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58화 (58/126)

베니가 좋아(1)

그러한 권유진의 또 다른 페르소나, 에곤 K 역시 SF팬들에게는 이번 북콘의 최대 관심사였는데.

“흐흐, 반응이 여전히 뜨겁구만.”

[SFF프레스 부스- 에곤 k 좌담회 & 사인본 구매 후기]라는 게시물에 길게 달린 댓글들을 하나씩 읽는 가운데.

마크는 저도 모르게 크흐흐 웃고 말았다.

물론 북콘 준비하는 게 힘들긴 했지만,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때면 그간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인본도 1천 부가 다 나갔지!’

에곤 작가님은 남지 않을까 걱정하신 것 같지만, 오히려 편집부에선 너무 빨리 동이 날까 봐 전전긍긍했던 터.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피터 팬> 사인 인쇄본! 인쇄본 얼른 가져와!’

행사 셋째날 저녁, 결국 1천 부가 모두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으니.

이처럼 사인본 판매 자체도 대성공이었지만, 거기에 에곤 K의 팬들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었던 것도 편집부 직원들에게는 뜻 깊었던 시간.

“흐흐, 에곤 작가님도 직접 와서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개인적인 사정으로 칩거 중이시니 쉽지 않겠지만···.

아쉬움을 애써 삼키는 가운데, <피터 팬> 좌담회에 관련된 게시물도 눈으로 훑었다.

‘댄 에이브러햄과 에밀리 던칸의 케미가 좋았다라···. 그렇지, 아주 좋았지.’

댄 에이브러햄.

SF와 판타지 장르 전문이며, 상당한 식견과 예리한 리뷰로 유명한 평론가.

더불어 이런 행사 참석 요청을 잘 받아들이지 않기로 유명한 그 까탈스러운 댄 에이브러햄이-

‘<피터 팬> 좌담회라고요? 당연히 참석해야죠 하하.’

작품 이름을 듣자마자 흔쾌히 수락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에밀리 던칸 또한 이제는 명실상부한 에곤 K의 팬으로 유명했는데.

“···우와.”

SF서브레딧에 올라온,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 링크.

그것을 눌러서 들어가보고는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피터 팬> 책의 한 구절을 찍은 사진.jpg)

웬디와 피터가 만들어낸, 새로운 우주.

나도, 다시 한 번 우주를 만들어볼까.

#다들_오랜친구에게_연락해보자]

[@_Emily_Duncan]

좋아요 2M

···

원래 팔로워 수가 많기도 하지만, 추천 게시물로 노출이 된 덕분인지 좋아요와 댓글 수가 엄청났다.

그리고 꽤 많은 이들이-

“피터 팬에··· 관심이 생겼나 보네.”

아마도, ‘옛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서 흥미를 느끼는 듯.

달린 댓글들을 살피던 마크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하하. 이거 이거, 좋은 소식이 너무 많은걸.”

얼른 다 정리해서 작가님께 보내드려야겠다, 생각하던 그때.

‘어?’

피드를 쭉 올리던 그의 눈에 생각지도 못한 것이 들어왔다.

“···에곤 작가님?”

[시카고 북콘-SFF프레스 부스 사진.jpg]

시카고 북콘.

정말 좋았습니다.

#BEA#SFF프레스#북콘]

[@_Egon_K]

방금 막 올라온 듯한 게시물.

좋아요 수가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건 물론, 그 아래 댓글도 빠르게 달렸다.

└헉 작가님이다!

└작가님···ㅠㅠ 얼굴 뵙고 싶었는데ㅠㅠ

└세상에 에곤 K가 현장에 왔었단 말야?

└직접 오셨던 거 맞나요

└ㄴㄴㄴ 에이전트가 올린 듯

└직접 왔을 수도 있지

└ㅇㅇ 북콘에 연세 지긋하신 분들 꽤 많던데

└흐 앞으로는 지나가는 노인분들도 눈여겨보겠습니다···

마크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편집장실로 달려갔다.

“···편집장님! 이거 이거!”

“아 진짜, 귀 떨어지겠어 마크.”

“이것 좀 보세요!”

폰 화면을 본 해리슨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에곤 작가님이 오셨다고?”

*

···이처럼 미국 출판계가 잔열처럼 남은 북콘의 열기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내게는 이런 저런 소식들이 들려왔다.

첫 번째는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영화 관련 소식.

미스터 케빈에 따르면, 캐스팅이 완료됐고 촬영 일정도 잡혔다고.

또 막성스 라미 감독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는데-

[막성스_라미 : 오디션 보는 데 생각보다 훨씬 힘들더라고요··· 근데! 이번에 일라이저 아역 맡게 된 친구가 진짜 연기를 잘해서···]

오디션 현장에 <호수 괴물> 책도 들고 왔는데, 자신이 에곤 K의 팬임을 엄청 강조했다는 것이다.

[에곤_K : 감독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촬영도 힘내서 하시고,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고 기대하겠습니다.]

그런 응원 메시지를 보내자 라미 감독은 아주 좋아했다.

또, 두 번째 소식으로 말하자면.

[심사 결과 확인]

[유진 권| 스콜라스틱 공모전 ‘단편소설’ 부문 1차 합격]

···스콜라스틱 공모전에 1차 심사를 통과했다는 건데, 이건 아직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2차와 3차가 남아 있으니.’

2차와 3차 결과가 나오는 건 9월 말, 즉 11학년 1학기가 시작되고 나서다.

그때 제대로 수상각이 보이고 나서 알려도 늦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

여하튼, 둘 다 반가운 소식인 것만은 분명했다.

아 그리고-

‘담당자 마크가 에곤 K의 인스타를 그렇게 열심히 보는 줄은 몰랐지.’

정말 북콘에 오신 게 맞냐, 오셨다면 언제 왔다 가신 거냐···.

[S&F편집부_마크 : 아 물론 물론! 신상을 노출하지 않는 게 작가님 원칙인 줄은 잘 압니다.]

[그냥, 같은 공간에 있었으니 언제 한 번 스쳐지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괜히 신이 나서 말이죠 흐흐]

···그냥 스쳐지나간 정도가 아니라, 얼굴 보고 인사까지 나눴다는 걸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많이 놀랄 것 같지만.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클로이의 생일파티에 만반의 준비를 기했고.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5월 말.

클로이의 생일이 되었다.

“드디어 디데이가 눈앞으로 다가왔네.”

“그러게요, 오늘이라니.”

클로이의 친구들까지 초대한 이 성대한 파티에서, 우리 두 사람은 클로이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줄 계획이었다.

“···클로이가 좋아해야 할 텐데.”

“당연히 좋아하겠지.”

눈앞에 있는 것은 인쇄소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토끼 남작의 모험> 책.

파티의 초대손님들에게도 줄 것을 고려해, 한 박스 가득 주문한 책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일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이 하나둘씩 집에 도착했다.

“클로이~ 생일 추카해···.”

“이거 션물!”

“축하해~”

“히히 고마워.”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다는 클로이 친구들 다섯 명이 -엄마나 아빠를 대동하고- 초대받아서 왔는데.

우리가 파티 장식으로 열심히 꾸며놓은 집안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와, 너무 예뻐어~”

“이히히 파티 죠아 죠아!”

“클로이 오늘 공쥬님 같다아···.”

그리고 때마침-

“클로이, 생일 축하해용!”

“안뇽, 난 올라프야아~ 난 따뜻한 포옹을 좋아해!”

···각각 겨울왕국에 나오는 엘사 공주와 눈사람 올라프로 분장하고 온 아델과 네드의 모습에 아이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우와 우와! 엘사다!”

“엘사 너무 예뻐어···.”

“후후, 고마워 얘들아.”

“오우, 너희들 마음씨가 참 곱구나아~”

“···그게 무슨 말이야 올라프?”

엘사 의상에 가발까지 착용한 아델.

올라프 눈사람 모자를 머리에 쓰고 눈사람 의상을 입은 네드를 보며 두 눈을 껌벅거리고 말았다.

파티에 온다고 듣긴 했지만···.

“대체 그런 건 어디서 구했냐.”

“인터넷.”

“후후, 좀 잘 어울리지 않아?”

···뭐, 애들이 좋아하니까 좋은 거지.

클로이의 선물이 거실 한구석에 가득 쌓인 가운데.

오늘의 주인공과 친구들은 화려하게 꾸며놓은 파티 테이블에 다같이 둘러앉았다.

케이트가 직접 구운 초코케이크에 촛불을 붙인 뒤-

“Happy birthday to you~”

노래가 끝나자 클로이가 촛불을 끄려고-

“휴우, 휴—”

열심히 부는데도 어째 불이 잘 꺼지질 않는다.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말하는 아버지.

“클로이, 휴, 가 아니고 후우 하고 불어야지.”

“휴···.”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열심히, 총 다섯 번을 후후거리고 나서야.

클로이는 뺨이 빨개진 채로 모든 촛불을 다 끄는 데 성공했다.

“어뜨케, 클로이 어쩜 저렇게 귀엽지···.”

“이마의 땀 닦아내는 것 좀 봐 크크.”

아델과 네드도 그 모습에 얼굴이 흐물흐물해진 상태.

여튼.

오늘의 손님들은 정성스레 준비해둔 파티 음식을 신나게 먹었다.

간단한 샐러드나 애피타이저부터 시작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컵케이크나 머핀, 쿠키, 과일과 에이드까지···.

전부 다 배부르게 먹은 후 이제는 선물을 뜯어볼 시간.

“우와, 너무 너무 예뻐! 죠아 죠아!”

친구들의 선물을 다 뜯어보고 신이 난 클로이에게 아버지가 아이 몸만 한 커다란 선물을 안겼다.

“이건 아빠 선물.”

“우와아···.”

어린이용 블록 세트에 동생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던 때.

나와 케이트, 네드와 아델.

우리 네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네드와 아델.

“토끼 남작 베니~ 당근 검을 휘두르는 용감한 친구~”

“토끼 남작 베니~ 신기한 모험을 떠나요~”

아이들이 깔깔 웃는 가운데, 나와 케이트가 준비해온 선물을 내보였다.

“짜잔-!”

“클로이, 이건 우리가 준비한 선물이란다.”

···<토끼 남작의 모험>이라는 제목을 본 클로이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베니···? 이거 베니 맞지, 엄마?”

“응 베니야 베니.”

그리고 클로이 곁으로 어느새 달려온 친구들.

“우와, 이게 뭐야?”

“이거 그거쟈나!”

“아아 토끼 남자악~”

“와 베니 얘기다!!”

동생의 품에 안긴 인형 베니를 보며 깔깔 웃는 모습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리고 클로이는 어땠냐면.

“···.”

아무 말도 못하며 동그래진 눈으로 그 책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뭔가에 사로잡힌 듯 정신 없이 첫 장을 펼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 베니 얘기 볼래.”

“나도 나도~”

“같이 봐아~”

아이들이 몰려들어 머리를 들이밀자.

여유분으로 더 인쇄해놓은 <토끼 남작> 책을 꺼냈다.

“자, 여기도 있어.”

새어머니가 나눠주는 책을 받아들고 잔뜩 신이 난 아이들.

그리고 어느샌가, 방금 전만 해도 시끌시끌하던 파티장이 사뭇 고요해지더니.

사락, 사라락.

아이들이 책장 넘기는 소리만 났다.

“···!”

그 광경에 누구보다도 감탄한 것은 바로 그들의 부모들.

“어머···.”

“어쩜 이렇게···.”

다들 깜짝 놀랐지만, 애써 목소리를 죽여가며 이 기분 좋은 고요함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한다.

홀린 듯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에 부모들이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 가운데.

‘애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저 마음은 어쩐지 알 것 같네.’

아이들에게 억지로 책을 읽힌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

아이들은 각자 소파나 의자, 아니면 바닥에 앉아서 <토끼 남작의 모험> 1권을 열심히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읽는 아이도 있는가 하면.

뒷장을 읽었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는 아이도 있고.

혹은 아무 데나 펼쳐가며 읽거나.

가끔은 한 페이지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그 안에 들어갈 것처럼 뚫어져라 보기도 하거나···.

“흐으, 동생··· 나도, 너무 힘드러···.”

초반의 몇 장만 되풀이해 보던 마리사가 아예 훌쩍이기 시작하자, 마리사네 어머니가 몹시 민망해했다.

그리고 잠시 후.

클로이까지 해서 아이들이 전부 다 책을 읽었을 때-

“진쨔 재밌어!”

“베니, 너무 너무 좋아~”

“또! 또 읽을래!”

“2권 죠~”

아이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내 클로이의 눈이 반짝거리며 나를 향했다.

“오빠아, 이거, 너무 너무 재밌어!”

“그래?”

“웅! 이거 오빠가 만든 거지? 고마오, 사랑해~”

나를 꼭 껴안아주는 클로이.

저절로 입꼬리가 마구 들썩거리는 가운데, 주변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그림은 여기 있는 네드 오빠가 그렸고, 노래는 아델 언니가 만들었지.”

“네드 오빠, 아델 언니 고마오~”

꺅 소리를 내며 좋아하는 아델과 네드.

그리고 책을 편집하고 디자인한 건 케이트라고 덧붙이자-

“엄마, 샤랑해.”

“···나도 사랑해, 클로이.”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꼭 안기는 동생의 모습을, 다른 부모들 모두가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어떤 아이 하나가 날 보며 묻길.

“근데 유진 오빠!”

“응?”

“이거, 지은이가 베니 르 레푸스라고 써 있는데.”

“어, 그렇지.”

이야기가 실감 나게 느껴지라고, 지은이를 ‘베니 르 레푸스’라고 적어놨다.

“그러면~ 베니가 지은이자나요~”

“맞아 맞아, 유진 오빠가 아닌데···.”

그러자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하는 마리사.

“그거야, 베니가 유진 오빠한테 말해준 거지.”

···음?

내가 눈을 껌벅이는 사이, 아이들의 추론이 이어졌다.

“진짜···?”

“여기, 베니가 로티한테도 얘기해줬자나. 나중엔 유진 오빠한테도 해준 거지.”

“아 글쿠나!”

“우와 유진 오빠 너무 대다네~”

저희끼리 결론을 내리는 모습에, 나는 별 수 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럼. 내가 베니한테 다 들은 얘기야.”

그렇게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던 그때, 네드가 뒤에서 내 어깨를 척 잡았다.

“왜.”

“···야, 이거 말야.”

그리고 그 옆에 선 아델의 눈빛도 의미심장했다.

“유진, 이거 아무래도-”

“대박날 것 같지 않냐?”

“···음, 그쪽으론 딱히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이건 클로이를 위한 선물이니까- 라고 덧붙이려던 그때.

“저기.”

어느새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부모 중 한 명이 말을 붙였다.

“이거, 서점에서 파는 책 아니었어요?”

“아, 그게.”

내 앞에 나선 케이트가 이런 저런 설명을 하자, 부모들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떠오르는데.

“서점에··· 진짜 없쪄?”

내 옷자락을 붙들며 묻는 클로이.

“응?”

“오빠, 작가쟈나.”

“···.”

작가가 쓴 글은 다 서점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클로이.

“베니 책, 서점에서도 팔면 좋겠어! 도서관에도!”

“왜?”

“더 많은 애들이 우리 베니를 알게 되잖아~”

아아.

동생의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가운데, 나는 친구의 부모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리고 이미, 눈빛만 보면 모든 결심을 내린 듯한 네드를 돌아보며 덧붙이길-

“앞으로 할 예정이라서요.”

“···네? 그게 무슨.”

클로이 친구의 부모님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 말을 가만히 듣던 케이트 역시 미소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그렇게 어느샌가.

나는 본격적으로 <토끼 남작의 모험>을 셀프퍼블리싱, 그러니까 자가출판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