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47화 (47/126)

가족을 위한 선물(1)

*

막성스 감독과의 미팅은 그렇게 잘 마무리되었다.

‘오늘 얘기한 걸 토대로 시나리오를 조금 손보려고 하는데, 마무리하는 대로 바로 초안을 보내드릴게요!’

천천히 보내줘도 된다는 말에도 감독은 열의를 불태웠고.

미리 추려놓은 제작사 두 곳과는 아예 직접 만나서 미팅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 미스터 케빈도 참석하겠다고 했으니, 이제 내가 신경쓸 거리는 어느 정도 줄어든 상황.

덕분에 약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던 어느 저녁.

“외식이요?”

새어머니가 클로이를 데리고 친구네 집에 놀러간 사이, 아버지는 갑자기 외식하러 가자는 말을 꺼냈다.

“그래, 간만에 한식당에나 갈까? 갈비탕도 좋고 말이다.”

···갈비탕이라.

사실 아버지와 나는 입맛이 꽤 비슷하지만, 여간해서는 둘이서 한식당에 간 적이 없다.

예전엔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진이 너랑 여기 오는 것도 참 오랜만이구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식당 안을 둘러보며 아버지가 하는 말.

···그건 아마, 한식당에 오면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엄마와의 추억을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갈비탕은 엄마와 내가 제일 좋아하던 음식이었으니까.’

엄마와 나는 입맛이 비슷했다.

고기 요리는 물론, 갈비탕, 순대국밥, 내장탕, 돼지국밥 같은 온갖 국탕류를 좋아했는데.

‘어린 아이 입맛에는 맞지 않는 음식을 참 잘도 먹었지.’

그리고 그런 걸 잘 먹는 어린 나를 볼 때마다-

‘아유, 우리 유진이는 입맛도 엄마 닮았네에~’

엄마는 국밥 동지를 찾았다며 깔깔거리곤 했다.

먹는 걸 좋아하고, 농담과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의 빈자리를 의식하는 것이 아버지에겐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여하튼-

“후우, 하아.”

오랜만에 먹은 갈비탕은 변함없이 맛있었다.

커다란 뼈대에 붙은 고기를 남김없이 발라내 큼지막한 가위로 썩뚝썩뚝 잘라주고.

야들야들하게 익은 고기를 겨자장에 찍은 뒤, 거기에 달짝지근한 석박지를 곁들여 먹으면-

‘이것만큼 완벽한 맛이 없지.’

···마지막으로 진하고 고소한 국물까지 한 입 떠먹어주면, 그것이 바로 화룡정점.

“흐어, 맛있다.”

여기가 바로 극락인가 싶은 기분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데.

날 돌아보며 한마디하는 아버지.

“녀석, 무슨 아저씨 같은 소리를 다 내고.”

“저도 이제 나이가 몇 갠데요.”

“···뭐?”

“아저씨 되는 거 순식간이죠 흐흐.”

한순간 멍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아버지가 혀를 찬다.

“어디 가서 여자애들 앞에서 그런 말 좀 하지 마라.”

“네?”

“기껏 엄마 아빠의 예쁘고 잘생긴 부분만 골라서 낳아줬더니, 인기가 다 떨어져 나가겠어.”

그 말을 나는 낄낄 웃으며 받아쳤다.

“아 뭐래요, 이래도 충분히 인기 많거든요.”

···그중 절반 정도는 내 자의식 과잉이었던 것 같지만.

내 말에 녀석, 하고는 픽 웃어버리는 아버지.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소화나 시킬 겸 서점에나 들를까.”

아버지와 함께 -에곤 K의 책이 꽂힌 서가 주변을- 한참 둘러보고 서점을 나서는데, 문득 꽤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맛 없어요.’

아버지와 재혼한 케이트와 함께 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내가 갈비탕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언제 꺼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녀가 날 위해 갈비탕을 해준 적이 있었다.

‘어··· 그래? 분명 김씨 아주머니한테 배운 대로-’

‘안 먹을 거니까, 굳이 이러시지 말라고요.’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갈비탕을 몇 숟가락 먹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물렸으니까.

그때 상처받은 듯 보이던 새어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

잘 걷다가 멈춰 선 나를 아버지가 돌아보았다.

“왜 뭐, 잊은 거라도 있어?”

“···저, 좋은 생각이 있는데.”

돌아온 일요일 아침.

아버지와 내가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하게 준비해놓은 아침 상을 보고는, 새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이게 뭐야?”

한인마트에서 공수해온 최상등급 소갈비.

거기에 마트 사장님한테 물어서 구한 레시피로 어설프게 끓인 갈비탕을-

“후우, 하아. 너무 맛있다.”

“우왕, 마이쪄···.”

새어머니와 클로이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어쩜 이렇게 고기가 부드러울까.”

“입에 맞으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럼 그럼, 너무 고마워 유진.”

얼굴 가득 함박 미소를 짓는 새어머니의 말에 나는 고맙긴요···라는 뒷말을 입안으로 삼켰다.

클로이는 새어머니보다도 더 잘 먹었는데.

“고기, 고기가 죠아.”

“그래, 우리 클로이 고기 잘 먹어서 좋네.”

고기를 잘 먹어야 키도 커지고 튼튼해진다- 하니까.

“히히, 오빠보다 더 커질래애~”

“아니 그건 좀···.

나를 올려다보며 빵긋 웃는 동생의 모습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

어느덧 4월 첫 주.

주말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학교 과제 몇 개를 연달아 해치우고, 남는 시간엔 클로이랑 놀아줬을 뿐인데 왜 삭신이 쑤시는 걸까.

조그만 녀석이 지치지도 않는지 동생은 몇 시간을 놀고도 끄떡이 없던 반면, 나는 완전 녹초가 됐다.

“···그래도 뭐, 절대 나쁘진 않았지만.”

월요일, 어느새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각.

침대에 드러누워 창문 너머 저무는 해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아, 저 책.”

침대 머리맡에 놔둔 책 <이루지 못한 꿈>이 시야에 들어왔다.

요절한 천재 작가라는 에곤 언윅의 유작.

‘비숍 작가님 보러 비행기에 들고 갔을 때 한 번 읽고.’

며칠 전에 별 생각 없이 펼쳐봤다가 또 한 번 정독하게 되었던 책이다.

‘뭐랄까, 막 엄청 재밌고 그런 건 아닌데.’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끄는 구석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다음 장으로 계속 넘어가게 되는데.

그러다 맨 마지막,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미완의 결말을 마주하고 또다시 탄식하고 말았다.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이 책에 추천사를 쓰고, 유작의 출간을 위해 다방면으로 힘쓴 헤밍웨이의 심정에 공감이 간다고 할까.

[나는 본질적으로 작가다. 그러나 작가이기 전에는 특파원이었고, 기자였으며··· 그 무엇보다도 독자였다.]

한 명의 독자로서,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재능을 지닌 작가가 열매조차 맺지 못한 채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으며.

그 흔적이라도 남기고자 미완의 유작을 출간하고자 무진 애를 썼다는 것이 추천사의 골자였다.

“···그 마음, 이해가 가지.”

가만히 중얼거리던 그때, 문득 미스터 케빈이 내게 알려줬던 소식이 기억났다.

[에이전트_케빈 : 아 작가님, 이건 크게 중요한 건 아닌데 마커스 스톤이라고, 이라크전 참전용사 출신의 작가분 아실런지 모르겠네요. 이분이···]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에곤 K’를 언급했다는 것.

[에이전트_케빈 : 작가님의 <피터 팬>을 읽었는데 그게 굉장히 감명 깊었고, 마치 피터가 나 자신인 것 같아서 몹시 몰입해서 읽었다고]

호평일색이었던 언급 덕분일까.

순문학계 독자들 혹은 마커스 작가의 팬들 사이에서도 <피터 팬>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는 듯하다고.

[에곤_K : 그거 아주 고마운 일이군요. 나중에 기회될 때 그쪽 에이전시를 통해 감사의 말을 전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때는 분명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대답했는데.

“···마커스 스톤!”

<이루지 못한 꿈>이란 책을 보고 있으려니, 그게 누구였는지 뒤늦게 기억났다.

‘그래, 맞아 그랬어. 그 작가가 분명 이라크전 참전용사 출신이라고···.’

곧바로 떠올리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내가 한창 출판계에서 편집자로 일할 적에 ‘마커스 스톤’은 사라진 이름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잊혀진 성자들>의 원고를 거의 다 마무리해갈 때쯤이었나.’

오랫동안 써온 원고임에도, 누군가에게 보여줄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좌절감에 시달리던 시절.

[‘펜헤밍웨이 수상작가’ 마커스 스톤, 십여 년 만의 복귀작··· <재투성이 아래서>]

펜헤밍웨이 수상작가였지만, 슬럼프로 출판계를 떠났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작가의 신작은 생각보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PTSD에 시달리던 참전군인.

그다음엔 소설가로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연달은 차기작 실패로 슬럼프에 빠졌고.

마약중독자가 되어 인생의 밑바닥을 찍었다가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성공한 남자의 솔직한 수기는 많은 독자의 마음을 울렸으니까.

‘그리고 그 독자 중 한 명이 바로 나였지.’

생각해보면 당시 그 책을 읽고 많은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재투성이 아래서>가 너무 좋아서 그의 다른 작품들도 모두 찾아서 읽어볼 정도로.

그러나 막상 그런 마커스는 <재투성이>의 성공 이후로 종적이 묘연해지고 말았다.

“그래. ···그때 굉장히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십여 년 가까이 편집자로 일하며 늘 고민하던 것이 있다.

···좋은 편집자로서 오래도록 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는.

물론 담당 작품의 매출을 극대화하려는 노력도, 인기를 높일 전략도 중요하겠지만 그 모든 걸 다 떠나서-

‘그저, 또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길 바라는 독자의 마음.’

수많은 독자 중 한 명이자.

작가의 글을 제일 먼저 만나는 제1독자로서의 마음.

···한 명의 독자로서, 재능을 지닌 작가가 좌절하는 걸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 어떻게 보면-

“한국식 표현으로 하면··· ‘오지랖’이라고 하려나.”

좋은 편집자에게는 그런 선의의 오지랖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재능을 가진 이들이, 더 좋은 글을 쓰고자 매일처럼 노력하는 이들이-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결실을 맺도록 서포트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와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마커스 스톤.’

회귀 전 내게 큰 울림을 안겨준 작가의 이름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와도 꼭 한 번 교류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한편.

“···.”

고개를 돌리자 침대맡에 놔둔 책 <이루지 못한 꿈>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마 헤밍웨이도 나처럼 ‘한 명의 독자’로서 에곤 언윅의 유작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회귀 전의 내가 떠올라서일까.’

더 많은 글을 쓰고 싶어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비정한 운명’의 소유자 에곤에게 알 수 없는 연민이 느껴진다.

‘에곤 K.’

그와 같은 퍼스트네임을 지닌 이 이름으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선보여야겠다- 라고 마음을 다잡던 그때.

지잉—

S&F 담당자 마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S&F 편집부_마크 : 에곤 작가님! 반가운 소식이 있어 연락드립니다.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단행본이···]

그것은 예상보다 훨씬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마존··· 에디터픽에 선정됐다고?”

아마존 에디터픽.

말 그대로 ‘아마존 편집자가 뽑은 책’을 의미하는, 아마존의 핵심 프로모션 중 하나이며-

‘베스트셀러의 보장수표!’

···선정되는 즉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프로모션의 이름이기도 했다.

*

1주일 뒤,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출간 준비가 착착 진행되어 어느새 이틀 앞으로 다가온 시점.

나는 미스터 레너드와 본격적인 대학 진학상담을 하고 온 참이었다.

“오, 유진이 왔구나.”

여느 때처럼 클럽활동에 상담까지 하고 오느라 조금 늦게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 오늘 일찍 오셨네요?”

“그럼 그럼.”

“이런 좋은 날에 일찍 와야지~”

어쩐지 묘하게 흥분된 얼굴로 나를 보는 아버지와 케이트.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와.”

SFF프레스에서 보내온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실물 책 때문이었다.

하드커버본과 페이퍼백본 두 가지 버전이었는데.

‘이게 바로 아마라 아체베 디자이너의 표지.’

전반적으로 초록색 톤을 띤, 신비로운 추상화 느낌의 표지.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 위로 라는 대문자의 타이포그래피가 커다랗게 박혀 있다.

맨 아래로는-

‘네뷸러상 후보작 마크···!’

책을 들고서 감개무량해하는 나를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가만히 지켜보다가.

“유진.”

“네.”

“이것 말고 서프라이즈가 또 있는데.”

새어머니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또 있다고요?”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두 분을 따라 차고 안에 들어갔다.

“짜잔-!”

“축하한다!”

또 다른 서프라이즈.

그것은 바로-

“!!!!”

···나의 고등학교 생활 첫 차가 될 네이비색 SUV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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