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49화 (49/126)

마법 같은 순간들(1)

*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은 굿리즈에서 이미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에곤 K

★★★★★ 4.87

1917 평가| 412 리뷰

출간한 지 2주가 갓 지났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폭발적일 정도로 리뷰가 달리는 중.

굿리즈의 주요 사용자층인 10대 후반~20대의 취향에 잘 맞는 작품이라는 점도 주효했는지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때와는 화력부터가 달랐으며.

거기에-

[에밀리 던칸 외의 1932명의 독자가 이 문장을 좋아합니다.]

에곤 K의 데뷔작에 대대적인 호평을 남긴 바 있는 에밀리 던칸의 ‘좋아요’ 덕분에 그 기세는 한층 더해지는 중.

그뿐이 아니었다.

댄 에이브러햄을 필두로 한 다양한 평론가, 유명 북리뷰어들의 블로그는 물론.

[댄 에이브러햄의 리뷰 - 폐허 속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윌리 척의 블로그| SF씬에 불어닥친 새로운 바람, 대단원의 종지부를···]

[에곤 K, 4월의 출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다!]

···

이미 NPR, 퍼블리셔스위클리,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언론 또한 호의적인 리뷰를 내놓은 가운데-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은 스토리텔링이 지닌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숨 막힐 정도로 매혹적인 문학적 여정이다.” -뉴욕타임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라는 제목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뉴욕타임스는 극찬에 가까운 평가를 내렸다.

“···.”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마커스 스톤은 자신의 아파트 안에 앉아 읽어내리는 중이었다.

벌써 제법 많은 책 리뷰가 달린 아마존 상세페이지에 들어가자.

제일 많은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리뷰’라는 평가를 받은 베스트리뷰가 눈에 들어왔다.

[스포주의——

소설의 3부에 이르면, 이 포스트아포칼립스 세계관의 가장 큰 비밀이 드러난다.

그것은 즉, 멸망 이후의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신’이 되고자 음모를 도모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것.

그 안에서 체스의 졸로서 사용될 운명이었던 피터 팬딧은 어두운 비밀을 낱낱이 밝혀내고,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중략···)

박진감 넘치는 후반의 서사도 좋았지만, 나는 역시 이 책의 메시지가 제일 좋았다.

삶은 고통과 상처, 실망투성이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는 것.

고난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지만, 인생의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예기치 않은 ‘마법’ 덕분에-

삶은 조금 더 살만해진다는 것.]

스크롤을 내려가며 리뷰를 읽던 마커스의 시선이 그 문단에 멈췄다.

‘삶은 조금 더··· 살만해진다라.’

입안으로 그 문장을 읖조리던 그때.

삐이이익— 도어벨을 난폭하게 누르는 소리가 났다.

천천히 일어나 마커스가 문을 열어주자, 안으로 벌컥 들어오는 캠벨.

“마커스! 진짜 이러기야? 말도 없이 잠수라니!”

“···.”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니가 설마 나쁜 생각이라도 했을까 봐-”

“사람을 뭘로 보고,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마.”

“아니 아니, 성적이 안 좋다고 침울해할까 봐 그랬지.”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캠벨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전선의 끝에서> 판매 실적이 아주 저조한 상황이야.”

“···.”

“이거 이러다가 선인세도 다 못 채우겠어. 이러면 다음 작품 때 딜을 하기 어려운데, 후우···.”

그의 직설적인 표현에 마커스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차기작의 대대적인 실패.

그건 이미 그도 수 차례의 기사 검색을 통해 확인한 바였다.

[마커스 스톤, 아쉬운 신작··· ‘이라크전’ 효과였나?]

[<전선의 끝에서>, 무난한 전쟁 소설 - 루크 브라운의 리뷰]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펜헤밍웨이 수상작가 스톤의 신작 <전선의 끝에서>]

여러 평론가들, 언론 리뷰도 그다지 좋지 않았으며-

‘독자 평은··· 그보다 더 나빴지.’

아마존 리뷰페이지에 달린 뼈아픈 평가들을 떠올리는데, 캠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보기엔 에곤 K한테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게 커.”

“···.”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캐릭터가 겹치면 안 돼요, 이 시장은.”

···하, 아직도 저 소리인가.

“···캐릭터는.”

짧은 한숨을 내쉰 마커스가 말을 이었다.

“그 작가님과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

“뭐?”

“솔직히 이젠 인정할 건 인정해야 돼, 캠벨.”

마커스가 보기 드물게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에 캠벨이 내심 놀란 가운데.

“내가 데뷔한 건 재작년이야.”

젊은 작가의 말이 이어졌다.

“더는 ‘떠오르는 신예’ 같은 칭호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고.”

“···.”

단단한 육체 아래 숨겨온 내면의 고통.

그것이 마커스의 눈동자에 생생히 떠오르는 것에 캠벨이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무는데.

“자네가 날 위해 많이 애써준 건 알아, 그런 만큼 더 아쉬울 거란 것도 알지만···.”

후우, 힘겹게 말을 잇는 마커스.

“지금 이 책이 안 돼서 누구보다도 마음이 쓰린 건 바로 나 자신이라고.”

마른 세수를 하는 그를 보며 캠벨은 입술을 달싹거리다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군, 마커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겠어, 자네.”

마커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캠벨은 곧바로 그곳을 나섰고.

삐익-

도어락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마커스는 다시금 혼자가 된 자신을 발견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저녁.

그는 홀로 위스키 병을 비우는 중이었다.

‘글이란 건, 소설을 쓴다는 건 언제나 고독한 일이었지만.’

심혈을 기울여, 영혼을 갈아서 쓴 글이 기대만큼 반향을 얻지 못했을 때.

모두의 기준 아래서 ‘실패한 글’로 낙인 찍혔을 때 작가가 받는 고통은 상상 외로 큰 법이다.

전쟁터에서조차 거의 마시지 않은 술을 꺼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알콜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잠을 청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쪼르르, 위스키를 채운 유리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술이 아니라 불덩이가 목을 타고 흐르는 듯한 착각 속.

마커스는 멍하니 떠올렸다.

···사실 자신의 내면은 꽤 오래전부터 자기파괴적 욕구에 갉아먹혀왔다는 것을.

‘그 시작은 역시 전쟁터였으려나.’

흔히들 PTSD라 부르는 그것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온 지 제법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터.

이럴 때면 그 지독한 욕구에 그대로 져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지만-

‘고통과 상처, 실망으로 가득한 삶이라 해도.’

때때로 경이로운, 마법 같은 순간들 덕분에 인생은 좀 더 살만해진다고···.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속의 대사를 떠올린 그가 무심코 스마트폰을 들었고.

인스타그램앱을 열어서-

[Egon K(@egon_k)]

몹시도 충동적으로, 에곤 K에게 보내는 DM(다이렉트 메시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예상치 못했던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으으, 손 떨어져 나가겠네.’

지금 우리집에는 몇 십 박스에 달하는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책이 와 있었다.

‘에곤 작가님! 친필 사인본 잘 부탁드립니다! 대리인분 주소로 보내드릴 테니···.’

SFF프레스 측에선 책을 매번 에곤 K의 대리인, 즉 KMC 에이전시 대표 권상준의 주소로 보내주는데.

그 주소가 곧 내 주소라는 건 상상도 못 하는 것 같다.

여하튼, 친필 사인본이란 말 그대로 작가가 직접 쓴 사인이 담긴 판본.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면지에다가 [에곤 K]라는 사인을 일일이 하는 중인데···.

“이걸 1천 부나 준비할 필요가 있으려나.”

차고에 앉아 박스를 하나씩 풀어가며 사인하는 중이다.

뭐, 사인이야 회귀 전에도 자주 해봤으니 익숙하긴 한데···.

담당자 마크는 1천 부도 모자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혹시 모르니 현장에서 넘버링도 꼼꼼히 할 거고요, 방문객이 1천 명을 넘어갈 경우를 대비해···.’

친필은 아니지만, 인쇄본 사인본도 준비해놓을 예정이라고.

그렇게 많이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라고 망설이자 절대 그렇지 않다는 마크.

‘작가님, 작가님은 오히려 덜 체감되실 수도 있겠지만··· 저희가 현장에서 느끼는 열기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 고로, 1천 부에 전부 다 사인하기로 결론을 내렸으니.

묵묵히 사인을 하다가도,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준비했다가 너무 많이 남아돌면 민망해지는데.’

나 또한 출판 편집자로 오래 일한 만큼, 출간 행사라는 게 어떤 건지 잘 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내향적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책의 인기에 비해, 생각보다 현장 이벤트에 참석하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저자 사인회의 인기는 해가 갈수록 점점 떨어지는 추세인데, 이걸 잘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가 있다.

‘그 작가 이름이···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어떤 신인작가가 출간 기념으로 사인회 이벤트를 열게 되었는데, 30명 정도가 사인회에 오겠다고 해놓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사인회에 단 한 명도 안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사인을 받으러 오는 독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슬픈 사인회.

신인 작가가 이 같은 이야기를 SNS에 올렸더니-

[아, 당신도 ‘0명 사인회 작가 클럽’에 가입할 자격을 얻었군요.]

이런 식의 위트 있는 답글을 달아준 누군가를 비롯.

닐 게이먼, 스티븐 킹 등 꽤 많은 유명작가들이 자신 또한 신인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공감해줬고.

그중에는 <시녀 이야기> 같은 대작을 쓴 마거릿 애트우드도 있었다.

[나도 그랬어요. 내 데뷔작의 사인회 때 딱 한 명이 사인을 받아갔는데, 내가 서점 직원인 줄 알고 ‘스카치 테이프는 어디서 파나요?’라고 물어본 고객이었죠.]

···뭐, 결국은 그런 대작가들의 호응 덕분에 이 신인작가의 작품이 잠깐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갔다- 라는 훈훈한 미담으로 끝이 났지만.

그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보니, 웬만큼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면 출판사로서는 현장 이벤트를 진행하는 게 오히려 손해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가장 걱정되는 건-

‘작가 본인이 참석하지 않는 이벤트에 독자들이 얼마나 올지 모르겠단 말이지.’

딱히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너무 민망하지는 않을 정도로는 오면 좋겠다.

슥슥, 사각사각-

그런 생각을 하며 기계적으로 사인을 하던 그때.

“···5월.”

그러고 보니, 5월 31일이 클로이의 생일이었지.

선물로 뭘 주면 좋을까 생각하던 그때.

‘오빠! 나 생일 때 뭐 해줄 거야? 응응응응?’

다 크고 나서도 본인 생일마다 나를 들들 볶던 클로이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떠올랐다.

‘우와! 진짜로··· 이걸 구했다고? 오빠 최고오—!’

녀석이 좋아하던 작가의 친필 사인본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하던 모습도.

“어린애들한테는 어떤 선물이 좋으려나.”

잠시 고민하는데, 얼마 전 클로이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오늘도 또 토끼 남작 얘기해줘~ 재밌단 말야.’

‘친구들이 토끼 남작 얘기 엄청 재밌어해!’

‘맨날 다음 얘기 들려달라고 하는데, 히잉, 자꾸 까먹어서.’

···아하.

이내 떠오른 아이디어에 곧바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래. 내가 없을 때도 클로이가 다른 사람한테 읽어달라고 할 수 있게-

“책을 만들어주면 딱 좋겠네.”

···동생이 매일 밤 이야기해달라고 졸라댄 통에, 이미 <토끼 남작의 모험>은 거의 서너 개에 가까운 시리즈가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이야기의 뼈대는 머릿속에 전부 있으니, 그걸 바깥으로 끄집어내 제대로 집필하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고.

“관건은 책을 제작하는 건데, 이것도 큰 문제는 없지.”

지금은 고서적상으로 일하는 새어머니가 한때 아동서 디자이너로 활약했던 만큼, 비교적 품을 덜 들여서 책을 만드는 방법을 잘 아실 것.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지잉- 하며 미스터 케빈에게 메시지가 왔다.

[에이전트_케빈 : 작가님, 늦은 시각에 죄송하지만··· 전에 <피터 팬>을 자신의 인터뷰에서 홍보했다는 마커스 스톤 작가 기억하시죠?]

기억나다마다.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는데 케빈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에이전트_케빈 : 그 작가분이 에곤 작가님 인스타로 메시지를 보내셨더라고요. 여유될 때 한 번 확인해주십사 말씀드립니다]

···그 마커스 스톤이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호기심에 마음이 근질근질거리는 가운데.

나는 한참 전부터 붙잡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는 곧바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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