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59화 (59/126)

베니가 좋아(2)

그날 저녁, 손님들이 모두 간 뒤.

“와, 이런 선물을 준비했을 줄이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계획에서 쏙 빠지게 된 아버지가 클로이와 함께 <토끼 남작의 모험> 책을 감개무량해하며 들여다보는 가운데.

“그래서 그래서, 이 책을 어떻게 낼 건데?

그주 주말.

우리는 자연스럽게 <토끼 남작의 모험> 출간 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돼버렸는데.

‘원고를 쓴 건 나지만.’

이 <토끼 남작>이 아이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은 건 -아동서의 핵심 요소인- 네드의 화려한 일러스트 덕분.

‘어린이책에서는 종종 내용보다도 그림이 인기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

표지부터 시작해 거의 한 페이지마다 삽화가 있는 만큼, 네드의 공이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 이거 어때? 그러니까··· 그 그리핀한테 잡혀갔을 때 말야. 베니가 삑삑거리면서 울음소리도 따라하는 거지.’

‘···오 좋은데?’

이런 식으로 중간 중간, 원고를 읽어가며 좋은 아이디어를 던져주기도 했으니까.

그런 고로, 나는 네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출간하기 전, 일단 제대로 된 계약서부터 써야지.”

“계약서? 무슨.”

“네드 너랑 인세 배분해야 하니까.”

“···뭐? 우와아아.”

생각도 못했는지 눈을 크게 뜨는 네드를 보며 새어머니가 흐뭇하게 미소짓는데.

“아 그리고, 케이트한테도요.”

“응? 아냐 아냐, 내가 인세를 왜 받니.”

황당해하는 그녀에게 나는 하나 하나 짚어 말했다.

“이 책의 교정 교열을 진행하고, 본문 및 표지 디자인을 하고, 마지막으로 제작까지 하셨잖아요?”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종종 편집자나 디자이너가 작은 비율의 인세를 받기도 하고 말이다.

“어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그럴 필요 없어, 유진.”

“아니에요, 이런 건 확실히 해야죠. 물론, 저도 그냥 단순히 좋은 의미로 그러는 건 아닙니다. ···네드 너한테도 그렇고.”

···어디까지나 기여도에 따라서, 업계 관례대로 인세를 책정할 거라고 하자.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유진, 너 아동문학 쪽도 알아?”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렇게 대꾸하던 찰나.

“음, 이만하면 파티 정리도 다 됐고··· 난 먼저 가볼게.”

자기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한 아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델, 아까 그 <토끼남작> 노래 말야.”

“아, 어.”

“엄청 좋더라.”

“···흐, 진짜?”

“어어, 애들이 벌써 흥얼거리면서 다니던데?”

아델의 기분이 좋아지라고 한 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토끼 남자악~ 당근검을~~’

간만에 엄마를 독차지해서 신이 난 마리사가 내내 저 노래를 흥얼거리다 갔으니까.

···한두 번만 들어도 바로 따라부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귀에 쉽게 꽂히는 노래라는 의미.

“이것도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는 거 어때?”

“어? 토끼남작을?”

아델은 한동안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더니, 요즘은 신곡 업뎃이 뜸해졌다.

‘음, 처음엔 너무··· 좋았는데.’

초반에 반짝 하고는 그 이상으로 반응이 오지 않자 본인도 힘이 살짝 빠진 모양이었다.

“응, 재밌잖아. 따라부르기도 쉽고.”

“히히, 그건 맞아.”

“그리고 만약에라도, 정말 운 좋게 대박이 나면-”

시기적절하게 끼어드는 네드.

“아델이 우리 OST 가수가 되는 거지!”

“푸흐, OST. 듣기만 해도 좋다.”

“왜? 맞지 않아?”

푸흐흐-

신나게 웃는 우리를 보며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흐뭇하게 미소짓는 가운데.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 그리고 지금 바로 계약서 초안 작성할 테니까, 가기 전에 한 번씩 읽어보고 가.”

파일로도 보내줄 테니 반드시 문구 하나 하나 따져가며 꼼꼼히 읽어보라고.

“친구 사이라고 해도, 이런 건 아무리 확실하게 해도 지나치지 않으니까.”

필요하다면 법무 검토까지 확실히 한 후에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하자.

“···와 진짜.”

“캐릭터 어디 안 가네.”

뭔가 질린 듯한 얼굴로 두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

6월 첫 주.

10학년 2학기의 끝이 눈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금 나는 네드와 아델을 태운 채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중이다.

부우웅-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녹색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벌써 6월이라니, 이게 말이 돼?”

“여름방학만 끝나면 11학년이라니, 믿기지 않아···.”

좋은 때도 다 갔다며 한숨을 쉬는 두 친구.

매해 초에 1학기가 시작되어 연말에 한 학년이 끝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매년 9월에 새 학년의 첫 학기가 시작된다.

“유진, 유진! 니 감상 좀 말해봐.”

“그래요, 조기 진학을 계획 중이신 우리 지니어스께서는 어떠신가요.”

···두 친구가 말했듯 우리는 곧 11학년으로 올라가는데.

‘12학년까지 다니고 대학에 가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11학년만 마치고 대학에 갈 계획이니까.’

새학기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조기진학 준비를 이것저것 해야 할 거다.

···그래도 뭐, 1년은 더 고등학교 생활을 즐길 수 있으니.

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시간이 참 빠르다, 뭐 그 정도?”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하자, 힘빠진 목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같아, 유진.”

“뭐, 하루이틀도 아니고.”

미국은 겨울방학이 짧은 대신 여름방학이 두세 달 정도로 긴 편.

“그래도 이번 주만 보내면 방학이잖아?”

“아, 방학 좋지이.”

“이번엔 진짜 제대로 놀아야 하는데···.”

아이오와의 6월은 따뜻하고 습하며, 가끔 예고 없이 천둥번개가 치긴 하지만.

그래도 한여름과 한겨울에 비하면 놀러가기에 썩 나쁘지 않은 시기다.

···뭐, 나는 딱히 노는 데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유진, 너도 은근 방학되길 기다리지 않았어?”

“오 정말? 왜, 어디 가게?”

나의 방학 계획을 궁금해하는 두 친구.

“그런 건 아니고, 이제야 좀 맘 놓고 뭔가 쓸 수 있겠다 싶어서.”

“잠깐만,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이제야’ 맘 놓고 쓰다니-”

“그래 유진, 넌 늘 글만 썼잖아? 근데 꼭 수업 때문에 못 쓴 것처럼···.”

“쓰긴 썼는데, 원하는 만큼 못 썼지.”

“···.”

거기에 운동도 실컷 할 거다- 라고 하자 차 안이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그건 그렇고, <토끼 남작>은 어때? 좀 팔리고 있나?”

흐흐 웃으며 네드가 꺼낸 말에, 아델 또한 눈을 빛낸다.

‘···그래, 안 그래도 저 말이 왜 안 나오나 했지.’

클로이의 생일파티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

<토끼 남작>을 자가 출판하는 데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건 모두 다 KDP, 즉 킨들 다이렉트 퍼블리싱이라는 아마존의 대표적인 셀프퍼블리싱 시스템 덕분.

‘완성된 이펍파일을 웹사이트에 올리기만 하면 끝이니까 말이지.’

이 KDP는 현재 킨들 이북시장을 오늘날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 큰 공헌을 한 서비스인데.

누구든 회원가입만 하고 지시에 따라서 컨텐츠 파일을 올리기만 하면 저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가장 큰 장점을 따지자면, 저자가 책 제작비용을 들이지 않고 출간을 할 수 있다는 것.

···구매자가 책을 구매하면 그때부터 바로 제작해 집으로 보내주는 POD(Print On Demand) 형식인데, 이 소량의 제작 비용은 아마존 측에서 감당한다.

뭐 그만큼 인세 비율이 낮아지긴 하지만, 출판의 문턱이 확 낮아지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

나 또한 이 KDP 사이트에 <토끼 남작의 모험>을 등록했다.

제목과 부제, 시리즈명을 적어주고 원고 파일과 표지 파일을 올려준 뒤, 책 가격과 인세 비율을 책정하는 게 전부였다.

‘아, 그리고.’

저자명은 ‘베니 르 레푸스(Bennie Le Lepus)’로 등록해놨다.

내 친구들도 그렇고, 클로이의 친구들과 그 부모님들도 그렇고.

이 책의 저자가 나 권유진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이미 많지만.

‘···클로이 친구들의 동심을 해치지 않기 위한 방책이랄까.’

<토끼 남작의 모험>이 ‘클로이네 오빠가 베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철석같이 믿는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덧붙이자면, 이 저자명은 어디까지나 <토끼 남작> 시리즈에만 한정할 생각.

“지금까지 몇 부 팔렸어?”

“으으 궁금해!”

출간한 지 꼭 1주가 된 지금, 네드와 아델은 얼마나 팔렸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음, 열다섯 부?”

“뭐? 그것밖에 안 돼?”

많이 아쉬워하는 반응의 네드.

“그러게, 난 출간만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릴 줄 알았지.”

순진하기 그지없는 둘의 말에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거든.”

물론 이 KDP만으로도 연 1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작가가 천 명이 넘는다고는 하지만.

대형 출판사에서 내는 책이 잘 팔리기도 쉽지 않은데, 하루에 무수한 숫자의 책들이 나오는 KDP 서비스로는 더더욱 어려운 일.

“괜히 출판사들이 광고와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게 아냐.”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그걸 독자들에게 알릴 기회를 갖는 게 쉽지 않다- 라고 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들.

“뭐, 그래도 언제든 책을 주문해서 볼 수 있다는 건 좋네.”

“흐흐, 난 아마존에서 <토끼 남작>을 검색하면 책이 나온다는 것만 해도 좋더라.”

그래, 이런 식으론 물론 커다란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겠지만.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클로이의 또 다른 친구들이라든가.’

주변의 누군가가 책을 원할 때, 언제든 이 경로를 이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마 그 정도가 자가출판의 의의가 아닐까, 생각하는 가운데.

“아 맞다, 나, 진짜로 <토끼 남작> 노래도 녹음해서 올려봤는데···.”

“어디 봐봐. 오 진짜네, 크크.”

“아 여기서 재생하지 말라고!”

방학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잔뜩 들뜬 친구들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짓고 말았다.

*

그날 저녁.

나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KDP 사이트에 접속해 매출을 확인했다.

‘자꾸만 새로고침하게 되네.’

막상 친구들에겐 판매부수에 큰 의의를 두지 말라고 해놓고, 내가 자꾸 들어가는 게 좀 민망하긴 하지만···.

“어쩌겠어, 이게 인간의 본능인데.”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며 계정 로그인을 하자.

아침만 해도 15부였던 판매수치가-

‘어, 그새 다섯 권이 더 팔렸네?’

20부로 올라가 있었다.

아무 데도 홍보한 것도 없고, KDP 광고 서비스도 딱히 신청하지 않았는데.

“대체 어디서 뭘 보고 사러 온 걸까.”

···클로이가 친구들에게 홍보라도 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리뷰 하나가 달린 것이 보였다.

[헬렌 j| ★★★★★ 아이가 너무 재밌어하네요]

[표지 그림에 아이가 반해서 한 번 사봤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너무 재밌었어요.

아이가 이렇게 진득하게 앉아서 책 읽는 모습을 처음 보네요.

읽는 내내 깔깔거리는데, 참 사준 보람이 있다 싶어서···]

아, 이것 때문인가.

좋은 리뷰 하나가 여러 개 광고 이상의 역할을 하는 법.

흐뭇하게 그 내용을 읽는 와중, 다음 권을 부르짖던 목소리들이 떠올랐다.

‘또! 또 읽을래!’

‘2권 죠~’

‘유진, 이거 다음 권 내용도 생각해뒀니?’

‘야, 2권 보고 싶다.’

앞서 했던 것처럼 문장의 형태로 잘만 뽑아내기만 하면 된다, 하는 생각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뭐, 2권 내용이야 머릿속에 있으니.”

처음에 할 때는 막막했지만, 이제는 제법 이 <토끼 남작>의 기틀이 잡혔으니.

타다다닥-

나는 거침 없이 2권의 좀 더 상세한 줄거리를 적기 시작했다.

[1권에서, 그리핀 둥지를 탈출해 하늘을 나는 돼지를 붙잡아 무사히 귀가하는 데 성공한 베니.

꿈에 그리던 집에 돌아온 것에 며칠간은 정말 기뻤지만···.]

···그것도 며칠밖에 안 가는 법이지, 생각하며 작성을 이어나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워대고 울어대는 동생들 사이에서 베니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고.

결국 참지 못하고 또다시 토끼굴, 아니 성을 나선다.

이번에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인 수탉 버터컵 경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데···]

네드가 그려서 보여준 ‘버터컵 경’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두 수인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공룡 왕국’.

그곳에서 둘은 온몸이 단단한 갑옷으로 뒤덮인 안킬로 백작을 만나···]

2권은 위의 내용처럼 베니가 공룡 왕국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이번의 무대를 공룡 왕국으로 삼은 것은-

‘아이들에게 공룡은 영원한 스테디셀러 같은 존재이니까.’

머나먼 과거 이 지구의 주인이었지만, 더는 존재하지 않는 멸종된 생물.

그것보다 더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존재가 있을까.

1990년대 초 영화 <쥬라기 공원>의 대대적인 성공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룡이 아이나 어른에게나 여전히 변함없는 인기를 자랑하는 데는 아마 그러한 이유가 있을 거다.

···여하튼 그렇게 2권의 줄거리를 한창 집필하던 중.

지잉, 지잉, 지이잉—

갑자기 수없이 쏟아지는 메시지에 핸드폰이 진동을 멈추질 않았다.

“뭐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위 핸드폰을 무심코 집어들었다가.

“···!”

이내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고 말았다.

‘잠깐만, 이건 그러니까···.’

메시지를 보낸 것은 SFF프레스의 담당자 마크와 미스터 케빈, 비숍 작가님.

거기에 네드와 아델이 있는 왓츠앱의 ‘찐친방’까지 아주 난리였는데.

그 내용은 다름 아닌-

“<피터 팬>이··· 진짜로 네뷸러상을 탔다고?”

황급히 SFWA사이트에 접속하자-

[(D-Day) 제59회 네뷸러상 수상작을 발표합니다!]

——————————

[제59회 네뷸러상 수상작]

-네뷸러상 장편 부문

<퀀텀 미스터리>, 키이란 헐리(크로노북스)

···

마우스 휠을 한참 더 내리자 익숙한 제목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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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뷸러상 중편 부문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에곤 K(SFF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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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라고?

홈페이지에 뜬 명단을 보고도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눈을 깜박였다.

‘후보 정도로 끝날 줄 알았는데.’

비현실적인 감각이 드는 한편, 회귀 전의 내가 SF 3대상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을 떠올렸다.

···<잊혀진 성자들>은 세계환상문학상만 수상했으니까.

“···하.”

게임에서 새로운 업적을 해금한 것처럼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관통하던 그때-

[에이전트_케빈 : 작가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희 라이터스홈은 완전 축제 분위기예요 하하하]

[에이전트_케빈 : 이제 곧 시상식이 있겠군요]

네뷸러 시상식.

···미스터 케빈의 메시지가 내 주의를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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