 귀염둥이의 소행이겠죠.

어, 물론 그 말이 맞긴 하지만.

화면 속의 젊은 감독이 희희낙락하며 말을 잇는다.

-물론 저는 이 귀염둥이가 누군지 전혀, 요만큼도 예측 못 하겠군요. 제 말 뭔지 아시죠?

에곤 K의 사생활을 비밀로 지켜주려는 마음은 고맙긴 한데···.

-···.

모든 상황을 아는 미스터 케빈이 -뭐라 말도 못 하고- 두 눈만 꿈벅거리는 가운데.

[에곤_K : 어, 그··· 고맙···습니다.]

나 역시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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