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50화 (50/126)

마법 같은 순간들(2)

*

마커스 스톤이 에곤 K에게 보낸 DM.

그 내용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다.

[안녕하세요, 에곤 작가님.

작가님이 쓰신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을 보고···]

책을 읽는 내내 자신이 주인공 피터 팬딧인 것처럼 몰입해서 읽었으며.

다 읽고 나서는 제멋대로 흘러넘치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이런 좋은 글을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 명의 독자로서 <피터 팬>을 만날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그 정도가 전부였다.

언뜻 보면 평범한 팬이라고 생각하고 스쳐 지나갈 법한.

하지만-

‘저, 에곤 작가님. 이건 제 괜한 우려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케빈 클레그.

라이터스홈의 마당발이라고 불리는 그는 출판계 소식을 제일 빨리 접하는 에이전트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 작가분, 몰랐는데 샌포드 에이전시 소속이더군요. 거기가 질이 안 좋기로 유명한 곳인데···.’

그 정도가 전부였지만, 유진의 머릿속에선 회귀 전 알고 있었던 이런 저런 사실이 빠르게 재조합되었으니.

그리고 한편-

“맙소사, 내가 대체 왜···.”

다음 날, 토요일의 늦은 아침.

마커스 스톤은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두통에 잠에서 깨어났다.

급한 대로 진통제를 하나 먹고 노트북 앞에 앉으니 어제 자신이 술김에 보낸 DM이 화면에 뜨는 것이 아닌가.

“설마, 실수라도 한 건 아니겠지···.”

황급히 다시 읽어봤지만 이상한 내용은 없다.

그냥 책을 읽고 감명 받은 한 명의 독자 같은 메시지.

그건 다행이지만···.

‘에이전시에서 알면 난리나겠네.’

인터뷰하다가 잠깐 언급한 것 가지고도 그 난리인데, 자신이 일개 팬처럼 DM까지 보냈다는 걸 알면-

이걸 어떻게 취소하거나 삭제할 방법은 없을까.

다행히 답장이 안 온 걸 보면 에곤 작가님이 아직 안 읽으신 걸지도···라고 생각하던 그때.

다이렉트메시지 화면 안.

[에곤 K]의 프로필 옆에 ‘···’라는 표시, 즉 메시지를 작성 중이라는 표시가 떴다.

‘···어?’

이내 도착한 것은 꽤나 장문의 메시지.

[···그렇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중략)···저 역시 마커스 스톤 작가님의 데뷔작 <여우굴(foxhole, ‘참호’를 뜻하는 은어)>을 매우 감명 깊게 읽었던 터라···]

<여우굴>.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스물아홉 살 때 쓴 첫 소설의 제목을 본 마커스의 눈이 커졌다.

[직접 경험한 전쟁의 참상을 낱낱이 드러내는, 일종의 르포로서 기능하는 점도 좋았지만··· 그보다도 세상을 보는 작가님의 시선이 인상적이었다고 할까요]

정말로··· 에곤 K가 내 책을 읽었다고?

[죽음이 일상이 돼버린 세계를 향한 시선에도 온정이 녹아 있고, 그 안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수없이 고뇌하고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매번 일어서는 주인공을 보며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에곤 K.

그가 힘들 때 자신의 소설을 읽고 많은 용기를 얻었다는 말에 마커스는 멍하니 두 눈을 깜박였다.

“···.”

가슴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요동치는 가운데.

그는 저도 모르게 노트북 키보드 위로 손을 가져갔다.

[마커스_스톤 : 누군가가]

누군가가-

거기까지 쓰고서 잠시 망설이는데.

‘···’라는 표시가 떴다가 사라진 걸 보고, 에곤 K가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단 걸 알아차렸다.

[마커스_스톤 : 누군가가··· 제 글을 읽고 그런 걸 느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요]

용기를 내어 대답하자, 짧은 텀 후에 날아온 메시지.

[에곤_K :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에곤_K : 저뿐이 아니고, 이미 많은 독자들이 거의 간증에 가까운 감상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말에 마커스는 아마존 리뷰를 비롯, 제 책에 관한 호의적 리뷰를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봤던 기억을 떠올렸지만-

‘순진하기는, 마커스. 서평단 이벤트라고 알지?’

언젠가 기쁨에 차 그런 말을 꺼냈더니, 에이전트 캠벨은 대뜸 그렇게 대꾸했다.

책을 공짜로 받는 대신 호의적인 리뷰를 써주는 것이 이 업계의 룰이라고 말이다.

‘그래, 그런 일들이··· 꽤 많았지.’

힘든 시간들을 인고로 견뎌낸 강인한 군인 출신의 마커스조차, 믿고 의지하는 ‘전문가’가 던지는 말들에는 큰 영향을 받았고.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런 일들이 수없이 반복된 후 지금에 이르러서는···.

[에곤_K : 비록 제가 접한 것은 작가님의 작품이 전부이지만]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에곤 K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에곤_K : 저는 작가님께 무척이나 확고한, 빛나는 재능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

[에곤_K :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꺾이지 말고, 지금처럼 본인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써주시면 좋겠군요]

···확고한, 빛나는 재능.

그 문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마커스가 제 속내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마커스_스톤 : 제가··· 안 그래도 최근 들어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가 많이 꺾인 상태인데]

[마커스_스톤 : 그런 제 마음을 꼭 알고서 해주신 말씀 같네요]

그러자 한동안 ‘···’ 표시가 뜨더니, 메시지 여러 개가 연달아 왔다.

[에곤_K : 작가님이 저의 주인공 피터에게 깊게 공감했다는 말에 그리 짐작해봤습니다]

[저는 피터라는 캐릭터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아는 한 피터 팬딧은]

[결함이 있기 때문에 멸망한 세상에서 리더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이내 이어진 말에 마커스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내고자 노력했기에,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

아마 작중의 피터는, 소설이 끝나기 직전에야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던 것 같다고.

[하지만 피터의 동료들, 친구들은 모두 알고 있었을 겁니다. ···피터가 얼마나 용감하고 긍지 높은 사람인지를.]

마커스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에곤은 분명 ‘피터 팬딧’에 관해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째서인지 마커스 자신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려서.

[물론, 어떤 작가든 간에 그런 순간은 반드시 찾아오곤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자신의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무리 많은 독자가 자신의 글을 재미있게,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해도.

막상 작가 본인의 눈에는 그 글이 조악한 사유를 배설해놓은 것에 가깝게 보일 때가.]

그래. 에곤 K는 지금 마커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았다.

[그럴 땐 어떤 말을 들어도 그저 공허한 위로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저 또한 잘 알지만]

[그럼에도 저는 마커스 작가님께 제대로 된 찬사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니,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와 앉아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작가님의 책이, 좌절에 빠져 있던 제게 큰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었던 걸 아직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작가들은 흔히들 잊곤 하니까요···]

내 책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다고.

그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한편,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이 나온 게··· 재작년의 일인데.’

에곤은 꼭 아주 오래전 일을 얘기하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저 이 모든 대화가 기쁘기 그지없었다.

[마커스_스톤 : 정말로 감사합니다, 에곤 작가님. ···진짜 그 말씀 하나 하나가 지금 제게 엄청난 용기를 주는 기분이네요]

···늘 홀로 글을 써오던 마커스에게는 마법 같은 순간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와 이렇게 진솔하게 글 이야기를 나눠본 것이 얼마 만일까.’

자신에게 여태 ‘동료’라고 부를 만한 이가 아무도 없었음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같은 작가 동료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마커스!’

‘같은 업계 사람이라면, 기자든 편집자든, 뭐 하나라도 건지려고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투성이라고···.’

그런 기회가 생길 가능성을 에이전트 캠벨이 모조리 차단한 탓이었다.

여하튼, 그것을 시작으로 둘은 소소한 이야기를 잔뜩 나누었다.

‘얼굴도, 나이도 모르지만.’

각자 서로의 작품을 너무도 뜻깊게 읽었기 때문일까.

상대를 이미 속속들이 아는 채로 대화하는 기분에 푹 빠져 있다가.

[···제가 작가님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요.]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새 한 시간 가까이 지난 것에 놀라서 말하자.

[에곤_K : 아닙니다, 저도 즐거웠는걸요. 제가 좋아하는 책을 쓰신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저에게도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

그 세심한 말에 가슴이 따뜻해진 덕분일까.

저도 모르게 용기가 샘솟는 기분에-

[마커스_스톤 : 저, 작가님. 작가님께서 외부에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으신다는 건 잘 알지만···]

[마커스_스톤 : 언제 한번 꼭 기회가 되면, 얼굴 뵙고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분히 충동적으로, 불쑥 말하고 말았다.

‘부담···스러우시려나.’

아니지, 분명 부담스러울 거다.

하지만 그래도 꼭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정말로, 존경할 수 있는 인생 선배를 만난 듯한 느낌은 정말로 오랜만이었기에.

그때, ‘···’라는 표시가 잠시 나타났다가 다음 메시지가 왔다.

[에곤_K : 저 역시 꼭 한 번 작가님을 뵙고 싶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군요]

마커스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단념하려는데.

[하지만, 좀만 기다려주시면··· 그래요, 제가 몇 년 안에는 준비가 될 것 같으니 그때는 뵐 수 있지 않을까요.]

“···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어린 아이처럼 해맑게 웃던 그때.

[그리고 만약,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내 이어지는 에곤 K의 메시지에 마커스의 눈이 커졌다.

[라이터스홈의 에이전트 케빈 클레그 @kevin_cleg에게 연락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케빈은 제 출판 에이전트이고,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법무법인을 소개해줄 수 있을 겁니다.]

‘어, 대체 어떻게?’

에곤과 대화하는 동안 마커스는 에이전트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꺼낸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그 누구와도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는데.

‘하지만, 지금 이 메시지를 보면 꼭···.’

에곤 작가님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눈에 보이듯 알고 계신 것 같지 않은가.

손 끝이 떨려오는 가운데.

잠시 고민하던 마커스는 이내 딱 한 마디만을 적어서 보냈고.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이내, 에곤이 보내준 ‘케빈 클레그’의 연락처를 핸드폰에 저장했다.

*

한편 그 시각.

인터넷은 또 다른 소식으로 시끌시끌했다.

굿리즈, 라이브러리씽, 릿시, 북라이엇···.

상당한 회원 규모를 자랑하는 거의 모든 독서 커뮤니티들의 최대 화두는 다름 아닌-

[굿리즈그룹 토론게시판]

일반|

시카고 북콘 가시는 분 있나요

By 개비, 130개 답글, 23100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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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 갈 멤버를 모집합니다(5월 18일 출발 예정)

By 줄리언, 85개 답글, 4329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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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에 개최될 ‘시카고 미국도서박람회’, 즉 시카고 북콘이었으니.

그리고 이 소식에 흥분한 것은 SF서브레딧 또한 마찬가지였다.

[10.5k 북콘의 계절이 돌아왔다!!!!!]

[481 북콘에 작가들 얼마나 오려나]

[191 북콘 - 킨지 맥린 신작 행사 관련]

[46.9k 북콘 할인정보 안내]

···

새 게시물 대부분이 북콘 얘기로 도배된 가운데.

누군가가 ‘에곤 K 북콘행사’에 관해 게시물을 올렸다.

[r/scifi| 6시간 전에 올림]

[32.1k SFF프레스에서 올린 에곤 K 북콘 이벤트 공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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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F프레스도 이번 시카고 북콘에 부스 참가한다고 함.

-<피터팬> 이벤트는 첫날 둘째날에 진행

-좌담회 댄 에이브러햄이랑 에밀리 던칸

-에곤 K 친필사인본 한정판매(선착순 1천 부) + 피터팬 굿즈 판매

에곤 K 본인은 안 오는 듯···

혹시 갈 사람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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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11개 | 97퍼센트가 ‘좋아요’를 누름

└흑 역시 작가님은 사인회 안 오시는구나

└우리집 귀염둥이 돌보느라 그럴 시간이 없으심

└ㅋㅋㅋ 우리집 귀염둥이

└아 친필사인본 갖고 싶다

└굿즈도··· 저거 예약판매 때 특전으로 주던 거 맞지?

└ㅇㅇ 나도 예판 놓쳤는데 이번에 가서 사려고

···

유진의 생각과는 달리.

이미 꽤 많은 수의 독자들이 북콘에 대한 기대감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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